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그게 무슨 소리냐? 남북경협이 안 될 사업이라니?”
진태는 양쪽 눈썹을 크게 씰룩거렸다.
진태가 납득이 갈 수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을 해야 한다.
“반대로 왜 남북경협이 될 사업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왜라니. 공단과 철도만 해도 5년은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개성에 물산이랑 전자 건물 세우는 데도 돈을 아낄 수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는 것을 모르고 묻는 게냐?”
진태의 말대로 남북경협사업에는 세금 감면의 혜택이 붙는다.
이윤을 재투자해서 3년 이상 운영한다면 재투자분에 대한 기업 소득세도 70퍼센트나 감면받기 때문에 기업이라면 어디든 군침을 흘리며 노릴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이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남북경협으로 취할 수 있는 이득 중 가장 큰 것은 세금 감면입니다. 물자야 정부에서 지원받으면 되니 손해 볼 것도 없다고 생각하겠죠. 문제는 그 사업이 유지가 될 수 있냐는 겁니다.”
“더 말해 보거라.”
진태는 살짝 관심이 생겼는지 내 말을 재촉했다.
“남북경협사업은 불완전합니다. 지금이야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일시적이지 않습니까. 나라의 정세에 따라, 정권교체마다 북한과의 관계는 뒤바뀌고 사업은 흔들릴 겁니다. 매년 무장 공비 침투사건이 일어나고 있고 심지어 올해는 해전까지 벌어졌습니다.”
진태에게 그동안 역사에 대해 설파했지만 이제 곧 다가올 2000년대에는 더 하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해 화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북한은 그를 이용해 핵실험과 수중전 등 도발을 지속했다.
2002년에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큰 제2차 연평해전이 일어난다.
그 뒤로 6년 뒤에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금강산 관광사업은 완전히 철폐했고, 개성공단은 삐걱거리다가 결국 전면 중단하게 된다.
진태는 침입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정권이 바뀐 지 이제 1년이 지났어.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바로 취소되진 않을 거다. 그 안에 이득 챙길 거 챙기면 된다. 네가 너무 멀리 보고 있는 것 같구나.”
“세금 감면에 조건이 붙을 겁니다.”
“조건?”
“형식적으로나마 조건을 붙이지 않는다면 반발이 심할 테니까요. 철수하거나 투자한 자본을 거두어들인 기업에는 감면된 세금을 회수할 겁니다. 그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이득도 보지 못한 채 폭탄을 안고 돌아오는 거죠.”
손해 볼 것 없다고 생각했던 사업이 폭탄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철저하게 손익을 따지는 진태에게 이거보다 확실한 말은 없을 것이다.
진태가 깊은숨을 몰아낸 뒤 말했다.
“네 말대로 얼마 가지 못하고 사업이 멈추고 손해를 본다 치자. 그래도 이미 공단 조성할 사업기획안 착수에 들어갔어. 견적 내고 몇 군데는 계약까지 끝냈고. 거기에 로비에 들어간 돈까지 하면 인제 와서 멈추기엔 너무 큰 손해다.”
청와대의 연락을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거기까지 진행했단 말인가.
진태의 실행력은 알면 알수록 놀라웠다.
자신이 확신을 갖은 일에 대해서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진행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득을 쟁취해낼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 말은 일단 포기할 생각은 있다는 겁니까?”
“일단 벌려놓은 게 있으니 회수는 해야 할 거 아니냐. 포기는 그 이후다. 생각해둔 거라도 있어?”
진태는 내심 기대하는 눈치를 나를 바라봤다.
“사업권 천회장님한테 던지죠.”
진태는 무슨 꿍꿍이가 생겼는지 천장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두완과 진태가 막역한 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태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에 그런 걸 일일이 따질 성격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얼마나 큰 피해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진태의 대답은 이런 내 예상이 맞았다고 말해주었다.
“천회장에게 넘기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내가 얻는 것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도랑까지 쳐놨는데 가재는 아니더라도 미꾸라지는 잡고 가야지.”
어떤 상황에서든 이득을 보려는 진태의 습관이 드러나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진태에게 장단을 맞춰 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천일그룹이 최근 정부 사업권 중에 ‘한국철도공사 4400호대 디젤기관차’를 따내지 않았습니까. 그것과 바꾸자고 해보죠.”
4400호대 디젤기관차는 중형 디젤 전기기관차다.
기존 중소형 기관차를 대체할 목적으로 실행할 예정이고 여객 역할은 물론 화물열차를 견인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예정된 건 총 60량으로 한 량에 50억 원이라고만 쳐도 3,000억 원 규모의 사업이다.
규모 면에서 남북경협보다는 작지만 확실하게 보장된 사업.
이 정도면 만족할 줄 알았는데 진태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적지만 확실한 걸 택하라…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구나.”
“할아버지. 남북경협사업은 중단되면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작아도 알짜배기는 기관차 사업이에요.”
“너는 결과만 생각하고 중간은 생략하는 버릇이 있구나.”
“네?”
“너무 무르다는 소리야. 남북경협사업이 언젠가 무너질 사업이라면 초장에 단물을 다 빨고 내다 버리면 될 일 아니냐.”
진태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한 사업을 맡게 되면 끝까지 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MP3가 그랬고, 택배가 그랬다.
