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44화
별 매니지먼트는 연예인의 등급에 따라 전담 스타일리스트의 형태가 결정되는데, 등급은 비공식적으로 S, A. B.로 나누어진다.
먼저 엄지나와 같은 S그룹.
스케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스타일리스트가 항상 동행한다. 차를 타고 함께 다니면서 연예인의 스타일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잘못되면 즉석에서 바로 수정해 준다.
개인적인 쇼핑도 같이 하면서 유행하는 옷과 신발 모자 가방도 골라준다. 필요하면 직접 제작해서 주기도 하는데, 어쨌든 연예인의 공식적이고 사적인 모든 패션을 책임져 준다고 보면 된다.
그다음 A그룹.
디자인&코디 부서에서 팀장급의 전담 스타일리스트가 붙는다. 대부분 경력 5년 이상 어시스턴트 생활 4년 이상인 경력자들이다.
스타일리스트들은 담당 연예인의 스케줄을 미리 받아서 상황에 맞는 스타일링을 준비한다. 가수면 무대 의상을, 배우면 현재 배역에 맞는 의상을 준비한다. 사극은 제외하고.
뿐만 아니라 공항을 이용하면 공항패션을, 아침에 일이 있으면 출근 룩을, 일상에서 파파라치가 붙으면 파파라치 룩까지 신경을 쓴다.
S그룹과의 차이라면 하루 종일 동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B그룹.
이들은 스케줄이 많지 않으므로 그때그때 매니저가 제작실로 스케줄 표를 보낸다. 그러면 어시스턴트들이 먼저 자체 의상실이나 협찬 대행사에 가서 의상을 고르고 팀장에게 컨펌을 받아서, 담당 매니저에게 전달해 주면 끝이다.
혹시 규모가 있거나 중요한 스케줄이 잡히면 디자인&코디팀에서 출장을 나가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헤이데이는 B그룹이었기에 필요한 경우에만 제작실에서 옷을 받았는데, 내가 백 대표와 담판을 지은 후로 전담 스타일리스트를 배정받게 됐다.
그 전담 스타일리스트가 지금 홍예나 팀장이고,
그녀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담 연예인은 헤이데이가 처음이다.
“미치겠네 안무가 바뀌어서, 영상으로 보신 것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헤이데이 안무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홍예나에게 안무 바뀐 걸 넌지시 알려주었다. 아이패드에 스케치를 해나가던 홍예나의 손이 멈췄다.
“그렇죠? 어쩐지 뭐가 좀 안 맞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안무가 바뀌었구나. 오늘 안 와 봤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아, 그런 가요?”
“당연하죠. 스타일링이란 게 무대, 조명, 동작 하나하나에 다 영향을 받거든요. 단순히 몸에 맞는 옷만 입히는 작업이 아니에요.”
홍예나는 갈색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면서 화면을 정리해나갔다. 정확히는 지우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안무가 바뀌었으니 아이디어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듯했다.
휙 휙 휙
그 순간에도 헤이데이의 연습은 진행 중.
대기를 가르는 바람의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얼핏 봐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네요.”
홍예나는 헤이데이 멤버 하나하나에게 시선을 꽂아두고 입으로만 말했다.
“음··· 원래는 같은 옷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개성에 맞게 각자 스타일링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
“갑자기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아, 그렇죠. 제 생각과 같네요.”
홍예나의 똑 부러지는 일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홍예나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홍예나의 얼굴은 두 가지가 특징적이었다.
그건 바로 큰 눈과 큰 입술.
큰 눈은 성격이 밝고 감각이 좋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우유부단한 성격일 수 있다.
하지만 큰 입이 우유부단함을 보완한다. 입이 크면 호탕하고 추진력이 있고, 힘도 좋아 일을 하는데 거침이 없다.
홍예나는 관상대로 말과 행동이 시원시원했다.
“저기.”
홍예나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나는 재빨리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여기 뒷자리에 저희가 들고 온 아이템들을 펼쳐도 될까요?”
홍예나가 들고 온 캐리어를 가리키며 부탁했다.
“네, 저희 헤이데이를 멋지게 만들어 주시느라 애쓰시는데 얼마든지.”
“감사합니다.”
헤이데이는 연습실 앞 거울에 딱 붙어 연습하고 있었고, 뒷자리는 텅텅 비었다. 스타일리스트 소품 몇 가지 꺼낸다고 안 될 건 없었다.
“주희야. 들고 온 거 꺼내서 정리해.”
“네, 팀장님.”
홍예나와 주희는 각각 양손에 한 개씩 총 네 개의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었다.
안에 뭐가 들어 있나 궁금했는데, 주희 어시가 현란한 솜씨로 가방에 들어있던 패션 아이템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하의는 청바지에서부터 조거, 밴딩, 데님, 트레이닝, 배기, 슬랙스.
상의는 크롭, 후드, 패치 패턴 레트로 셔츠, 아가일 니트, 볼레로 티셔츠, 꽈배기 니트 조끼.
신발은 하이탑, LED, 슬립온, 댄스 워커 부츠.
