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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155화 (155/249)

#155화

태선호텔 판교점의 건설은 한창 진행 중에 있었고, 드디어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열었다.

준공식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도 잠시, 황실장이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부회장님. 마카오 타워 준공식이 결정되었습니다.”

“이미 결정된 거 아니었어?”

“그게… 한 달 앞당겨져 11월 26일, 다음 주 월요일이라고 합니다.”

“망할.”

하필이면 당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준공식 날과 겹쳤다.

준만과 같이 준공식을 가기로 했던 약속도 있었고, 오랜만의 공동일정이라 회포도 풀 생각이었건만.

원래 마카오 타워 준공식은 중국 반환 2주년을 맞춰 12월 20일로 정해진 상황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전생에서도 그때 했던 것 같은데.

“앞당겨진 이유가 뭐래?”

“태선건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더군요. 선진 기술로 예정보다 빠르게 준공된 것 같습니다.”

“후….”

내가 속한 태선물산의 자회사가 일을 잘한 것을 문제 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준공식뿐만 아니라, 내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겠지만 어차피 중국에도 가야 할 일도 있으니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버지한테는 내가 말씀드릴게.”

“네. 예정된 일정은 모두 취소하겠습니다.”

***

전용기를 타고 마카오 국제공항에 도착하기까지 네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준만은 갑작스레 잡힌 마카오 타워 준공식에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잘 갔다 오라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전용기에서 내려 출국장으로 향하는데, 이제는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제 몸만 한 피켓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서강빈 대표님!”

준희의 외침에 일순,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대부분은 내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몇몇의 사람들은 나를 알아봤는지 기웃거리고 있었다.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이런 피곤한 일을 겪어야 하나….’

준희에게 한소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환영합니다! 서강빈 대표님’이라고 적혀있는 스티로폼 피켓을 반으로 꺾고 준희에게 다시 돌려주자, 준희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거 들고 서 있으니까 가끔 한국 사람들이 그 서강빈 대표님이 맞냐고 묻더라니까요.”

“너도 에릭과야?”

“예?”

“아니다.”

관심받기 좋아하는 게 저 나이 때의 습성인 건지, 에릭에게 물든 건지는 모르겠다.

에릭의 인터뷰로 인해 도움을 받은 일이 있으니 자제하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내가 먼저 앞서 나아가자 준희가 내 뒤를 이어 따라왔다.

“저희가 처음 만난 곳도 중국이었는데, 또 중국에서 뵙네요.”

“네가 중국어를 잘하니까.”

저번 중국 출장을 계기로, 중국어를 간간이 배우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기초 수준밖에 배우지 못했다.

준희나 다른 통역사를 통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협상을 결정 짓는 중요한 말들은 통역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말하고 싶었다.

준희가 미리 예약해둔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곧장 나왔다.

준공식 시간에 맞춰서 온 것이기 때문에, 여유롭게 움직이지는 못했다.

준희는 몸에 걸친 수트를 이리저리 보더니 말했다.

“제가 이렇게 좋은 옷을 입을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차실장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다지만, 너는 나랑 같이 움직여야 될 거 아니야. 빼입어야지.”

“이거 제가 가져가도 됩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준희가 환하게 웃으며 수트를 입은 상태로 제 몸을 껴안았다.

준희가 입고 있는 옷은 영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양복과 동일한 수트였다.

마카오 타워 앞에 서자 준희가 긴장한 얼굴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지상에서 가장 윗부분까지의 높이가 무려 338M.

건물 상단 부분 중 일부는 이질적으로 툭 튀어나온 곳이 있었는데, 오늘 준공식이 열릴 전망대였다.

마카오 타워 입구 옆에 배치된 건설비에 가장 상단에는 한자로 태선물산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들어가지.”

“네!”

입구로 들어가자 바닥의 대리석이 천장의 조명을 머금고 옅게 빛나고 있었다.

입구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초대권 확인하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들뜬 준희가 품에서 검은색 카드를 꺼내어 보이자 경비가 한쪽 팔을 올리고 허리를 숙였다.

“VIP시군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곧장 올라갔다.

“와….”

엘리베이터에 서 내린 준희가 홀린 듯이 앞을 향해 걸어갔다.

둥근 외곽은 모두 통유리로 되어있어 마카오의 전경을 모든 방향에서 둘러볼 수 있었다.

안개가 끼어 있어 풍경이 흐릿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장관이었다.

건물 외곽부로부터 2미터 정도까지는 바닥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주차장과, 지나다니는 차들까지 보였다.

준희는 외곽을 따라 투명한 바닥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전망대는 원형의 형태였지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인지 좌석들은 한쪽에만 배치되어 있었다.

준희가 좀 더 즐기게 내버려 두고, 나는 미리 지정받은 내빈석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태선건설의 사장인 현욱이 내 옆에 다가왔다.

중국에서 장기간 시간을 보내며 많이 고생했는지, 전보다 짙어진 다크서클이 눈에 띄었다.

그래도 공사를 끝냈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표정은 밝았다.

“부회장님! 오신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하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한국 오시면 고생하신 것 이상으로 성과에 대한 보상을 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인해 현욱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한결 편해졌다.

