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B2B(Business-to-Business).
말 그대로 기업과 기업 사이의 거래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B2B 기업으로 여러 기업들의 제품을 유통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다.
하나의 기업이 다수의 개인을 상대하는 B2C(Business-to-customer)도 있지만, 내가 지금 만나러 가는 기업은 B2B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앞 좌석에 앉은 준희가 태연하게 말했다.
“알리바바라니. 무슨 동화라도 파는 기업일까요?”
내가 지금 가는 곳은 작년에 설립한 알리바바였다.
텐센트와 함께 중국 민간 대기업의 투톱으로 불리게 될 대기업.
전 세계에서 최대 온라인 B2B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바로 알리바바 닷컴이다.
회사를 창업한 마윈이 사명으로 알리바바를 선택한 이유는, 그 이름이 갖고 있는 인지도 때문이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불리는 중동의 구전문학, 천일야화에서 묘사된 알리바바의 착한 성품은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시켰다.
최근 캐나다의 한 IT 기업이 ‘알리바바닷컴’의 도메인을 선점하고 있었으나 1만 달러에 소유권을 이전받기도 했다.
전생에선 별로 주목받을 일도 아니었지만, 현재에서 도메인을 1만 달러나 되는 돈으로 산다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사례였다.
결과적으로 도메인도 원하는 것을 받았고, 이슈를 통해 홍보 효과도 얻었으니 알리바바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거래였다.
알리바바는 50만 위안, 한화로 1억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시작되었다.
45평도 안 되는 마윈의 저택에 18명의 창업 멤버가 모였다.
휴일도 없이 하루에 17시간씩 2개월을 일한 끝에 홈페이지를 완성시켰다.
마윈은 기대감에 부푼 채 홈페이지를 오픈했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쇼핑몰 한 곳과 계약을 맺긴 했지만, 그 정도 수익으로는 직원들의 월급까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창업한 지 반년 뒤인 1999년 7월경에는 빚까지 내서 직원들의 월급을 지급했다.
다른 기업들에게 투자 제의가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현재까지 온 투자 제의만 해도 30차례는 넘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윈이 투자를 거절해온 까닭은 첫 벤처투자가 추가적인 투자 유치를 결정짓기 때문이었다.
이름 모를 기업에게 투자를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 뒤, 마윈은 미국의 은행이자 동시에 거대 자본그룹이자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는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곳으로부터 투자를 받겠다는 마윈의 고집이 통한 것이다.
마윈은 두 달 뒤에 한국계 일본인이자 소프트뱅크의 회장인 손 마사요시, 한국 이름으로는 손정의 회장을 만나러 가게 될 것이다.
마윈과 손정의가 만난 뒤 투자가 결정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6분.
손정의가 마련한 투자 유치회에서 마윈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이었다.
마윈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토대로 발표하고 있었는데 손정의는 마윈의 말을 끊고 투자를 결정지었다고 한다.
손정의가 제안한 투자금은 약 3천만 달러.
그러나 마윈은 이를 거절하고 2천만 달러의 투자금만 받았다.
이 2천만 달러는 2014년,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를 하며 상장된 이후, 578억 달러가 된다.
회상에 잠긴 사이 알리바바 사옥에 도착했다.
회사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현재 알리바바가 쓰고 있는 건물은 45평짜리 마윈의 저택이었다.
그래도 2층짜리 개인주택이어서 행색은 갖춰져 있었다.
물론 한 달, 두 달 뒤에 있을 투자를 받고 나면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미리 연락을 했고,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갔다.
1층 안에서 직원 열댓 명이 나열된 컴퓨터에 앉아 정신없이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마윈이 있는 곳은 2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깥에 위치한 계단으로 걸어갔다.
아직 만나진 않았지만, 마윈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윈은 수차례나 투자를 거절한 전적이 있었고, 빚을 내서라도 사업을 감행할 정도로 악착같은 성향이 있었다.
GB인베스트먼트도 이제는 꽤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브랜드 가치로 골드만삭스와 소프트뱅크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2층은 방이 총 네 개가 있었는데, 한쪽 문이 열려 있는 방이 있었다.
그 방으로 먼저 가서 안을 들여다보자 마윈이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준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자 마윈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이했다.
160의 작은 키지만 뿜어나오는 분위기가 결코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 30대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간단한 중국어로 먼저 인사하자, 마윈도 씨익 웃으며 반갑다고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윈이라고 합니다.”
“GB인베스트먼트의 대표 서강빈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통역을 맡은 여준희라고 하고요.”
준희가 마윈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회의실로 이동하자고 말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저택을 회사로 쓰는 마당에 회의실이 따로 있을 리가 없었다.
마윈은 책상 앞에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갖다 놓으며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귀하신 분들인데 죄송합니다. 서강빈 대표님은 제 의자에 앉으시죠.”
마윈이 손짓하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가죽 의자였지만 군데군데 헤진 것이 보였다.
마윈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시간이 흐른 뒤 마윈이 갖고 온 것은 중국의 10대 명차라고도 불리는 ‘백차’였다.
백차는 솜털이 덮인 차의 어린싹을 덖거나 비비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차이다.
향기가 맑고 산뜻한 맛이 특징이었다.
