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오늘부터 밤하늘에는 천문역사상 유례가 없는 쌍둥이 혜성쇼가 펼쳐집니다.”
뉴스에서는 오늘 밤 펼쳐질 우주쇼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3년 전 발견된 니트 혜성과 재작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리니어 혜성이 동시에 출현한다고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의 예측대로라면 니트 혜성은 최대 밝기가 겉보기등급이 0.3으로 1등급의 니트 혜성보다 더 밝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혜성이 우리나라에서 관측되기 시작한 오늘은 아마 두 혜성 모두를 보기는 힘들 것이고, 한 달은 지나야 육안으로 한 하늘에서 동시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쌍안경을 손에 든 채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진태의 서재였다.
지난 유산 분배 이후에 진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건강상의 이유를 빌미로 진태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은 채, 서재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채규가 전했다.
별이 가장 잘 보인다는 경북 영천시까지 진태를 모시고 싶었지만, 가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출발하기 전에 채규에게 연락을 받았다.
채규는 평소와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진태가 호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재 앞에 서 있는 채규는 고개를 숙인 채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실장님…? 저 왔습니다.”
“예….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 말에도 고개를 들지 않는 채규를 보며 의아했지만 곧 지나쳐 서재로 들어갔다.
환한 조명들이 사이드에서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겨우 앞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만 조명을 남기고 나머지는 껐다.
진태는 아마 가장 깊숙한 곳에 있을 터이다.
서재에 들어오기 전 일하는 사람에게 미리 언질을 한 터라, 천장은 개방되어 있었다.
검정의 하늘 위에 옅은 빛을 내는 별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책장을 지나고 온실을 지나 안쪽으로 걸어갔다.
진태는 등을 돌린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 마음대로 천장을 열었는데 괜찮죠? 오늘 볼거리가 있습니다.”
“....”
“할아버지? 할아버지!”
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자 진태가 의자를 돌려 정면을 향하게 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
“얼굴이 가관이구나.”
“칠 장난이 따로 있지, 이제 하다 하다 목숨으로 농을 치십니까?”
“지금 아니면 못 치는 농 아니겠냐.”
괜히 반발하고 싶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찾아뵙겠다고 해도 거절하시더니, 오늘은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잠들기 전에 네놈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런 말도 하실 줄 아셨네요.”
“왜, 무를까?”
“하하. 아니요. 듣기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진태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그 말이 그런 표정을 지을 정도였습니까?”
“이 늙은이를 놀리는 놈은 너밖에 없을 게다.”
진태는 말을 하면서 몸을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에서는 미약한 불빛 하나가 궤적을 남기며 천천히 저편을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면 니트 혜성일 것이다.
“처음 봅니다.”
“뭣을?”
“오늘의 밤하늘이요. 좀 더 여유를 갖고 살아갈 걸 그랬어요.”
강현재는 오늘 밤, 떨어지는 혜성을 보지 않았다.
일에 치이고 살아감에 치여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갔다.
진태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낙하하는 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쌍안경을 내려놓았다.
쌍안경을 들어 더 희미한 빛의 궤적을 찾아내고 싶지 않았다.
혜성이 천장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때 나지막이 말했다.
“강현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제가 외면해왔던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 이야기를 꺼냈다.
나조차 이해하지 못할 이 이야기를, 진태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말했다.
서강빈 이전부터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에 대해.
죽을 정도로 노력해서 결국 죽어버린.
그런 사람에 대해 말했다.
몇 분, 아니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혜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천장은 희미한 별 하나 보이지 않고 탁했다.
잠들지 않는 서울의 불빛과 밤안개가 섞여 만든 기묘한 하늘이었다.
“....”
진태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떤 말보다 그 침묵이, 나를 뭉글하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그것도 잠시, 침묵이 오랜 시간 이어지자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천장에 붙박아 둔 시선을 내릴 자신이 없어져 갔다.
시야에 그의 마지막이 보일까 봐.
한참이 지나고,
“네가 누구든, 네 삶을 살아라.”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긴장이 풀려, 몸을 한 번 휘청이고 진태를 바라봤다.
“할아버지?”
“....”
진태는 입을 앙다물고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씩 떨고 있던 그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고,
내 입에서는 나조차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울고 싶었지만 우는 방법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이 울어대는 것 같은 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진태가 내 곁을 떠났다.
***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서진태 태선그룹 회장이 어젯밤 서울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진태가 죽었다.
“...태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언론사들 모두가 호외로 진태의 죽음을 알렸고,
“...고인의 빈소는 태선병원의 장례식장 17호실로 정하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한편 태선 관계자는 조문은 내일부터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해외 주요 외신들조차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속보를 냈다.
