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47화
회사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눈인사를 건네고 관심을 가지며 축하를 전했다.
“어, 조명수 매니저님 축하합니다. 어제 방송 너무 잘 봤어요. 크레이즈랑 재경이 어떻게 그렇게 방송을 잘해요.”
홍보팀 사원 김수창이 복도에서 나를 보고는 인사를 했다.
예전 조명수가 홍보팀에 커피며 음료수를 사들고 드나들 때 안면을 튼 김수창이었다.
“네, 그렇게 잘할 줄 저도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여유 있게 축하인사를 받았다. 복도를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도 계속해서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축하드려요.”
“헤이데이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모두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했다.
김수창이 내게로 다가왔다.
“헤이데이가 드디어 어둠을 뚫고 올라오네요.”
“이젠 홍보팀도 신경 좀 더 써주시겠죠?”
“당연하죠. 안 그래도 지금 헤이데이 자료 따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 혹시 오늘 나온 기사 중에 ‘진흙 속에 진주를 찾다’란 기사 보셨어요?”
나는 당연히 헤이데이에 관한 기사는 다 꿰고 있었다.
“네, 봤죠. 헤이데이가 오랜 역경 끝에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고 쓴 그 기사.”
‘많은 기사들이 있는데 하필이면 왜 이 기사를 봤냐고 묻는 걸까? ··· 아, 그 기사에 구하기 힘든 예전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혹시 그걸 김수창이 기자에게 줬나?’
“그 기사에 헤이데이 예전 연습실 사진이랑 숙소 사진이 있던데··· 혹시 그 사진들 수창 씨가 기자에게 제공한 건가요?”
김수창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드디어 알아준다 싶은 표정이었다.
“네. 그 사진들. 제가 회사 인트라넷 전부 뒤져서 겨우 찾은 거예요. 우리 홍보실 작품입니다. 하하.”
“오호, 그래요? 정말 고맙습니다.”
예전 조명수의 노력에 지금 나의 노력을 더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헤이데이를 돕고 있었다. 일을 행함에 있어 인복이 중요한데, 헤이데이의 기운은 인복까지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제 헤이데이 해금됐어요. 적극적으로 홍보 들어갈 겁니다.”
“잘 됐군요. 감사합니다.”
“그동안 받아먹은 커피 값은 해야죠. 그럼 나중에 1연습실에서 봬요.”
“네, 그러죠.”
1연습실은 빅터스 전용 연습실.
오늘 그곳에서 홍보팀 주최로, 헤이데이와 빅터스가 스스럼없이 친하게 지내는 동영상을 찍을 예정이었다.
김수창과 헤어지고 가수 3팀 사무실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관심과 축하는 계속됐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조명수 매니저님.”
“야, 명수야. 한 턱 내야 하는 거 아니냐.”
“하여튼 이번 사건을 보면 연예인은 어디서 얻어걸려 터질지 모른다니까.”
“어떻게 이렇게 극적 반전을 이루어 내냐? 해체될 뻔한 헤이데이를 산소 호흡기 달고 심폐소생을 해서 살려 내다니. 명수 너 당장 우리 팀으로 와라!”
2팀장의 걸걸한 목소리로 뒤로,
나와 전혀 안면이 없는 IT 팀 속삭이는 소리도 들렸다.
“저 사람이 헤이데이 매니저.”
“이제 아마 헤이데이 홈페이지 따로 만들어야 할 걸.”
“만들라는 지시 벌써 내려왔어. 너 몰랐냐?”
“아이고, 또 날 밤새겠네.”
‘오호. 헤이데이 홈페이지가 생기려나 보네. 소통을 못해서 팬들이 답답해하고 있는데, 정말 잘 됐다.’
나는 하루 만에 달라진 헤이데이의 위상과 회사의 공기를 느끼며 씩씩하게 걸었다.
“오셨습니까, 매니저님”
먼저 출근해 있던 배동일이 인사를 했다.
“어, 일찍 왔네.”
“네. 공부할 게 있어서요.”
배동일은 A4 용지 뭉치를 들어 보였다.
