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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197화 (197/249)

#197화

에릭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한국 지사라고 해봤자 이곳보다 건물이 작은데요? 그렇지 않아도 직원 수가 갈수록 늘어서 여기도 증축해야 될 지경이에요.”

“그래서 결정한 거야. 한국에 건물을 하나 새로 올리려고. 시공은 태선건설에서 맡을 거고 이미 얘기도 끝났어.”

“하지만 GB인베스트먼트의 투자 규모가 미국이 가장 큰데, 본사는 여기에 놔두는 게 낫지 않겠어요?”

에릭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지금도 중국, 아시아, 유럽에서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거 알잖아. 갈수록 비미국계 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텐데 언제까지고 미국 투자만 고집할 수는 없어. 차라리 내가 주로 머무는 한국으로 본사 옮기는 게 낫지 않겠어?”

“흠… 저야 당연히 대표님이 계신 한국으로 옮긴다면 완전 찬성이죠. 본사 이전하려면 당분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네요.”

미국 지사는 에밀리와 비앙카에게 맡기고, 한국에 화려한 본사를 세울 생각이었다.

어쩌면 시애틀의 스페이스 니들 타워처럼 한 지역의 상징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GB타워가 어떨까요?”

“그거 괜찮네. GB타워에 투자를 꽤 할 생각이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네 방에 온실을 넣고 싶다든지, 옥상에는 헬기 착륙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것들. 준희 너도 마찬가지고.”

얘기를 듣고 있던 준희가 대번에 입꼬리가 찢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수면실도 추가될까요? 제가 밤새워 일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차라리 회사에서 자고 싶을 때가 많았거든요.”

“수면실 받고, 개인 샤워실까지 추가해주지.”

“GB를 위해서 제 한 몸 불태우겠습니다!”

준희가 벌떡 일어나 경례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에릭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천장을 보며 헤실대고 있었다.

“에릭. 네가 빨리 처리해줘야 될 일이 있어.”

“말씀하세요.”

“지금 GB의 자금이 들어간 은행이 어디지?”

“STT, JP모건, PNC, COB 정도겠네요.”

에릭이 말한 은행들 모두 미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은행들이다.

누구도 이 은행들이 망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중 두 곳이 3년 안에 파산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STT랑 COB에 있는 자금들은 전부 빼. 그리고 주택저당증권을 주요 상품으로 내걸고 있는 은행에는 절대 맡기지 마.”

“역시… 대표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어요. 2000년도 들어서면서 바뀐 정책 때문에 거품이 너무 많이 껴 있었잖아요.”

IT 버블붕괴와 9.11테러 등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의 경제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ED는 가계지출 증가를 유도시키기 위해 정책 변경을 이끌어낸다.

FED의 압박으로 미국 정부는 저금리 정책을 펴는데, 이로 인해 주택 가격은 빠르게 상승했다.

집을 사는데 생긴 부채의 금리보다, 주택 가격의 상승이 빠를 정도였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기만 하면 무조건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여유가 되는 사람부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까지 집을 사기 시작했다.

은행 측에서도 빚을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은 집을 받으면 되니 무분별한 대출을 이어갔다.

신용불량자 또한 가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오하이오주에서는 사망한 사람의 이름을 빌려 써도 대출이 가능할 정도였다.

신원 확인 절차가 있긴 하나, 형식상 이루어진 것이고 실상은 집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대출을 해준 것이다.

집을 사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니, 사람들은 웃돈을 줘서라도 집을 사댔고, 이는 다시 집값의 상승을 불렀다.

작년에만 15프로가 올랐고, 올해도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내년에 상승치는 최대를 찍겠지만 이는 폭풍이 불어닥치기 전 전야제 같은 것이었다.

약 2조 달러까지 부풀어 오르던 거품은 2007년, 순식간에 꺼져버린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사라지고, 매물로 나온 집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거품이 부풀어 오를 때보다, 꺼지는 것이 훨씬 빨랐다.

빚을 내서 집을 샀던 사람들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폭락한 집을 은행에 떠넘겼다.

은행의 투자자들도 불안감을 느끼며 순식간에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결국 집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었던 은행들은 순식간에 빚더미에 내려앉으며 파산을 신청했다.

미국 10대 은행인 STT와 COB도 주택담보대출을 주요 상품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이 여파를 피해 가지 못하고 그대로 도산했다.

2000년도 최대의 금융위기라 불리는 이 사태를 비우량 대출자를 뜻하는 ‘서브프라임’과 주택담보대출을 뜻하는 ‘모기지’를 붙여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고 불렀다.

에릭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집값 폭등이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금액이 크다 보니 꽤 걸리긴 하겠지만… 최대한 빨리 빼내겠습니다.”

“고생해줘. 그리고 저커버그 씨한테는 연락 왔어?”

“네. 언제라도 달려오겠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하버드대학교가 있는 매사추세츠에서 오려면 하루는 걸릴 거예요.”

“그럼 내일 찾아오라고 해줄래?”

“예. 메일로 번호를 받아서 전화로 말할게요.”

마크 저커버그.

그가 내 다음 투자자였다.

***

페이스북의 시작은 2003년 당시 하버드대학교의 2학년 학생이었던 저커버그가 만든 한 웹 사이트용 소프트웨어에서 시작된다.

