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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232화 (232/249)

#232화

준희와 함께 점심을 먹고 GB타워로 돌아가는데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저러고 있네.”

“준공식부터니까 한 달은 저러고 있는 겁니다. 내일부터는 대표님 지시대로 조치 취하겠습니다.”

“내가 직접 가보지.”

“예?”

한국에서 자석으로 유명한 기업이나 사람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이 정도로 나를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 달 전이면 겨울이나 다름없었을 텐데, 저 추위를 견뎌가면서까지 간절한 이유를 말이다.

“이름은 알아?”

“김윤길 씨입니다. 기업 이름은… 신광마그넷이었나? 맞을 거예요.”

김윤길과 신광마그넷이라….

둘 다 내 기억에 없는 이름들이었다.

한국에서 히트를 친 기업이나 기업가의 이름은 웬만하면 기억을 하는데 말이다.

벤치로 걸어가자 윤길이 벌떡 일어났다.

“서강빈 대표님…!”

윤길은 곱창 밴드로 투박하게 머리를 묶은 포니테일 스타일의 장발이었다.

중성적인 외모에 일순 성별이 헷갈렸다가도 걸걸한 목소리는 그가 틀림없는 남자라는 걸 알려주었다.

“김윤길 대표님이시죠.”

“제 이름을…!”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 일단 들어나 봅시다. 대체 어떤 기술을 개발하시길래 저를 애타게 찾으시는지.”

윤길은 침을 목구멍으로 꼴깍 삼키고는 말했다.

“차세대 워크홀딩. 제가 명칭한 이 기술은 쉽게 설명하자면 순간 전류만으로 수십 톤의 물체를 끌어당기는 자석을 만들 수 있는 겁니다.”

“...?”

윤길이 말한 기술이 어떤 기술인지는 알고 있다.

심지어 ‘차세대 워크홀딩’은 내가 알고 있는 기술명과 똑같은 이름이었다.

앞에 붙은 차세대가 한글이 아닌 중국어였지만 말이다.

윤길은 바바리코트 안에서 카메라를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행여나 추위 때문에 재생이 안 될 것을 염려했는지, 품 안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철제로 이루어진 카메라는 적어도 차갑진 않았다.

“재생해 보시면 저희가 만든 기술이 어떤 것인지, 눈으로 체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윤길에게 카메라를 받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

부두로 보이는 곳에서 인상 좋은 청년이 손잡이가 달린 은색 가방을 내려놓았다.

뒤에는 철제 선박이 부두와 조금 여유를 두고 정박되어 있었다.

“37회차 실험 시작하겠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선박이 부두 쪽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7, 8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6미터, 5미터, 4미터…까지 움직인 뒤에야 멈췄다.

“...허락은 받고 하신 겁니까?”

“....”

“허락은 둘째치더라도 선박은 위험해 보이는데 차라리 폐차라도 한대 구해서 실험하시지 그러셨습니까.”

“크, 크흠.”

윤길은 헛기침을 내뱉고는 나를 조심스레 쳐다봤다.

“어떠십니까?”

“솔직히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걸 윤길 대표님의 회사에서 만들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만.”

“혹시 지금 특허권 소송 걸리진 않으셨습니까? 스페이스차이나라고.”

윤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내 뒤에 서 있던 영균이 대뜸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가 고개를 젓자 영균이 다시 손을 거뒀다.

윤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소송 걸려 있는 건 차스유즈라는 기업입니다만….. 스페이스차이나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차스유즈’라는 기업명을 듣자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차스유즈는 수천 개의 특허권을 헐값에 넘겨받고 다른 기업에 특허권 소송을 걸어 이득을 쟁취하기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런 기업들을 상대로 ‘해적 기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생에서 태선전자만 해도 차스유즈한테 백 개가 넘는 소송이 걸렸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페이스차이나는 전생에서 차세대 워크홀딩 기술에 특허권을 출원하고, 그 외에도 우주산업 관련 여러 특허권을 갖고 사업을 벌였던 대기업이었다.

차스유즈가 윤길에게 소송을 걸었고, 스페이스차이나는 괜한 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회유했을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스페이스차이나가 차세대 워크홀딩을 개발한 줄 알게 된거고.

의심섞인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윤길에게 말했다.

“최근 스페이스차이나에서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첨단기술을 강탈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주산업 자체가 글로벌 시장을 노려야 하는 일이니, 국제출원을 하셨을 테고 당연히 접근했겠다 싶었지요.”

“이런 썩을 놈들이… 이미 다른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겠군요.”

스페이스차이나에서 정말 그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윤길은 대번에 내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고작 직원 셋이서 출발한 일화부터, 결국 기술개발에 성공했지만 소송이 걸린 것, 부채로 인한 생활고까지 모두 다 말이다.

“우선… 자리를 옮기시죠.”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시간대라고 해도, 아직 공기에는 찬 기운이 많이 남아있었다.

얇은 바바리코트 하나만 걸친 윤길의 얼굴은 추위에 빨갛고, 곳곳이 터 있었다.

“제 집무실로 갑시다.”

코트를 벗어 그에게 덮자 윤길은 몸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투자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대뜸 감사 인사를 연발하는 모습에 간절함이 엿보였다.

GB타워의 최상층으로 돌아오자마자 윤길을 소파에 앉히고 난로를 가까이 가져왔다.

“몸 좀 녹이고 얘기하죠.”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서로 컨디션 좋을 때 진행해야 좋은 투자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몇 분 늦어진다고 달라지는 것 없으니 급할 필요 없어요.”