이전에는 도련님이라는 호칭까지 써가며 나를 어려워했다면, 이제는 오히려 상관이라 생각해서 더 편한 모습이었다.

현욱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태선호텔 판교점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볼 일이 많았다.

비어있는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도착했는데,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중국의 기업인들일 것이다.

미리 받은 참여 명단에 투자할 만한 사람들은 없었으니, 굳이 내가 먼저 다가갈 필요는 없었다.

이전 마카오 타워의 메인 시공사를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참여한 것 같았다.

저 멀리 마츠나 코노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10분 뒤에 식전 공연이 시작됩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세요.”

사회자의 말을 듣고 준희가 내 옆에 앉았다.

준희는 앉은 채로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괜찮냐…?”

“하, 하늘을 걸어 다니는 꿈은 포기해야겠습니다.”

헛소리를 하는 준희를 뒤로 하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식전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시작은 처음 들어 보는 이상한 음률의 노래였는데, 준희가 중국의 전통민요라고 소개해주었다.

그 이후로 나온 여자는 발라드 가수였는데,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박수를 쳐대는 것을 보니 중국에선 꽤 유명한 가수 같았다.

준희도 열광하며 박수를 치고 있어서 물어보았다.

“누군데 그래?”

“던쓰쉰 몰라요? 던쓰쉰? 지금 완전 핫하잖아요.”

준희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앞에 열중한 채 대답했다.

이름을 들어도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노래는 그런대로 들을 만했다.

식전 공연이 끝나고 개식 선언과 국민의례를 진행했다.

그 뒤에 무대 한쪽에서 올라온 사람은 류이펑.

마카오 타워 세미나를 진행했던 국영기업, ‘중국건축공정총공사’의 대표다.

류이펑은 2년 전과 변함없는 얼굴을 하고서 개식사를 시작했다.

장쩌민 주석에 대한 감사와 함께 형식적인 말을 내뱉는 걸 지루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에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마카오 타워 건설의 시공을 맡아주신 태선건설! 노고가 많으셨을 텐데도 이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박현욱 사장님께 다들 박수 부탁드립니다.”

현욱이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2년이란 세월을 마카오 타워 시공에 불태웠으니 충분히 박수받을 만했다.

나와 준희도 그를 향해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사실 이 준공식에 참여한 이유 중 하나가, 현욱을 위한 격려였다.

개인 투자였다면 필요 없는 일이겠지만, 이제 태선물산이라는 거대한 사업체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지루한 개식사와, 마카오 입법회에서 나온 주요 정부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테이프 커팅식까지 끝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희가 아쉬운 듯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벌써 가시려는 겁니까?”

“응. 이런 행사는 피곤하네. 더 있고 싶으면 나는 괜찮으니까 나중에 와.”

“아닙니다. 같이 가시죠.”

준희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를 따랐다.

테이프 커팅식을 끝내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현욱에게 다가갔다.

“이제 끝났다는 걸 마음껏 만끽할 수 있겠네요.”

“예… 정말 끝났네요. 하하.”

원래 현욱이 직접 타지로 출장을 올 일은 거의 없었지만, 마카오 타워는 대규모 다국가 사업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었다.

호방하고 웃고 있는 현욱과 뜨겁게 악수했다.

일정을 끝이 나고 준희와 마카오 타워 인근에 있는 한식집에 도착했다.

이름은 ‘용가네 한식당’으로, 한국에도 있는 유명한 한식집의 프랜차이즈다.

“미국에서도 본 것 같은데, 벌써 마카오까지 진출했네요?”

“흠….”

음식점 쪽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넘어갔지만, 용가네 한식당은 추후 해외의 수백 개의 지점을 낼 정도로 급성장하는 곳이었다.

주식 상장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를 할 거면 조건 설정부터 까다롭기 때문에 넘어간 이유도 있었고.

마카오까지 와서 한식 프랜차이즈에 관심이 가는 게 스스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지인들보다도 의외로 외국인들이 많아 놀랐다.

한식당이긴 하지만, 한국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식당 한쪽에 있는 TV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자막을 달고 방영되고 있었다.

“대표님도 이런 곳에 오시는군요.”

“삼겹살이야 늘 맛있으니까.”

“흐흐. 에릭 총괄님도 그런 말 하시더라고요. 저도 좋습니다.”

삼겹살과 한국 소주 한 병, 그리고 두부김치를 주문했다.

집게를 들려는 준희를 만류하고 내가 집게를 들어 고기를 구웠다.

다른 음식은 몰라도 삼겹살은 내가 직접 구워 먹는 게 제일 맛이 좋으니까.

내가 고기를 구워 한 점 올려주자 준희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나중에 성공해서 자서전이라도 쓰게 되면, 이 일은 꼭 적을 겁니다.”

“그 말 지켜라.”

준희의 농담에 나도 실웃음을 지었다.

내일은 내가 투자했던 알리바바에 시찰을 갈 생각이었다.

바이두와 텐센트는 알아서 잘 순항하고 있으니,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었고 알리바바는….

조만간 이베이와의 접전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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