페이스북의 탄생에 꽤 재밌는 일화가 있다.

페이스북의 원래 이름은 페이스매쉬로, 만들어낸 이유는 한없이 가벼운 데 있었다.

하버드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동료 여학생들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두 학생의 사진을 나란히 화면에 띄운 뒤 핫하거나, 핫하지 않거나 두 가지의 선택지를 만들었다.

단순한 흥미로 시작한 일을 해내기 위해 저커버그는 하버드의 보안 네트워크를 해킹해서 기숙사에서 사용하는 학생증 이미지를 복사하기도 했다.

웹 사이트를 만들기 위한 기술까지 장착되어 있었지만, 이 모든 게 단지 그의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했던 일이다.

물론 2003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하버드대학교 경영진에 의해 페이스매쉬는 폐쇄되었다.

해킹으로 인한 보안법 위반에 학생들의 사진을 동의도 없이 사용했으니 저작권 침해까지 범죄를 저질렀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소송을 당하기도 하고, 퇴학까지 당했으나 다행히 모두 취소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간 장난꾸러기가 아니었는데, 알려지기로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해서 과연 어떤 사람일까 상당히 궁금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슬리퍼가 질질 끌리는 소리와 함께 짧은 금발에 곱슬머리, 말상을 한 남자가 방에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5년 뒤에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뽑히게 될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저커버그는 나이키의 로고가 새겨진 슬리퍼에 ‘뉴욕’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저커버그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 이렇게 얼굴로 보니 신기하네요. 손을 만져봐도 되나요?”

“예?”

내 앞으로 터덜터덜 다가오더니 씨익 웃고는 양손으로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저커버그를 처음 본 소감으로는… 엉뚱하다는 것이다.

“오늘 투자는… 이제 그만 하시죠.”

“아, 네! 이거 실례했습니다. 하하.”

계속해서 내 손을 잡고 흔들던 저커버그는 눈을 끔뻑이며 손을 뺐다.

“사실 제가 GB에 대한 환상이 있거든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그렇게 말했다죠? 실패하지 않는 투자자!”

“예, 뭐…. 그보다 제가 부르신 이유는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드디어 저에게도 기회가 오는군요. 투자를 받아들이겠습니다!”

“....”

조건도 안 듣고 곧장 투자를 받아들인다니.

그래도 생각보다 투자가 쉽게 풀릴 것 같자 나도 긴장이 살짝 풀려버렸다.

“저커버그 씨가 적극적이시니 좋네요. 우선 앉으시죠.”

“그러시죠!”

저커버그는 이빨까지 내보이며 씨익 웃더니 소파로 가서 털썩 앉았다.

“흠….”

그 모습을 보다가 나도 발걸음을 옮겨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혹시 지금 투자를 받고 있는 곳이 있습니까?”

“예. 작년에 50만 달러를 투자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걸었던 조건이 수익 지분의 3퍼센트입니다.”

50만 달러에 3퍼센트라… 누군지 기억하진 않지만 돈벼락을 맞았다.

“좋습니다. 생각하신 조건이 있다면 먼저 말씀해주시죠.”

페이스북이 기업공개를 한 것은 2012년의 일이다.

그 당시 페이스북은 기업공개와 동시에 공모가 기준 기업가치 1040억 달러를 기록했다.

개장가가 공보가보다 10프로가 넘었으니, 그 기준으로 한다면 1100억 달러가 넘었다.

기업공개와 동시에 시가총액 기준 미국 대기업 23위를 기록한 것이다.

5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투자자는 한화 약 6억 원으로 수천억 원을 번 것이고.

저커버그의 커다란 눈이 천장을 향했다.

“흠…. GB인베스트먼트의 투자 규모는 알고 있지만, 현재 페이스북은 많은 투자금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그럼 맥시멈을 불러주시죠. 얼마까지 받을 수 있습니까?”

“그럼 넉넉하게 잡아 천만 달러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수익 지분은 남은 여분이 삼분지 일정도 되는데 괜찮습니까?”

아까 투자를 받았다던 사람보다 투자금액 대비 효율은 나빴으나, 수익지분이 크게 늘었다.

한국 나이로 22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GB의 자금 규모를 알고서 저울질하고 있었다.

애초에 투자 제안을 한 것이 나였으니 칼자루는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천만 달러라니, 주커버그는 아직 자신이 설립한 기업이 얼마나 커질지 상상도 못 하고 있다.

“1억 달러 투자하겠습니다. 수익 지분은 40프로를 가져가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여유롭게 입가에 호선을 그리고 있던 주커버그는 내 말을 듣고 눈이 서서히 커졌다.

원체 큰 눈을 더 크게 뜨자 기이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1억… 달러라니. 저희 회사는 그만한 투자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돈의 절반은 어떻게 쓰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저커버그 씨와 지분을 가진 동료들의 희락을 위해 쓰셔도 무방합니다. 단, 절반은 회사 경영에, 기술 개발에 온전히 다 투자하세요. 제가 바라는 건 그뿐입니다.”

저커버그의 목젖으로 침이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불과 22살에 1억 달러라니.

내가 만약 저 나이에 이런 제안을 받았다면 주저하지 않고 곧장 받아들였을 것이다.

저커버그가 벌떡 일어섰다.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기다란 손을 내밀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마크라고 부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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