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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78화 (78/249)

#78화

에릭과 함께 아마존닷컴의 건물로 들어갔다.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 오래였다.

아마존닷컴의 성장은 가속화되면서 이제 직원의 수는 만 명이 넘어섰다.

1층에는 넓은 카페와 라운지가 있었고 52층에 달하는 건물은 모두 아마존닷컴이 쓰고 있었다.

카페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대화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입구를 오가고 있었다.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직원 한 명이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맞아 안으로 안내했다.

“차고에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제프가 세계 최고 기업의 회장 중 한 명이라니… 감회가 새롭네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에릭. 말 한마디에 몇천억, 몇조가 오가는 자리가 될 거야.”

에릭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윽고 제프의 방앞에 도착했다.

긴장하지 말라는 의미로 에릭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직원이 문을 열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강빈 씨!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전히 한 줌의 머리 없이 빛나는 두상, 제프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두 팔을 벌리는 제프에 마다하지 않고 나 또한 두 팔을 벌려 제프와 포옹했다.

에릭도 빙긋 웃으며 제프와 악수했다.

“아, 에릭 씨도 있었네요.”

“반갑습니다. 거의 4년 만이네요.”

에릭이 업무차 시애틀을 자주 방문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4년 만에 만났다는 것은 지분 계약 이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제프의 여자친구인 미쉘과 종종 만났다는 소식은 들었음에도 제프는 만나지 못했다고 하니, 제프가 얼마나 바빴는지 알 수 있다.

하긴, 만여 명을 넘는 직원들을 이끄는 회장이 되었으니 그럴 만했다.

그때 미리 소파에 앉아 있던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일어섰다.

“아, 오늘 거래를 도와줄 찰스입니다.”

찰스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찰스입니다. 좋은 거래 기대하겠습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별다른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찰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에 서류를 살폈다.

제프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하하… 워낙 일중독인 친구라 말주변은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바쁠 때 종종 그러니까요.”

이해한다고 말은 했지만, 찰스의 비즈니스 태도는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사람이 협상에 나왔을 리 없다.

제프가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한 행동임을 눈치챘다.

대표의 자리에 있는 내가 제프의 부하에게 이를 가지고 지적하기 꺼려진다는 것을 노리고 한 것이다.

한때나마 롤모델로 생각했던 인물이 이런 같잖은 태도를 보이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에릭을 툭 치자 에릭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해해주신다니 고맙군요. 저희도 앉…”

에릭이 한 손을 들어 제프의 말을 끊었다.

“그런데. 대주주 앞에서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고개만 돌려 인사하는 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요?”

내 마음을 알아차린 에릭이 훅 치고 들어갔다.

에릭의 말대로 나는 현재 시가총액 522억 3000만 달러의 거대기업이 된 아마존닷컴의 대주주이자 제프를 제외한다면 최대 주주다.

내가 아마존닷컴의 지분, 10프로를 매수한 금액은 겨우 100만 달러였지만, 그 가치는 현재 50억 달러가 넘는다.

결코 함부로 대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제프는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당황한 제프가 연신 손을 저었다.

“오해입니다. 원체 무뚝뚝한 성격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불쾌하게 했군요. 찰스! 이분이 누군지 몰라? 당장 와서 제대로 인사하게.”

제프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에릭의 말을 듣고 찰스는 서둘러 일어나던 참이었다.

“죄송합니다. 눈앞에 서류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손님이 온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COO를 맡고 있는 찰스라고 합니다.”

COO(Chief Operating Officer)라면 운영지원 총괄.

직급상으로든, 실질적인 위치로든 제프의 바로 아랫사람일 것이다.

이 정도 위치의 사람까지 지분 거래에 부른다니.

제프는 무심한 척했지만, 이번 거래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GB인베스트먼트의 대표. 서강빈입니다. 이쪽은.”

“총괄을 맡고 있는 에릭이에요.”

가볍게 악수를 했다.

“일단 앉으시죠. 저도 지금 결제 중인 것만 서둘러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눈앞에 대주주보다 중요한 결재 사안은 없다.

에릭이 인상을 찌푸리고 내 눈치를 살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프의 이런 태도는 오히려 거래를 진행할 때 내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것보다 마지막으로 제프를 만났을 때만 해도 이런 얕은수를 쓸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나와 에릭이 소파에 앉고 찰스가 맞은편에 앉았다.

찰스가 조심스럽게 서두를 열었다.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지분양도면 주주총회를 여는 게 맞습니다만… 현재 다른 투자자들과 주주들이 서대표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의도했던 바다.

10프로나 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주주총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프에게 의결권을 넘기다시피 했으니 다른 투자자들과 주주들이 나를 좋아할 턱이 없다.

현재 제프의 사업방침의 의문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이 많았고, 그들은 내가 갖고 있는 지분을 원했다.

즉 이것을 잘만 이용한다면 이번 협상에서 웃는 것은 나다.

“제프의 공격적인 사업방침에 불만을 갖고 있는 주주들이 많다는 것도요. 지분을 매각을 요구하는 메일들이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네. 그 때문에 서대표님과 만나는 것은 비밀에 부쳤습니다.”

제프가 자신의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제 지분이 꽤 귀하다는 거지요.”

제프의 얼굴이 굳었다.

