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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22화 (22/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22화

바위 계곡에 도착했을 때쯤, 해는 벌써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산나물을 채취하고 중간중간 쉬면서 토크도 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자연인의 자루에는 나무에 기생하며 사는 겨우살이, 황철나무 꼭대기에서 자란 상황버섯, 나무 밑동을 다 덮은 덕다리 버섯 등이 불룩하게 채워졌다.

내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자연인은 북동쪽 낙엽송 지역으로 발걸음을 착착 옮겼다.

70도가 넘는 경사면이 끝도 없이 이어져, 제작팀뿐만 아니라 자연인도 낙엽에 미끄러지기 일쑤였지만, 아까처럼 내가 먼저 올라 밧줄을 내려주고, 그걸 잡고 오르면서 겨우겨우 나아갔다.

산이 깊어질수록 많은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여긴 처음 보는 새가 많아요.”

재경이가 얽혀있는 가지 사이에서 새를 발견하고는 자연인을 돌아봤다.

“여기가 아침, 저녁으로 새들이 모이는 일종의 새 터예요.”

“새 터요? ··· 여기로 새들이 모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재경은 피디가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자연인과 대화를 잘했다.

“이유가 있지. 이제 겨울이 오면 새들은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떠나기 전에 찔레나무나 산딸나무 열매로 몸에 영양분을 채워요. 아마 이 낙엽송 지역을 지나면 찔레나무랑 산딸나무가 무성하게 있을 겁니다.”

자연인은 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맘껏 풀었다.

“아, 그리고··· 운이 좋으면 산삼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산삼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부린 연의 술법으로 인해 자연인의 머릿속은 산삼에 대한 이미지로 가득했다.

“산삼요?”

“산삼!”

재경과 옆에서 듣고만 있던 정상우까지 화들짝 놀랐다.

“네. 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산삼 열매인 ‘달’이거든요. 달을 소화시키고 그 삼 씨가 땅에 떨어져서 자라면 또 산삼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 새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산삼이 자라고 있을 확률도 높지요.”

두근두근-

한상호 피디의 심장은 요란하게 뛰었다. 만약에 진짜 산삼을 발견한다면 엄청난 이슈가 될 것이고 시청률 또한 떡상 하겠지.

나는 한 피디의 그런 마음을 읽었다.

“우리 크레이즈나 재경이 산삼을 발견한다면 대박이겠죠?”

슬그머니 다가가 한 피디의 마음을 떠 봤다. 그는 기분 좋은 환상에 사로잡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 산삼 발견하면 게임 끝이죠. 그 뒤론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그냥 잠만 자도 돼요. 산삼 발견하는 장면만 나가도 기본 시청률 10%는 먹고 들어가거든요. 포털 사이트 뉴스 면과 연예 면에 기사가 도배될 거고. 우리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홍보 영상 만들 거고··· 한마디로 난리가 나는 거죠. 하하.”

상상 만으로도 기쁜지 소리 내 웃기까지 했다.

“혹시 촬영 중에 산삼을 발견한 적 있나요?”

“···딱 한번 발견한 적 있죠.”

“그래요? 그때도 대박이었나요?”

“그거 장뇌삼이었어요.”

나소유 작가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장뇌삼이라면···”

인간이 직접 씨를 뿌려 야생 상태로 재배한 산삼. 뭐 몸에 좋긴 하지만 영약으로 치는 건 아니었다.

“사람이 씨를 뿌려 자란 삼. 그래도 시청률이 다른 편보다 3% 정도 높게 나왔었어요. 하여튼 산삼이란 말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나 봐요.”

장뇌삼의 효과가 그 정도? 그럼, 삼백 년 된 천종삼이라면?

“그럼 만약에 삼백 년 이상 된 산삼을 우리 크레이즈와 재경이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나중에 천종삼을 보고 혹시라도 너무 놀라지 않길 바라며,

한번 생각해 놓으라는 의미로.

피디와 작가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만 쳐다보다가,

“하하하하.”

“호호호호.”

동시에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배꼽 잡고 난 후, 한상호 피디가 간신히 한마디 했다.

“그럼 제가 매니저님 업고 주차장까지 하산하겠습니다.”

피디는 나를 순진한 사람 보듯 보면서 의기양양해했다.

‘어, 이 사람 봐라. 시청률 확인도 못하고 죽겠는데.’

나는 한 피디가 가여울 뿐이었다.

