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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171화 (171/249)

#171화

에릭은 강빈의 지시를 받고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강빈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네 프리미엄을 두둑이 챙겨 줄 기업이야.’

그동안 강빈의 투자를 대신하며 에릭이 커미션으로 받은 금액만 한화로 3000억 원이 넘었다.

걸출한 기업 하나를 창업하기에도 부족하지 않은 돈이었지만, 아무리 기업이 성공한다 한들 강빈의 밑에서 받는 수익만 못할 것 같았다.

에릭은 여전히 붕 뜬 마음을 품에 안고 실리콘밸리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테슬라의 건물이 에릭의 눈앞에 펼쳐졌다.

테슬라의 건물은 실리콘 밸리 안에서 북부 쪽에 위치했으며, 넓은 부지에 축구장만 한 단층 건물 한 채가 우뚝 서 있었다.

부지에는 자동차 정비소처럼 보이는 것들이 건축되고 있었는데, 강빈의 말처럼 아직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준비단계인 것처럼 보였다.

부지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양손에 든 두 개의 박스 때문에 얼굴까지 가려진 남자가 바쁘게 안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에릭이 위에 있던 박스 하나를 냉큼 들었다.

“제가 같이 들어 드릴게요.”

안에는 자동차 관련 부품이 들어 있었는지 무게가 꽤 상당했다.

박스 하나를 들추자 총명한 파란 눈빛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젊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남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데, 건설사에서 나오신 분인가요?”

“아니요. 오늘 투자 관련 미팅을 잡은 에릭 장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웃는 얼굴을 순식간에 거두고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박스를 내려놓고 왼쪽 손목을 보고는 말했다.

“이거, 제가 큰 결례를 범했네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된 줄 몰랐습니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 10분이나 남았는데요, 뭘.”

에릭이 태연하게 웃으며 답하자 남자는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는 손을 내밀었다.

“오늘 미팅하기로한 테슬라의 CEO 중 한 명인 마크 타페닝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GB인베스트먼트의 에릭 총괄님.”

“영광이랄 것까지야. 하하. 우선 이것부터 옮기고 얘기하시죠. 지금 꽤 무겁거든요.”

“그러실 필요 없는데… 알겠습니다.”

마크는 에릭이 들고 있던 박스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다시 제 박스를 손에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창고 안쪽에 박스를 옮긴뒤 에릭과 마크가 향한 곳은 창고 옆에 붙어 있는 회의실이었다.

회의실 안은 깔끔하고 크기가 꽤 넓었지만 시멘트 냄새가 조금 났고, 놓여진 게 테이블과 의자 말고는 없어 휑한 느낌이 들었다.

마크가 에릭이 앉을 의자를 빼내고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에릭이 먼저 말을 꺼냈다.

“CEO가 총 두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한 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아, 저와 같은 CEO인 마틴은 뉴욕에 투자를 받으러 출장을 갔습니다. 저희가 지금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거든요. 하하.”

마크의 말에 에릭의 눈썹이 잠깐 꿈틀거렸지만, 에릭은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에릭은 얼굴에 웃음기를 띠며 말했다.

“여기까지 온 저와 달리 직접 투자를 받기 위해 찾아갈 정도면 정말 대단하신 분인가 봅니다.”

“설마 총괄님만 할까요? 다만 뉴욕의 자산가인데 시간 내기 워낙 어렵다고 하셔서요.”

“마크 씨. 저는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에릭이 어느새 웃음기를 거두자 마크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냥 에릭 총괄님이 선뜻 찾아오신다기에…”

“누가 가고 오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다만 제가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오늘 안으로 투자를 끝내기 위해서입니다. 테슬라의 현 상황이 많이 위험하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분이 안 계시니 오늘 안에 결정 나진 않겠네요.”

GB인베스트먼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테슬라의 부채는 오백만 달러가 넘었다.

누적 적자는 천만 달러가 넘은 상황.

테슬라가 전자책 단말기를 개발한 회사를 인수시키고 받은 돈은 실리콘밸리의 부지를 임대하는데 대부분 쓰였고, 이어지는 시공비와 운영비는 부채로 이어졌다.

현재 테슬라가 벌어들이고 있는 이익은 에너지 저장 장치인 파워월과 파워팩 정도였고 주력 사업으로 잡은 자동차는 아직도 개발단계다.

초반에야 투자자들이 꽤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전기자동차라는 생소한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는 추세였다.

테슬라 입장에서 작은 투자도 놓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에릭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제 배려가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투자자가 떠날 기색을 보이자 마크가 에릭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총괄님이 지금 오해하고 계신 겁니다. 저와 마틴, 둘 다 투자를 승인할 권리가 있습니다. 마틴이 없다 해도 제가 결정할 수 있어요.”

“GB인베스트먼트의 투자 규모를 알고 계십니까?”

