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45화
저녁이 되었다.
자연이 살으리랏다 본방 사수를 위해 헤이데이 멤버들과 함께 숙소로 갔다.
“너무 궁금해. 크레이즈와 재경이가 어떤 활약을 했을지.”
“나도. 크레이즈가 도대체 어떻게 산삼을 발견했다는 건지.”
“나는 멧돼지 만난 게 더 궁금한데."
“뱀 개구리 백숙도 먹었다고 했어.”
“자연인 집이 그렇게 예쁘다며. 나무 조각상들도 많고.”
“하여튼 기대된다.”
촬영을 가지 않았던 찬희, 현우, 리오는 궁금해서 못 견뎌했다.
크레이즈와 재경에게서 촬영 에피소드를 많이 듣긴 했지만, 그럴수록 궁금증만 더해 갔던 것이다.
“나도 궁금해. 어떤 게 편집되고 어떤 게 방송으로 나올지.”
“응, 나도 그래.”
촬영을 가서 직접 출연까지 했던 크레이즈와 재경도 방송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시청률이 어떻게 되려나? 어느 정도는 나오겠지만, 대박을 쳤으면 좋겠는데.’
나는 시청률이 제일 궁금했다.
어쩌면 다들 속마음은 같을지도.
티브이를 OCBS에 맞춰놓고 우리들은 거실 여기저기에 앉았다. 헤이데이 멤버 다섯에 나와 배동일까지 합류하니 거실이 꽉 찼다.
“치킨부터 시키자.”
“좋지. 늦게 오면 안 되니까.”
“치킨 먹으려고 점심 진짜 조금 먹었다.”
“어떤 브랜드 몇 마리 시킬까?”
배동일이 핸드폰을 들고 모두에게 물었다.
“우린 촌닭치킨 좋아해. 거긴 동네 맛집이라 배민에도 없어. 냉장고에 쿠폰 붙어 있을 거야.”
“알았어. 무슨 맛?”
“간장 맛.”
“오늘은 양념도 먹고 싶은데.”
“그냥 후라이도 먹고 싶다.”
멤버들이 내 눈치를 슬금 봤다. 활동기에 음식조절은 필수지만, 간장 양념 후라이드가 다 먹고 싶은 것이다.
나는 자연에 살으리랏다 본방이 있는 날에 인색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그럼, 간장 양념 후라이드 각각 1마리씩만 시켜. 그 정도는 먹어도 될 거야.”
예~~
오예~~~
“그럼 시키겠습니다.”
배동일이 냉장고에 붙어있는 촌닭치킨 쿠폰을 떼 들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 집 생맥도 죽이는데.”
“시원하지.”
“치킨 먹을 때 생맥 같이 먹으면 소화도 잘 되고.”
멤버들이 또 내 눈치를 슬금 봤다.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 이왕에 인색하게 굴지 않기로 한 거.
“1500cc 정도면 되겠지? 재경이는 못 마시니까.”
예~~
오예~~~
“네. 사장님. 여기 태양빌라 101혼데요. 간장 한 마리, 양념 한 마리, 후라이드 한 마리 그리고 생맥 1500cc 부탁드립니다.”
배동일이 깔끔하게 배달 주문을 넣었고, 멤버들은 만족한 표정으로 거실에 퍼졌다.
하지만 리오는 그냥 퍼질 생각이 없었다.
“그럼 본방까지 1시간 남았으니까 샤워부터 하자. 지금 땀 냄새 장난 아니거든. 쾌적한 환경에서 본방사수해야지.”
늘어져있던 멤버들이 꿈틀거렸다. 청소와 청결에 진심인 리오에게 반항할 마음은 애당초 없으니까.
“응, 알았어.”
“무척 피곤하지만 샤워부터 해야지.”
“맞아.”
“그럼 항상 그러하듯 순번대로.”
찬희가 벌떡 일어나 욕실로 먼저 들어갔다. 나이 서열대로 샤워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좀 빨리빨리 해. 나 본방 사수 꼭 해야 하니까. 알았지?”
“알았어.”
“응.”
막내 재경이 불안한 표정으로 형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멤버가 다섯이면 욕실이 두 개는 돼야 하는데. 27평에 욕실 한 개짜리 숙소는 너무 열악하다.’
나는 숙소를 쭉 둘러봤다. 낡고 오래되고 좁았다.
