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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73화 (73/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73화

일단 동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매니저님.

“지금 어디야?”

-연습실입니다. 헤이데이 맹연습 중이거든요. 내일 음방도 그렇지만 다음 주 뿜뿜 아이돌도 대비해야 한다고요. 매니저님은 언제 오세요?

“응, 나 지금 볼 일 다 봤고, 30분이면 갈 거야. 멤버들 밥은 먹었어?

-앗,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아~ 밥때를 놓쳤네요.

시간이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럼 들어가는 길에 내가 먹을 것 좀 사갈게.”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전화를 끊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맛집을 찾아보았다. 마침 근처에 떡볶이 맛집이 하나 있었다.

‘떡볶이랑 순대 사가면 좋아하겠다.’

나는 서둘러 떡볶이 맛집으로 향했다.

무쇠 철판 위 빨간 떡볶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그 옆에 스테인리스 솥에서는 순대가 맛있게 쪄지고 있었다.

맛집답게 손님들이 많았지만 줄을 설 정도는 아니었기에 바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뭘 드릴까요?”

“네, 떡볶이 7인분 하고 순대 3인분만 포장해 주세요. 혹시 막장도 있나요?”

“순대에 찍어 드시게?”

“네, 혹시 있으면 막장도 챙겨 주십시오.”

마산 출신 찬희가 경상도 지방에서는 순대를 막장에 찍어먹는다고 말한 게 생각나서 부탁드렸다,

“종종 찾는 손님이 있어서 준비돼 있어요. 말투가 경상도가 아닌데 순대를 막장에 찍어 드시나 봐요.”

“네, 제가 아니라 같이 먹을 친구 입맛이 그래서요.”

“사실 저도 막장에 찍어먹는 거 좋아해요. 구수하더라고. 잡내도 싹 잡아주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아주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떡볶이 7인분 순대 3인분 그리고 소금과 막장을 포장해서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헤이데이가 먹을 늦은 점심을 들고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 멤버들은 꼼짝 않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느라 내가 온 줄도 몰랐다.

‘뭐 하고 있지?’

사온 떡볶이와 순대를 의자 위에 올려두고, 잠시 멤버들 하는 걸 지켜봤다.

크레이즈가 아이패드를 들고 뭔가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 집중해서 잘 들어.”

궁, 탁!

드럼 소리가 아주 짧게 나왔다.

“뭐? 벌써 끝났어?”

“뭐가 이리 짧아.”

“이것만 듣고 어떻게 맞춰?”

“도저히 모르겠다.”

‘아~ 뿜뿜 아이돌 게임 연습 중이구나.’

1초 전주를 듣고 노래 제목을 맞추는 ‘1초만 듣고 맞춰봐’ 게임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금방 그건 마일리지의 '나에게 돌아와' 잖아. 120 bpm 드럼 비트로 시작하는 경쾌한 노래로 5년 전에 유행했었지.

조명수가 정리해 놓은 동영상 파일과 너튜브 정보를 섭렵한 결과 어렵지 않게 답이 나왔다.

“정답!”

그때, 찬희가 손을 번쩍 들었다.

“네, 정답을 말씀해 주세요.”

“마일리지의 ‘나에게 돌아와’.”

“정답입니다.”

와와와

짝짝짝짝

멤버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우리의 리더. 찬희 형. 최고다. 최고야.”

“찬희 형 아니었음 큰일 날 뻔했다.”

“1초만 듣고 맞춰봐 게임은 찬희 형만 믿는 걸로.”

멤버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크레이즈가 손을 저으며 부연설명을 했다.

“제목을 맞추는 건 시작에 불과해. 노래에 맞춰 춤까지 완벽하게 춰야 한다고. 그러니까 안무도 외워둬야 한다는 거지.”

크레이즈가 마일리지의 ‘나에게 돌아와’ 전곡을 틀었다. 그 순간, 리오가 벌떡 일어서더니 곡에 맞춰 춤을 췄다. 완벽했다.

“오, 퍼펙트!”

“똑같다, 똑같아.”

“우린 리오 보고 따라 하면 되니까.”

“음, 잘할 수 있어.”

크레이즈가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문제 낼 준비를 했다.

“좋아. 다음 문제.”

