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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118화 (118/249)

#118화

아침 일찍 호텔방에서 나와 로비에 가자 준희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준희가 나를 보고는 반갑게 미소를 짓고 말했다.

“좋은! 아, 목소리.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준희는 큰 목소리로 인사하려다, 첫 만남 때 목소리를 낮추라는 지적이 생각났는지 이내 평범한 톤으로 말했다.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자 기특했다.

“좋은 아침이야. 일찍 나왔네.”

“오늘도 미팅 있는 날이잖아요. 설레서 잠이 와야 말이죠.”

원래 준희와 만나기로 했던 시각은 아침 8시였다.

산책이라도 할까 30분 정도 일찍 나왔는데 준희가 먼저 나온 것이다.

들뜬 표정으로 서 있는 준희를 보며 덕업일치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나는 호텔 안에 있는 식당을 손짓하며 말했다.

“여유가 꽤 있으니까 아침 먹고 가자.”

“저야 좋죠.”

준희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호텔 ‘다르보아’ 1층에 위치한 식당은 24시간 뷔페로 운영되어 사업가들이 어느 시간 때라도 따뜻한 식사를 먹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24시간 운영이라고, 음식의 질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중국에 있는 호텔치곤 드물게 한식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각자 그릇에 음식을 덜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된장찌개와 불고기를 포함해 한식 위주로 덜었고, 준희는 양식, 중식 등 다양하게 담아왔다.

준희의 접시에 음식이 수북이 쌓여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한식은 별로 안 좋아해?”

“너무 좋아해서 탈이죠. 그런데 지금은 중국에 왔으니까 다양하게 먹어보려고요.”

“그럴 때지.”

나도 준희의 나이 때에는 음식을 다양하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젊은 시절엔 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의 맛집을 찾아다니기 위해 돌아다녔었다.

이제는 늘 익숙한 맛을 찾지만.

준희는 내가 숟가락을 들 때까지 기다리는지 빤히 음식만 바라보고 있었다.

괜히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먼저 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적당히 한 그릇을 먹고 차를 마신 나와 달리 준희는 접시 가득 세 그릇을 먹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희가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잘 먹으니까 보기 좋네.”

“그런가요? 하하.”

준희를 데리고 호텔 밖으로 나오자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한국은 아직 겨울이지만, 마카오는 연중 열대 해양성 기후로 습하고 더웠다.

지금이 가장 추울 때임에도, 평균 기온이 15도밖에 되지 않았다.

준희가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괜찮으려나요?”

“그러게. 어제저녁에도 갑자기 비가 왔으니까.”

마카오의 겨울은 대륙성 몬순으로 대부분 건조한 날씨지만 그럼에도 예고 없이 비가 찾아올 때가 있었다.

준희가 미리 연락을 했는지, 맥라렌이 다르보아 호텔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다음 투자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가고 있는데, 준희가 물었다.

“바이두에선 아직 연락이 없나요?”

“이제 겨우 이틀밖에 안 지났으니까.”

파격적인 제안으로 빠르게 투자 수락을 받은 적도 많았지만, 보통의 투자는 이렇게 빠르게 전개되지 않는다.

리옌홍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을 했으니 이제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IT버블이 붕괴하고 있는 시기였다.

나처럼 거액을 흔쾌히 투자하는 곳은 대부분 사라졌다는 말이다.

도착한 곳은 중국의 다른 투자처들과 달리 건실한 건물이었다.

기업의 로고가 제대로 박혀 있었으며, 높이가 5층에 달하는 건물이었다.

준희가 건물을 올려다보고 로고를 발견했는지 말했다.

“기업 이름이 텐센트인가 보네요.”

텐센트.

정식 명칭은 ‘텐센트 홀딩스 리미티드’로 중국의 인터넷 미디어 복합기업이다.

중국인들의 국민 메신저인 ‘QQ’와 ‘위챗’을 만든 기업이기도 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텐센트는 전 세계 시가총액의 10위권이었으며, 중국 시가총액 1위로 한화 약 1000조 원에 달하는 대기업이었다.

지금이야 5층짜리 건물이 끝이지만, 나중에 광둥성 선전 빈하이에 짓게 될 텐센트의 신사옥은 50층의 남탑과 41층의 북탑을 연결시킨 거대한 건물이다.

미리 약속을 잡고 왔기 때문에 곧장 텐센트의 회장, 마화텅의 집무실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집무실에 들어가자 가장 안쪽에 앉아있던 마화텅이 일어나며 뒤돌아보았다.

깔끔하게 빗은 머리와 무테안경을 쓴 청년 시절 마화텅이 내 눈앞에 있었다.

“GB인베스트먼트.”

마화텅은 내 투자회사의 이름을 언급하더니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준희가 통역할 것도 없어서 나는 곧장 마화텅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 겨우 서른이 되었을 나이임에도 눈빛은 흔들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내 투자 규모를 알고 있을 텐데, 긴장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화텅은 텐센트의 회장이자 마윈과 중국재계 1순위를 다투는 인물이다.

힘든 유년기를 보냈던 마윈과 달리, 마화텅은 특권층의 자제로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한국보다 발달이 늦었던 중국에서 남들보다 빨리 IT관련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공산당의 고위 간부 집안에서 태어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명석했던 그는 중국의 1류 대학, 베이징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지만, 천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중국 유일의 천문학과가 있는 선전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컴퓨터 공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뒤, 그는 곧장 전과를 단행한다.

