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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119화 (119/249)

#119화

“알리바바에 텐센트까지 순조로운데요? 이제 리옌홍 대표만 수락하면 되겠어요.”

호텔 룸 안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준희가 말했다.

준희의 말대로 이제 내가 목표로 삼았던 중국의 3대 IT기업투자 중 남은 곳은 바이두밖에 없었다.

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말했다.

“늦어도 내일까진 연락 올걸? 지금쯤이면 투자 유치가 쉽지 않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내가 리옌홍에게 말했던 조건은 2천만 달러에 지분 20프로.

전생에서 그가 받았던 투자금의 두 배다.

그것마저 받아내기 쉽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만한 금액의 투자는 어디서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홀짝이는 준희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너 언제 방에 가냐?”

에릭과 닮은 면이 있는 건지, 준희도 나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화텅과의 거래가 끝나고 곧장 호텔로 돌아오고 나서, 준희가 내 룸에서 지낸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투자 관련 얘기를 빌미로 삼긴 했지만, 별로 영양가는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심지어 샤워까지 하고 나왔는데도 준희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준희가 머쓱했는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대표님이랑 같이 일정을 소화한 일주일이 아쉬워서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죠?”

“너는 미국으로 돌아가야지. 어디 소속인지 까먹은 건 아니지?”

“하하…. 그쵸. 에릭 총괄님도 빨리 뵙고 싶네요.”

시끌벅적한 녀석과 함께하니 정신이 없긴 했지만 무료하진 않았다.

물론 준희의 능력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지만.

아직은 에릭의 밑에서 일을 좀 더 배우게 할 생각이었다.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 준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방으로 돌려보냈다.

리옌홍이 전화가 온 것은 이른 저녁 시간이었다.

중국 일정이 끝나면 처리해야 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에 호텔 컴퓨터에 앉아 황비서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고 중국어로 짧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전화를 한 손에 쥔 채 옆방의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온 준희는 자고 있었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준희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이신 줄 모르고… 죄송합니다.”

자세를 바로 하는 준희에게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전화를 넘기며 말했다.

“리옌홍 대표야.”

준희는 목을 몇 번 가다듬고는 나에게 물었다.

“저를 대변인이라고 소개할까요?”

준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강빈 대표님의 대변인, 여준희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통역 담당이라고 하지 않고 대변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에릭의 밑에서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내가 원하는 방향의 언사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한 마디를 주고받을 때마다 나에게 설명하는 준희를 보며 말했다.

“그때 했던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네가 알아서 설명해.”

준희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들었다.

나는 복도 벽에 기대어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5분이 지나도록 내 의사를 전달할 필요는 없었다.

준희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전에 대표님이 거신 조건인 지분 20프로에 맞춰서 투자를 받아들이겠다고 합니다. 시간만 괜찮으시다면 찾아오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의사결정만 내렸으면 됐어. 우리 쪽에서 찾아가겠다고 해.”

준희가 자신을 나의 대변인이라고 말했을 때, 생각난 것이 있었다.

준희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준희가 두 손으로 휴대폰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바이두까지 잘 마무리되었네요. 축배라도 들까요?”

“좋지. 내 방으로 와.”

“바로 갈게요.”

“씻고는 와야지.”

아직도 부스스한 머리의 준희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내 방으로 돌아온 뒤 호텔 프론트로 전화해 술과 마른안주를 시켰다.

술은 이 호텔에 오기 전에 미리 생각해두었던 것으로 시켰다.

호텔 종업원이 주문한 음식과 술을 가져오며 놀란 얼굴로 말했다.

중국어여서 알아듣지 못했기에 그저 ‘씨에씨에’라고 말하며 카드를 내밀었다.

종업원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내 준희가 대충 말린 듯한 머리를 하고서 나타났다.

준희가 테이블에 놓여있는 술을 보며 말했다.

“어, 마오타이인데 병은 처음 보네요?

마오타이는 고량을 주원료로 하는 중국의 특산품이다.

중국의 수많은 술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술이지만, 테이블에 놓인 이 마오타이는 조금 특별하다.

다른 마오타이와 달리 유리가 아닌 도자기에 담겨 있어 더 깊고 은은한 향을 느낄 수 있는 술이다.

“중국에 왔으니까 빼갈은 먹고 가야지.”

“대표님 스케일이면 더 비싼 술을 먹을 줄 알았는데 의외여서요.”

“이게 얼마인 줄 알고?”

“네?”

당황한 준희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까지 중국 3대 IT기업의 지분을 모조리 싹쓸이했는데 싼값의 술로 축배를 들 생각은 없었다.

도자기에 담긴 이 마오타이는 런화이 주류공장에서 특별제작한 술로, 방금 결제한 금액이 180만 위안, 한화로 3억 원이 넘어가는 술이다.

이 호텔의 안내 책자에 있긴 했지만, 아까 종업원의 반응을 보아 실제로 주문했던 사람은 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의아해하는 얼굴을 한 준희를 보며 의자를 두드렸다.

“억 소리 나는 술이야.”

“네?”

“가격이 억대라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준희의 앞에 있는 잔에 술을 따랐다.

준희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공손하게 내 잔에 술을 따랐다.

준희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무엇을 위할까요?”

“네 마음대로.”

