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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1화 (1/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화

조선 연산군 2년,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최승복의 집에서 나 최율하가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던 날, 붉은빛 여의주를 입에 문 용 한 마리가 구름을 가르고 우리 집 기와에 내려앉았다. 그 용은 하늘에서 땅까지 닿을 만큼 길었으며 형용할 수 없이 맑은 기를 뿜었다고 한다.

용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영민했다. 특히 한번 본 것은 결코 잊어버림이 없었다.

세 돌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 읽어 주시는 천자문을 백면지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오호, 율하야, 너 이 천자문을 적을 수 있느냐?”

“네. 아버지.”

“그래? 그럼 이 종이에 모두 적어 봐라.”

아버지는 설마 하시며 종이를 더 내어주셨지만,

내 손에 들린 붓은 나비가 춤을 추듯 종이 위를 날아다니며 한 글자도 남김없이 천자문을 모두 다 적어냈다.

아버지는 기뻐하시며 큰 소리로 어머님을 부르셨다.

“부인, 이걸 보시오. 우리 율하가 천자문을 적었다오. 아직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았거늘.”

“정말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답니까?”

“태어날 때부터 용이 내려와 앉더니 특별한 아이가 틀림없소.”

어머니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하셨다.

그 후 부모님은 글씨를 병풍에 붙여 놓고, 손님들을 불러놓고 입이 마르도록 내 자랑을 하셨다. 글씨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세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어찌 천자문을 모두 적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그렇지만 글자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신동이라 불렀다.

그 후,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서책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다섯 살에 소학과 명심보감을 깨우쳤고 일곱 살에 사서삼경에 통달했으며, 열 살에는 하늘을 보고 천문을 살피며 지관을 터득했다.

가끔 아버지 지인 분이 방문하시면 오락으로 손금과 관상을 봐 드리곤 했는데, 그 내용이 꽤나 정확하여 모두들 신기해했다.

내게 있어 그런 능력은 눈 뜨면 사물이 보이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았다. 사람의 풍모와 손을 보면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

열한 살이 되던 해에 도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구천 대사가 마을을 지나가다 나를 보았다. 그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나에게 바둑을 청했다.

“나랑 바둑 한 번 두겠느냐?”

“좋습니다.”

비가 내리는 소나무 정자에 앉아 구천 대사와 나는 비를 맞는 줄도 모르고 바둑을 두었다.

처음에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지만, 비가 그치고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어지자 내가 승세를 잡았다.

구천 대사는 마침내 돌을 던졌다.

“머리가 맑고 눈이 영롱하여 천하 만물의 이치를 능히 헤아릴 수 있겠구나. 내 밑으로 들어와 정진하지 않으련?”

“제가 대사님의 제자가 된다면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의 비범함을 알아본 구천 대사는 나를 제자 삼길 원했고, 나 역시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었다. 하늘 아래 배울 수 있는 이는 그뿐이었다.

내가 출가를 결심했다는 소식에 부모님은 아연실색했다. 최 씨 가문의 대를 이을 장손의 출가를 허락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가문을 빛낼 신동이 아니던가.

하지만 나 역시 한번 뜻을 세운 이상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무릎을 꿇고 부모님께 간곡히 청을 드렸다.

“세상의 지혜와 이치는 이미 차고 넘쳐 더 이상 정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구천 대사님을 따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삼라만상을 깨우치려 하오니,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저의 청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안 된다. 너의 우리 최 씨 가문을 이을 장손이야.”

“공부는 집에서도 할 수 있다. 더 훌륭한 선생님을 모셔다 주마.”

어머니와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반대하였지만, 나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둘째 서하도 영민하여 최 씨 가문을 이어 나가기에 넉넉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불초하오나 소자의 길은 이 길인 것 같습니다. 허락 해 주십시오.”

사흘 밤낮 식음을 전폐하고 마당에 무릎을 꿇었다.

결국 아버님은 출가를 허락했다. 죽음도 불사한 내 의지를 아셨기에.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라.”

그 길로 구천 대사를 따라 나서,

가르침을 받아 천문, 지리, 의약, 율서, 복서, 신법 등 각종 학문에 통달하니,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도인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몸도 정신을 따라 가벼우니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고 천근을 들 수 있으며 눈과 귀가 밝아 십리 밖의 것도 보고 듣게 되었다.

스무세 살 이 되던 해 정월 보름이 되자 구천 대사가 나를 불렀다.

“율하야, 이제 나는 더 이상 너에게 가르칠 게 없다. 너는 나의 경지를 뛰어넘어 천기를 살피며 삼라만상 이치를 깨우쳤느니라. 홀로 수양을 더해 하늘과 땅의 기운에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더욱더 정진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는 선인이 되어라.”

“아직 배울 것이 많사온데.”

“그렇지 않다. 너는 다른 사람에게 배울 것이 더 이상 없다. 지금부터는 스스로 배우거라.”

“알겠사옵니다. 스승님.”

그날로 구천 대사와 헤어져 천지암에 홀로 머물며 더욱더 정진하였다.

나의 신통함에 대한 소문은 날로 도성 각처로 뻗어 가니, 어려움에 처한 관리와 백성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찾아오곤 했다.

나는 그들을 어여삐 여겨, 역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고, 치매에 걸린 노모를 찾아 주고, 돈이 없어 종으로 팔려갈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돈이 되는 약초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배운 도를 이렇게 귀하게 쓸 수 있는 것도 생의 복이로다!

