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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208화 (208/249)

#208화

러시아는 내년에 외국계 기업의 유통업을 전면 금지할 것이다.

이는 틀림없이 벌어질 사실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앉아 있는 남순에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근거로 대며 러시아 진출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이야 시장경제로 변화하면서 서구자본을 끌어들였지만, 이게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응?”

“푸틴 말입니다. 나라 발전과 경제 확대를 위해서 타국의 자본을 끌어들였지만, 정상화가 되고 나면 어떻게 될지 뻔한 거 아닙니까?”

“어차피 2년 뒤면 그 사람도 대통령직을 내려놓아야 되지 않겠니? 러시아에선 3선이 안 된다며.”

“인질이 130명이나 죽은 과잉 진압과 언론통제 의혹에도 압도적인 표 차로 2선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3선에는 자기 측근을 내세우고 그다음에는 자기가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푸틴은 2선을 연임한 이후에 총리 자리로 내려갔다.

대통령 자리에 앉힌 것은 집권 여당의 중진이었던 메르베데프.

메르베데프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도 푸틴의 커피 값을 대신 내거나, 대외적인 역할만 수행했을 뿐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푸틴에게 있었다.

그리고 다음 총선에서 다시 대통령 자리를 거머쥔 푸틴은 전생에서 내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켰다.

남순은 급격하게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대통령 하나 때문에 투자를 포기하라니, 근거가 너무 약하지 않니?”

“러시아는 대외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표방해 왔지만, 현재 돌아가는 정세를 보면 공산주의 국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푸틴의 나라죠. 고모는 한 사람에게 태선백화점의 성패를 맡길 수 있습니까?”

“그건….”

남순은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임원들한테는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자본금 마련한다고 발 벗고 뛰어다닌 거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네. 다시 물리자니 손해가 막심할 것 같고.”

“저희 태선호텔이 이번에 동남아 쪽으로 확장할 생각인데 같이 가시는 건 어떠십니까?”

태선호텔은 최근 동남아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각국에 맞는 컨셉으로 태선호텔을 세우고 운영은 현지에 위탁할 계획이었다.

물론 태선호텔이라는 브랜드를 쓰는 만큼 엄격한 메뉴얼로 직원들을 교육하고 체계화까지 끝내야겠지만.

전생에서도 이 시기에 태선호텔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해 꽤 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기억했다.

거기에 나의 지식과 진석의 호텔 경영 능력까지 추가되었으니 이번 생에선 더 큰 성과를 기대해 볼 만 했다.

“면세점은 현지 정부와 협상테이블을 거쳐야겠지만, 백화점은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태선호텔과 태선백화점이 같이 자리하면 사람들은 더 몰려들 테고요.”

남순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 같이해도 될까?”

“저야 고모랑 같이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나랑 네가 같니? 처음 택배 사업 때도 순전히 네 제안만으로 했는데 대박났잖아. 그 뒤로도 너는 계속해서 승승장구하고 있고. 너만 괜찮으면 꼭 같이하고 싶어.”

“네. 고진석 사장한테 언질해둘 테니 충분히 얘기 나눠보세요.”

태선백화점이 태선호텔 근처에 세워진다면, 그야말로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

이태원의 한 술집, 범준은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날 선 목소리를 냈다.

“내가 안주시킨 지가 언젠데 이제 갖고 와!”

“죄, 죄송합니다.”

“쯧.”

범준이 종업원을 향해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옆에 있던 친구, 원호가 그제서야 범준의 잔에 양주를 가득 따라주며 말했다.

“감히 서범준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지. 흐흐.”

“그치? 하하.”

범준이 함박웃음을 짓고는 양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크… 이 맛에 산다니까. 그보다 웬일이냐? 네가 단둘이 보자고 하고. 늘 병준이랑 허선생 껴서 넷이 봤잖아.”

“야. 걔들이 우리랑 수준이 맞냐? 명색이 재벌이라지만 원 수준 떨어져서는…. 허선생 걔는 술값 아끼자고 자기 집에서 먹자 그랬다니까?”

“허성혜가 그리 말했다고? 크크. 내 앞에선 그렇게 돈 많은 척 굴더니.”

“너한테 뭐라도 하나 뜯어먹겠다고 그러는 거 아니겠냐. 너는 또 그걸 즐기는 놈이고.”

범준은 제 잔에 다시 양주를 가득 따르고는 들이켰다.

“뭐, 눈앞에서 열등감에 찌든 얼굴 보고 있는 것도 나름 재밌잖아?”

“그렇긴 해. 네가 짖으라고 하면 짖을 놈들이 말이야.”

“너는?”

“으응?”

“너는 내가 짖으라고 하면 안 짖어?”

“버, 범준아. 왜 그래.”

범준은 원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이야. 새끼야. 뭘 쫄고 그래.”

“하, 하하. 알지, 장난인 거. 나도 나름 받아친 건데 재미없었나?”

“응. 드럽게 없었어.”

범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징어를 질겅였다.

“그보다 말 안 하냐? 단둘이 왜 보자고 했냐니까.”

“내가 네 둘도 없는 친구 아니겠냐. 꿀 정보가 있어서 바로 너한테 달려왔지.”

“야. 나 태선전자 사장이야. 뭐 얼마나 대단한 정보길래 자리까지 만들어?”

“1년. 1년 만에 벌써 900억 벌었다.”

“하, 그게 뭐 별거라고. 태선전자가 이번 분기에 번 돈이 얼만지는 알고 떠드는 거냐?”

“기업 말고. 아버지한테 돈도 좀 빌리고 내가 받은 호원전기 돈 빼돌려서 투자한 걸로 900억 꽁으로 벌었어. 아버지한테 이자도 두둑이 챙겨주고 남은 돈이다. 그 뒤로 내가 집에서 어떤 취급 받을진 예상가지?”

