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이곳을 나에게 주겠다고?
물론 도로 하나 없이 도보로 산을 타는 게 힘들긴 하지만, 눈앞에는 절경이 펼쳐져 있고, 관리가 잘된 별장 한 채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진태가 며칠 전부터 철저히 숨기면서까지 주겠다고 한 보상이 고작 별장 한 채라는 것이다.
별장 안은 이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 층의 높이가 웬만한 건물의 두세 층의 높이는 되었다.
사람은 없었지만, 늘 청소가 되어있는지 바닥에는 먼지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다.
가끔 가족들을 데리고 오기 좋은 곳 같았다.
“... 잘 쓰겠습니다.”
“왜? 마음에 안 드냐?”
숨긴다고 숨겼는데, 실망한 티가 조금은 드러났는지 진태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저는 어디 계열사라도 하나 주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여기가 그것보다야 훨씬 나을 게다.”
“네. 사람의 휴식이라는 게 중요하죠.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딱!
진태가 내 뒤통수를 한 대 때리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노인네가 힘은 좋아서….
얼얼한 뒤통수를 한 손으로 문질렀다.
진태는 안락의자에 몸을 누이고 바다를 보며 말했다.
“힘들 때가 있을 게다.”
“누구나 그렇죠.”
“그럴 때 이곳이 힘이 될 게야.”
“....”
나도 더 생각하기를 잊고 진태 옆에 놓인 안락의자에 몸을 기댔다.
같이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경호원들이 들어와 음료와 간식거리를 내어주는 것 말고는 무료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그것도 한 시간, 두 시간 속절없이 흘러가기 시작하자 시간이 아까웠다.
오늘 진태를 위해 일정을 비워두기는 했으나, GB부터 태선물산의 일들까지 쌓여있는 일들이 산더미였다.
그런 나의 초조한 기색을 느꼈는지 진태가 말을 꺼냈다.
“너는 뭐가 그리 급하더냐.”
“...제가 원하는 것을 가지려면 이 정도로는 안 됩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가다 보면 언젠가 너를 붙잡는 게 있을 게다.”
“붙잡더라도 금세 떨칠 수 있는 힘을 기르겠습니다.”
“붙잡은 힘이 너무 세서 너 혼자 떨쳐낼 수가 없게 된다면.”
진태가 바닥을 발로 두드리고 말을 이었다.
“땅을 파봐라.”
“...예?”
“청와대는 물론 정재계 인사들이 나를 못 건드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었으나 짐작 가는 것들은 많았다.
예를 들어 고위 인사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회계라든지, 그들의 온갖 비리가 적혀 있는 장부.
진태는 그렇게 쥔 약점을 한두 해가 아니고 수십 년 치를 쌓아 올렸을 것이다.
혹은 걸리는 것 없이 정재계 윗대가리들에게 먹일 수 있는 비자금.
“할아버지를 건들면 자신도 죽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 아닙….”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땅을 파보라는 게, 비유를 든 게 아니라 말 그대로일 것 같다는.
이 별장이 눈속임이고 비자금이나 회계 장부가 밑에 묻혀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들자 아무도 없는 이 별장을 지키고 있는 아까 그 경호원들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설마 금싸라기를 이 밑에 심어두기라도 한 겁니까?”
“이만 가지.”
진태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오히려 내 생각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나는 바닥을 유심히 보다가 별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직도 해는 중천에 떠 있어 눈부시게 빛났다.
진태가 고개만 돌려 나를 보고는 말했다.
“여기에 네 이름을 올렸어. 때가 되면 잘 쓰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진태의 뒷모습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등산할 때보다 하산할 때가 관절에 무리가 가기 쉽다.
거침없이 내려가려는 진태를 막고 한쪽 팔을 부축해가며 천천히 내려갔다.
처음엔 부축하는 것조차 꺼리던 진태였지만, 어느새 나에게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채규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긴 했지만, 채규 또한 정년이 지난 나이이기 때문에 부축할 힘은 없을 것이다.
홀몸이라면 십 분도 안 걸려서 도착했을 거리를 삼십 분이 넘도록 걸어가야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늘 얻은 성과에 비하면 이까짓 시간이야 밤을 새워서 만회하면 그만이었다.
어느새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고 우리가 타고 왔던 차와 언제 왔는지 경호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등산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경호원들은 입구 앞에 서서 황량한 주차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진태가 입구에 도착하자 경호원들이 손을 가지런히 하고 몸을 숙였다.
주차장 한쪽에 우리가 타고 왔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앞에 서 있던 운전기사는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묵례한 후 자연스레 진태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나는 반대편에 있던 뒷좌석의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채규까지 차에 오르자 운전기사가 진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출발할까요?”
진태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차가 출발하려는 찰나.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이 느껴져 말했다.
“잠깐만요.”
시선이 나에게 몰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차 내부를 살폈다.
분명 타고 왔던 그대로 BMW 2000년 한정 차였지만 무언가 낯설었다.
설마.
“기사님. 혹시 차 교체하셨나요?”
“네? 그럴 리가요. 저희가 지금 있는 곳이 인천인데요. 오전에 운행했던 차 그대로입니다.”