“그게 다 뭐야?”
“선해 누나가 이 정도는 숙지해야 한다고 자료를 주셨습니다.”
“오, 그래?”
얼핏 보니, 회사 조직도와 설계도, 방송국 위치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열심히 해.”
“네··· 그런데 매니저님, 회사가 난리도 아니에요.”
배동일이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뭐가 난리가 아니야?”
헤이데이 때문에 난리가 아닌 상황을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냥 모른 채 하고 물었다.
“어제 자연에 살으리랏다가 빵 터져서 그런 것 같은데요··· 각 사무실에서 처음 보는 분들이 찾아오셔서는 저보고 축하한다고 그러고. 잘 부탁한다고 그러고. 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무실까지 걸어오면서 보고 들은 것을 배동일도 사무실에 앉아서 보고 들었나 보다.
별 매니지먼트는 힘과 권력으로 돌아가는 회사인데, 그 힘과 권력이 헤이데이에게로 쏠리려는 징후가 보이니 사람들이 여기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헤이데이의 파워가 커질 것 같으니까, 우리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야.”
“네? 그냥 각자 일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여기는 회사라고, 그것도 엔터 회사. 대중적 관심과 인기를 가진 스타한테 잘못 보이면 일이 껄끄러워진다고. 한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일주일씩 가기도 한다는 거지.”
“아.”
배동일은 이해를 하겠다가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뜨기 전에는 을이지만, 한번 뜨면 갑이야. 가령 IT 팀 같은 경우에는 지금 헤이데이 홈페이지 제작 얘기를 하던데.”
배동일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경청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자기네들이 만든 홈페이지에 오케이 사인을 안 하면 어떻게 되겠어? 그 부서 사람들은 헤이데이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배동일은 이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는 톱스타 위주로 흐르고 각 부서는 톱스타에게서 결재받을 게 많아. 그래서 우리 헤이데이에게 미리미리 인사를 해두는 거야. 이제 뜰 것 같으니까.”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매니저님.”
“그래.”
그때, 주선해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와 나를 보곤 방긋 웃었다.
“조명수 매니저님. 축하합니다. 처음 자연에 살으리랏다 섭외 전화 왔을 때, 매니저님 없었으면 어쩔뻔 했어요. 전 그때 거절하려고 했잖아요. 생각만 해도 오싹한데요.”
“그러게요. 그 생각하니 아찔하네요”
“매니저님이 헤이데이 살리려고 그렇게 사방팔방 뛰어다닌 걸 아니까··· 하늘도 감복한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하하하
호호호
우리 3팀 주변으로 주선해 배동일 그리고 나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반면, 대각선 저 끝으로 보이는 빅터스가 속한 가수 1팀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라이징 스타 빅터스 방영을 앞두고 한껏 들떠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동일아, 연습실에 내려 가보자. 얘들 열심히 하고 있을 텐데, 뭐 필요한 거 없는지 살펴야지.”
“네. 매니저님.”
나는 배동일과 함께 헤이데이가 있는 4연습실로 내려갔다.
***
“우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음방 1위는 가뿐하겠습니다.”
배동일이 헤이데이 안무 연습하는 것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사실 평범한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안무를 완전한 일체형으로 만들기 위해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고, 0.1초의 버퍼링도 안 됐다. 멤버들은 손끝 하나 발끝 하나까지 정확하게 맞추고 또 맞췄다.
그 와중에 완벽한 라이브는 또 필수였다.
멤버들의 몸과 얼굴에서 폭포수 같은 땀이 흘렀다. 입고 있는 옷이 물에서 건져낸 것 마냥 땀이 뚝뚝 떨어졌다.
배동일은 동작이 끊어지는 타이밍을 적절히 노려 대걸레로 바닥을 닦아냈다.
“텔레비전에서 이런 무대 볼 때는 그냥 휙 지나갔거든요. 근데 실제로 보니까 이게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네요.”
배동일은 밀대를 가슴에 꼭 껴안고 서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떤데?”