“작년 전경련의 회장으로 취임한 천두완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고인을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죽음에 세상이 반응하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서재에 앉아 마른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젯밤 진태가 하얀 천에 덮여 서재를 나갈 때도, 나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그의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애도였다.
수많은 장례식을 갔으나, 가족의 장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치르지 않았다.
나를 버렸던 어머니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내가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그걸 알게 되었던 것은 법원으로부터 온 소송 안내 서류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대출한 돈을 갚지 못한 채 사망하자 상속인인 나에게 빚을 갚을 것을 청구한다는.
생사도 궁금하지 않던 아버지의 거액 채무를 떠맡았다는.
그런 뻔한 내용이었다.
상속 포기가 가능한 3개월이 지난 상태에서 들은 소식이었다.
소송을 걸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와 관련된 일을 질질 끌고 싶지 않아 곧장 빚을 갚았다.
당연하게도 장례도 치르지 않았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가까운 이의 죽음을 어떻게 보내야 될지 생각나지 않았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도.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고 진석이 찾아왔다.
진석은 진태의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부회장님 덕분에 서회장님 저택에도 오게 되고 영광입니다.”
“...아버지가 보내셨습니까?
내 입에서는 쇠가 긁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예. 처남도 꼴이 말이 아닙니다. 안 그래도 처진 눈매가 바닥에 닿을 지경입니다. 밑에 사람을 보내려고 해도 여기가 어디입니까? 그 천하의 서회장님 댁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계열사 사장 정도는 되야 올 수 있다고 저를 보냅디다.”
“하하….”
진석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저런 말을 한다는 걸 알았기에 나도 웃어 보였다.
유쾌한 면에 배려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부회장님. 제가 오늘만 외종숙으로서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진석이 말을 이었다.
“지금 성복제까지 끝나고 문상을 받고 있어. 각 기업 회장들까지 찾아오는 마당에 서회장님이 제일 아꼈다던 손자가 안 나타나니까 다들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네 백부, 서재만 부회장은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날뛰고 있고. 그리고… 아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후….”
진석이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태선경호에서 파견나온 경호팀이 문상객들한테 예약 여부를 물어보고 있다.”
“조문 예약이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거래처와 직장 동료들의 장례식과 각기업의 회장들의 장례식까지 가봤으나 조문 예약은 금시초문이었다.
진석은 말하기 곤란했는지, 머리를 쥐어뜯다가 결국 말했다.
“뉴스에서는 가족장이라고 하지? 유명한 정치인이나 재계 인사, 연예인들은 통제하지 않고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일반인 티가 나면 예약을 핑계로 조문을 거절한다는 말이다. 아까 얼핏 듣기로는 서회장님 먼 친척 같은데 예약하지 않으면 못 들어온다고 쫓아내더라.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검은 정장 입은 두 명한테 끌려갔다고.”
죽음을 슬퍼하는 것조차 가려 받는다.
누구의 뇌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알 것 같았다.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네요.”
그의 공간에 앉아,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내 애도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제 뜻대로 진태를 애도하게 할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진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일 것이다.
***
조문 예약이라는 말은 전생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황당함과 분노가 섞인 감정을 느낀 채 태선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취재진이 장례식 밖에 득실거리고 있었다.
“저부터 들어가겠습니다. 사장님은 조금 있다가 들어와 주세요.”
“예. 부회장님.”
진석은 서재 밖에 나오자 다시 평소의 태도로 돌아와 나를 존대하고 있었다.
내가 차에 나오자 셔터 소리가 들리며 취재진이 마이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영균과 경호팀이 막아서기 시작했고, 나는 그 틈에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장례식장 전체를 대관한 것도 아닐텐데, 입구에 태선경호에서 보낸 사람이 서 있었다.
내 얼굴을 보고 황급하게 허리를 굽혔다.
나는 그런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예약이라는 말이 있던데. 조문 예약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남자가 허리를 다시 펴며 말했다.
잘못된 것은 없다는 듯이.
“조문객들은 이번 장례를 주관한 태선전자의 비서실과 미리 연락을 주고받은 뒤에 옵니다. 그래서 예약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태선경호에서는 태선전자 비서실의 지시를 내려받고 그를 시행했다. 이 말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회장님의 친척이라고 해도 말입니까?”
“예. 전부 태선전자 비서실을 통합니다. 뭐 허위로 친척이라고 했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촌수가 너무 멀면….”
“그만 말해도 됩니다.”
진태의 마지막에 재를 뿌리고 있는 놈이 누구인지,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