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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102화 (102/249)

#102화

“다들 간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팰로앨토에 위치한 구글의 건물로 들어가자 페이지와 브린, 수전이 반갑게 맞았다.

페이지가 먼저 다가와 포옹하려는 제스쳐를 취하며 말했다.

“서 대표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 정도인가요? 하하.”

나도 페이지를 가볍게 안고서 브린과 수전을 차례대로 포옹했다.

아마존닷컴의 경우 주주총회를 참여하지 않는 등 일부러 무심하게 대했지만, 구글은 다르다.

IT기업의 과대평가도 끝난 상황, 구글과는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관계를 지속하는 데 있어서는 얼굴을 비추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다.

손에 들고 온 선물은 당연한 거고.

내가 내민 쇼핑백을 받으며 수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다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제멋대로 고른 겁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세 명에게 준 것은 파텍 필립 사의 명품 손목시계였다.

파텍 필립은 한 제품에 수백 개만 소량 생산하는 곳으로, 제품마다 각각의 시대를 상징하는 오브제를 담아서 시간이 지날 때마다 가치가 높아지는 곳이다.

때문에 환율에 따라 가치변동이 있는 현금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자산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모두 배우자가 있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파텍 필립 안의 다른 제품으로 두 개씩 선물했다.

브린이 시계가 담긴 상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시계는 최소 10만 달러는 될 텐데…. 잘 쓰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낯간지러운 말을 뱉으며 그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시계 총 6개를 다 합쳐서 10억 원이 조금 넘게 들었지만 내가 말했던 바와 같이 그들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별거 아니었다.

페이지는 아예 상자에서 시계를 꺼내어 차더니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바라보았다.

그들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고 나는 잠자코 서서 기다렸다.

수전이 상자를 소중하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다가와 말했다.

“저희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어요. 이런 귀한 선물을 받았는데 미안해요.”

“아닙니다. 무언가 바라고 드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시계를 보며 황홀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수전의 얼굴에 어느덧 어둠이 드리웠다.

나는 예상하고 이 자리에 찾아왔지만, 그들이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페이지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IT주가 쓰러지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닷컴 등 세계를 내로라하던 기업들을 필두로 말이죠. 저희 구글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네?”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페이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직 상장하지 않았더라도 서 대표님이 투자한 돈이 3000만 달러입니다. 무려 3000만 달러라구요.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페이지 씨 말대로 구글은 아직 상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기업평가는 아직 제대로 하지도 않았고요. 걱정할 게 뭐가 있습니까?”

페이지는 자신감 넘치는 나의 말에 놀란 듯 입을 벌렸다.

이들은 아직 구글에 대한 확신이 없겠지만 나는 그들의 성공을 알고 있다.

그리고 현재 구글의 상황도 내가 알고 있던 전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구글의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은 체계화 과정이 거의 끝나가고, 투자금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개발 단계에 착수 중이었다.

나는 태연하게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아쉽기는 합니다. 구글이 상장을 했더라면 폭락하는 주가를 통째로 사들였을 텐데요.”

페이지는 내 말에 감탄하며 크게 웃더니 맞은편 소파에 앉아 말했다.

“저희보다 서 대표님이 구글을 더 신뢰하는 것 같네요. 반성해야겠습니다.”

“저는 제가 투자한 기업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습니다.”

결과를 알고 있으니 불안해 본 적도 없다.

이를 알 리 없는 페이지는 감탄하며 눈을 빛내며 말했다.

“구글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는 겁니까?”

“페이지 씨. 저는 투자자고 페이지 씨는 기업가이지만 동시에 개발자입니다. 이유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 말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페이지는 민망한지 헛웃음을 내었다.

나는 여전히 서 있는 브린과 수전을 보며 말했다.

“투자금이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여러분들에 대한 제 신뢰는 말이 아니라 돈으로 표현하겠습니다.”

나는 한쪽 주먹을 들어 올리며 엄지와 검지를 세 번 빠르게 교차했다.

미국에서 돈을 뜻하는 표현으로 지폐를 세는 듯한 동작이다.

“구글이 투자금이 부족해 망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걱정하지 말고 하고 계시는 일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브린과 수전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투자자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투자자가 저희를 설득하다니 이런 모순적인 일을 어디에서 찾아나 보겠습니까? 부끄럽네요. 서 대표님이 후회하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구글을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겠습니다.”

“방금 페이지 씨가 한 말. 확실히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페이지 씨도 제가 한 말 잊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페이지는 의지를 다지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페이지의 결연한 얼굴을 보며 그가 세웠던 구글의 모토가 생각났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구글의 창업주들이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쾅!

어찌나 세게 내려쳤는지 키보드의 자판 몇 개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MC파이넌스의 실장이자 강빈과 공매도 계약을 진행했던 해리.

