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구글이 있는 실리콘밸리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거리에서 러닝하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차 세워줘. 나는 여기서부터 걸어갈게.”
“무슨 일이에요?”
같이 따라 나온 준희가 물었다.
“저분이 오늘 만나야 되는 분이거든.”
“어, 그럼 저도…”
“너는 구글에 먼저 가 있어.”
“알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수전 워치츠키는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채 러닝을 즐기고 있었다.
빠른 걸음 정도였기 때문에 뛰기 시작하자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내가 옆에 서서 자연스럽게 뛰어가자 워치츠키가 깜짝 놀라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대표님! 오늘 오신다는 소식 들었어요. 퇴근하고 집에서 쉬다가 다시 가는 길이었는데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이런, 저 때문에 휴식에 방해가 됐나 보네요.”
“하하. 무슨 말이에요.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구글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겠어요? 대표님 오신다면 휴가라도 반납해야죠.”
워치츠키의 맑은 웃음소리에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회사까지 가볍게 뛰어서 갈까요?”
“좋죠.”
여기부터 회사까지 러닝으로 가려면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러닝으로 가면서 워치츠키의 근황과 함께 구글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구글은 비즈니스 모델을 완벽하게 만들어냈고,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작년에 나스닥에 상장 이후 주가가 벌써 두 배가 넘게 뛰었고, 이 상승세는 앞으로 주욱 이어질 것이다.
“대표님 덕분에 이제 샌드위치 사 먹을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워치츠키가 혼자 말하고는 혼자 웃었다.
언젠가 한 번 들었던 농담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농담 이후 대화의 방향이 기술개발 쪽으로 넘어가자 워치츠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저희 회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동영상 공유, 검색 엔진 웹사이트가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지금쯤이면 구글이 한창 구글비디오를 개발하고 있을 당시였다.
수많은 투자금으로 만들어낸 구글비디오는 올해 구글을 통해 서비스가 시작되긴 하겠지만, 썩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한다.
투자금, 광고에도 불구하고 투자금 회수도 못 한 것이다.
동영상 공유 및 검색 엔진 웹사이트라면 꽤 수익성이 있을 텐데 왜 망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구글비디오는 출시와 함께 매출 하락의 주범이라는 혹평을 듣지만, 이후 유튜브 인수를 통해 커다란 수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너무 회사에 갇혀 있을 필요 없습니다.”
“네?”
“구글 자체에서 해결할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예전에야 투자를 받아야 움직일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이 일변하지 않았습니까. 구글도 이제 엄연한 대기업입니다. 음식을 살 돈이 있고, 요리에 자신이 있다면 식당에서 사 먹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수전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팔을 굽히고 양손을 들며 소리 질렀다.
그리고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저희가 광고 모델, 엔진 개발까지 자체적으로 하다 보니 그 쉬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어요. 대표님 말대로 필요한 게 있다면 사 오면 끝날 문제죠. 당장 세르게이와 래리에게 말해야겠어요.”
“좋습니다.”
러닝이 끝났다.
구글, 아니 구글촌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 갔던 본사는 물론, 눈앞에 5채 정도가 구글의 로고를 달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고층 건물과 달리 낮은 건물들이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이 정도 규모라니…. 새삼 구글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대표님은 처음 보죠? 저희는 여길 구글빌리지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건물들 사이로 작은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어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벤치에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일하기 참 좋은 곳 같습니다.”
“네. 저도 구글이 정말 좋아요.”
워치츠키도 눈을 반쯤 감고는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구글의 본사는 그대로여서 익숙하게 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준희는 이미 자리에 앉아 페이지와 대화하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둘 다 우리가 들어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래리. 고개를 돌려봐. 네가 그토록 보고 싶던 대표님이 오셨어.”
“오! 강빈 씨!”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페이지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나에게 걸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가볍게 포옹을 했다.
“구글이 상장한 이후에 제가 워낙 바빠서 찾아가지 못했어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각자 자리에서 잘하고 있으면 된 거죠.”
페이지에게 미안해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미소를 지었다.
소파로 가자 준희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따뜻하게 자리 덥혀 놨습니다.”
“땡큐.”
그렇게 나와 준희가 한편에 앉고, 맞은편에는 워치츠키와 페이지가 앉게 되었다.
“브린 씨는 어디에 계십니까?”
“아, 세르게이는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강빈 씨에게 꼭 안부를 전달해달라고 하더군요.”
“결혼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네요. 다음에 올 때 꼭 선물을 사 온다고 전해주세요.”
“전에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세르게이, 그 녀석 아직도 전에 주신 시계를 아직도 차고 다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고.”
페이지가 손목을 걷으며 차고 있는 은색의 시계를 드러냈다.
이제 돈이 아쉬운 일은 없을 텐데 아직까지 차고 다니는 걸 보면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선물해 준 보람이 있군요. 다음에는 더 멋진 걸로 갖고 와야겠습니다.”
“이거 받기만 해서 죄송한데요? 하하. 저도 꼭 준비하도록 하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근황을 주고받았다.
전생과 변함없이, 아니 오히려 더 성공적으로 이끌어준 페이지, 브린, 워치츠키에게 참 고마웠다.
특히 워치츠키는 아직 외부에 노출되진 않았지만 구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분명 구글의 성공에 큰 보탬이 되었으리라.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본론을 꺼냈다.