“잘은 모르지만 100만 달러로 아마존닷컴의 지분을 매수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마크의 말에 에릭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GB인베스트먼트에 큰 관심은 없지만, 100만 달러에 아마존닷컴의 지분 10프로를 매수했던 것이 GB인베스트먼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이다 보니 겨우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에릭이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테슬라가 얼마의 투자금을 원하던 저희는 지급할 능력이 있습니다.”

“저희는 초기 투자금으로 천만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GB인베스트먼트라 해도 이만한 금액을 한 번에 투자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두 번 말씀드리지만 지급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GB인베스트먼트가 이번 분기에 벌어들인 수익만 30억 달러가 넘으니까요.”

“3, 30억….”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마크를 보며 에릭이 이어서 말했다.

“GB인베스트먼트는 그 기업의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합니다. 마크 씨가 생각하는 테슬라의 미래가치는 얼마입니까?”

마크는 침을 한 번 삼키고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저희는 이미 한차례 성공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누보미디어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만든 전자책 단말기로 말이죠. 그때도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자동차 시장에서 짧은 역사를 가진 기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에도 확신을 갖는 이유가 있습니까?”

“자동차 시장을 오랜 역사를 갖은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이유는, 브랜드 때문입니다. 자동차처럼 미래지향적인 산업에서 정통성을 찾다니 우스운 일이지 않습니까? 저는 이 인식을 바꿀 겁니다.”

마크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기존의 자동차기업들은 과거로 치부할 것이고, 테슬라는 미래를 상징하는 기업이 될 겁니다.”

마크는 초점을 허공에 둔 채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마크를 보며 에릭은 강빈이 왜 이곳에 투자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일전에 보았던 델타플러스의 민섭처럼, 마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빠져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에릭은 홀린 듯, 투자를 진행하자고 말할 뻔했으나 정신을 다잡았다.

‘지금은 사업 중이고, 대표님은 나한테 이 투자를 맡겼어.’

에릭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마크 씨. 저는 사업가입니다. 테슬라가 성공한다 한들, 그게 10년, 20년이 걸린다면 의미가 있겠습니까? 방금 하시는 말씀도 그렇고, 메일로 보내신 사업계획서도 모두 추상적으로 미래를 그리고 있을 뿐, 투자가치가 있다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어떤 투자자가 테슬라에 거금을 투자하겠습니까?”

“....”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마크를 향해 에릭은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기술적인 면은 어떻게 할 겁니까? 부품은 기존 자동차와 다른 것을 써서 A/S 비용이 높을 것은 분명할 거고, 제조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제조 기술을 쓴다는 점에서 완성도도 떨어질 거고요. 그리고 전기자동차가 태양광만으로 충전이 가능할까요? 결국 전국 각지에 전기자동차만을 위한 충전소를 만들어야 할 텐데 그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예상되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크가 더 듣기 싫다는 듯 손을 들어 에릭의 말을 끊었다.

“괜한 시간을 뺏은 것 같네요. 총괄님 의견은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다른 투자자를 알아볼 테니 이만 돌아가시죠.”

“끝까지 듣지 않으시니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GB인베스트먼트는 테슬라에 투자하겠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고개를 든 마크가 벙찐 표정으로 에릭을 바라보았다.

에릭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웃고 있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젊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눈빛에서 관록이 느껴졌다.

에릭이 이어서 말했다.

“조건은 지분 30프로.”

“총괄님! 30프로면 제가 가진 지분보다…”

“3000만 달러 투자하겠습니다.”

“네. 네?”

마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금액에 저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가 놀라움을 표했다.

에릭이 제시한 조건설정은 강빈의 오더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강빈은 단 한 번도 손해 보는 거래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에릭은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마크가 이 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마크의 대답은 에릭의 예상이 사실임을 말해주었다.

“마틴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을 것 같네요. 받아들이겠습니다.”

***

“대표님 말씀대로 3000만 달러에 지분 30프로로 계약했습니다.”

“고생했어.”

전생에서 일론이 처음 테슬라에 투자했던 금액이 650만 달러다.

일론은 그로 인해 테슬라의 지분 20프로를 가져가게 되었고, 몇십 년 뒤 이는 수조 원의 가치를 갖게 된다.

그러나.

‘테슬라는 앞으로 10년 동안 묵혀 둘 사업이다.’

테슬라는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갱신해나갔던 게 바로 적자였다.

최대 주주이자 회장 자리에 올랐던 일론조차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테슬라를 구글에 팔아넘기려고 했었다.

2016년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흑자를 냈던 분기가 없었으며, 한 번의 흑자 이후 7분기의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2018년이 되어서야 다른 자동차기업을 뛰어넘는 미국 최대 자동차기업으로 자리 잡는다.

“대표님. 그런데 테슬라가 성공하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벌써 투자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나중에 상장을 하고 주식만 사도 될 텐데요.”

“에릭. 3000만 달러가 올해 GB인베스트먼트의 투자금 중 몇 퍼센트지?”

“1프로도 안 되죠…? 아.”

에릭이 깨달았다는 듯 말을 더 잇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어차피 돈이 넘쳐났다.

내게 중요한 것은, 언젠가 오를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지 이제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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