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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78화 (78/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78화

헤이데이 소속사를 차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회사를 차릴 최소한의 자본이 없다면 모든 건 공치사일 뿐이었다.

‘일단 조명수 통장이나 한번 살펴보자.’

통장에는 4천5백만 원이 들어있었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회사를 차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숙소와 사무실 임대비용만 해도 10억은 너끈히 넘어갈 텐데. 월세로 돌리더라도 보증금 5억에 월 1천만 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고··· 밴을 중고로 장만하더라도 1억 정도는 들겠지.’

현재 헤이데이에게 들어오는 광고와 행사를 생각하면 당장 움직이는 기본 활동비는 충당할 수 있었다. 식비, 직원 월급, 기름값, 의상비, 스타일리스트 고용비에 헤어숍 정도는.

문제는 초기 비용이었다.

‘막상 회사를 차리면 생각지도 못한 돈이 계속 들어갈 거야. 어느 정도의 예비비도 필요해. ··· 대강 계산해도 ··· 최소한으로 잡아도 5억에서 7억 정도는 있어야겠지. 담보가 없으니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쉽지 않겠고···’

나의 시선이 창가로 향했다. 자연인에게서 받아 온 돛 세 개 달린 범선이 처음 놓아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혹시나 이런 날이 올까 했는데···’

창가로 다가가서 범선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뒤집어 바닥을 살폈다. 배의 밑 부분에 자연인의 이름과 연락처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익스플로 파이넨셜. 박주영. 010-XX10-XX30]

익스플로 파이넨셜.

1998년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해 약 180여 개의 펀드로 1300개의 회사에 투자하여 570여 개 회사의 상장을 견인한 투자 회사.

IT, 인공지능, 자율 주행, 로봇, 바이오, 생명과학, 방송, 소셜 미디어, 미디어 콘텐츠 등 산업 전 분야에 걸친 고른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투자회사였다. 최대 포털 사이트 네이비와 모바일 메신저 까톡 상장 또한 익스플로 파이넨셜이 이끌었고, 그뿐만 아니라 2000년대 굵직한 IT 회사 중에 익스플로의 투자를 받지 않은 회사가 없을 정도였다.

그 익스플로 파이넨셜의 공동 대표 중 한 명이 자연인, 박주영이었다.

나는 자연에 살으리랏다 촬영 당시 마당에 전시되어있던 돛 세 개 달린 범선 조각을 보고는 자연인의 정체를 바로 알아봤다. 그 범선은 익스플로 파이넨셜의 로고였으니까.

지금과 같이 자금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나는 자연인과 인연을 맺어두었었다. 삼백 년 먹은 천종삼까지 통 크게 양보해가면서.

떠나던 날, 자연인은 범선 밑에 자기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줬다. 긴밀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주는 직통 전화번호였다.

‘몇 달은 회사에 남아 차분히 독립을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일들이 너무 급박하게 진행돼 버렸어···’

사실 그때만 해도 이런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진실이 드러나면서 헤이데이가 별 매니지먼트를 떠나야 하는 시기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게 됐다.

‘박주영이 투자 감각이 있다면 헤이데이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할 것이다. 큰돈을 벌어다 줄 아이돌을 분명 알아볼 테니··· 음, 일단은 박주영과 헤이데이의 주역부터 살펴보자.’

먼저 주역을 살폈다. 큰일을 하는 데 신중하고 싶었다.

헤이데이와 박주영 둘의 운명은 대축(大畜) 리정(利貞) 가식(家食) 길(吉) 리섭대천(利涉大川)이라 나왔다.

대축(大畜)은 리(利)와 정(貞)의 시절에 닿아 불안정한 시기를 벗어나 원숙함에 이른다는 말이고 가식(家食)은 가족을 배불리 먹인다는 말이므로 재물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섭대천(涉大川)은 큰 강물을 건넌다는 말이므로 남들이 두려워하고 엄두도 내지 못할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하는 결단력과 용기, 추진력을 갖춰라는 의미로 풀이가 되었다.

“이 보다 더 길한 운은 없다. 둘이 하나가 된다면 거칠 것이 없는 운세로다.”

망설일 것이 없었다.

나는 지체 없이 범선 바닥에 적힌 익스플로 파이넨셜 박주영 대표의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몇 번가지 않아 반가운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헤이데이 매니저 조명수입니다.”

-조명수 씨. 통화가 오는데 왠지 느낌이 조명수 씨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런가요. 하하.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산삼은 다려 드셨나요?”

-엄청납니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울 정도예요.

“효과를 확실히 보셨군요.”

-네, 확실히 봤죠. 조명수 매니저님이 말씀하신 방식대로 천종삼을 달여 먹었더니, 3일 뒤부터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래요? 어떤 변화였습니까?”

천종삼의 효능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예전에 농사를 짓다가 허리를 삐끗해 몸져누운 농부에게 천종삼을 준 적이 있는데, 먹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하루 종일 밭을 갈았었다.

-글쎄,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더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어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래서 하루 종일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땀으로 다 배출되니 화장실을 안 가도 될 정도였어요. 정말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땀을 쏟았습니다.

“아마 몸속의 독소가 빠져나가느라 그랬을 겁니다.”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한참을 쏟아내더니, 그다음엔 잠이 쏟아지더군요. 일초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래서 꼬박 이틀을 잤습니다. 그리고 난 후 깜짝 놀랄 만한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어떤?”

나는 전화한 용무를 까맣게 잊고 자연인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우선 시력이 엄청 좋아졌어요. 저 멀리 날아가는 새의 깃털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예요. 그것뿐이 아닙니다. 몸도 가벼워지고 기력도 세져서 통나무도 번쩍번쩍 듭니다. 예전에는 내 키랑 비슷한 통나무를 집까지 운반하는 데 꼬박 반나절이 걸렸었는데 이제 10분도 안 걸려요. 그냥 어깨에 메고 살살 걷습니다. 하하. 이러니 무서울 수밖에요. 저 괜찮은 겁니까?