탁, 탁, 탁, 탁

드럼 하이햇을 클로즈한 상태에서 4비트로 시작하는 곡.

‘블랙레인의 ‘호러‘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답을 맞혔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건 헤이데이의 예능이니까.

“젓가락으로 밥상 두드리는 소린데.”

“아, 뭐지? 생각날 것도 같은데.”

재경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지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답.”

“현우.”

“제이식스의 ‘폭주’?”

“땡!”

“정답.”

“찬희.”

“블랙 레인의 ‘호러’”

“정답입니다.”

우와아아아.

찬희, 찬희, 찬희, 찬희.

멤버들은 환호성과 함께 찬희의 이름을 외쳤다.

“역시, 우리의 메인 보컬. 찬희.”

재경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금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흥분했다. 역시 리액션은 재경이가 최고였다.

“춤까지 완벽해야 해. 자, 노래 나간다.”

음악이 나오자 이번에도 리오가 벌떡 일어서 춤을 췄다. 박자 하나 밀리지 않고 디테일까지 살린 동작은 완벽했다.

‘대견한 녀석들!’

짝짝짝짝짝

“잘한다. 헤이데이. 천하무적이구나.”

멤버들이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크게 박수를 치면서 칭찬을 쏟아부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명수 형. 오늘 하루 종일 어디 있었어?”

“그러게. 오늘 처음 봤잖아.”

“어디 갔다 왔어?”

멤버들이 내게로 몰려오면서 폭풍 질문을 쏟아부었다.

나는 사온 떡볶이와 순대 봉지를 멤버들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 점심 안 먹었지? 먹고 하자. 떡볶이 하고 순대 좀 사 왔다.”

“오우~ 떡볶이, 순대. 우리의 영원한 에너쥐~~”

“와우~~ 역시 명수 형.”

“떡볶이 사러 지금껏 없었던 거야?”

멤버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떡볶이와 순대 포장을 뜯었다.

“그런데 동일이는 어디 갔어?”

“응, 사무실 잠깐 갔다 온다고 했어. 금방 올 거야.”

“그래.”

멤버들은 배가 고팠던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근데 뿜뿜 아이돌 게임은 현장 랜덤이잖아. 지금 연습하고 있는 게임 안 하면 어떡해?”

“랜덤인데 그래도 패턴은 있어. 남자 아이돌 나왔을 때 그리고 멤버가 다섯 명 이상일 때는 이 게임을 할 확률이 70% 이상이야.”

“우리가 전부 다 분석했지. 킥킥킥”

“맞아. 맞아.”

“아니, 그런 걸 언제 다 분석했어?”

“뿜뿜 아이돌을 설렁설렁 대비할 순 없잖아.”

“우리들의 분석에 따르면 2배속 랜덤 플레이 댄스, 줄다리기, 닭싸움, 그리고···”

구천 대사님이 그러셨다. 사람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기에 따라 변한다고.

헤이데이를 보면서 그 말씀이 정말 옳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역시 헤이데이를 보니 아침부터 지쳤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

다음날 새벽 헤이데이는 저번 주와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나 음방을 대비했다. 새로 옮긴 숙소에는 욕실이 4개라 - 마스터룸에는 샤워실과 욕조가 각각 있어 사실상 5개의 욕실이 있었다 - 멤버들은 30분이나 더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레르에 들러 스타일링을 받고 넉넉하게 NBS 방송국에 도착했다. 어메이징 인기가요도 당연히 헤이데이에게 단독 대기실을 내주었다.

“음, 단독 대기실이다. 저번 주에 이 복도를 지나서 저기 합동 대기실을 썼었는데.”

“좋다.”

“아직도 꿈같아.”

말은 그렇게 해도 한결 여유 있는 모습으로 멤버들은 대기실로 향했다.

그런데 복도에 빅터스 멤버들이 있었다. 서로의 대기실이 바로 맞은편이라 딱 마주친 것이다.

헤이데이와 빅터스는 더 이상 친한 척 사이좋은 척을 하지 않았다. 덮을 수 없을 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었기에. 물론 헤이데이가 아니라 빅터스 쪽에서.

빅터스 멤버들은 헤이데이를 보자마자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쳇, 너희들은 그게 문제라는 거야. 겨우 1등 한번 한 걸로 최고나 된 것처럼 우쭐 거리는 꼴이라니.”