주식 양도는 별다른 등기가 필요 없고 양도인과 양수인 간에 주식양도계약을 체결하기만 하면 끝난다.

다른 투자자들은 내 지분을 시장에 돌려 제프의 독재를 막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은밀한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 지분을 주가 그대로 양도한다 쳐도 52억 2300만 달러입니다. 제프 씨가 하는 말은 개인이 양도받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럴 능력이 있습니까?”

제프의 재산은 내가 말한 금액 이상이겠지만, 재산 대부분이 아마존의 주식이다.

그가 양도하려고 하는 것도 아마존의 주식.

52억 달러나 되는 돈을 그가 지급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제프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웰스, 모건, TD 쪽과 이미 얘기를 끝냈습니다.”

제프의 말을 듣고 에릭이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는 듯 눈을 움찔거렸다.

제프가 말한 기업명들은 모두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은행명들이다.

그런 은행 세 곳과 얘기가 끝났다는 것은 지급할 능력은 충분하다는 소리.

“거대은행 세 곳과 얘기를 끝내고 정보도 새지 않았다? 이 얘기를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내 말에 찰스가 서류를 내밀었다.

“회장님과 각 은행이 계약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 번 확인해보시죠.”

“에릭.”

미국 기업들 간의 계약 내용을 분석하는 데는 나보다 에릭이 한 수 위였다.

내가 에릭을 이 자리에 데리고 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내 말에 에릭이 서류를 받아 확인하기 시작했다.

서류의 내용과 계약방식이 복잡했는지, 에릭이 서류를 다 검토하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에릭은 서류의 마지막 장까지 꼼꼼하게 확인을 한 후 고개를 들어 한국말로 말했다.

“걸리는 부분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저희와는 상관없는 내용이네요. 요약하자면 지분을 양도하는 시점에 웰스가 그 대용의 40프로, 모건이 30프로, TD가 30프로씩 지급한다고 해요. 이율이 크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나쁠 것 없는 제안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네요. 실행 전까지 비밀로 유지하겠다는 서약서도 있고요.”

에릭의 검증까지 끝냈으니 제프가 지급할 능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제프는 현재 아마존닷컴의 성장세로 부채를 금방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세 은행은 제프가 그 부채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에 있을 거품붕괴로 이 부채는 양쪽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겠지만 그 시점에서 아마존닷컴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이제 남은 것은 지분을 얼마나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지다.

나는 제프를 차분히 응시하며 말했다.

“지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네요. 당신이 내는 것은 아니지만.”

“네? 그게 무슨…?”

허를 찔렀는지 제프가 당황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내 지분 10프로를 양도받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은행으로부터의 대용이다.

게다가 계약까지 진행한 상황.

눈앞에 보기 좋게 누워있는 먹잇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프리미엄을 챙길 생각이었다.

주가와 양도액의 차이가 크다면 불가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차익은 받아들일 것이다.

“10프로를 얼마에 양도하던지 지급할 능력이 된다는 것 아닙니까.”

“네. 주가 그대로 매입할 수 있습니다.”

10프로나 되는 물량에 시장에 풀린다면 주가는 일시적으로나마 급락할 것이다.

주가 그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조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 만족할 수 없다.

“아마존닷컴의 성장이 멈추지 않을 거란 것은 저도, 제프 씨도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지금 미국 시장은 불안정합니다. 저희 아마존닷컴도…”

“그럼 왜 서둘러 저와 일정을 잡으셨습니까? 일본 진출을 눈앞에 둔 지금 시점에 말이죠. 그리고 제가 다른 투자자에게 매도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제프는 스스로 하는 일에 확신을 갖는 타입이었다.

IT버블의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는 있지만 설마 아마존닷컴까지 쓰러질 줄은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제프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주가 그대로 양도할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제프의 옆에서 잠자코 앉아 있던 찰스가 벌떡 일어났다.

“회장님. 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대표님이 말하고 계시는데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에릭이 앉은 채로 찰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제프 씨에게 의결권을 양보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에릭의 말에 제프가 찰스의 옷자락을 잡아끌어 앉혔다.

“좋습니다. 조건을 맞춰드리죠. 대신 터무니없는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아마존 주가는 지난 1년 사이 600프로나 뛰었다.

영국과 독일 지사를 출범했으며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지금, 점쳐지는 미래는 밝았다.

“단 한 번만 제안하겠습니다. 거절하신다면 그대로 자리를 떠나겠습니다.”

자칫 무례하게도 보이는 내 발언이지만 이런 태도는 상대방이 먼저 보인 태도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했던 태도가 되레 발목을 잡자 찰스는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떨었다.

제프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프리미엄을 20프로로 잡았으면 합니다.”

주가 52억 2300만 달러에 더해 20프로면 10억 4460만 달러.

양도수수료라기에는 말도 안 되는 액수지만, 제프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만한 조건이다.

제프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잠시 상의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길게 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금방 결정하겠습니다. 여기 앉아 계십시오. 찰스. 따라와.”

제프의 말에 찰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회장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에릭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에릭의 어깨를 툭, 쳤다.

“긴장하지 마. 잘하고 있으니까 지금처럼만 하면 돼.”

“대표님… 한화로 따지면 6조, 7조 원이 말 한마디에 오가는데 어떻게 긴장을 안 해요?”

에릭의 말에 싱겁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더 큰 금액을 만질 텐데 익숙해져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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