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37화
밴이 출발했다.
배동일이 운전대를 잡아서 그런지 출발은 매우 부드러웠다.
“운전엔 자신 있다더니 농담이 아니었네. 내가 운전할 땐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덜덜 떨렸거든.”
운전 실력을 잔뜩 칭찬했더니, 배동일은 다시 한번 해박한 자동차 상식을 뽐냈다.
“브레이크 디스크에 런아웃이 걸려서 그래요. 한마디로 디스크 자체가 불량이라 브레이크를 조금만 밟아도 흔들리게 된다는 거죠. 이럴 때는 예측 운전을 해서 브레이크를 잡아 주셔야 합니다. 처음 시동 걸 때 부르르 떨리는 건 자동 변속기 토크컨버터가 불량이라서 그렇고요. 그게 심해지면 달리다가도 시동이 꺼질 수 있습니다.”
“오우.”
“와.”
“대단.”
“이야, 그런 걸 차가 떨리는 것만 보고도 안 단 말이야?”
우리들은 배동일에게 감동받았다. 배동일은 자동차 박사였다.
“제가 자동차 정비 기사 자격증도 있고, 또 군대 있을 땐 수송 직할대에도 얼마간 있었습니다. 그 뒤로 운전병으로 빠지게 됐지만. 차를 몰아 보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저절로 알게 되더라고요.”
이런 훌륭한 로드매니저가 헤이데이와 함께 일하게 되다니. 헤이데이는 복이 터졌다.
“근데 저는 지금까지 매니저님이 이 차를 몰았다는 게 더 신기합니다. 저는 전문가라 그렇지만, 매니저님은 어떻게 이 차를!! 아~ 정말 대단합니다.”
나는 배동일이 대단한데, 배동일은 내가 더 대단하다고 했다. 괜히 해보는 말은 아닌지 목소리의 울림이 깊었다.
“뭐. 운전하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헤이데이 차니까 버틴 건데. 그게 전문가 눈엔 또 그렇게 대단해 보이나 보네.”
“네.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뭐, 기적까지야. 어쨌든 운전해주는 사람 있으니 편하고 좋네.”
“넵.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배동일은 과하지 않게 사람 기분 맞출 줄도 알았다.
웅~ 웅~
그때 핸드폰에 진동이 왔다. 자연에 살으리랏다 한상호 피디였다.
앵산 주차장에서 헤어지고 처음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한 피디님.”
-네. 조 매니저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물론입니다. 로드매니저가 새로 들어와서 제가 한결 여유 있어졌거든요.”
통화를 하며 곁눈질로 배동일을 살짝 봤다.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날 서울은 잘 올라오셨고요?”
-네, 덕분에 잘 올라왔습니다. 아, 제가 전화드린 용건은 헤이데이 편성 때문에요.
“3주 정도 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맞습니다. 보통 촬영하고 3-4주 정도 뒤에 방송이 나가는데··· 이번 헤이데이 편은 좀 급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그게, 지금 산삼 때문에 난리가 났지 않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란다고 우리 OCBS가 가만있을 수 없죠. 이렇게 핫한 분량을 단물 다 빠질 때쯤 내 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그럼 언제 방송되나요?”
-다음 주 월요일 7시 10분 특별 편성됩니다.
“오, 그래요? 잘 됐네요. 근데 피디님 편집하느라 너무 고생하시겠는걸요.”
-안 그래도 이틀 밤샜습니다. 그래도 요즘같이 행복할 때가 없어요. 하하. 산삼 덕분에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너무 뜨거워져서, 젊은 시청층도 대거 몰릴 것 같고,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PPL도 들어오고 있는 데다, 제작비까지 올랐어요. 부장님이 그냥 올려주시더라고요. 하하하.
“정말 축하드립니다. 피디님.”
-저희 팀에 자진해서 들어오겠다는 스태프도 줄 섰고··· 어쨌든 요즘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이게 다 헤이데이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피디님 뚝심의 승리죠. 저희 헤이데이도 자연이 살으리랏다 덕분에 망고 역주행도 하고 있고, 스케줄도 터졌습니다. 지금도 인터뷰하러 가는 중이고요.”
-아. 그래요? 정말 잘 됐네요. 이번 편 영혼을 갈아 넣어 편집하고 있는 중이니까 방송 잘 나올 겁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꼭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월요일 7시 10분 특별 편성 자연에 살으리랏다 헤이데이 산삼 편 놓치지 마세요.