액세서리는 스카프, 목걸이, 귀걸이, 반지, 모자, 안경, 멜빵, 벨트, 마스크.
옷가게 하나를 통째로 들고 온 것 같았다.
‘어떻게 캐리어 네 개에 이 물건들이 다 들어가지? 요술 가방인가?’
도사인 나조차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솜씨였다.
“그럼 일을 시작해 볼까?”
홍예나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한 마디 뱉고는 빠른 속도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눈은 멤버들의 동작을 살피고, 손은 거기에 맞는 패션 아이템을 고르며 현란하게 움직였다. 뇌가 두 갠가 싶을 정도였다.
“부드러운 느낌의 찬희, 후광이 비치는 현우, 쿨가이 크레이즈, 카리스마 리오, 귀여운 재경.”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멤버와 아이템들을 매치시켰다.
“주희야, 브라운 크롭티, 허리 라인이 강조되는 걸로.”
“네. 팀장님.”
주희 어시는 재빨리 브라운 크롭티을 찾아 홍예나에게 건넸다.
홍예나는 눈으로만 크롭탑을 찬희의 상체에 맞춰 보고는 고개를 살짝 젓더니, 다시 현우의 상체로 맞췄다.
“너무 딱 달라붙는 거 말고는 없어? 허리 단이 넓어야 움직일 때마다 물결치는 느낌이 나거든.”
“아이템이 모두 여성 전용이라.”
“알았어. 그럼 현우 메리켁 브라운 크롭티 수첩에 적어 놔.”
“네. 팀장님.”
홍예나도 아이패드에다 슥슥 필기를 해나가며 거침없이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기모 조거 팬츠 줘 봐.”
주희 어시가 바지 하나를 들어 올리자,
“아니, 발리 조거 말고 난티 사이드 기모 조거 팬츠로.”
“네. 팀장님.”
주희 어시의 눈과 손이 빠릿하게 움직였다.
홍예나는 바지를 받아 들고, 마찬가지로 먼발치에서만 현우에게 맞춰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슈즈는 버닝 LED 스니커즈가 딱 어울린다.”
다른 아이템들도 꺼내 멤버 한 명 한 명에게 맞추어 보았다.
“V스프레이 프린팅 나시, 백 가터 스트립 조거 팬츠, 플렉스 스니커즈, 귓바퀴 귀찌, 패트릭 시계 반지. 필기해.”
“네, 알겠습니다.”
홍예나의 일하는 모습만 봐도 훌륭한 스타일링이 나올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그때,
리오가 음악을 끄면서 자리에 쓰러졌다.
“자, 이제 조금만 쉬었다 하자!”
“응.”
“아.”
“물.”
“헉헉.”
멤버들 모두 자기 자리 그대로 쓰러졌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일어날 기미도 없었다. 나는 사온 음료수 봉지를 들고 멤버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음료수 있어. 마시면서 쉬어.”
음료수 봉지를 앞에 내놓자, 멤버들은 그제야 슬금슬금 일어나 취향대로 하나씩 골라잡았다.
음료수를 마시는데도 땀이 비 오듯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팀장님도 음료수 하나 드세요. 주희 씨도.”
“네.”
“감사합니다.”
홍예나와 주희에게도 음료수를 건넸다.
그런데 홍예나의 얼굴이 조금 난처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표정이 안 좋으세요.”
“의상을 잠깐 입어 봤으면 좋겠는데, 멤버들이 저렇게 넋다운돼서 땀까지 흘리니··· 안 되겠네요. 대표로 한 명 만 모델을 해주면 되는데. 지금 제가 매치한 아이템들이 조화가 맞는지만 체크하면 되거든요. 음방 네 개를 무대마다 다 색다르게 매치하려니··· 최소 이 주 정도는 필요한 작업인데, 며칠 만에 하려니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서요··· 지금 매치한 아이템은 지금 바로 체크했으면 좋겠는데······”
의상 아이디어를 바로 확인해서 시간 절약을 하고 싶은데,
멤버들이 힘들어하고 거기다 땀까지 절어있어 불가능하니 아쉬운 것이었다.
‘그래, 눈으로만 의상을 맞춰보는 것과 사람 몸에 대보는 것은 천지차이겠지···
에고.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나라도 나설 수밖에. 다 우리 헤이데이를 위함이니 이것 또한 매니저가 할 일이야.’
“저기 홍 팀장님.”
홍예나의 시선이 내게로 왔다.
“뭐 괜찮다면 제가 대신 입어도 될까요? 그냥 마네킹 같은 역할이라면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
홍예나의 커다란 눈이 순간 번쩍였다. 그리고 내 몸을 쭉 훑었다.
“그러고 보니, 오호. 우리 매니저님 몸이 너무 괜찮네요. 완전 모델인데요.”
“저는 아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감탄하는 홍예나 옆에서 주희 어시가 맞장구를 쳤다.
“매니저님이 도와주신다면 저는 정말 감사하죠.”
“네. 그럼 저를 마네킹이다 생각하시고, 스타일링을 맘껏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얼른 끝낼게요.”
