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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231화 (231/249)

#231화

세련이 보낸 투자제안서를 받고, 많은 기업들에서 연락이 왔다.

그중 가장 먼저 신광마그넷을 찾은 사람은 차이나스페이스의 샤오팅 상무이사였다.

차이나스페이스는 중국 항공우주산업에 중심투자하는 곳으로,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었다.

차이나스페이스의 투자를 받은 기업들은 순식간에 고공행진했다.

때문에 윤길은 설레는 마음을 품고 샤오팅을 맞이했다.

그것도 잠시, 샤오팅은 3층짜리 건물 중에서도 3층밖에 차지하지 않는 허름한 사무실을 보고는 혀를 찼다.

“겨우 이런 곳에서 그런 기술을 만들어 낸 거야? 쯧.”

아마 윤길이 알아듣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뱉은 중국어일 것이다.

윤길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중국에서 5년간 지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어에 능했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술은 완성도 측면에서 완벽하다고 자신하구요.”

윤길의 능숙한 중국어에 샤오팅이 흠칫 놀라더니 머쓱하게 웃었다.

“하하. 중국어가 가능하실 줄 몰랐습니다. 안 좋은 의미로 말한 건 아닙니다만… 우선 죄송합니다. 통역사를 데려올 필요가 없었네요.”

“괜찮습니다. 제가 봐도 초라한 곳인데요, 뭘. 우선 앉아서 얘기 나누죠.”

윤길이 안내한 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투박한 의자와 테이블이었다.

기술개발에 모든 돈을 쏟아붓고 가구 하나 제대로 살 돈 없어 직접 만든 것이었다.

샤오팅은 고개를 테이블 바닥까지 숙여 가며 테이블을 보더니, 윤길을 바라봤다.

“흠… 괜찮으실지 모르겠네.”

“예?”

“아, 혼잣말이었습니다.”

윤길은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샤오팅의 처사에 몹시 불쾌했다.

“투자하려고 오신 것 아닙니까?”

“흠…. 원래는 그럴 의도이긴 했습니다만 힘들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가난한 사람은 투자도 못 받는다 이겁니까?”

“아, 이런. 제가 말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하하.”

샤오팅이 손을 흐느적거리며 젓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차스유즈에서 신광마그넷의 기술과 비슷한 걸 훨씬 먼저 특허 출원했거든요. 아시죠? 차스유즈.”

차스유즈라면 직접 기술을 개발하거나 제품을 만들어내는 대신, 특허를 사들인 뒤 소송을 걸어 수익을 올리는 곳으로 악명이 높은 기업이었다.

태선전자도 꽤 시달렸다고 들었는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희 기술과 비슷한 연구를 한다는 건 들은 적은 있어도, 지금껏 성공했다는 건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습니다. 최소 5년은 앞서가는 기술인데 저희 말고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단 말입니다.”

“뭐… 그 사정이야 저희가 알겠습니까? 아무튼 그쪽에서 특허권 관련해서 소송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사정이 이래서야… 쯧. 꼼짝없이 뺏기겠네요.”

윤길은 덜덜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꽉 잡았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은 예상이 갔다.

샤오팅의 회사, 차이나스페이스와 차스유즈가 손을 잡고 신광마그넷의 기술을 훔치려고 하는 것이다.

차스유즈가 출원했다는 기술이 만약 신광마그넷과 흡사한 기술이라면 몰랐을 리가 없다.

필시 성능이 훨씬 뒤떨어지거나, 기술개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기술을 싼값에 사놓은 것일 거다.

태선전자 같은 대기업과는 소송 싸움을 걸어 적당한 합의금을 뜯어내겠지만, 신광마그넷처럼 소규모 기업은 다르다.

합의없이 법정 싸움으로 물고 늘어져 결국 신광마그넷이 나가떨어지길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싼값에 기술을 훔치는 흔한 방법이었다.

상황을 이해한 윤길이 이를 악물고 샤오팅을 노려봤다.

“대기업과의 특허권 소송에 휘말리면서 모든 재산을 잃을 바에 저한테 기술을 팔라고 찾아온 겁니까?”

샤오팅이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뭐 사무실 바꿀 돈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150만 위안. 음… 한국 돈으로 치면 3억 원이 조금 넘나요? 예. 그 정도로 사드리려고 하는데, 어떠십니까?”

차세대 워크홀딩 기술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11년이다.

게다가 그 시간은 윤길뿐만 아니라 관수, 세련이 자신들의 생활까지 포기하면서 버텨 온 시간이었다.

그 대가가 고작 3억 원?

정상적인 루트로 기술을 팔아도 최소 50억 원은 넘게 받을 자신이 있었다.

윤길이 쾅, 하고 나무테이블을 내리쳤다.

소재로 쓰인 목재가 좋지 않은 것이어서 주먹 자국이 그대로 테이블에 남았다.

그리고 샤오팅을 보며 말했다.

“츠시바니.”

굳이 한국어로 따지면 니 똥이나 먹어, 라는 의미였다.

샤오팅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이제 마흔은 넘었나? 쯧. 감정적으로 일 처리하는 게 마냥 좋진 않을 걸세.”

그러면서 명함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생각 바뀌면 연락해. 물론 그때쯤이면 가격은 더 낮아져 있겠지만 말이야.”

명함과 비웃음만을 남겨 놓고 샤오팅은 나갔다.

혼자 자리에 앉아 있던 윤길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개 같은 새끼들….”

차스유즈 정도 되는 기업이 소송을 걸어 버린다면, 다른 기업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안 봐도 뻔했다.