“어젯밤 꿈에 우리 크레이즈랑 재경이가 산삼을 캐는 꿈을 꿨거든요. 그래서 느낌이 좋아요. 산삼을 캘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절 업고 내려간다는 그 말 꼭 책임지셔야 합니다. 중간에 취소하기 없깁니다.”

“네. 당연하죠. 삼백 년 된 산삼 캐는 장면을 찍는다면, 없던 힘도 생길 거니까, 허리가 부서져도 업어드리죠.”

피디는 계속 자신만만했고, 나는 잠시 후 놀라 자빠질 한 피디의 얼굴을 상상했다.

“자, 이제부터 조심들 하셔야 합니다. 여기에 뱀이 많이 나오니까 주위를 잘 살피면서 따라오세요.”

앞장서 걷던 자연인이 돌아보며 주의를 줬다. 자연인은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면서 걸었다. 진동을 느낀 뱀이 먼저 도망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 그런 행동은 위험했다. 예민한 멧돼지까지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여기 왔을 때 멧돼지의 흔적을 많이 봤었다. 낙엽송 밑동 껍질도 다 벗겨져 있었고···

***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연인에게 넣어준 이미지는 여기까지였다. 이제 크레이즈와 재경에게도 연의 술을 부려 산삼의 정확한 위치를 넣어줄 생각이었다.

“크레이즈, 재경! 잠깐 와 봐.”

나는 둘을 불렀다.

크레이즈가 먼저 왔다.

“안 힘들어?”

먼저 도착한 크레이즈에게 물었다.

“그럭저럭 견딜만해. 그런데 왜 불렀어?”

“파이팅 한번 하자고. 오른손 내밀어 봐.”

“오른손?”

크레이즈는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 연의 술을 발동시켰다.

크레이즈는 두 눈을 파르르 떨며 산삼에 대한 내 기억을 흡수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크레이즈의 마음을 읽어버렸다. 연의 술은 상호작용 되기 때문이다.

‘이 녀석 마음고생이 엄청 심하구나. 계속 주눅만 들었네. 아까 무당거미 때문에 더 주눅 들었어.’

무당거미 사건으로 분량은 챙겼지만, 크레이즈의 마음은 더욱 움츠려 있었다.

아무리 내가 도법에 능한 도사더라도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장벽을 넘어야 하는 건 어쨌든 크레이즈 자신이었으므로.

재경이도 헐레벌떡 뛰어 왔다. 나는 크레이즈와 똑같이 산삼이 있는 장소를 재경의 머릿속에도 넣어주었다.

크레이즈와 재경은 무의식적으로 산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로 가면 뭔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래? 나도 그런데.”

“그럼 우리 한번 가 볼까?”

“형, 저 바위 밑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재경이 먼저 치고 나갔다.

그런데 그때 멧돼지 한 마리가 재경의 뒤로 나타났다.

재경은 상황을 알지 못했고, 크레이즈는 보고 있었다.

“재경아, 움직이지 마!!”

크레이즈가 조용히 말했다. 멧돼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침착하게.

자신도 두려움에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재경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먼저였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인데?”

“절대 움직이지 마! 뒤에 멧돼지가 있어. 내가 어떻게 해 볼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

재경을 찍고 있던 카메라 감독도 얼어붙어 꼼짝 않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이 주변을 스쳤다.

커다란 멧돼지가 두 눈을 부라리며 콧김을 뿜어댔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박아 버릴 듯이 붉으락푸르락 노기등등했다.

“어, 새끼 멧돼지다.”

그 순간 재경의 눈앞에 새끼 멧돼지가 총총 걸어왔다.

아마도 새끼 때문에 어미가 날을 세우고 공격적인 것 같았다.

‘멧돼지가 나타났구나. 그럴 것 같았어.’

내가 눈을 돌렸을 때 재경은 앞뒤로 멧돼지에게 포위돼 있었다. 자연인이 땅을 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맞아떨어진 것이다.

나는 멧돼지를 물리치려고 손을 들었다.

‘자, 그럼 내가 나서야··· 아니지. 아니야. 뭔가, 크레이즈의 기운이 변하고 있어. 조금만 더 살펴보자.’

갑자기 크레이즈의 기운이 변했다.

그를 사로잡고 있던 텁텁한 기운이 녹아내리고 상승 기운이 감지되었다.

‘오호. 이거였구나. 축토의 기운을 받아 꽉 막힌 쇳덩이를 녹여낸다.’