“음….”

준희가 생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다가 이내 씨익 웃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부유명, 소부유근. 이번에 대표님을 보면서 생각난 말입니다.”

준희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부유명, 소부유근(大富由命, 小富由勤).

작은 부자는 부지런하면 될 수 있지만, 큰 부자는 운명을 타고나야 한다.

지금 나의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중국 명언 중 하나였다.

술잔을 부딪치고 입으로 넣자 입안 가득 술 향이 가득 차올랐다.

독한 맛은 여느 마오타이와 다를 바 없었지만, 향이 다른 마오타이와 달리 옅으면서도 오래갔다.

나를 따라 한입에 술잔을 털어 넣은 준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천천히 마셔.”

“에, 예. 가슴이 뜨거워지네요.”

준희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마른안주를 입에 물었다.

축배를 든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준희는 취기로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몽롱한 눈을 하고 있었다.

함께 미국에 가자는 말만 반복하길래 전화기를 들어 에릭에게 전화했다.

밤이 깊어가기 때문에, 시애틀은 지금 벌건 대낮일 것이다.

전화를 받은 에릭의 목소리는 피곤에 절여 있었다.

“여보세요.”

“나야.”

“대표님!”

발신자가 나임을 밝히자 대번에 밝아지는 목소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죠?”

“무슨 일은. 그냥 전화 한 거지. 저번에 안부 인사도 하라며.”

“하하. 대표님이 그럴 위인이 아니니까 그러죠. 아, 참. 신입사원은 어땠어요?”

에릭의 말에 눈앞에서 몸을 흔들거리고 있는 준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뭐. 괜찮네.”

“역시 그렇죠? 일머리도 있어서 금방금방 배우더라고요. 통역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언어능력도 뛰어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이번에 도움이 됐어.”

“하하. 그래도 별난 구석이 있어서 걱정했는데, 대표님 앞에선 잘했나 보네요.”

준희가 내 앞에서 신이 났는지, 해괴한 춤까지 추기 시작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오늘은 누가 뭐라 해도 즐겨야 하는 날이니까.

“그보다 네 인터뷰가 이번에 도움이 됐어.”

“제 인터뷰가요?”

나는 별로 내켜 하지 않던 뉴욕타임즈의 인터뷰가 이번에 한몫을 해냈다.

GB인베스트먼트가 중국 시장 전체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에릭이 인터뷰에서 말하지 않았다면, 알리바바와의 거래는 틀어졌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건 준희한테 들어. 그 얘기도 준희가 꺼낸 거니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했다는 거겠죠? 칭찬도 하고 제 칭찬도 받을게요. 하하.”

“그리고… 앞으로 인터뷰 제의가 들어오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 말 무르기 없습니다?”

에릭의 목소리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에릭은 그 반대였다.

그런 에릭의 특성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GB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그 결과, 이번 투자 성공의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그 뒤로 에릭과 가벼운 통화를 이어갔다.

나답지 않게 말이 길어졌는데, 에릭에 이어 새로운 조력자가 생겼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통화를 끝내고 첫 출장이었음에도 잘해준 준희에게 칭찬이라도 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비… 비싼 술…. 내가 다….”

“....”

준희는 테이블에 엎어진 상태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준희를 들쳐 메어 방으로 돌려보냈다.

***

“좋은 아침입니다…. 제가 어제 어떻게 방으로 돌아갔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오자 차를 입구에 대고 기다리고 있던 준희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도수가 꽤나 높은 고량주를 마셨으므로 굳이 질책하진 않기로 했다.

“잘 들어갔어.”

“휴, 기억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그럼 공항으로 바로 출발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몸을 실었다.

전용기는 마카오 국제공항에 갔을 때, 그곳 주기장에 맡겼기 때문에 마카오로 가야 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말했다.

“투자 일을 더 배우고 싶다 했지?’

“네. 이번에 대표님 따라다니면서 이게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차창을 살짝 내리자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스쳤다.

한국에 비해 정돈되지 않은 중국의 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리옌홍이랑 계약해.”

“네? 제가 직접요?’

“내 대변인이라고 한 건 너야. 그 말에 책임져야지. 알리바바랑 텐센트도 네가 마무리하고.”

딱히 부담을 줄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를 대신해 계약을 진행할 사람이 필요했다.

계약은 도장 하나만 찍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써야 한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도 마찬가지였다.

세금과 회계 처리, 경영권에 대한 문제 등 의사결정은 끝났어도 얼마간의 시간이 더 걸린다.

원래대로라면 GB인베스트먼트 쪽 사람을 보내려고 했는데, 며칠간 봐온 준희가 그런 일을 맡기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희는 긴장한 듯 핸들을 잡은 몸이 경직되어 있었지만, 입꼬리는 해맑게 올라가 있었다.

“저를 그만큼 믿으신다는 거죠?”

“이번 일 하는 거 보고. 앤 무어 측에서 사람을 보낸다고 하니까 법적 문제는 잘 처리해 줄 거야.”

준희가 법과 관련된 지식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기 때문에 GB인베스트먼트와 계약한 미국의 법무법인, 앤 무어에 파견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아직은 완전히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준희가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게 감시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준희는 연신 잘하겠다고 말하며 핸들을 꽉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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