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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27화 (27/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27화

잠시 후,

“서 실장.”

백 대표는 서동준 가수 파트 실장의 이름을 불렀다.

“네? 네. 대표님.”

“헤이데이 걔네들 어때? 밀어주면 뜰 수 있겠어?”

“아, 예··· 뭐 실수는 좀 하지만··· 잘만 다듬고 ···케어하면 보통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우리 회사 연습생들 수준도 있고 하니···”

헤이데이의 실력을 묻는 백 대표의 질문에 서동준 실장은 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백 대표와 마찬가지로 서 실장 역시 헤이데이에게 관심이 없었으므로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쯧쯧쯧. 자기 파트 가수 실력 하나 모르고···”

“아, 네. 죄송합니다.”

백 대표는 능숙하게 서 실장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서 실장의 이마에 땀이 쫙 배었다.

“그래, 헤이데이가 몇 팀이지?”

“네. 3팀입니다.”

“내일 아침에 3팀장하고 헤이데이 매니저 내 사무실로 올려 보내.”

“네, 알겠습니다.”

“오늘 헤이데이 해체에 대한 안건은 없던 걸로 하고, 회의는 여기서 마치는 걸로 하지.”

백 대표가 먼저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헤이데이는 해체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

자연인과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시끄럽게 몰려들었던 기자들과 산삼협회 심마니들도 모두 떠났다.

자연에 살으리랏다 제작진도 떠날 시간이었다.

“아이고, 2박 3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네요. 사람이란 게 함께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정이 들어 버려서···”

자연인은 못내 아쉬워하며 우리들에게 약초와 산나물 이것저것을 챙겨주었다.

“여기 있는 나무 조각품들. 보잘것없지만, 혹시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하나씩 골라 가져 가세요.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마당 가득이 있는 나무 조각품도 하나씩 가져가도록 했다.

나는 돛 세 개 달린 범선을 선택했는데, 자연인은 흔쾌히 내주었다.

떠날 준비가 다 되었지만, 우리들도 영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 자연인과의 촬영은 유난히 많은 에피소드들로 내내 재미있었다. 거기다 산삼까지 발견해 시청률까지 보장받았고.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뒤섞여 우리는 멈칫 거렸다.

“이 나무집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내년 여름휴가 때 놀러 오세요. 근사하게 완성해 놓을 테니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먼저 한상호 피디가 소탈하게 웃으며 자연인과 가볍게 포옹을 했다.

그 뒤로 나소유 작가, 카메라 감독과 보조들, 음향 감독, 정상우, 크레이즈, 재경까지 모두 자연인과 작별 인사를 했다,

이번엔 내 차례였다.

“아이고, 우리 매니저님은 처음 여기 왔을 때 보다 살이 훨씬 더 빠진 것 같네요. 내가 잘 못 먹여서 그런가? 허허.”

“아니요. 산의 정기를 받아 속이 깨끗해져서 그런 걸 겁니다. 신세 많이 지고 갑니다.”

나는 살이 10 키로 정도 더 빠졌는데, 자연인은 그것으로 농담을 했다.

“신세는 무슨. 제가 더 큰 은혜를 입었죠. 정말 감사합니다. 산삼 먹고 건강해지겠습니다.”

우리는 산삼을 자연인에게 양보했었다. 자연인은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몇 번 사양했지만, 결국에는 본인의 건강을 생각해서 고집을 꺾었다.

천종삼은 자연인이 먹을 것이다. 자기 건강이 좋지 않은데, 다른 사람에게 팔 것도 없었다.

“···다시 한번 당부드리지만 제가 가르쳐 준 대로 산삼을 드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가르쳐 주신 대로 먹겠습니다.”

삼백 년 된 영약의 천종삼이라 하더라도 몸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그냥 먹었다가는 아무런 효능을 보지 못한다.

산삼을 먹기 한 달 전부터 산나물 위주로 식사를 하고 일주일 전에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버섯을 우려낸 물을 음용하여 몸이 산삼을 받을 준비를 먼저 해야 한다.

특히, 삼 일 전부터는 금식을 하고 몸을 심하게 쓰지 않으며 명상으로 하루를 보내고,

산삼을 먹을 때는 하루에 한 번 5g씩 열흘 동안 꾸준히 생으로 천 번 씹어서 삼켜야 한다.

그러면 상했던 몸이 다시 신선한 몸으로 돌아오게 되고 범과 같은 기력을 되찾게 된다.

“그럼,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납시다.”

“네, 그러지요.”

“왠지 매니저님과는 그냥 헤어질 운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보셨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리는 웃으며 작별의 악수와 포옹을 나누었다.

자연인은 집 앞 오솔길까지 따라 나와 우리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

짧지만 의미 깊었던 자연인과의 만남을 끝내고 하산을 했다.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가는 일은 만만찮았지만,

짐도 많이 줄어있었고, 또 이번 촬영은 흥행 보증수표라 다들 얼굴이 밝았다.

“아, 잠깐만요!”

그런데 갑자기 나소유 작가가 멈춰 서서 한상호 피디를 쳐다봤다. 중요한 뭔가를 잊을 뻔했다는 듯이.

“왜? 뭐 놔두고 왔어?”

한 피디는 깜짝 놀라서 나 작가에게 다가갔다.

“아니 그게 아니라, 피디님이 잊으신 게 있는 것 같은데요.”

나소유 작가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한상호 피디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 그거···’

한 피디가 나를 업고 산을 내려가겠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좀 유치한 것 같아서 나는 아무 말 않고 있었는데.

“내가 잊은 게 있다고? 나 놔두고 온 거 없는데. 몇 번이나 확인했어.”

한 피디는 혹시 촬영해 둔 메모리 카드라도 잃어버렸나 해서 사색이 되었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만 했으니, 뭔가 하나 터질 때도 됐고.