그는 움켜쥔 주먹에서 피가 흐르는지도 모른 채 눈앞에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없이 정상을 갱신하며 치솟던 아마존닷컴의 주가 그래프가 절벽으로 떨어진 듯 바닥에 처박혀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미국은 물론 세계를 대표하는 IT기업들이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징조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지표, PER이 IT기업들은 평균으로 잡아서 100배를 넘겼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지금?”

MC파이넌스와 강빈이 공매도한 주식들의 총액은 거래가를 기준으로 23억 달러.

지금 주가를 기준으로 손해를 본 금액이 12억 달러가 넘는다.

만약 이보다 더 떨어져서 공매도 만기일이 된다면 MC파이넌스의 존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단순히 보유하고 있던 주가가 떨어진 것 이상의 쓰나미가 해리의 회사를 덮칠 것이다.

해리는 격식도 잊은 채 MC파이넌스 최상층에 위치한 사장실을 벌컥 열었다.

MC파이넌스의 사장, 마테오는 세상모르고 코를 골며 앉은 채로 자고 있었다.

“사장님!”

“어, 어! 뭐야. 무슨 일이야?’

마테오가 반쯤 감긴 눈을 꿈뻑이며 해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아마존닷컴의 주가가 29달러 40센트, 마이크로소프트 주가가 25달러 30센트….”

해리는 마테오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MC 파이넌스의 회장인 올리버는 투자계의 미다스 손이라고 불리며 MC 파이넌스를 미국 증권가 톱의 반열에 올린 인물이었지만, 자식 복은 없었다.

해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말을 이었다.

“저희 기업이 GB인베스트먼트와 맺었던 공매도. 기억하십니까?”

“어… 알지, 알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마테오를 보며 해리는 손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 공매도 대상 기업들이 거래가 기준 50프로 이상 폭락한 상태입니다.”

마테오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버럭 성질을 냈다.

“뭐라고? 그걸 왜 이제 와서 말해!”

“그동안 보고드리지 않았습니까. 오늘 이렇게 직접 찾아온 이유는 보고에 대한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서고요. 오늘만 평균 20프로 급락했단 말입니다.”

회장이 사실상 은퇴와 다름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음에도 마테오에게 회장직을 물려주지 않은 이유가 여기서 드러났다.

이 상종 못 할 새끼는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청하게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공매도를 취소해야 됩니다. 위약금이고, 뭐고 지금상태로 가다간 저희 회사 부도납니다.”

“하, 참. 우리 회사가 부도라니, 무슨 헛소리야?”

만기를 정하고 진행했던 이번 공매도의 경우 하락한 금액만큼의 보전과 함께 위약금으로 기준 거래가인 23억 달러의 5프로,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지급해야 한다.

그것만 해도 막대한 피해액임은 분명하지만, 이 이하로 주가가 떨어진다면.

“회사 날려 먹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취소해야 합니다.”

“야! 네가 그거 되는 거라고 해서 23억 달러어치! 어! 그거 아니야?”

“그거 맞습니다. 예상 못 한 제 실책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겁니다. 공매도 취소하시죠.”

마테오가 튀어나온 배를 긁으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취소하면 손해가 얼마야?”

“오늘이라도 절차 밟으면 약 13억 달러입니다.”

“시, 십삼억?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지금.”

“할 말 없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오늘 진행해야 합니다. 내일은 피해액이 얼마가 될지 모릅니다.”

그동안 마테오에게 비위를 맞추느라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공매도 취소를 진행해야 한다고, 증권사에서 수십 년을 구른 해리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만기 있는 거라며? 시간도 남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

“지금 IT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수작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라구요! 헛된 꿈으로 가득 차 있던 주가가 현실로 돌아오고 있어요. 저희도 그간 IT 종목으로 이득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해리는 당장이라도 공매도를 취소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서없이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런 해리의 의지에도 마테오의 표정은 단호했다.

“만기까지 기다려. 그 정도 손해를 우리 증권사 고객들이 용납할 것 같아? 회장님은? 응? 말해 봐.”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더는 답이 없었다.

“공매도 취소하지 않는다면 저는 짐 싸고 나가겠습니다.”

해리가 MC파이넌스에서 근무한 지 어언 18년.

증권가 생활의 반 이상을 보낸 곳이 바로 MC파이넌스였다.

게다가 그의 실적은 정상적인 오너라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마테오는.

“어디서 똥폼이야? 당장 꺼져. 나중에 실업수당이니 뭐니 헛소리나 하지 마.”

해리는 눈을 감았다.

공매도 실패에 따른 책임감이 그의 몸을 옥죄어 왔다.

그가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남지 않는 듯했다.

발걸음을 돌려 그가 처음 들어왔던 건물의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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