“사실, 저희 남자들은 음방 보면 걸그룹만 보잖아요. 남자 아이돌은 좀 뭐랄까··· 화장하고 막 눈웃음 짓고 애교 떠는 것이 영 좀··· 속이 울렁울렁 해서.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눈이 잘 안 가는. 아무래도 같은 남자라서 그런지. 좀···”
배동일의 말에 픽 웃음이 나왔다. 뭐 그런 컨셉을 가진 남돌도 있으니까.
“그래서?”
“아, 그런데 헤이데이 무대는 정말 제가 눈을 떼지 못하겠어요. 안무가 2배속으로 돌린 것처럼 뭐가 팟팟팟 하는데 그게 또 절도가 있으니까··· 완전 빠져 듭니다. 해병대 의장대 같은 뭐 그런 느낌과도 비슷하고··· 제가 맡은 아이돌이라 그런 게 아니라 헤이데이는 정말 대단합니다. 같은 남자가 봐도 아주 멋있어요.”
“헤이데이가 산삼돌 전에 뭐라고 불렸는지 알아?”
“뭐라고 불렸는데요?”
“연습돌.”
“연습돌요?”
나는 조명수가 가지고 있던 기억을 꺼냈다.
“근데 그게 회사 사람들이 비아냥거리며 붙여 준 별명이기도 해. 빅터스는 스케줄이 빡빡해서 연습할 시간도 없는데, 우리 헤이데이는 스케줄이 없어서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연습만 한다는 그런 뜻이었거든.”
그 얘기를 하는데 조명수의 목이 울컥했다.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감정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근데 헤이데이가 대단한 건, 그런 상황에서도 연습을 대충 하지 않았다는 거야. 사람들이 비아냥대면서 연습돌이라 하든 말든, 어쨌든 멋진 무대를 선보이려면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는 거니까.”
“헤이데이는 알수록 진국이네요.”
배동일은 감동에 빠졌다.
“그럼, 진국이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열성으로 키우는 게 아니겠어.”
“저도 열심히 할 겁니다.”
“그런데 말이지··· 최고의 아이돌로 성장하려면 또 그 정도 자질은 기본이야. 세계적으로 K팝이 성공하는 이유가 뭐겠어? 저기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저 땀 아니겠어? 우리 일은 헤이데이가 흘리는 땀이 헛되지 않도록 잘 보살피는 일이고.”
“저는 역마살 때문에 로드매니저를 하려고 한 건데, 막상 헤이데이를 보니 사명감 같은 게 생깁니다. 매니저님.”
그때,
우웅~ 우웅~
정유린 홍보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팀장님. 조명수입니다.”
-지금 어디 계신가요?
“네, 4연습실에 있습니다. 헤이데이 음방 무대 연습 중이라서요.”
-아, 그래요. 잘 됐네요. 빅터스랑 헤이데이 동영상 촬영 30분 뒤에 할게요. 1연습실로 오세요. 서로 협조를 잘하면 아마 20분 정도면 될 겁니다. 너튜브에 올릴 동영상 하고 신문사로 보낼 사진 몇 장이면 되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뵙죠.
“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회사는 헤이데이와 빅터스의 이번 활동이 아이돌 매치 2탄 즉, 대결 구도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전혀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의 그런 움직임에 대항하게 위해 헤이데이와 빅터스가 잘 지내는 모습이 필요했다.
‘우리 헤이데이 입장에서는 대결 이미지도 크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러다 팬들이 흥분이라도 하면 어떤 돌발사태가 발생될지 몰라. 회사 방침대로 평화 이미지로 나가면서 우리 일에만 집중하는 게 더 낫다.’
“얘들아, 30분 후에 빅터스와 1연습실에서 촬영 있어. 그전에 조금만 쉬자. 옷도 너무 젖어서 갈아입어야 하고.”
나는 홍예나 스타일리스트가 챙겨준 의상 가방을 꺼내면서 연습을 중단시켰다.
“알았어.”
“좀 쉬자.”
“동영상 촬영.”
“빅터스를 만나는구나.”
“친한 척이라.”
멤버들은 연습을 멈추고, 다음 일정을 위해 땀을 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