“차가 바뀌었습니다. 확실해요.”
차 시트에 새겨져 있던 로고 ‘Forever’가 보이지 않았다.
한정 제품 안에서도 한정된 수량만 생산되었던 에디션.
당황하고 있는 운전기사를 보며 말했다.
“우선 차 번호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할아버지. 차에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야?”
“원래라면 새겨져 있어야 할 포에버가 안 보이잖아요. 이상한 거 모르시겠어요?”
“뭐?”
내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진태가 눈을 크게 뜨고 있자 내가 진태 쪽의 차문을 열며 말했다.
“일단 나가시죠.”
내가 예민한 걸까, 잠깐 고민되었지만 수상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차 안에서 사람들이 모두 서둘러 나갔다.
운전기사는 곧장 차의 앞으로 가 번호판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07… 1934. 차번호는 그대로입니다.”
“헷갈리신 건 아니고요? 할아버지 차가 워낙 많잖아요.”
채규가 내 앞으로 오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이 차의 번호판을 의뢰할 때, 진태산업이 창립했던 해를 기려 1934로 정했습니다.”
채규의 말대로 차의 번호는 분명 1934였다.
그러나 차가 바뀌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운전기사를 보며 다그치듯 말했다.
“자리 비우신 적 있습니까?”
“1시간도 안 걸려서 돌아오긴 했습니다만… 근처에 밥을 먹으러 갈 때 잠깐 비워뒀습니다.”
진태는 표정을 굳힌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식은땀을 흘리더니 자신이 한 번 시범운전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말했다.
“사람을 불러 확인 절차를 밟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운전은 지금 하지 마시죠.”
“아닙니다. 차가 잘못되면 제가 의심을 받을 수도 있으니 제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속으로 조심히 운행할 테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래도 위험…”
“한번 해봐.”
진태가 나서자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운전기사는 긴장한 표정으로 차에 다시 올라타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차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덜덜거리다가 갑자기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시…”
쾅!
폭발음과 함께 차창의 유리들이 깨지고 차가 불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저기에 나나 진태가 타고 있었더라면….
그때, 진태가 차에 폭발하는 소리에 놀랐는지,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쓰러지려는 몸 안으로 재빨리 손을 내밀긴 했지만,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겨우 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것은 막았지만, 진태의 몸은 바치지 못해 땅에 쓰러졌다.
진태가 허리를 짚으며 신음을 뱉자, 채규가 소리쳤다.
“구급차 불러!”
차가 폭발한 지점으로 달려간 두 명의 경호원을 제외하고 모두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 한 명이 곧장 휴대폰을 꺼냈다.
나는 의식을 잃은 진태의 몸을 흔들며 발악하듯 말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경호원 중 한 명이 응급키트를 꺼냈지만 간단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뿐, 해결 방법은 되지 않는다.
지금은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경호원을 붙잡고 어떻게든 해보라며 소리 질렀다.
여기서 진태가 쓰러져서는 안 된다.
***
구급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인천에 있는 형설병원이었다.
태선의 후원을 받고 있는 수많은 병원 중 한 곳으로 진태와 운전기사는 곧장 VIP실로 옮겨졌다.
운전기사는 심재성 2도 화상으로 진단받았다.
이 정도면 보험금까지 청구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얼굴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정장의 옷감이 피부에 달라붙거나 목에 달라붙은 경우엔 눈을 뜨고 지켜보기 힘들었다.
다행히 사고 직후, 경호원들이 늘 차에 두고 다니는 소화기와 응급치료키트를 통해 한 초기 대처가 나쁘지 않았다.
피부이식수술을 해야 하고, 아직도 의식을 잃은 상태이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고, 치료만 제대로 받는다면 곧 일상생활도 가능할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나는 사비를 털어 모든 의료비와 더불어 위로금까지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
“하….”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조심스럽게 대처한다는 게 이 모양이다.
만약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시동을 걸었다면 목숨까지도 위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진태는….
“뭘 쳐다봐?”
VIP실 침대 위에 앉아 호화로운 특식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노쇠한 나이의 몸이 자빠지는 바람에 허리에 무리가 가긴 했지만 크게 지장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진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채규의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채규가 무시한 채 서 있자 진태가 말했다.
“전화 안 받고 뭐 해? 중요한 일이면 어쩌려고.”
“지금 일이 중요하겠습니까. 회장님 쓰러지면 태선 전체가 무너집니다.”
“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아까 의사 놈 말은 허투루 들은 게야? 받아 봐.”
“그럼 짧게 끝내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채규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채규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지금 기사 못 막으면 그동안 먹인 광고 다 토해내게 한다고 말해. 너희도 마찬가지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
채규의 감정변화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이 정도로 그가 역정을 낸 적은 없었다.
진태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게… 회장님이 폭발사고에 휘말려 형설병원에 입원했다는 게 기사가 났답니다. 그리고 대장암이 발견됐다고도 기사가 났다는데 사실입니까?”
“대장암? 뭔 헛소리야.”