‘숙소를 옮겨야겠다. 넓고 깔끔한 곳으로.’
백 대표가 필요한 걸 물었을 때만 해도 로드매니저, 전담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새 밴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지만, 멤버들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서는 쾌적한 숙소가 먼저였다.
‘숙소를 바꾸려면 오늘 자연이 살으리랏다 시청률과 이번 주 음방 성적이 중요하겠다. 잠시 반짝하는 인기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할 테니.’
“재경아, 들어가. 나 다 끝났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욕실 문이 열리고 리오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왔다.
어느덧, 찬희 현우 크레이즈 그리고 리오까지 샤워를 끝냈다.
시계를 보니 6시 55분이었다.
“으아악, 안 돼. 형, 나 자연에 살으리랏다 보고 샤워하면 안 돼? 혹시라도 내가 샤워하고 있을 때 시작하면 어떻게. 시간 다 됐단 말이야.”
재경은 샤워하러 들어갔다가 앞부분을 놓칠까 봐 조마조마해했다.
“안 돼! 오늘 땀 엄청 흘렸어. 7시 10분에 시작한다고 해도, 앞에 광고 많이 하니까 얼른 샤워하고 나오면 돼.”
“으아, 미치겠다.”
재경은 후다닥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끝낸 멤버들은 텔레비전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띵동~
그때, 현관 벨이 울렸다.
“왔다, 왔어.”
배동일이 쏜살같이 현관으로 나갔다. 고소한 치킨 냄새가 바람을 타고 훅 들어왔다.
“와, 뭔가 딱딱 들어맞지 않아. 샤워도 끝냈고 자연에 살으리랏다 시작하기 전에 배달도 왔고 또 치킨 냄새도 죽이고.”
“아, 아직 손대지 마. 나도 같이 먹어. 나 샤워 다 했어.”
재경이가 욕실에서 나오면서 소리쳤다.
“알았어. 빨리 옷 입고 와.”
“명수 형은 아직도 다이어트야?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아직은 조금 더 해야 해. 나는 괜찮으니까 너희들 먹어.”
현재 내 몸은 180에 70키로. 딱 보기 좋았지만, 5키로만 더 감량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술을 부리려면 걸리적거리는 살이 없을수록 좋았다.
“형, 잠깐만.”
리오가 냉장고로 가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 왔다.
“그래도 우리만 먹을 수 없잖아.”
“이게 뭐야? 멸치랑 고추장 그리고 김이랑 당근이네.”
“형, 이런 건 먹지? 고추장에 멸치 찍어 먹으면 맛있어.”
“오, 당연히 먹지. 리오 고마워.”
속 정 깊은 리오였다. 자기네들이 치킨을 뜯을 때 혼자 멀뚱 거릴 나를 배려한 것이다.
“아직 시작 안 했지?”
“라이징 스타 빅터스는 시작했을 거야. 우리 거는 아직 시작 안 했어.”
재경이까지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앉았다.
“건배.”
“위하여.”
찬희 현우 크레이즈 리오는 맥주를, 막내 재경과 운전을 해야 하는 배동일은 콜라를 그리고 나는 생수를 들고 건배를 했다.
광고가 모두 끝나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어, 이제 한다.”
우리들은 자세를 고쳐 잡고 겸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
알록달록 단풍이 짙게 물든 산의 절경.
익숙한 노래가 배경으로 깔렸다.
[미치겠네 하루 종일 네가 생각나
미치겠네 꿈에서도 네가 날 불러 미치겠네]
“우와, 우리 노래다!!”
“한상호 피디 만세!”
자연에 살으리랏다가 미치겠네와 함께 시작되었다.
‘한상호 피디. 영혼을 갈아 넣겠다더니 약속을 지켰네.’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잠시 후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이번 자연인을 만나기 위해 함께 동행한 헤이데이 두 멤버 크레이즈와 재경.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정상우가 계곡물에 손을 넣었다 얼른 빼면서 양손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후덜덜, 몹시 추워했다.
[이거 진짜 차가워. 칼이야 칼.]
정상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크레이즈와 재경도 계곡물에 손을 담그며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와, 여긴 벌써 겨울이에요.]
재경이 손을 후후 불었다.
[이제 산에는 동장군이 한층 가까워졌네요. 어, 그런데 저 집들은 뭐죠? 자연인을 만나러 왔는데, 동화 속에 빠진 기분입니다.]
