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7화
“불꽃 축제가 한창인 포항으로 연결해 볼까요? 배수진 아나운서. 나와 주세요.”
KBC 서울 스튜디오에서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을 불렀다. 전야제 엠씨를 맡고 있던 배수진 아나운서가 활짝 웃으며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네. 여기는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입니다. 쌀쌀한 가을 저녁이지만, 많은 시민들이 여기 영일대 해수욕장을 찾아 주셔서 축제를 즐기고 계십니다. 포항 불꽃 축제는 오늘부터 일주일간 이곳 해변에서 열리겠고요, 다양한 행사와 체험으로 재미를 더할 예정입니다. 이번 주말 나들이 고민 있으신 분들은 포항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지금 시간이 6시 51분인데요. 7시 정각이 되면 해상 불꽃놀이가 있겠습니다.
그전에 축제를 축하해 주실 초대 가수 분을 모시겠습니다. 미치겠네라는 곡으로 젊은 여성분들의 마음을 미치게 만든 마성의 매력. 헤이데이!
여러분의 힘찬 박수로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와와와
짝짝짝
배수진 아나운서가 헤이데이를 소개하자,
화면엔 무대 위 정렬하고 있던 헤이데이가 나왔고,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졌다.
헤이데이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아이돌이긴 했지만, 축제 전야제에서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환영받을 만했다.
미치겠네의 반주가 흘러나오고 리드 보컬 현우의 목소리로 노래가 시작되었다. 무대 밑에서 지켜보는 내 손에 땀이 차였다.
‘현우는 무대 공포증을 이겨 냈을까?’
현우는 한층 안정감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스타트가 좋았다.
“뭐가 저렇게 잘생겼어?”
“그러게. 배우 아냐?”
거기다 현우의 잘생긴 외모까지 빛을 더해 관람객들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와, 노래 정말 잘한다.”
“이거 라이브 맞아? 혹시 AR인가?”
“라이브 맞아. 한 번씩 음정에 변화를 주기도 하네.”
또한 메인 보컬 찬희의 고음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입을 쩍 벌리고 감탄하는 관중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저번에 랩 대회에서 우승한 그 래퍼 맞지?”
“난 아이돌 매치할 때 B팀 응원했었는데.”
“실력은 더 좋은 거 같지 않냐?”
그 뒤 크레이즈의 랩이 더해지자 분위기가 업 되다가, 난이도 높은 댄스를 리오가 소화하자 절정에 다다랐다.
“사람의 몸이 저렇게 움직이기도 하는구나.”
“정말 간지가 철철 넘친다.”
귀여운 바가지 머리를 한 올라운드 플레이어 막내 재경에 대한 칭찬은 그냥 나왔다.
“아, 귀여워.”
“쟤 뭐냐? 남자가 저렇게 예쁘고 귀여워도 되는 거냥!”
나의 눈은 무대로 귀는 관중석으로 열어두고, 헤이데이의 퍼포먼스와 그에 따른 반응을 동시에 체크했다.
헤이데이는 무대를 펄펄 날아다녔고,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 마디로 대 성공.
미치겠네’와 My heart for you 두 곡 모두 끝나고, 헤이데이가 무대를 내려가자 아쉬움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헤이데이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앞자리에 앉은 관중들에겐 악수도 해주며 무대를 벗어났다. 박수와 함성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카메라 플래시도 쉴 새 없이 터졌다.
그 뒤 불꽃놀이가 시작되기 1분 정도 남은 시간은 여자 아이돌 핑크뮬리가 채웠다. 원래는 그 자리가 오늘 헤이데이의 자리였다.
헤이데이 매니저 조명수에게 나 최율하가 빙의되면서 모든 운이 뒤집어졌다.
***
무대에서 내려온 헤이데이는 숨을 고르며 물을 마셨다. 성공적인 무대와 관객의 반응에 모두들 만족한 표정이었다.
“수고했어. 무대 너무 너무 멋졌다.”
나는 박수를 치며 진심으로 축하했다.
“오늘 진짜 최고였어.”
“죽여준다.”
“몇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한이 다 풀리는 기분이야.”
“정말 뜻깊은 공연이었어.”
저마다 한 마디씩 해가며 아직 가시지 않은 여운을 온몸으로 느꼈다.
현우는 밝게 웃으며 내게 안겼다.