진태가 최근에 받았던 건강검진에 대한 결과는 진태에게 직접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장 쪽에서 지방종이 발견되었지만, 대장암은커녕 별거 아닌 단순 양성 종양임이 다분했고 실제로 별로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전생에서 진태가 죽은 이유는 고혈압에 의한 합병증과 노환 때문이지, 대장암과는 전혀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태가 쓰러질 것을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짜인 각본처럼 쏟아진 기사들.
채규를 바라보자 채규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채규와 내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회장님.”
“할아버지.”
채규를 바라보자 채규가 먼저 말하라는 듯 눈짓했다.
“차를 바꿔치기한 쪽과 대장암이 발견되었다고 기사 낸 쪽이 같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강빈 군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우라질 놈들이….”
늘 대동하고 다니던 경호원들이 잠깐 비워뒀던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게다가 운전기사까지 시간을 비운 사이 일어난 일.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감히 누가 태선의 회장인 서진태를 건드린단 말인가?
정부 쪽이야 진태의 천문학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진태가 사라진다고 좋을 게 없었다.
다른 재벌그룹들도 마찬가지였다.
진태가 세상을 뜨고 나면 움츠리고 있던 자식들이 제 몫을 더 채우기 위해 주변에 칼춤을 춰댈 텐데 뭐가 좋다고 이런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그렇다면 짐작 가는 것은 태선가의 혈육들.
그러나 이것만은 확정 짓기 전까지 진태에게 말할 수 없다.
방금 의식이 쓰러진 사람한테 충격적인 말을 할 수 없을 뿐더러 만약 사실이 아닐 경우 다가올 후폭풍은 나조차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채규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입을 다물고 있는데, 진태가 입을 뗐다.
“법무팀이랑 사건대응팀에 연락해서 기사 낸 언론사들 사장부터 돌아다니는 쥐새끼 한 마리까지 싹 다 털어 와.”
“알겠습니다. 근 한 달간 언론사 사람들과 접촉했던 모든 인물 조사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진태의 말을 들으며 팔에 소름이 돋았다.
진태를 담그려고 했던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 했다.
지금쯤이면 진태가 병원에 입원한 것이 폭발사고 때문이 아닌 단순한 허리부상이라는 것을 알았겠지.
불안함에 몸을 떨고 있을 것이다.
나도 생각난 것이 있어 진태를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리고 대장암이라고 기사 낸 거 보면 최근 할아버지가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걸 아는 것 같습니다.”
“뭐?”
“그렇지 않고서야, 뜬금없이 대장에 혹이 났다는 걸 기사로 던지겠습니까? 나중에 지방종이라고 정정 기사를 내더라도 정보를 전달받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고 하면 되니까요. 분명히 알고 한 행동입니다.”
“그러면 태선병원 그 새끼들 중 누군가 유출했다는 소린데? 지금 당장 하던 일 스탑하고 불러들여.
“알겠습니다.”
채규가 방에서 나가 바쁘게 전화를 돌리고 있는 사이 형설병원의 병원장이 VIP실에 들어왔다.
“서회장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여기 온 지가 언젠데 참 빨리도 온다.”
두 시간밖에 안 지났지만 진태의 반응은 차가웠다.
여기까지 오는데 뛰어왔는지 병원장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병원장이 거친 숨을 뱉으며 말했다.
“그, 그게 차가 막혀서 조금 늦었습니다.”
“병원장이란 놈이 병원에 없고 어디 골프라도 치러 갔나 보지?”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적당히 잘하란 말이야. 오래오래 병원장실 써야지, 안 그래?”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보다 서회장님 대장암이라니요. 괜찮으십니까? 일단 세부 검…”
“딴 건 필요 없고, 태선가에서 오면 대장암이라고 말하게.”
“예?”
“내가 이유까지 설명해야 돼?”
“아,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의료기기 몇 개 보낼 테니까 리스트 뽑아 놔.”
아마 의료기기 리스트라는 것은 명목상의 것이고, 병원장 뒷주머니로 들어갈 돈이겠지.
돈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또 하나 진태에게 배웠다.
병원장은 뭐가 그리도 고마운지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러곤 진태의 나가라는 손짓에 곧장 나갔다.
VIP실에는 이제 나와 진태, 그리고 한쪽 벽에 나란히 서 있는 경호원들밖에 남지 않았다.
진태가 침대에 몸을 누이고는 말했다.
“다들 들었지. 강빈이 너도 누구한테도 내가 암이 아니라는 거 말하지 말거라.”
“예? 할아버지….”
이 차는 진태가 특히 아끼는 차로, 운행도 거의 안 했으니 밖에서 보기도 힘들었다.
그런 진태의 차를 바꿀 정도이고, 태선의 번호판도 자세히 알고 있다는 건 진태의 집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라는 소리다.
범인이 태선가 내부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걸 진태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극비 사항인 진태의 대장 지방종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정보를 획득할 수 있을 정도의 분명 높은 권력을 갖고 있거나 돈깨나 있은 사람일 것이다.
진태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 반응을 보니 너도 대충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구나. 눈치 빠른 놈. 너 빼고 모두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건 잘 알 게다.”
“저희 가족은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가족한테도 함구하겠습니다.”
진태는 개의치도 않은 듯, 특식으로 나온 송로버섯 죽을 떠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