나레이션은 계속해서 흘렀고,
출렁 다리로 연결된 나무 위에 지은 집이 화면에 나왔다.
“와아~~”
“우와~~”
“진짜 예쁘다.”
자연인의 나무집에 감탄해서 멤버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실제로 집을 봤던 크레이즈와 재경도 함께 질렀다. 화면으로 보니 더 멋지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내 귀에 어떤 소리들이 포착됐다.
-와
-동화냐
-저기 가보고 싶다.
-이야, 멋지다.
-우와. 아름답다.
좀 더 귀를 열고 자세히 들어보니, 앞 뒤 옆집에서 비슷하게 감탄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다들 자연이 살으리랏다를 시청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나는 안테나처럼 청력을 예민하게 세워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화면은 자연인과의 첫째 날 저녁 식사 장면으로 바뀌었다.
개구리와 뱀을 넣은 닭백숙을 쳐다보는 정상우의 황당한 눈빛이 클로즈업됐다.
“윽, 저걸 어떻게 먹어?”
“왝.”
“헐.”
-윽
-헐
-왝
멤버들은 고통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귀에 포착된 다른 집들의 소리도 비슷했다. 제법 와글거리는 것이 많은 가구가 자연에 살으리랏다를 시청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직접 만드신 거니까 한번 드셔 보세요.]
[전, 진짜 배가 불러요. 손님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릅니다.]
정상우가 자연인에게 먹어 보라고 권하자, 자연인이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하하하하하”
“큭큭큭큭”
-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사방에서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동네 거의 모든 가구가 자연에 살으리랏다를 시청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이 동네만 그럴까? 다른 동네도 그럴까? 전국으로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방송은 크레이즈 분량 채우기 프로젝트 거미 다이빙 장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거미 장면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걷던 크레이즈의 목에 거미가 내려앉자, 크레이즈는 흐느적거리면서 몸개그를 쳐댔다.
푸하하
이히히히히
우히히히히히
킄킄킄킄킄킄킄킄
모두의 웃음보가 빵 터졌다.
현우는 마시던 콜라까지 확 뿜었다.
“아, 진짜 미안, 미안. 그런데 내 잘못이 아니잖아. 저걸 보고 안 웃을 수가 없어.”
현우는 휴지로 콜라 튄 것을 닦았고, 리오가 물티슈로 한 번 더 훑었다.
“야, 크레이즈. 너 살려 주려고 거미가 진짜 애썼네.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저건 짤로 도배된다.”
“나 저 때 진짜 놀랬다고. 너희들도 갑자기 목에 거미 떨어져 봐. 웃음이 나오나.”
“크레이즈. 저거 춤으로 승화시켜도 되겠다.”
리오가 벌떡 일어나 크레이즈의 몸개그를 춤으로 표현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크레이즈를 놀릴 때만큼은 또 진심인 리오였다.
“이야, 자연에 살으리랏다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는 거야. 무슨 개그 프로보다 더 웃기냐.”
“이 정도면 라이징 스타 빅터스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
“혹시 시청률이 덜 나왔다고 해도 나는 여한이 없다.”
멤버들은 눈물을 닦았다. 너무 웃어서.
자연이 살으리랏다 이번 편은 다큐 코믹 리얼 예능 드라마 등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역작이었다.
그때, 화면에 거대 멧돼지가 나타났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카메라 감독도 많이 놀랐던지 화면이 심하게 흔들렸다.
[저리 가! 내 동생 건들면 죽어!]
크레이즈가 자신의 안전보다 재경이를 먼저 보호하려, 멧돼지 앞을 가로막고는 손을 쫙 뻗었다.
잠시 후, 거대 멧돼지는 크레이즈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새끼를 데리고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크레이즈···”
“아,”
“너희들 정말 고생했구나.”
“형, 그땐 잘 몰랐는데 화면으로 보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재경이는 눈시울까지 붉혔다. 화면으로 다시 보니,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크레이즈의 용기와 사랑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먼저 찬희가 크레이즈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다음 현우도 크레이즈를 꼭 안아 주었다. 무뚝뚝한 리오마저 넓은 팔로 멤버들을 감쌌다. 재경이도.
멤버들은 한 덩어리로 뭉쳐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는 형제야.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헤이데이는 감동 모드에 빠져들었고,
방송은 삼백 년 묵은 초대형 산삼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시청률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그 순간, 나는 시청률이 너무나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