윤길은 말없이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방금 비서가 갖고 온 팥차였다.

윤길이 천천히 차를 홀짝이고 있는 동안 나는 인터넷을 켜고 차스유즈라는 회사에 대해 더 알아보았다.

현재 진행 중인 기술 관련 소송만 모두 23건이었는데, 모두 차스유즈 측에서 기소한 것들이었다.

그동안 진행해온 소송은 셀 수도 없이 많았는데, 상대방이 승소한 경우는 10프로가 채 되지 않았다.

보통 소송기간이 길어질수록 큰 피해도 따라오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를 보거나 아니면 특허를 공동 소유하는 ‘크로스 라이선스’계약을 진행하기도 했다.

신광마그넷같은 소규모 개발사들은 영락없이 기술을 빼앗겼을 것이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차스유즈와 손잡은 스페이스차이나도 다를 바 없었다.

이미 손에 쥔 기득권을 통해 계속해서 중소기업들을 갈취하고 피를 빨아 먹으며 살아갈 것이다.

생각이 정리된 뒤 윤길의 맞은편에 앉았다.

윤길은 찻잔을 내려놓은 뒤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나를 바라봤다.

그와 시선이 맞닿았고, 나는 입을 뗐다.

“기술은 사지 않겠습니다.”

“서, 서대표님! 제 얘기를 더 들어보시고…”

“말을 바로 해야겠군요. 기술만 사지는 않겠습니다.”

“그게 무슨…”

“당신과 당신 산하에 있는 직원들까지 모두 영입하고 싶습니다. 제가 새로 만들 우주산업 기업에요.”

현재 태선그룹에 우주산업 관련 기업은 없었지만, 언젠가 투자하고 싶었던 분야이다.

우주산업 중에서도 위성산업은 지금 시점에 1000억 달러 규모였지만, 내가 죽기 전에는 2700억 달러로 크게 증가했었다.

그렇게 높은 증가율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각광 받고 있는 분야다 보니, 미래를 생각했을 때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산업이었다.

언제 시작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이런 기회가 있다면 굳이 떠나보낼 필요 없었다.

“이름은 뭐가 좋을까요. 태선X가 끌리기는 한데 이미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를 했으니 너무 따라 하는 것 같고… 윤길 대표님의 이름 중 마지막 글자만 따와서 ‘태선로드’는 어떨까요?”

“저… 정말 저희를 영입해주시는 겁니까? 기술도 관련 기업으로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서강빈 대표님이 직접 사주시고요?”

“가격과 연봉도 듣지 않으셨는데 들뜨신 겁니까? 제가 얼마를 부를 줄 알고요.”

“….”

농담 한마디 했다고 금새 풀이 죽은 윤길을 보며 실웃음이 터졌다.

“소송 싸움에서 이기려면 꽤나 많은 돈이 들 겁니다. 제가 그 기술을 사는 순간, 소송비는 제가 감당해야 되고요.”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수억 원, 아니 수십억 원은 깨지겠지요. 그동안 회사 동료들에겐 부정해왔지만 저희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예. 그러니 제가 특허 권리 이전에 제시하는 금액은 이 정도입니다.”

종이에 금액을 슥 적어서 윤길에게 내밀었다.

윤길은 종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내 눈치를 보며 0의 개수를 세었다.

“0이… 10개면… 배, 백억 원이요?”

“네. 그 돈은 순수하게 특허권 소유자인 김윤길 대표님께 드리는 겁니다. 만약 태선로드와 함께 하고 싶다면, 갖게 될 직급과 연봉은 차후에 얘기하시죠.”

“서강빈 대표님….”

윤길이 울상이 된 얼굴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우주산업 분야가 도외시 되고 있어요. 정부에서 밀어주고 있는 항공 분야와 정반대에 있죠. 그래서 참 외로웠습니다. 기업지원 한 번 받지 못하고 부모님,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가며 일군 사업이었거든요.”

묽은 콧물이 윤길의 코에 맺혀서 나는 자켓에서 손수건을 꺼내 윤길에게 건넸다.

윤길은 손수건으로 코를 한 번 팽, 하고 풀고는 말을 이었다.

“저만 고생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제가 대표라고는 하지만, 두 직원들 모두 저만큼, 아니 저 이상으로 고생했고 회사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백억 원은 모두 공평하게 나눌 생각입니다.”

“그거야 대표님 마음 아니겠습니까. 직원들과 깊은 시간을 갖게 되겠네요.”

“예. 모두 서강빈 대표님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오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권리 이전 시기는 소송이 끝나야 문제없이 진행될 겁니다. 일단 10억 원만 선수급으로 지급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신광마그넷이 만든 ‘차세대 워크홀딩’이란 기술은 현재 소송이 걸려 있기 때문에, 특허권 권리 이전이 복잡했다.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으로 사람을 보낼 생각이었다.

윤길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충분합니다. 아니, 오히려 후련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야말로. 이런 좋은 기술을 인수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곧 연락드리도록 하죠.”

“예. 저도 빨리 직원들 챙기러 가야겠습니다. 하하. 사무실이 근 몇 달간 초상 치른 집 같았거든요.”

간단한 묵례를 하고 윤기를 방에서 내보냈다.

“스페이스차이나와 차스유즈라….”

두 기업 모두 전생의 마지막 기억을 토대로라면 건들기 힘들 정도의 거대기업들이 된 곳이었다.

지금도 악명이 높긴 하나, 몸집을 불리고 있는 단계였다.

그리고 나는 두 기업들이 노리고 있는 우주 분야 관련 기업들의 기술들을, 태선로드로 가져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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