“당연하죠. 다 같이 모여서 보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하고, 피디님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네, 헤이데이도 오늘 인터뷰 잘하시고 앞으로 잘되기만을 빕니다. 그럼 바쁘신데 전화 끊겠습니다.
“네. 피디님도 들어가세요.”
한상호 피디와의 통화가 끝났다. 기분 좋게 종료 버튼을 밀어 끄는데, 뭔가 뒤통수를 잡아끌었다.
‘참, 에스넷에서 방영한다는 라이징 스타 빅터스 첫 방도 월요일 7시지.’
공교롭게도 빅터스와 헤이데이의 방송 시간이 겹쳤다. 멤버들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뒷자리로 몸을 돌렸다.
“방금 한상호 피디님이랑 통화했는데, 자연에 살으리랏다가 특별 편성으로 다음 주 월요일 7시 10분에 방송된대.”
“오, 잘됐네.”
“얼마나 반응이 좋으면 그런 특별대접을 해준데?”
“다음 주에 우리 음악프로 쭉 나가잖아. 월요일에 먼저 포문을 열어놓으면 좋지.”
좋은 소식에 모두들 기뻐했다. 나는 다음 말을 계속 이었다.
“좋지. 라이징 스타 빅터스 첫 방과 겹치기는 하지만.”
···
순간, 침묵이 흘렀다.
멤버들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시작부터 빅터스와 엮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테니.
“그게 뭐.”
먼저 재경이 쿨하게 침묵을 깨뜨리자, 뒤로 다른 멤버들도 가세했다.
“맞아. 뭔 상관이야? 걔들은 걔들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거고, 우리는 우리대로 움직이는 거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뭐. 나도 상관없어.”
“나도.”
“특별 편성 돼서 좋기만 하다.”
예상대로였다. 헤이데이는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그런 걸 다 신경 썼더라면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다.
“오케이. 우린 우리 일만 하면 되는 거야.”
“맞아.”
“응.”
“그나저나 본방 너무 기대된다.”
***
차는 거침없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도착시간을 확인하려 내비로 눈을 돌렸다.
“이제 거의 다 와 갑니다. 10분이면 도착합니다.”
배동일은 빨간 신호가 켜진 신호등 앞에 차를 세우며 도착시간을 내게 알렸다. 내비보다 편리했다.
“운전도 잘하고 길도 잘 찾고. 네 덕분에 내가 오늘 숨 좀 쉰다.”
“감사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달리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
아침부터 너무 바빴다. 남은 시간 조금은 쉬어야 할 것 같아,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속이 갑갑하고 막힌 기분이 들었다.
‘뭐야? 이 불길한 느낌의 정체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아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기운을 감지했다.
뒤죽박죽 섞인 탁한 기운들이 바람에 실려 내 손에 부딪혔다.
‘앞에서 무슨 일이 난 것 같은데, 뭔지 확실치가 않아. 알아봐야겠다.’
주변을 둘러보며 새를 찾았다.
전깃줄에 앉아 있는 비둘기 한 마리가 보였는데, 살집이 있어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뒤뚱거렸다.
‘날렵한 까마귀나 참새라면 좋겠는데.’
비둘기에게서 눈을 떼고 다른 새를 좀 더 찾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주변에 새가 한 마리도 안 보였다.
오직 그 살찐 비둘기뿐이었다.
‘어쩔 수 없군. 당장 급한 건 나니까. 저 비둘기라도 이용해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살펴봐야겠어.’
[구구, 여기로 잠깐 와 봐.]
마음속으로 비둘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녀석은 놀라 어쩔 줄 몰라하더니, 이내 무거운 날개 짓으로 날아올랐다.
한눈에 봐도 힘겨워보였다.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처럼 위태위태.
구구구-
비둘기는 공중을 한 바퀴 돌아서 내게로 날아들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 손바닥을 내밀었고, 비둘기는 무사히 내 손바닥에 올라앉았다.
원래라면 손가락 위에 앉혔을 텐데, 비둘기의 무게를 내 손가락이 지탱할까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비둘기가 균형을 못 잡을 것 같아 그냥 손바닥에 올렸다.
구구- 헥헥-
명령의 소리를 쫓아 온 비둘기는 가쁜 숨을 토해냈다.