“오늘 찾아온 이유는 구글이 데려갔으면 하는 곳들이 있어서입니다.”
“데려갔으면? 저희보고 회사를 인수하라는 말입니까?”
“예. 원하신다면 인수 비용은 제가 대겠습니다. 대신 인수한 기업들의 지분은 제가 갖는 걸로요.”
“잠깐만, 잠깐만요. 강빈 씨. 대화가 너무 빠릅니다. 강빈 씨가 인수하라면 분명 그럴 가치가 있는 곳들이겠지요. 그래도 어떤 기업인지 설명을 먼저 듣는 게 먼저지 않겠습니까?”
“제 설명을 듣는 것보다 보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 안쪽에 있는 책상 뒤에 앉았다.
“다들 여기로 와보시죠.”
내 말에 준희가 가장 먼저 일어서서 다가왔고, 페이지는 의아한 눈빛으로, 워치츠키는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 뒤에 섰다.
그리고 나는 웹 브라우저에 도메인을 입력했다.
‘utube.com’
유튜브는 아직 베타 기간을 거치고 있었고, 도메인이 ‘youtube.com’으로 바뀌기 전이었다.
주루룩 나열된 동영상들은 100개가 채 되지 않았다.
그중 조회수가 가장 많은 영상을 클릭했다.
흘러나오는 언어로 보아 스페인 대학생들이 촬영한 영상이었다.
기숙사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학생 세 명이서 화면을 바라보며 떠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작년에 빌보드 차트 1위를 거머쥐었던 미국의 R&B 가수 어셔의 ‘Burn’을 틀고 따라불렀다.
영어 발음이 어눌했지만, 꽤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가장 조회수가 많은 영상이라 해도, 조회수가 1000회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거야! 래리, 이거라고!”
영상만 틀었을 뿐인데 워치츠키가 환호하며 래리의 몸을 흔들었다.
페이지가 여전히 의문을 표하고 있자, 워치츠키가 나를 보며 물었다.
“대표님, 이거 미국에서 만든 웹사이트 맞죠?”
“네. 그리고 보시다시피 아무나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콘텐츠 호스팅 웹사이트입니다.”
워치츠키가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며 래리에게 말했다.
“이것 봐. 사용자들이 대부분 미국 사람일 텐데도 이 영상이 가장 조회수가 높잖아. 그 이유가 뭐겠어? 사람들은 다양한 세계를 체험하고 싶은 거야!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걸 영상을 통해 간접 체험하고 싶어 하는 거라고. 이걸 왜 나는 생각 못 했을까. 그저 좋은 영상을 매수해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전생에서 유튜브 인수를 제안한 사람이 워치츠키였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물론 제안과 인수는 원래 내년에 일어나겠지만, 1년이란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표님은 진짜 복덩이예요. 아, 이런 말씀 드리면 실례려나요?”
“아닙니다. 듣기 좋은 말이네요. 워치츠키 씨 말대로 유튜브의 가장 큰 장점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타인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겁니다. 또한 영상을 올리는 개개인이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턱을 쓰다듬으며 가만 보고 있던 페이지가 말을 꺼냈다.
“저는 공감이 안 되긴 합니다만… 워치츠키와 강빈 시의 말을 들으니 다른 사람에겐 꽤나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 아닙니까? 일반인이 올린 영상에 광고를 붙인다면 제작자도, 시청자도 거부감이 심할 텐데요.”
유튜브가 초기 난항을 겪었던 문제이기도 하다.
구글에게 인수되고 몇 년간 수천억 원의 적자를 봤었으니까.
이를 해결한 방법이 2007년부터 시작한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이다.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은 크리에이터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뒤, 광고를 원할 시 유튜브 측에서 광고를 허가해주고 광고 수익의 일부를 분배하는 방식이다.
벌써부터 모든 영상에 광고를 올릴 필요 없이, 차후 검증된 크리에이터부터 차근차근 광고를 시작하면 거부감도 크진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수익구조에 대해 얘기하자 페이지도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초기 투자가 필요하겠지만, 수익을 내기 아주 좋은 모델 같습니다.”
“초기 투자에 대한 부담은 제가 덜어드리겠습니다. 아마 적은 돈은 아닐 거거든요.”
유튜브 인수 과정은 페이지와, 유튜브의 설립자인 채드 헐리가 식사 자리에서 즉석으로 결정되었다고 하니,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유튜브 인수후 수익 모델의 불확실성으로 오천억 원이 넘는 적자를 봤다는 것.
구글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정도 금액은 큰 부담감일 것이다.
“유튜브 인수부터 개발까지 필요한 금액은 청구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내가 투자를 하며 무엇을 요구할지는 뻔했기 때문에 페이지는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 페이지와 워치츠키를 보며 우선 디지털사운드가 어떤 기업이고, 구글에 어떤 바람을 불어올지에 대한 설명을 진행했다.
MP4플레이어 출시를 통해 유튜브를 보기 좋은 상품이라고 소개한다면, 유튜브의 한국
진출도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미국에서 MP4 플레이어를 팔기에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구글의 유튜브 인수를 1년이나 앞당겼다.
인수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을 뿐더러, 수익 모델까지 제시해줬으니 구글은 한 걸음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