전생에서 마윈은 자본가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런 소박한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차를 마시며 목을 축이고 먼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까 소개드린 투자회사 외에 저는 태선물산의 부사장직도 겸임하고 있습니다.”
태선물산의 이름까지 꺼낸 이유는 그가 투자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선물산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대기업.
마윈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태선 물산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GB인베스트먼트가 더 흥미롭군요.”
의외의 말에 놀랐다.
GB인베스트먼트가 수익은 더 크게 내고 있지만, 적은 직원으로 운영되는데다가 공개투자는 되도록 피하고 있기 때문에 인지도 자체로는 태선물산을 이길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이며 물었다.
“마윈 대표님이 몇 차례나 투자를 거절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브랜드 가치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태선물산 보다 GB에 관심을 보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준희를 통해 내 말을 들은 마윈이 입꼬리를 크게 올리며 말했다.
“저는 신화를 참 좋아합니다.”
신화라니?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마윈이 이어서 말했다.
“회사의 이름을 알리바바로 지을 정도로 저는 신화를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GB인베스트먼트가 쌓아올린 신화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요. 실패하지 않는 회사, 성공을 부른 회사. 말들이 많더군요.”
준희에게 마윈의 말을 전해 듣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저렇게까지 말했으니 투자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조건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마윈이 곤란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GB인베스트먼트의 서강빈 대표님과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투자 제안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투자한 곳이 거절한다면 그때 연락드리겠습니다.”
준희에게 말을 전해 들은 나는 표정을 굳혔다.
지금 상황에서 마윈이 투자 제안을 기다리고 있는 투자처라면, 분명 전생과 같이 골드만삭스 은행일 것이다.
브랜드 가치로 GB가 골드만삭스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기에 마윈을 보며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 투자하는 금액에 제한은 없습니다. 천만 달러든, 1억 달러든 말이죠. 저는 그만큼 알리바바의 성공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GB인베스트먼트의 명성은 이제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저희 GB의 신화와 함께한다면 알리바바에게도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다급한 마음에 말이 길어졌다.
저걸 다 통역할 수 있을까 싶어 준희를 바라봤는데 여유로운 표정으로 통역하고 있었다.
내 얘기를 듣고 마윈은 생각에 잠긴 듯 두 눈을 감았다.
나는 마윈을 설득할 방법을 더 찾기 위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런 나를 보며 준희가 말했다.
“대표님. 에릭 총괄이 진행했던 인터뷰에 대해 말해 보는 건 어떨까요?”
준희의 말을 듣고 뉴욕타임즈와 에릭이 진행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꽤 긴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중 지금 상황에서 쓰일 만한 말이라면….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마윈을 향해 말했다.
“최근에 뉴욕타임즈를 읽으신 적 있습니까?”
마윈은 독학으로 영어를 했지만, 대학교의 영어 강사를 할 정도로 영어사용에 능숙했다.
전생에서 뉴욕타임즈와 그가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평소에도 뉴욕타임즈에 관심이 많다고 했었다.
거기에 기대를 걸어보았다.
천천히 눈을 뜬 마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뉴욕타임즈야 매번 읽습니다. 꾸준히 영어를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요.”
“혹시 GB인베스트먼트의 인터뷰는 못 보셨습니까?”
“GB라면… 아! 혹시 에릭 장이란 사람 맞습니까?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나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서 말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인터뷰에서 저희 회사는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저희 회사가 알리바바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마윈에게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중국 시장 전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함과 동시에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알리바바처럼 대성하진 못하지만,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기업은 얼마든지 있었다.
준희가 망설이고 있자 나는 그대로 말하라고 눈짓했다.
준희의 말을 들은 마윈의 표정은 예상대로 굳어졌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저희는 중국 시장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알리바바가 아니더라도 투자 후보에 오른 기업은 많죠. 어제도 한 기업에 투자를 마쳤고요. 다 잡은 물고기처럼 여기신다면, 오해라는 말입니다. 이런 기회가 많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통역을 전해 들은 마윈이 미간을 좁히며 손깍지를 꼈다.
고민을 할 때 나오는 버릇처럼 느껴졌다.
브랜드 가치로는 GB보다 높지만, 투자를 받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골드만삭스를 선택할지, 투자가 보장된 GB를 선택할지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었다.
고민하는 그에게 쐐기를 박기 위해 한마디를 더 했다.
“GB는 신화를 쌓아 올리는 중입니다. 어느 투자회사에서도 저희만큼의 수익률을 거둔 곳은 없을 겁니다. 아까 신화를 좋아한다고 하셨죠? 마윈 대표님도 이 신화에 동참하십시오.”
마윈은 헛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협박인지 제안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그만큼 저희 회사를 원한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당신이 쌓아 올린 그 신화. 저도 기꺼이 참여하고 싶군요.”
마윈의 말을 통역하는 준희가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었다.
나도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투자금액은 마윈 대표님이 정하십시오.”
“2천만 달러도 가능하겠습니까?”
마윈의 말을 전해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윈이 투자받은 금액은 전생과 똑같이 2천만 달러였지만, 소유주가 두 기업에서 나로 바뀌었다.
현재는 해외 물품을 중국에 들여오는 무명의 포털 사이트인 알리바바닷컴은, 내게 수천 배의 이득으로 되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