“형, 고마워. 진짜 전부 형 덕분이야.”
“네가 잘 이겨 냈지. 이제 더 높이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나는 현우를 다독였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의 손도 한 번씩 잡았다.
“이제 옷 갈아입고 서울 올라가자. 피곤할 텐데.”
“응.”
부우웅~
헤이데이 무대 중이라 진동으로 설정해 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박 팀장이었다.
“난 전화받고 갈 테니까, 먼저들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
“응, 빨리 와.”
멤버들이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팀장님.”
-야, 오늘 무대 정말 대단했다. 퍼포먼스 완벽하고 팀 호흡도 괜찮고. 걔네들 실력이 이렇게 좋았었어?
조금 어이가 없었다. 자기 책임 하에 있는 아이돌의 실력도 정확하게 모른다니.
“네.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을 뿐이에요. 실력은 보장합니다.”
-그래, 그래. 화면도 깔끔하게 잘 나왔고 다 괜찮았어. 조심히 운전해서 올라오고. 명수 넌 내일 8시 30분까지 회사로 출근해.
“네. 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아침 일찍 출근하라는 건가? 이렇게 멋진 무대를 보고도 설마 해체를 운운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마음의 각오는 단단히 해야겠다.
나는 전화를 끊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멤버들은 금방 했던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 아까 미끄러질 뻔했잖아. 거기 물기가 조금 남아 있어 가지고. 근데 미끄러지면 죽는다는 각오로 빡 버텼어. 아마 아쉽게도 0.01초 정도 늦었을 거야.”
“0.01초? 확실해?”
“응, 진짜. 0.01초였어. 아무도 눈치 못 챘을 걸. ···근데 형은 고음 올릴 때 손가락으로 하늘은 왜 찌른 거야? 나 그거 보고 웃음 참느라 죽는 줄 알았어.”
“내가 그랬어?”
“그랬지.”
하하하
“하늘에 똥침 놓는 줄 알았다니까.”
막내 재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찬희를 똑같이 따라 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멤버들은 배꼽을 잡고 굴렀다. 다들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너희들 그렇게 좋았어?”
“당연하지. 아, 난 하루 종일 무대에 서라고 해도 설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게.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훌쩍 지나가 버린 것 같은데.”
대중들의 반응도 궁금해져서, 조명수의 버릇대로 인터넷 게시판을 체크했다.
“오호, 너희들 실시간 반응 올라온다. 한번 볼까?”
- 갸꺅까르르 : 현우앙앙 ♥♥♥♥♥♥♥
- JinaRin : 헤데 오늘 첫 데뷘가요?
↳ ParkKa : 아매 루저들
↳ ㅇㅇㅇqq : 아메에서 사기당한 거임.
- 킹갓 원더풀 : 헤이데이 개소름
- 뿌링클487 : 헤데 제이식에게 기콘 쏴야 되는 거 아님.
↳ 쏘리질롸 : 천지신명께 쏴야지.
↳ Moonday : 제이식 자리 뺏기
- Kingbb : 뮤월 직캠 넘 좋다
- 귀리인 : 난리났어난리났어난리났어♥♥♥♥♥♥♥♥
- 더쿠더쿠 만만세 : 야 춤 봤어, Rioh 오지지 않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ㅇㅇㅇ : 와 씨 나 엔딩인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내사랑지오 : 뮤월보다 현우 존나 귀여워서 움짤찜
- 걸스시대333 : 헤데 찐텐 무대 찢음
- 폴라로이 : 헤데 랩하는 놈 존잘 아님. 이름 뭐예요
- 훈민정음치43 : 재경아 아나줘♥♥♥♥♥
- 은빛찐텐사랑 : 킹찬희. 목소리 개좋음.
↳ 고나보니 : ㅇㄱㄹㅇㅇㅈㄷ
- 띠욤 : 헤데 입덕 고민중
↳ 봄처녀오이지 : 헤데 입갤 추가염
- 맹구르르 : 틀딱도 입덕 시키는 놀라운 헤데
댓글 반응도 괜찮았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관심에 모두들 흥분이 되었다.
“와아, 이런 반응 정말 오랜만.”
“대박이다.”
“아아돌 매치할 때 이후로 처음이야.”
“스타가 된 것 같은 느낌!”
하하하하
멤버들의 입이 찢어졌다.