“피디님. 그게 아니라. 약속하셨던 거 잊으셨어요?

어제 조 매니저님이 산삼 찾을 것 같다고 했을 때, 그런 일이 생기면 매니저님 업고 산을 내려간다고 했잖아요.”

“···아, 내가 그런 약속을 ··· 했었나.”

정곡을 찔린 한상호 피디의 목소리가 달달 떨렸다.

내심 진짜 업어야 하나 고민하기는 했었지만, 내가 아무 말 없자 피디 자신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제삼자인 나 작가가 굳이 소환해 내다니.

나는 한 피디의 반응이 재밌어서 맞장구를 좀 쳤다.

“나 작가님 기억력 좋으시네요. 맞아요. 산삼을 캐면 피디님이 저를 업고서 주차장까지 내려가시겠다고 하셨죠.”

“저도 분명히 들었습니다. 여기 녹음도 되어 있어요.”

옆에 있던 음향 감독도 가세했다.

한 피디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얼굴에 생글생글 웃음기가 감돌았다.

“아니, 그건··· 웃자고 한 거지. 농담 말이야. 농담.”

한 피디는 일단 발뺌을 했다. 상식적으로 멀쩡한 성인 남자를 업고 산을 내려간다는 게 말이나 되나.

“피디님. 여기 산신님이 다 보고 계세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음에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른다고요. 피디님 그런 거 믿으시잖아요.”

나 작가는 한 피디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찔렀다.

그는 자연에 살으리랏다를 연출하면서 산신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산신 이야기까지 나온 이상, 한 피디는 더 이상 자신이 한 말을 뒤집을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한번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죠. 제가 약속을 지키는지 아닌지 보려고 산신님이 산삼을 내려주셨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약속을 안 지킨다면···”

산신님의 분노를 사게 되고, 이제부터 산에 오를 때마다 재수 없는 일만 생기겠지.

한 피디는 그럴 수는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내 앞에 등을 대고 앉았다.

“업히세요.”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한 피디의 반응이 재밌어서 조금 놀린 거지 진짜 등에 업힐 생각은 없었다.

“아니에요. 저는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아, 직접 업는 것보단 지게를 이용하는 게 낫겠어요. 저기, 감독님. 지게 좀 주세요.”

“알았어요.”

촬영감독이 빈 지게를 한상호 피디에게 건넸다.

‘한상호 피디는 결단코 나를 주차장까지 업고 갈 생각인가 보다. 산신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갑자기 사생결단이 되었어.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하면 진짜 큰 벌이라도 받을 것처럼. 참, 이거. 업힐 수밖에 없구만.’

나는 난감했지만 한 피디의 깊은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럼 제가 피디님 안 힘들게 업히겠습니다. 시골에 살 때 그런 기술도 배웠거든요.”

“그런 기술도 있습니까? 힘 안들이 게 업히는 방법.”

“뭐, 별난 기술이 많이 있죠.”

“네. 그럼 기대해 보겠습니다. 자, 지게에 올라타십시오.”

피디는 지게를 메고 내가 올라탈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도인의 술법 중에 표경(剽輕)이라는 게 있다.

몸에 공기를 불어넣어 몸을 새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술법. 가령 표경을 행하면 풀잎에 서있을 수도 있고, 눈 위를 걸어도 발자국이 찍히지 않는다.

표경!!

나는 속으로 술법 표경을 외쳤다.

그리고 지게에 올라탔다.

“아니, 뭐해요? 해 저물겠네. 빨리 올라타요.”

“저, 지게에 올라탔습니다.”

“네?”

한상호는 뒤를 쳐다봤다.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테니 놀랐을 것이다.

“정말이네?? 진짜 올라탔네요.”

지게에 올라 탄 나를 보고도 믿지 못했다. 제자리걸음을 해보고 일어섰다 앉아 봐도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을테니.

“이상하다. 분명히 지게에 올라탔는데 왜 이리 가볍죠? 가벼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안 탄 것 같은데요.”

“에이, 설마. 혹시 머리 굴리는 거 아닌가요?”

나소유 작가가 의심의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아니야, 봐. 봐.”

한상호는 내가 타고 있는 지게를 메고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다시 가뿐하게 올라왔다.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야 내가 술법 표경을 부려 새털같이 가벼워졌으니 그렇지.’

“우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무슨 일이고?”

“한 피디 갑자기 천하장사 됐네.”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사람들이 더 혼란스러워하기 전에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었다

“혹시 삼백 년 천종삼 때문이 아닐까요. 산삼에서 나오던 그 향기에 효력이 깃들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피디님에게 특히 약발이 간 거죠.”

사람들은 쉽사리 믿지 못하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내 연기력이 약한 것인가.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단호하게 다시 말했더니, 슬슬 믿는 눈치였다.

“그럴 수 있겠다.”

“와아, 삼백 년 된 산삼. 정말 대단하구나.”

“맞아. 맞아.”

“한 피디님 복 받으셨어요. 축하드려요.”

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수긍했다.

예정보다 빨리 앵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들은 얌전히 자기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자연이 살으리랏다 제작진과도 이별할 시간이었다.

“피디님, 우리 크레이즈와 재경이 편집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한 피디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크레이즈와 재경이도 나를 따라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크레이즈 재경 둘이 너무 잘해줘서 아마 멋지게 나올 겁니다. 안 그래요 상우 형?”

“아, 진짜, 진짜. 너무 잘해줬어요. 이번 촬영 내가 얼마나 편했는지 몰라. 크레이즈 재경.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정상우는 크레이즈와 재경의 어깨를 토닥였다.

“자, 그럼 모두 조심해서 올라가십시오.”

우리는 각자의 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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