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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116화 (116/249)

#116화

“중국에 검색 엔진이 있다고요?”

‘검색 엔진’이란 웹상에 존재하는 정보와 웹 사이트를 검색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검색 사이트’와 의미를 혼용하며 쓰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른 것이다.

중국은 검색 사이트는 존재했지만 자체 개발한 검색 엔진은 없었고, 외주를 맡겨 쓰고 있는 실정이었다.

준희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물었다.

“올해 1월 1일에 생겼어. 바이두라고 안 들어봤어?”

“중국 쪽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처음 들어봅니다.”

중국은 작년까지만 해도 자국의 검색 엔진이 없었다.

그러다 올해 1월 1일 바이두가 창업하면서 그 첫걸음을 뗐다.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어 검색 엔진이자 포털 사이트가 될 바이두.

그러나 준희의 반응처럼 아직까지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바이두는 지금 찾아가고 있는 리옌홍이 베이징 대학교의 선배였던 슝위와 함께 창업한 곳이다.

리옌홍과 슝위의 인연은 미국 유학 시절부터 시작한다.

2년 전만 해도 검색 엔진은 별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없었다.

야후가 자사 검색 엔진을 그 당시 스타트업이었던 구글에 외주를 맡길 정도였으니까.

그 당시에 ‘인포시크’라는 IT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던 리옌홍은 회사가 인수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리옌홍이 주체로 기술개발에 참여하고 있던 검색 엔진 연구는 매출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회사가 인수된다면 가장 먼저 정리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한편, 생화학 박사였던 슝위는 실리콘밸리의 투자자 인맥을 활용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마침 실리콘밸리에 있던 리옌홍이 회사를 그만두고 찾아왔다.

그때 리옌홍이 구상하고 있던 아이디어가 바로 바이두의 시초가 되었다.

슝위는 리옌홍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120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아낸다.

그리고 중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자신들의 모교, 베이징대가 내려다보이는 호텔방에서 바이두를 창업한다.

여기까지가 지금의 상황일 것이다.

앞으로 바이두는 두 곳의 벤처캐피털로부터 1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투자금을 받을 것이다.

아직까진 그만한 기업가치를 갖고 있지 못했으나, 바이두의 미래를 알아본 기업들이 손을 내밀었던 기억이 났다.

리옌홍은 투자금을 받았기 때문에 당장의 수익을 위해 자체 검색 사이트를 만드는 대신, 중국 내 포털에 검색 엔진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외주를 맡기는 대가로 흑자를 보이며 투자자들은 만족했지만, 젊은 리옌홍의 꿈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리옌홍은 이사회를 소집해 자체 검색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투자자들의 반대가 거셌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모험보다 현재의 안정적인 수익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옌홍은 투자자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체 검색 사이트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내년 9월, 처음으로 중국의 검색 엔진을 단 중국 검색사이트, 바이두닷컴이 문을 열게 된다.

그리고 나스닥에 기업공개를 하게 될 2005년 8월.

전생에서 바이두는 40억 달러, 한화 약 4조 원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평가받게 된다.

중국의 구글이라는 별칭과 함께 미국 시장 내에서 혁신적인 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원래 바이두에 투자했을 두 벤처캐피털을 대신한 투자자가 될 생각이었다.

준희와 함께 도착한 곳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을씨년스러운 3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 앞에는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리옌홍이 서 있었다.

코가 살짝 매부리코였지만 전체적으로 훤한 인상이 쾌남형의 얼굴이었다.

그의 집념을 보여주듯,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인데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차에서 곧장 내려 리옌홍에게 다가갔다.

“닌하오.”

“닌하오.”

리옌홍은 중국어로 인사하는 나를 밝게 맞이했다.

짧게 악수를 한 리옌홍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저희 중국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다고 한옌 대선배님한테 들었습니다.”

준희를 거쳐 알아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옌홍은 씨익 웃더니 말을 이었다.

“저희 기업에 투자를 원하신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네. 맞습니다.”

“GB라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시절 귀가 먹먹할 정도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 투자회사에서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만으로 감사드립니다.”

리옌홍의 옅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점잖은 그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리옌홍 씨가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투자를 통해 늘 수익을 내왔고 성공해 왔습니다. 저는 돈을 벌고, 리옌홍 씨는 도탄에 빠진 바이두를 구하고. 서로 윈윈인 거죠.”

“윈윈.”

한국어는 못 알아들었지만, ‘윈윈’은 확실하게 알아들은 듯 리옌홍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우선 들어가시죠. 누추하지만 소파와 따뜻한 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준희에게 통역해서 들은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없었고, 우리는 3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층수가 높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계단을 오르며 전생에서 읽었던 리옌홍의 자서전이 생각났다.