“네. 삼백 년 된 천종삼의 기운이 박주영 님의 시력과 근력의 기를 끌어올린 것 같습니다. 산삼의 효능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거든요. 그래서 하늘이 내린 영약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런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연인의 마음속 근심 하나까지 없애주었다.

-아하. 그럼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

“서울에 사는 가족들은 만나 보셨나요?”

-네. 어제도 만나고 왔어요. 도시에 나가도 식은땀이 안 나고 심장도 벌렁거리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외식도 하고 쇼핑도 하고 너무 좋았습니다. 이게 다 매니저님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자연인의 건강한 모습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무척 다행이었고 자연인에게서 산삼 값을 받는데 미안함이 덜했다.

모든 운과 기운이 하나의 길로 잘 가고 있었다.

“그럼 제가 맘 놓고 부탁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다.”

- ···그럴 거라 예상을 했습니다. 헤이데이 일이지요?

자연인은 뜻밖에도 내 용건을 먼저 알은체 했다. 정보력이 좋은 자리에 있어 그런지 일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아는 눈치였다.

“알고 계시군요.”

-대충은요. 강북 경찰서에도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어제까지 서울에 있었는데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헤이데이는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이라 관심 깊게 사건을 보고 들었죠.

“아, 네.”

우리나라 최고 투자 회사 대표는 역시 달랐다.

-중요한 얘기를 전화로 다 하긴 그렇고. 한 번 오시죠. 제가 직접 채취해서 만들어놓은 녹차가 좋습니다.

“네, 안 그래도 지금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주변에 마침 볼 일도 있어서요. 한 시간 후면 도착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당연히 괜찮습니다. 매니저님은 역시 빠르시네요. 그럼 저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네. 그럼 잠시 후에 뵙죠.”

자연인과 곧 만날 것을 약속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직 서울 원룸이었지만 축지법을 이용해서 내려가면 금방이었다.

***

‘이제 가면 되겠다.’

가방에 서류를 챙겨 나설 준비를 했다. 회사 설립에 관한 비전을 정리해 놓은 서류였는데, 나는 서류를 바탕으로 박주영에게 투자를 권유할 생각이었다.

‘자연인부터 만나고 천지암을 들렀다 오자.’

나선 김에 최율하가 예전에 머물었던 천지암까지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동안 도력이 미치지 못해 다녀올 생각을 못했는데, 오늘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헙!

휙 휙 휙 휙 휙 휙 휙

축지법으로 서울에서 경북 홍천의 앵산 주차장까지 순식간에 이동했다.

“헉.헉.”

전보다 길게 축지법을 사용해서 그런지 숨이 조금 찼다.

‘천지암을 다녀오면 이런 사소한 문제도 다 해결될 거야. 순광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

앵산 주차장에서 자연인의 집까지는 뛰어서 올랐다.

산길을 오르는 건 평지를 걷는 것과 똑같았다. 숨도 차지 않고 몸에 무리도 없었다. 30분 정도 올랐더니 자연인의 나무집이 보였다.

자연인 박주영이 마당에서 대패질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아,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하자 박주영은 나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박주영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생기가 돋았다. 육신의 병이 말끔히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데 박주영은 반발 티 하나만 입고 있었다. 겨울옷이라고 하기에는 턱도 없이 얇아 나도 모르게 걱정의 말을 해버렸다.

“안 추우세요? 옷이 너무 얇습니다. 아직 겨울 한기가 서린데.”

“괜찮습니다. 산삼 먹고 난 후론 추운 게 없어요. 밤에 잘 때도 여기 대청마루에 이불도 안 덮고 잡니다. 하나도 춥지가 않아요. 하하.”

박주영은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넘쳤다.

“점점 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자, 들어갑시다.”

방 안에 찻잔과 녹차가 이미 준비돼 있었다.

“제가 직접 산에서 채취한 녹차예요. 향이 얼마나 달큰한 지 몰라요.”

“음, 정말 신선하네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차를 마시니 몸이 산뜻해졌다.

사실, 목적이 있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것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박주영의 얼굴을 보니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럼 이제 서울로 올라가실 건가요? 병도 다 나았겠다 가족들이 기다릴 것 같습니다.”

박주영은 허공에 대고 손을 휘휘 저었다.

“이곳에 정이 많이 들었고 또 편해요. 사람 소리보다 새 소리가 정겹고 자동차 소리보다 바람 소리,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가 더 좋고요.”

자연인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갔기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헤이데이만 아니라면 나도 벌써 산에 집을 지었을 것이다.

“제 얘기는 이쯤 하고··· 바쁘신 매니저님께서 깊은 산골까지 찾아오셨을 때는 이유가 있으실 텐데. 이제 그 이야기나 한번 들어 봅시다.”

박주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빙긋 웃었다. 사업가 체질이라 그런지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잘 이끌었다.

“네. 아까 통화했을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헤이데이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헤이데이가 별 매니지먼트에 계속 머무를 순 없겠죠. 자기를 그렇게나 기만한 회사와 다시 손을 잡는다는 건 자기도 결국 같은 과라는 건데... 제가 크레이즈와 재경이 밖에 만나지는 못 했지만, 전혀 그런 과가 아니었거든요.”

박주영은 투자 스페셜리스트답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네, 알고 계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조만간 헤이데이는 별 매니지먼트를 나와서 독자적으로 활동할 겁니다. 헤이데이만을 위한 매니지먼트를 세워서 말이죠.”

박주영은 우려낸 녹차를 품위 있게 마시며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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