한 번은 조선 팔도에 기근이 들자 관상감의 관리가 찾아와 비를 내려 줄 것을 빌었다. 관상감은 예조에 속하여 천문(天文), 지리(地理), 역수(曆數), 기후 관측, 각루(刻漏) 따위를 맡아보던 관아다.

하늘을 보아하니 북서쪽에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짝을 잃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밤마다 외로움에 목이 타서 갈증이 끊이지 아니하니 하늘에 물이 고일 때마다 모두 마셔 버리는 형국이었다. 황소에게 신부 맞이가 급했다.

“지금 내려가는 즉시 금강의 정자촌에 커다란 배를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교미를 한 번도 한 적 없는 암컷 황우를 깨끗하게 씻겨 태우고 북으로 흐르는 강에 흘러 보내시면 반드시 비가 내릴 것입니다.”

나는 관리에게 비책을 전해주었고, 관리는 왕께 아뢰었다.

그리고 내 말대로 처녀 소를 흘러 보내니, 갈라지고 말라비틀어진 땅에 열흘 밤낮으로 비가 내리고 곡식이 다시 무럭무럭 자라게 되었다.

왕은 내게 벼슬과 상금을 내렸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오직 수양에 더 애를 썼다. 이미 하늘과 우주의 이치를 헤아릴 줄 아는 내게 속세의 일은 무의미할 뿐이었다.

그 후로 도력이 하늘을 덮을 만큼 출중하니 축지법뿐 만 아니라 둔갑술, 환술, 분신술 그리고 동물과의 대화까지 가능하였다.

그러던 어느 선선한 가을밤, 나는 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하늘이 맑고 밝아 천문을 살피기에 좋은 날이었다.

우선 나라의 천문을 살폈다.

이런. 얼마 후에 서울 도성에 커다란 지동(지진)이 일어나 담벼락이 무너지고 성곽 까지도 흔들리겠구나. 백성들은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사흘 밤낮으로 불안에 떨며 지내겠어. 하지만 그렇게 큰 변고는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구나.

나라의 천문을 살핀 다음 가족의 안위도 살폈다.

아버님의 별자리인 규성이 광채를 얻어 하늘을 밝히고 규, 루, 위, 묘, 필, 자, 삼의 서방백호도 이빨이 단단하고 발톱이 날카로우니 아직 정정하시어 가문을 더욱 크게 키우겠구나.

아버님을 필두로 차례대로 가족의 별을 모두 살폈다. 아직은 기운이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가 근심거리가 없었다.

‘내친김에 나의 천수도 살펴볼까?’

오랜만에 내 별자리가 궁금했다. 처음 천문을 배울 때 몇 번 찾아보고 쭉 잊고 있었기에.

“보자.”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별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살펴도 나의 별이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다급히 내 사주를 보고 점괘도 풀어보았다. 마찬가지로 흑운에 가려진 달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변고로고.”

이것은 죽음과는 전혀 달랐다. 차라리 죽음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기의 발산은 그대로인데 천수는 보이질 않는다. 살아있기는 하지만 삶이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인가?”

그 길로 스승인 구천 대사가 머무는 대청암으로 갔다.

“스승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한밤중에 급하게 달려온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닌 모양이로구나.”

“밤하늘을 아무리 살펴도 저의 별과 천수가 보이질 않습니다. 저의 수명이 다한 것이옵니까?”

혹시나 내가 알지 못하는 죽음이 관련되어 있을지 몰라 여쭈어 보았다.

“예전에 너의 천수를 보았을 때 일백이 넘었느니라. 한번 정해진 천수는 바뀌는 법이 없다.”

구천 대사의 의견은 내 생각과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그럼 왜 저의 천수가 보이질 않는 것입니까? 사주도 점괘도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모든 삼라만상을 깨우친 도인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한 치 앞은 보지 못하는 법이다. 마음을 비우고 더욱 정진하라.”

구천 대사에게서 개운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나는 찝찝한 마음으로 천지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무슨 일이 생기려고 천수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아직도 깨우쳐야 할 일이 많단 말인가?’

깜깜한 산길은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내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혼돈이었다.

앗!

그때였다.

젖은 낙엽을 밟고 순식간에 뒤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에 뒤통수를 세게 부딪쳤다.

나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

번쩍 눈을 떴다.

‘기절했었나?’

단절되었던 의식이 한꺼번에 밀려들며 뒤통수가 당겼다. 손이 자동으로 뒤통수로 갔다.

‘천지암으로 돌아가던 산길에서 젖은 낙엽을 밟고 미끄러졌었는데. 뒷머리를 돌에 찧었었지··· 그 뒤론 기억이 없는데. 나 괜찮나?’

부상을 확인하려 머리 이곳저곳을 더듬거렸다. 그런데 아프지도 않고 상처도 하나 없이 깨끗했다.

‘심하게 넘어졌는데, 그럴 수 있나?’

숨어있는 상처가 있을까 하여 머리를 계속 더듬거려 보았지만, 확실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기온과 기압, 냄새와 시야에 닿는 풍경, 그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답답한 게 숨 쉬는 것도 힘들고.

‘뭐지. 이런 기분 처음인데.’

내가 앉아 있는 곳은 한밤중의 천지암으로 가던 그 산길이 아니었다.

‘그럼 여긴 어디란 말인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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