마른 장작에 작은 불씨 하나가 올라붙었다. 이제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크게 키우는 일만 남았다.
‘내가 성사시킨 이 한 번의 성공으로, 헤이데이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했도다.
천(天)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경이로움을, 지(地)의 수고를 알았을 때는 겸손함을 배웠는데, 이제 인간 세상에서 푸근한 온기를 배우겠구나!‘
***
고속도로를 달려 멤버들을 숙소에 데려다주고, 조명수의 원룸으로 차를 돌렸다.
정신은 맑았지만 조명수의 몸은 피곤으로 인해 자꾸만 쳐졌다. 아침 일찍 회사도 나가야 했기에 빨리 쉬어야 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 조명수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도어락 비번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훅 찔렀다.
“뭐야? 이 냄새는? 웩.”
코를 막으며 불을 켰는데,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코를 찔렀던 냄새와 일맥상통했다.
“이럴 거면 동굴에서 사는 게 훨씬 낫겠다.”
부엌이 달린 조그만 방 한 칸에 욕실이 전부인 원룸. 그 좁은 공간에 컵라면, 과자 봉지, 술병, 빨지 않은 빨래들이 겹겹이 너부러져 있었다. 어디 한 곳 발 디딜 틈도 없이.
‘난감하구만.’
조명수는 이렇게 사는데 워낙 익숙하다 보니, 이런 상태인 집을 생각하면서도 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떠올렸었나 보다. 내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걸 보면.
‘잠이 다 달아난다. 이 상태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일단 좀 치워야지.’
조명수의 몸은 배고프다, 피곤하다 아우성쳤지만, 나는 몸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조명수의 습관을 길들이지 않으면 헤이데이를 최정상급 아이돌로 키우는데 에로가 많을 것이다.
우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그리고 큰 비닐봉지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모두 수거했다.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를 비웠다. 이불을 탈탈 털고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엉망이긴 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공간이 작은 원룸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깨끗해진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숨 쉴 정도는 된다.’
정리된 집을 보며 만족해하는데, 그 순간 통증이 밀려들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삭신이 쑤셨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쾌한 느낌. 평소에 청소라는 동작을 전혀 모르는 조명수의 몸이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통증에 압도당할 수는 없다. 청소를 더 해서 통증을 덮어버리자.’
조명수의 몸도 지금 원룸처럼 깨끗해지길 바라며 방바닥에 걸레질을 했다. 하얀 수건이 금방 시커멓게 변해 걸레가 되었다.
욕실에서 빨아가며 몇 번이나 걸레질을 계속했다. 그랬더니 드디어 바닥에 윤기가 났다.
마지막으로 욕실까지 치웠더니, 집 전체가 깨끗해졌다.
보람이 배꼽에서부터 쭉 밀려들었다.
“이왕 한 김에 책상 정리도 해 볼까?”
아직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책상뿐이었다. 책상만 치우면 완벽했기에 나는 두 팔을 걷어붙였다.
책상에는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과 헤이데이 멤버들 사진이 놓여 있었다. 가족과 헤이데이를 생각하는 조명수의 마음이 느껴졌다. 생활 습관은 엉망인 사람이었지만, 속정은 깊었던 듯했다.
‘이 파일들은 다 뭘까?’
책상 책꽂이 한 가득, 같은 규격의 바인더 파일이 가득했다.
조명수의 뇌가 중요한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파일 하나를 꺼내 페이지를 넘겼다.
NBS
예능 본부장 박동훈. 음주 가무의 달인, 3차는 무조건 노래방, 조용필 찐팬, 옛날 자신이 맡았던 프로그램 얘기하는 거 좋아함.
예능 1CP 민석기. 박동훈의 오른 팔, 산악 캠핑 매니아, 쉬는 날이면 밤낮 가리지 않고 무조건 등산, 잘못 걸리면 죽음.
예능 1팀장 김재철. 확실하게 자기편만 밀어 줌, 프로그램 준비할 때 먼저 점집에 가서 물어 봄.
예능 1팀 고정희 피디. 현재 베스트 싱어를 연출, 가창력 좋은 아이돌의 등용문, 가수에 대한 호불호가 없는 편, 약속시간 늦는 거 극혐···
거기엔 놀랍게도 NBS 방송 관계자들의 신상이 빼곡히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