···

헤이데이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헤이데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민후까지 가세했다.

“오늘 우리가 너희들 발라 줄 거야. 앞으로 기어오를 생각 못하도록.”

···

이번에도 헤이데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 이유는 내가 당부했기 때문이다. 빅터스가 어떤 도발을 해와도 참으라고. 힘들겠지만 나를 봐서 참으라고 했다.

오늘로 빅터스는 끝이니, 만에 하나라도 엮이지 않는 것이 좋았기에 그렇게 당부해 놓았다.

헤이데이는 내가 시킨 대로 빅터스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셨나? 무섭나 보지.”

“완전 쫄았구만.”

“병신 같은 새끼들..”

빅터스 도발의 수위가 점점 올라갔지만, 헤이데이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참았다.

찬희가 헤이데이 멤버들을 돌아봤다.

“자, 어서 들어가자. 들어가서 좀 쉬고 방송 준비해야지.”

“응, 알았어.”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러게.”

“오늘도 멋진 무대를 보여드려야지.”

헤이데이는 빅터스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기실로 쏙 들어갔다.

“야, 찬희. 뭐야! 쫄았냐? 쫄았냐고!”

그때, 분통이 터진 제이크가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찬희의 어깨를 잡았다. 참을 만큼 참은 찬희가 제이크의 손을 어깨에서 떼버리면서 돌아 섰다.

“제이크, 정말 아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냥 한 마디만 할게··· 우리 헤이데이 이제 빅터스 너희 신경 안 써. 그냥 우리 길만 갈 뿐이야. 그러니까 너희도 그냥 너희 갈 길 가.”

“뭐?”

제이크는 온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더 이상 아무 말하지 못했다. 발버둥 칠수록 꼴만 우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든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빅터스, 오늘이 마지막인데 끝까지 추잡하게 나오는구나.··· 물론, 너희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오늘 방송 이후로 백현석의 악행과 문자 투표 조작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빅터스에게 오늘 방송은 마지막 활동이다.

***

백동석 백현석 형제가 백동석 집 거실에 앉아 어메이징 인기가요 본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로 붙는 헤이데이와 빅터스의 1위 대결을 함께 시청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음방부터 빅터스가 헤이데이를 밟고 일어설 겁니다.”

“그래. 그렇게 해서 다시금 승리 이미지를 가져오면 돼.”

“그럼, 헤이데이는 해체하는 순으로 갑시다. 형님.”

“그래야겠지··· 조명수한테 걸그룹도 맡겼으니까 자연히 헤이데이와는 멀어질 거야. 틈을 봐서 해체해 버려··· 멤버 하나하나는 쓸모가 있으니 재계약을 해서 쓰면 되고.”

“맞습니다. 형님. 그게 사업적으로 더 이득이죠.”

회사 대표 입장으로 헤이데이가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국도 회장의 아낌없는 투자와 장영욱 국회의원의 뒤봐주기가 없다면 별 매니지먼트는 힘들다. 단순히 혜택을 포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보복이 뒤따를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헤이데이는 해체를 하더라도, 노래 잘하는 찬희에게는 솔로 앨범을, 잘 생긴 현우에게는 배우를, 크레이즈와 리오는 묶어서 프로젝트 그룹으로, 재경은 예능인으로 활용하면 된다. 능력 좋은 조명수에게는 걸그룹을 맡기고.

회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백동석은 생각했다.

‘블레이즈 후계자는 빅터스. 헤이데이 멤버들은 소질에 맞는 다른 활동. 조명수는 걸그룹 매니저. 그래, 이렇게 정리하는 게 딱 좋아!’

백동석의 머릿속에는 앞으로의 계획이 착착 수립되고 있었다.

“오늘 이기는 건 확실하지?”

“질 것 같으면 제가 여기 왔겠습니까. 조치는 다 취해···”

“음음··· 그 얘기는 됐고. 현석이 네가 이길 거라고 확신하면 이기는 거지 뭐. 음.음.”

백동석은 동생이 너무 자세히 보고를 할까 봐 말머리를 뚝 잘랐다. 똥물은 한 방울도 튀기면 안 되니까.

백현석은 형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그쯤에서 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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