리옌홍은 공장 노동자였던 부모 슬하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힘들었던 집안에서 온갖 장학금을 받으며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베이징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대에 유학까지 다녀왔다.

29살에 바이두 검색 엔진의 기초가 되는 논문을 발표했고, 30살에 검색 엔진 관련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실행력이 빠른 사람이었다.

건물의 내부도 외관처럼 별 볼 일 없었지만, 소파나 테이블, 커피포트처럼 기본적인 것은 다 갖춰져 있었다.

슝위는 출장이라도 간 건지 보이지 않았고 사무실에는 리옌홍과 나, 준희밖에 없었다.

리옌홍이 소파를 양손으로 가리키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에 앉았다.

리옌홍은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 차를 타오더니 각자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나는 서툰 중국어로 감사를 표했다.

“씨에씨에.”

내 말을 들은 리옌홍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마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기분이겠지?

민망함을 뒤로 하고 리옌홍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구글에 직접 투자를 하고 지분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검색 엔진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준희에게 얘기를 전해 들은 리옌홍의 동공이 확장되더니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성공한 투자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겠지만, 검색 엔진에 대해 관심을 표하는 사람은 현재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리옌홍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바이두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따라올 투자금이 부족하죠.”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번 투자도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결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바이두는 중국 검색시장에서 점유율 70프로 이상을 차지하고, 중국은 물론 중화권 전체 인구인 20억 명 이상을 대상으로 앞으로도 꾸준한 성공이 보장된 사업이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툭, 던지듯 말했다.

“2000만 메이위안.”

달러를 중국어로 하면 메이위안이다.

최근 환율로 계산하면 한화 약 260억 원.

이제 막 발걸음을 뗀 기업으로서 전혀 부족하지 않은 금액일 것이다.

리옌홍의 얼굴에 놀라움도 잠시,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결코 후회되지 않을 투자일 겁니다. 저는 무조건 성공한다고 확신하거든요.”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을 준희에게 전해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투자조건은 안 물어보십니까?”

리옌홍이 직접 말하기를 조심해 하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제야 물어보았다.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리옌홍의 말을 듣고 20프로의 지분을 원한다고 말했다.

꽤 큰 지분 요구에 리옌홍의 동공이 조금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 지분을 요구하기 위해서 기존 그가 받았던 투자금보다 더 높게 배팅한 것이다.

그가 전생에서 두 벤처기업에 지급한 지분은 각각 7프로로, 천만 달러에 총 14프로의 지분을 준 것이다.

배율로 따지면 내가 손해 보는 장사 같지만, 바이두의 성공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큰 돈을 주어서라도 바이두의 지분을 차지하려 들 것이다.

고작 260억 원이 최소 수조 원의 돈으로 되돌아온다.

리옌홍이 고민하는 듯 이마에 주름이 잡히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생각 좀 하고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준희에게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명함을 꺼내어 내밀며 말했다.

“얼마든지요.”

하지만 투자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리옌홍의 모든 사업은 진행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신생기업에 백억 단위의 투자는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다.

나는 걱정하는 기색 없이 리옌홍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곤, 자리를 나섰다.

낡은 건물을 나오자마자 준희가 의아하다는 말투로 물었다.

“IT버블 붕괴가 일어난 지 얼마 않았습니다. IT 기업들의 가치가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는데 큰 금액을 투자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준희는 연신 내려가고 있는 커다란 안경을 손으로 치켜올리고 있었다.

맹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당돌한 준희의 모습에 흔쾌히 답했다.

“밑바닥을 찍었으면 올라가야지. 아, 물론 밑바닥 아래 지층도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전생에 최저가라고 생각하고 샀던 주식이 상장폐지를 당하며 종이 쪼가리가 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이후론 위험 요소가 있던 주식은 아예 건드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중국은 앞으로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어. 글로벌 사회가 그걸 강요할 거야. 그 이후에 중국 IT시장은 지금의 몇 배는 더 성장할 거고. 그 시점에서 바이두의 검색 엔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거야.”

준희는 생각에 잠겼는지 볼을 쓰다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세계 진출은 IT산업에 다시 활황기를 불러올 거고.”

“그럼 GB인베스트먼트에서 팔았던 IT주들도 다시 매수하실 생각인가요?”

꽤 정확하게 이해한 준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지, 감각은 썩 괜찮은 것 같다.

“더 물어볼 게 있으면 해.”

“하하. 생기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방금 하신 말부터 곱씹고요.”

나는 피식 웃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중국 IT기업 투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준희를 통해 미리 미팅을 잡았던 다른 회사로 향했다.

준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대표님이 말하신 기업들은 다 처음 듣는 곳인데 어떤 기업들인가요?”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 만나게 될 중국 자본시장의 거물들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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