주식이나 투자를 진행할 때는 치고 빠지는 것에 능숙했지만, 사업은 서강빈의 몸으로 처음 시작해서 그런지 늘 치밀하고 미래를 설계했을 때 가능성 있는 것만 진행했다.
그렇다면 남북경협사업은 어떤가.
사업이 진행되고 얼마 되지 않아 북한의 도발과 갖가지 사건들로 인해 삐걱거리지만, 출발은 분명 좋았다.
그렇다면 챙길 수 있는 이득은 초반에 한정되어 있었다.
‘개성공단 조성은 빨라야 2004년은 되어야 착공을 시작한다. 이득을 보기 어려워.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은 지지부진하다가 중단된다. 금강산은 애초에 수익을 보기 힘들어. 그럼 남은 건…’
“초반에 한정된 사업으로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이목을 끄는 것 또한 초반입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남북 교류 현장은 세계에서 주목할 겁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이벤트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겠죠. 그 건을 저희가 가져가죠.”
“호오. 수익보다는 이미지를 챙기겠다?”
“저희 태선이 한반도 물류 동맥을 이었다는 것을 홍보하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물류기업의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진태는 그제야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수익은 기관차에서 어느 정도 챙기고 이미지는 가장 주목받는 행사에서 챙긴다. 이 정도는 돼야 그동안 들인 노력을 포기할만하지.”
“그리고 물자 운송을 담당할 기업은… 태선택배입니다.”
진태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네놈이 맡은 GB택배가 아니라? 태선택배?”
평소였다면 갖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GB택배로 해야 한다고 설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태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결과만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 사업도 투자랑 다를 바 없다. 내 목적을 이루는 데 쓸 수단일 뿐. GB라는 이름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내 목표를 위해서라면 GB택배보다는 태선택배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나았다.
“네. 그동안 투자해오고 사업권 따낸 건 할아버지잖아요. 태선택배가 맡는 걸로 하시죠.”
“네가 그렇게 쉽게 넘기는 오히려 수상하구나.”
진태는 의심쩍다는 듯 눈을 흘기다가 말았다.
“됐다. 네놈도 양심은 있나 보지. 사업 얘기는 이제 그만하지. 그보다 저번에 천회장이랑 전시회에서 만났다며? 네놈이 거기엔 왜 간 게냐. 영빈이처럼 헛바람이라도 든 게야?”
천회장이랑 만났던 ‘젊은 묘화’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제가 설마요. 하하. 저는 사업하고 투자할 때가 제일 재밌습니다. 전시회에는 제가 후원하는 화가가 있어서 갔던 거예요.”
“흐음. 그래야지. 내 너만큼 재능있는 사업가는 본 적이 없어. 딴 데는 헛물켤 생각 하지 마라.”
“설마 방금 칭찬하신 겁니까?”
진태가 멋쩍게 웃었다.
“야, 이놈아. 나도 사람이야. 그리고 네가 재능이 출중한 건 맞으니 못 할 말도 아니지.”
“제가 그림 그리게 될 일은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보다 회장님도 그림 모으는 취미 있지 않습니까.”
진태는 저택 안에 있는 전시관 외에도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있었다.
순수한 관심보다는 미술품에 대한 물욕일 것 같긴 하지만.
“왜. 나한테도 그림 선물하게?”
천회장이 그림을 받은 것을 들었는지 괜히 서운한 눈치였다.
“회장님께는 그림 중에서 가장 비싼 걸로 드리려고 고르고 있었습니다. 조만간 들고 찾아올 테니 기대하세요.”
내 말에 그제야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대하마.”
***
강빈이 방문한 그다음 날, 진태는 곧바로 두완을 초대했다.
두완이 올 때까지 진태는 서재 안에 있는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신문을 읽었다.
두완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서회장.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불러,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야?”
“뭐가 그리 급해. 우선 앉기나 하게.”
진태는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신문을 덮었다.
두완은 진태 맞은편에 앉아서 들뜬 채로 말했다.
“내가 어젯밤 꿈을 꿨어. 금강산에 올라가서 정경을 내려다보는데… 그것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본 적이 없었네. 왠지 예감이 좋아.”
“이 양반은 북한 얘기만 나오면 감상에 젖어. 별다른 일은 없고?”
“이 나이 먹고 별일이 뭐가 있겠나. 뒷방에 앉아서 세상 얘기나 듣는 거지.”
“또 말로만 뒷방 늙은이 신세지. 오늘도 일 얘기하러 여기 온 거 아니야?”
“이것 보게나. 허허. 초대를 한 사람이 누군데 그래? 자네도 마찬가지지, 뭘.”
두완이 능청을 떨며 진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기대감을 한 번에 알아본 진태가 슬쩍 운을 띄웠다.
“공단 조성을 자네한테 넘긴다면 어떨 것 같나.”
두완은 마시려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물어 뭘 해! 자네 앞에서 춤이라도 출까?”
“흐흐. 젊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먼.”
“그보다 그게 진심이야? 자네가 나한테 공단을 넘긴다고?”
“그래. 어디 공단뿐인가? 철도 사업도 자네한테 연결해줄 수도 있어.”
두완이 벌떡 일어나 진태의 팔을 흔들었다.
“무섭게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제대로 말 좀 해봐.”
평소와 다른 진태의 태도에 두완은 오히려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진태는 수심 가득한 두완을 응시하며 말했다.
“남북경협사업 자네한테 넘기겠다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게.”
생각지도 못한 진태의 말에 두완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