범준이 포크로 과일을 집으려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게 뭐길래?”

“흐흐. 이거 말해주고 도와줄 테니까, 너도 나 잊지 말고 끝까지 데려가야 된다?”

“그걸 말이라고. 당연하지, 임마. 뭐 도와줄까, 호원그룹 회장 시켜줘?”

“하하.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오케이. 내가 지금 잡고 있는 사업은 미국 주택시장이다.”

“미국 부동산이 엄청 뛰었다매. 근데 그거랑 돈 버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그래. 그러니까 부동산 꽉 잡고 있기만 해도 돈이 알아서 벌어지는 거 아니겠냐. 지금 미국에서 빚이라도 내서 집 안 사면 등신 취급받는다더라.”

“900억이 순전히 집값 올라서 번 돈이라고?”

“응. 물론 미국 은행에 담보 잡고 돈까지 빌려서 자본금 규모는 좀 크다. 너한텐 별거 아니겠지만 말이야.”

원호는 말하며 범준의 잔에 다시 술을 따랐고, 범준은 벌써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범준은 잔 안에서 일렁이는 노란색 술을 보며 강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새끼도 투자로 번 건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겠냐.’

양주를 주욱 들이킨 뒤 원호를 보며 말했다.

“근데 그거 끝물 아니냐? 오를 대로 올랐는데 더 올랐겠어?”

“야 인마. 그 소리 나온 지도 벌써 2년이 넘었어. 2년 동안 그 생각하면서 멍 때린 사람들은 그만큼 손해 본 거고. 내가 확실한 게 아닌데 너한테 같이하자고 그러겠냐?”

“그래도…”

“그리고 내가 전에 유학하다 만난 형 한 명 있다고 했지? 그 형이 미국에서 손꼽힌다는 은행인 컨트리파이낸셜에서 일하는데, 그 형이 추천한 거 직접 사는 거야. 한 마디로 떨어질 일은 절대 없다는 거지.”

범준은 취기 때문인지, 자신의 의지인지 확신하진 못했지만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그깟 거 해보자! 야! 윤원호. 이거 성공하면 너는 내가 책임지고 호원그룹 회장 만든다. 알겠어?”

“아이고 미래의 대태선 회장님이 될 범준님의 말이라면 당연히 믿어야죠.”

원호는 굽실거리며 범준에 말에 호응했다.

“일단 그 사람 번호 불러봐.”

“응. 국제전화번호여서 잠시만. 아니다 네 휴대폰에 직접 번호 찍어줄게. 지금 연락해봐. 뉴욕은 지금 오전 10시 조금 넘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

범준이 휴대폰을 던지듯 원호에게 넘겼다.

원호는 두 손으로 휴대폰을 받고는 빠르게 국제번호를 입력해서 범준에게 넘겼다.

신호음이 울린 지 얼마 안 되어 영어가 흘러나왔다.

“컨트리파이낸셜의 존 카터입니다. 무슨 일로 도와드릴까요?”

“윤원호 아시죠? 걔 친구입니다. 제 이름은 서범준이고요.”

“아, 원호! 원호는 제가 담당하는 고객 중 최고이자 가장 친한 친구죠.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어… 저도 원호처럼 투자하려고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범준의 혀가 꼬인 목소리에도 카터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그 뒤에 타자기 소리가 들려오고는 다시 카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 저희와 교류하고 있는 부동산 업체에서 총합 1200억 원대의 매물까지 여분이 있다고 합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싹 다 투자한다 치면, 저한테 돌아오는 수익금이 어느 정도입니까?”

“네. 미스터서. 죄송하지만 저희 투자상품은 정해진 수익금이 없습니다.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희가 주관한 부동산 시세 기준으로 6년간 평균 30프로, 최대 45프로까지 꾸준히 수익을 내왔습니다.”

평균 수익으로만 잡아도 1200억 원을 전부 투자하면 1년 수익이 360억 원이었다.

거기에 최대까지 붙는다고 하면… 원호가 괜히 추천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투자금을 늘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1200억 원이 최대입니다. 이 금액도 원호의 친구라고 해서 무리해서 만들어 온 겁니다.”

“그럼 일단 1200억 원이라도…”

“하지만. 다른 상품이 있는데 설명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카터의 말을 듣고 범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있으면서 빙빙 말 돌리기는….”

수화기를 떨어뜨려 혼잣말을 늘어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뭡니까. 일단 설명은 들어봅시다.”

“네. 지금 미스터서에게 설명 드릴 것은 부채 담보부 증권, 약어로 CDO라고 불리는 상품입니다. 주택을 담보로 잡고 고객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매년 높은 이자를 받는 거죠. 만약 고객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담보로 잡은 고가의 부동산을 처분하면 되니 손해볼 일은 없고 무조건 이득만 보는 상품이라고 알고 계시면 됩니다.”

범준은 그사이에 원호가 따른 양주를 마시고는 알딸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는 집을 사는 거라더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집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겁니까? 둘이 완전 반대처럼 보이는데… 딸꾹!”

“네.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네요. 확실한 건 6년이 넘게 이어져 온 집값 상승이 이어지기만 한다면 반드시 이득을 본다는 겁니다. 참고로 두 번째 상품은 한도가 없습니다. 범준 씨가 하고 싶은 만큼 투자하실 수 있습니다.”

2000년부터 올해까지 미국의 집값은 평균 2배 이상 뛰었다.

그것도 매년, 꾸준히 상승해서 만들어진 결과다.

내년까지 현상 유지만 된다 해도 범준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범준은 취기에 소파로 몸을 누이면서도 의사 전달은 확실히 했다.

“히끅. 내가 돈 만들어 올 테니까 당신, 딱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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