‘무슨 비둘기가 그 조금 난 것 가지고 백 미터 달리기 한 것처럼 헐떡 이냐? 누가 보면 동물 학대한 줄 알겠다.’
나는 비둘기가 듣지 못하게 혼자 생각했다. 녀석에게 상처 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우와, 이거 뭐야! 어떻게 비둘기가 매니저님 손에 올라앉았지!!”
“형, 신기하다.”
“명수 형이랑 있으면 재밌는 일이 많아.”
“근데 비둘기 진짜 뚱뚱하다.”
다들 놀라서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나는 우선 이 비둘기에게만 신경을 썼다.
‘일단 비둘기에게 동안술을 걸어야겠지.’
동안(同眼)술 이란 상대가 보는 것을 나도 똑같이 볼 수 있게 해 주는 술법.
비둘기에게 동안술을 걸면 비둘기가 보는 것을 나도 보게 된다.
동안술!
비둘기의 눈을 바라보며 술법을 펼쳤다.
구구-
비둘기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내 얼굴을 쳐다봤다.
동안술로 연결된 내 눈에, 처음엔 흔들리고 뿌연 그림자만 보이다 이내 조명수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비둘기 눈에 보이는 나였다.
‘오호. 됐다!’
[자, 구구. 하늘 높이 올라가서, 이 도로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봐.]
구-
비둘기는 한숨을 푹 쉬었다. 힘들다는 말이었다.
[어허! 어서 말을 듣지 않겠느냐!]
구구-
한번 더 재촉했더니, 비둘기는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나는 타이밍에 맞춰 비둘기를 힘껏 위로 던져줬다.
푸드덕-
비둘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다 결정적인 순간에 기류를 타고 날아올랐다. 다행인 건 한번 기류를 타니 그다음은 조금 쉬웠다.
하늘로 높이 올라간 비둘기의 시야는 먼 곳을 바라보았고, 그 광경은 내 눈에도 들어왔다. 멋지긴 했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구구- 바로 앞에 있는 도로를 살펴봐.]
구구-
비둘기는 낮게 비행하며 앞으로 날아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사방이 다 막혀버렸네.’
사고는 방금 난 것이라 도로 표지판에 안내 문구도 아직 없었다. 다른 차들은 사고가 난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이 길을 타면 앞으로도 못 나가고 뒤로도 못 빠진다. 한 마디로 약속이 펑크 난다는 말씀. 다른 길을 찾아야 해.’
[구구. 하늘에서 내려오지 말고 길잡이를 하여라.]
구구-
그때 돌개바람이 갑자기 불어 비둘기의 몸뚱아리가 허공을 몇 바퀴 굴렀다. 내 눈에 보이는 영상도 한참을 빙글빙글 돌아 어지러웠다. 헛구역질이 웩 올라올 만큼.
[구구, 제대로 균형을 잡아.]
구구- 구구-
비둘기는 자기도 엄청 노력 중이라고 항변했다.
곧 그 말이 사실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영상이 제대로 잡혔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빠져나갈 길을 찾았다.
좌회전, 직진, 공원 그다음 우회전, ···그리고 유턴···
다행히 길은 있었다.
“배동일.”
“네. 조 매니저님.”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길로 운전을 해.”
“네?”
“앞에 사고 나서 꽉 막혔어.”
“어, 그런데 그걸 어떻게···”
“보면 다 알아. 앞차의 흐름이 느려지잖아.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내 말대로 움직여.”
“네···네, 매니저님.”
대충 얼버무리고 길 안내를 시작했다.
“이 앞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해.”
“좌회전!”
“직진으로 가다가 잔디 공원 건너기 전에 우회전.”
배동일은 얼떨떨해하면서도 내 말대로 척척 해냈다.
우회전, 다시 좌회전, 직진으로 쭉 가다가 유턴해서 다시 우회전.
그렇게 한참 골목골목을 누비고 요리조리 피했더니, 드디어 목적지 카페 로더가 눈앞에 보였다.
주차를 하고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조 매니저님!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매니저 짬밥 5년이면 이 정도는 껌이지!”
배동일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나는 배동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싱긋 웃었다.
[구구. 수고했어. 이제 가고 싶은 곳으로 가.]
구구구-
비둘기와도 작별 인사를 하고,
“자, 이제 인터뷰하러 들어가 봅시다.”
헤이데이를 챙겨 카페 로더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