법적인 싸움으로 끌고 간다면 반드시 이기겠지만, 거기까지 갈 힘도, 자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외국계 우주산업 기업들에 투자 제안을 보내기 시작했다.

러시아 우주개발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라보츠키 사를 비롯해 긍정적인 답변들이 돌아왔다.

라보츠키의 고르보노프 국장은 당장이라도 계약을 진행하고 싶다고 직접 전화가 왔을 정도였다.

미국의 항공우주 장비 제조업체인 스페이스 스페이스에서도 연락이 와서 미팅을 잡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은 서서히 커져 가다가, 결국 국제특허 관련 소송이 걸렸다.

당연히 소송을 건 주체는 차스유즈.

라보츠키와 스페이스 스페이스사에서 유감이라는 말과 함께 계약 진행이 힘들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가장 규모가 큰 두 기업이 이럴 정돈데, 다른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관수는 빚을 갚기 위해 사채까지 썼고, 담보로 잡은 사무실까지 넘어가게 생겼다.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부쩍 살이 붙었던 세련은 어느새 초췌해진 몰골로 사무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관수는 법정 싸움을 혼자서라도 준비해보겠다며 국제특허법 관련 책들을 갖고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세련이 근 일주일 만에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차이나스페이스에 기술 넘기자. 그래도 3억 원은 준다며.”

“그때 조건이고. 가격을 더 낮출 텐데, 2억 원이나 받을 수 있겠어?”

“그럼 어떡할 거야. 다른 기업들은 소송 걸렸다는 얘기 듣고 다 등 돌리는데. 윤길아.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

“끝까지 싸울 거야. 우리의 11년이 걸린 문제야.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

세련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윤길에게 다가갔다.

“그래. 네가 포기하지 않는다고 쳐. 그러면 우리는? 결국 법정 싸움 들어가면 그 돈 많은 도둑놈들을 어떻게 이겨. 너 변호사 선임할 돈은 있니?”

“그 정도 돈은 사채를 써서라도 마련할 수 있어.”

“사무실로 넘어가게 생긴 마당에 뭘 담보로 잡을 건데? 신체포기각서라도 쓰게? 그리고 만약 변호사를 선임한다 쳐, 저쪽에서는 변호사단을 끌고 몇 년 동안 질질 끌 텐데 그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버텨.”

세련의 말이 곧 현실이었다.

소송 전쟁은 기약 없이 늘어질 것이고, 그 사이에 윤길과 세련, 관수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하….”

한숨을 내쉬며 윤길은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건물을 지나치는데 발치에 툭, 치이는 게 있었다.

“GB타워…?”

윤길이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토록 거절당해왔던 GB인베스트먼트의 본사가 한국으로 옮겨지고, GB타워의 준공식이 오늘 열린다는 기사였다.

***

GB타워의 준공식이 열리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시애틀에 있던 비앙카, 에밀리를 비롯한 주요 임직원들은 모두 GB타워로 자리를 옮겼다.

65층은 내 독채로, 64층에는 이사실과 에릭, 준희의 집무실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아래부터는 직원들과 GB인베스트먼트 관련 협업사들이 들어섰다.

65층 전체를 나 혼자 쓰다 보니 적적할 거라 생각했는지, 준희와 에릭이 곧잘 올라왔다.

오늘, 에릭은 협업사 관리를 위해 지방으로 출장 간 상태였고, 준희 혼자 내 집무실을 찾았다.

“대표님. 점심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가서 먹지.”

예전 같았으면 간단한 도시락으로 끼니를 채웠겠지만, 이제는 나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코스 요리를 하는 한식당집이 있는데 거기로 갈까요?”

“나야 좋지. 금방 나갈게. 먼저 나가 있어.”

“넵.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준희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집무실 한켠에 있는 VIP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나는 자리에 앉아 오전 중으로 처리해야 할 기획안들을 마저 체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니 준희의 시선이 한쪽에 조성된 인공 숲에 고정되어 있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

“하… 저 양반 또 저러고 있네요.”

준희가 벤치에 앉아 있는 한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누군데 그래?”

“자석좌요. 준공식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저기 벤치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다가 갑니다. 출퇴근 길 때마다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니까요.”

“자석좌?”

“아, 대표님께는 말씀 안 드렸죠. 3년 전부터 수시로 투자 제안 메일을 보낸 사람입니다. 기술개발이라면서 샘플 하나 안 보낸다니까요. 기획서도 엉망이고. 자석과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이라 자석좌라고 장난삼아 부른 겁니다. 에릭 총괄님도 알고 계세요.”

“그럼 투자를 해달라고 저러고 버티고 있는 거야?”

“예.”

내 투자 행보를 보고 그동안 투자를 해달라고 찾아온 사람만 수백 명이 넘었다.

밑의 직원들이 최종기획서를 확인하고 거른 사람들의 수만 그 정도였다.

지금도 GB인베스트먼트의 투자제안 이메일에 하루에만 수백 개의 투자 제안 메일이 날아온다.

그런 입장에서 한 번 거절했는데도 수시로 보내온다는 건 상당한 민폐였다.

“기술발전도 없는데 오기 하나만으로 중복 제안 넣는 곳은 블락해. 괜히 봐주지 말고.”

“알겠습니다.”

게다가 이제 봄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아직 꽃샘추위가 한창이었다.

장발인데다 바바리코트를 걸친 남자의 행색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이었다.

요즘 바바리맨이라는 기사가 한창 뜨고 있을 시기였으니 말이다.

“내일도 저러고 있으면 경비원 불러서 쫓아내.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할 수도 있겠다.”

“네. 경비팀에 전달해 놓을게요.”

시선을 돌려 준희가 말한 한식당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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