나는 헤이데이를 위해 모델을 자청했다.
***
헤이데이는 30분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홍예나의 스타일링을 돕기로 했고, 모델로서.
“파스텔 톤 새턴 퍼플 니트에 스트라이프 패턴 팬츠. 주희 씨.”
“네. 팀장님.”
주희 어시는 이동식 행거에 옷을 걸고 스팀다리미로 옷을 폈다. 금방 의상이 새것처럼 말끔해졌다.
“매니저 님. 갈아입고 나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주희 어시에게서 의상을 받아 들고, 행거 뒤에서 갈아입고 나왔다.
와우!
우와~
바닥에 누워있던 헤이데이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나의 옷맵시가 제법 괜찮았나 보다.
“매니저 님. 모델하셔도 되겠어요. 퍼펙트 합니다. 주희야. 사진 찍어. 앞, 뒤, 좌, 우 전부 다.”
“네, 팀장님.”
찰칵- 찰칵-
“지금 매니저님이 입고 있는 의상은 찬희 씨 스타일링이에요. 보라색이 관능과 우아함을 상징하는데, 조 매니저님과 잘 어울리네요··· 음, 아무튼 무대에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기보다는 사선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리면 여성들이 훨씬 더 매력을 느낄 거예요.”
“이렇게요?”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시범을 보였다. 이왕에 모델을 자청했으니 열심히 했다.
“어머.”
“아, 네··· 네··· 맞습니다. 여성들이 섹시하다고 느끼는 포인트를 잘 잡으셨어요··· 음, 음.”
주희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뱉으며 몸을 돌렸고, 홍예나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말까지 더듬었다.
둘은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에 매진했다.
“음··· 음··· 그래도 뭔가 조금 부족하지··· 주희야.”
“네, 팀장님.”
“은빛 링 목걸이 부탁해. 고리 2개 달린 걸로.”
“네, 팀장님.”
주희 어시는 액세서리를 담아 둔 비닐을 뒤져서 은빛 링 목걸이를 찾았다.
“매니저 님. 목걸이 좀 채울게요. 잠시 만요.”
“네.”
홍예나는 내게 목걸이를 채우고는 뒤로 물러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긴 한데, 안무가 곁들여지면 눈에 띄지 않겠어. 주희 씨.”
“네, 팀장님.”
“검은색 가죽 목걸이로 좀 줘 봐. 굵은 걸로.”
“네, 팀장님.”
다시 내 목에 가죽 목걸이를 채웠다. 그리고는 다시금 갸웃거렸다. 뭔가 확신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매니저님. 혹시 안무 잠깐만 보여 줄 수 있나요? 잘 출 필요는 없고 그냥 동작만 취해주시면 돼요. 찬희 씨가 안무를 할 때 목걸이가 살아나는지 봐야 해서요.”
급기야 홍예나는 내게 춤을 춰달라고 부탁을 했다.
‘모델을 하려면 할 줄 아는 게 많아야 하구나. 참··· 하지만 모든 것이 다 헤이데이를 위함이니 최선을 다해야겠지.’
잠시 미치겠네의 안무를 떠올렸다. 한 동작 한 동작 분석하고 순서를 외우면서.
“네, 그럼 춰보겠습니다.”
나는 춤을 췄다. 멤버들이 추던 모습을 떠올리며 가능한 한 똑같이.
동작을 한 번도 틀리지 않았고 심지어 절도 있게 포인트까지 살렸다.
짝짝짝
짝짝짝짝
“우와~.”
“댄스머신이세요?”
“저 형 정체가 뭐지?”
“명수 형 춤도 이렇게 잘 춰?”
“진짜 헤이데이 멤버 해도 되겠는데.”
앉아있던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 입을 쩍 벌린 채 머리를 감쌌다.
“어머머.”
“뭐니.”
홍예나와 주희는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적당히 힘 조절했어야 했는데 너무 완벽하게 춰버렸구나. 부끄럽게···’
처음 춰보는 춤이라 조금 긴장한 것이 원인이었다.
어느덧
휴식 시간 30분이 지나고, 의상 점검도 끝났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덕분에 멋진 의상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매니저님”
“네, 우리 헤이데이 잘 부탁합니다.”
“최고로 만들어 드릴게요.”
홍예나와 주희는 캐리어를 끌고 연습실 밖으로 나갔다.
“저녁에 자연에 살으리랏다 본방은 숙소에서 볼 거지?”
홍예나가 나가는 것을 보고, 연습을 시작하려는 멤버들에게 물었다.
“응, 마음 편하게 보고 싶거든.”
“알았어. 저녁에 데리러 올게.”
“본방 볼 때 치킨 시켜먹어도 되나?”
“너희들 몸을 보면 조금은 먹어도 되지 않을까? 다들 너무 날씬해.”
“오~~ 신난다. 오늘 연습 엄청 해야지.”
“치킨을 위해서라면 점심은 패스하겠어.”
“그래. 나중에 보자.”
“응. 나중에 봐. 형.”
나도 연습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