나는 멧돼지를 물리치려던 손길을 거둬들이고 이 상황을 좀 더 살폈다.

“야야, 저리 가. 네 엄마한테 가.”

재경은 떨리는 목소리로 새끼 멧돼지에게 애원했지만,

새끼는 아랑곳 않고 재경의 발까지 다가와서 이빨을 문질렀다.

그러다 자기 혼자 뒤로 발라당 자빠졌다. 새끼라서 균형 감각이 모자랐다.

이런! 클났다!

새끼가 뒤로 넘어지자마자, 어미 멧돼지는 눈에 불을 켜고 재경에게 달려들었다.

재경은 꼼짝 할 수 없었고, 크레이즈는 몸을 날렸다.

“저리 가! 내 동생 건들면 죽어!”

크레이즈가 재경을 감싸며 멧돼지에게 손을 쭉 뻗었다. 재경을 보호해야겠다는 마음만으로 멧돼지를 막아 선 것이다.

‘오호, 크레이즈가! 이건 예상 못한 그림인데.’

크레이즈에 대한 이미지가 단번에 역전이 되었다.

‘이제 나서볼까.’

파팟!

“꾸웨에애액!!”

멧돼지가 크레이즈와 재경을 밀어버릴 때쯤,

나는 멧돼지가 감지할 수 있는 강력한 투기를 날렸다.

압도적인 기에 눌린 멧돼지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우뚝 멈췄다. 온몸을 벌벌 떨며 침을 질질 흘렸다.

나는 크게 호통을 쳤다.

[어허! 미물이 어디 감히 인간을 해(害)하려 하느냐. 하늘님의 정기를 이어받아 천(天), 지(地)와 함께 인(人)은 우주의 균형을 이루는 삼원(三元)이거늘. 네가 하늘에 죄를 짓고 천 년 만 년 불구덩이에서 타들어 가는 고통을 맛보아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도가에서 이르는 삼원은 하늘, 땅, 물을 일컫기는 하지만 멧돼지가 알 리가 있나.

나의 꾸짖음에 멧돼지는 바짝 엎드려 코를 땅에 박았다.

새끼가 바닥에 엎드린 어미를 보고는 촐랑촐랑 다가갔다.

[네가 모르고 한 일이니 오늘 한 번은 은혜를 베풀겠다. 다음에라도 혹여 인간을 해(害)하려 한다면 오늘의 죄까지 물어 너를 벌하리라. 알아들었으면 어서 새끼를 데리고 사라져라.]

“꿱 꿱.”

멧돼지는 벌떡 일어나 새끼를 입에 물고 후다닥 도망쳤다.

“크레이즈, 재경, 괜찮아. 안 다쳤어?”

나는 둘에게 다가가 등에 손을 대고 흐트러진 기를 바로 세워주었다. 그 모든 장면을 담아내고 있던 카메라 감독에게도 .

“후우~ 죽을 뻔했어. 아, 크레이즈 형. 고마워.”

재경은 크레이즈를 껴안으며 코를 훌쩍였다.

“야, 야. 징그럽게 왜 이래? 떨어져.”

크레이즈는 재경의 몸을 흔들어 떨어트렸다. 재경은 눈물을 슬쩍 닦으며 크레이즈를 껴안았던 손을 풀었다.

“크레이즈 씨 대단합니다. 아니 그 상황에서 재경 씨를 감쌀 생각부터 하다니.”

“와 진짜 전 한 발작도 안 떨어지던데. 정말 놀랍습니다.”

카메라 감독과 보조도 얼굴이 상기된 채 감탄을 연발했다.

“저기 괜찮아요? 멧돼지 소리가 들리던데.”

“무슨 일이 있었어요?”

자연인과 정상우가 다급하게 뛰어 왔다. 그 뒤로 한상호 피디와 나소유 작가까지.

“아, 그게··· 멧돼지가··· 새끼··· 크레이즈 용감하게 ··· 재경 씨··· 멧돼지 줄행랑치고······”

카메라 감독이 찍힌 화면을 돌려 보며 멧돼지 사건을 상세히 보고했다.

“자, 자. 멧돼지가 다시 올지 모르니 빨리 여기를 빠져나갑시다.”

한상호 피디는 안전이 제일이라 여겨 이곳을 어서 떠나려 했다.

‘아직 산삼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큰일 났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살짝 당황하고 있었는데,

“저기··· 잠깐만요.”

크레이즈가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왕방울 만해진 두 눈이 바위 밑 산삼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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