그렇게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재작년인 1998년 11월, 선전에서 텐센트를 창업하게 된다.

마화텅과의 악수를 끝내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장즈둥입니다. 반갑습니다.”

간단한 중국어였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장즈둥이라면 텐센트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일 것이다.

실질적인 경영과 결정권자는 마화텅이라고 하니, 크게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마화텅은 말없이 방 한편에 있던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장즈둥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화텅은 원래 말이 없는 친구입니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아주십시오.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장즈둥의 안내를 받으며 소파에 앉았다.

고급브랜드는 아니지만 깔끔하고 무던한 검은색 소파였다.

마화텅은 여전히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말을 시작한 것은 장즈둥이었다.

“저희가 작년에 내놓은 제품은 아실 겁니다.”

장즈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텐센트가 작년 2월에 내놓은 것이 바로 인스턴트 메신저 ‘QQ’다.

인스턴트 메신저란 인터넷 같은 네트워크를 이용해 즉각적인 텍스트 통신에 이용되는 클라이언트를 말한다.

이와 같은 인스턴트 메신저가 QQ밖에 없던 것은 아니기에, 마화텅은 다른 업체와의 차별화에 주목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QQ는 메신저 외에도 서버로부터 직접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서비스나, 가상 애완동물 키우기와 같은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인기를 끌 것이다.

그 이후로 게임 퍼블리싱에 시선을 돌린 QQ는 한국에서 최고로 인기를 끌었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제작한 라이엇 게임즈의 지분을 대량 매입하거나,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으로 유명한 슈퍼셀을 인수하는 등 수많은 게임 개발사의 지분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그 외에도 내가 텐센트를 집중하는 이유가 있었다.

마화텅은 막강한 자금력과 중국 시장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한국 IT업체의 큰 손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게임회사와 웹툰 제작은 물론 영화, 드라마의 제작과 관련한 시장까지 발을 넓힐 것이다.

중국 자본의 문화 침략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상당했지만, 한국 사람인 내가 텐센트의 상당 지분을 보유한다면, 그 과정에서 조율을 통해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말을 하고 있는 장즈둥이 아닌 마화텅을 보며 말했다.

“투자자를 구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닙니까?”

준희가 통역하자 장즈둥이 대신 말하려는 것을 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마화텅이 장즈둥을 힐끔 바라보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목이 좋지 않아 짧게 말하겠습니다. GB의 명성에 대해선 알고 있으나 현재 저희 회사와 컨택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중국 기업을 선택할 생각입니다.”

단호한 마화텅의 말에 그가 걱정하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마화텅은 외국기업의 투자를 받는 것이 회사를 빼앗기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마화텅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중국 기업이나 투자자 중 텐센트가 원하는 만큼의 액수를 투자할 곳은 거의 없었다.

있다 한들 IT 관련 쪽으로는 현재 기업평가가 낮아진 미국 쪽으로 돌리지, 중국의 신생기업으로 시선을 돌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텐센트는 필연적으로 GB와 같은 외국기업의 투자가 필요하다.

마화텅은 중국계열 기업에서 투자를 받는다고 말했지만, 전생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텐센트에 대규모 투자를 하며 지분을 가져간 곳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언론 재벌인 나스퍼스였다.

나스퍼스는 약 3400만 달러로 텐센트의 지분 46프로를 받아냈었다.

이후 투자 유입으로 인해 33프로의 비율로 떨어지긴 하지만, 2020년도 당시 그 지분 가치만 해도 한화로 300조 원이 넘는 거금이다.

나스퍼스는 거의 천 배 가까이 되는 수익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그 행운의 주인이 될 생각이었다.

마화텅의 말을 들어보니 대화를 길게 끌어서 내게 좋을 것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고 말했다.

“5000万美元(5000만 달러).”

중국어로 말하자 장즈둥은 앉아있던 소파 그대로 뒤로 넘어갔고, 무표정했던 마화텅은 입이 벌어지며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목이 좋지 않다던 마화텅이 다급하게 말했다.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절반.”

이 상황에서 마화텅이 할 말이야 뻔했기에, 준희를 거치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나스퍼스가 3400만 달러로 지분의 46프로를 받아 갔으니, 이 정도는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화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절반! 텐센트를 가져가겠다는 겁니까…? 중국도 아닌 타국의 자본에 저희 회사를 맡기고 싶진 않습니다만…..”

절반의 지분을 가져간다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얼마나 큰 부담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카오 타워를 맡았던 일을 꺼내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미 중국 사업권을 받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카오 타워의 메인 시공을 맡은 게 어디신지는 아실 겁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마화텅에게 태선물산의 부사장 명함을 내밀었다.

태선물산(太善物産).

한글과 한자가 같이 기입된 명함을 손에 든 그는 토끼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고민에 잠긴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태선물산은 마카오 타워의 시공사인 태선건설의 지주회사로도 널리 알려졌지만, 중국과 한국의 관련 물자 사업을 비롯하여 여러 굵직굵직한 사업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발이 넓은 기업이었다.

게다가 태선물산에서 취급하는 석유화학 제품과 비철금속을 쓰는 중국 기업이 지천으로 널려 있을 정도였다.

타국의 기업이라 할지라도 이미 중국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던 태선물산이라면 다르다는 소리다.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의결권은 마화텅. 당신에게 모두 넘기겠습니다. 앞으로도 저 같은 투자자는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을 겁니다.”

내 말을 들은 마화텅이 짧게 신음했다.

그리고 고개를 든 그가 결정을 내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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