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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43화 (43/249)

#43화

노정환과 곽진웅을 비롯한 일당들이 수갑을 차고 노석 빌라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큰 규모의 사기였다니….”

희원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연행되는 일당을 바라보았다.

한 달은 넘게 오가며 친분을 쌓았을 테니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건물에서 나온 경감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신고 감사합니다. 성형수술까지 했던 놈이라 전국수배를 때려도 찾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조사해보니 이 건물도 차명으로 매입했더군요. 덕분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아신 겁니까?”

“제가 투자하려는 회사에 사기를 치려고 했거든요. 잡아서 다행입니다..”

서현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서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저희 회사는 온갖 소송에 시달리다가 결국….”

이제야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는지 울컥한 서현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물론, 서현의 우려와는 달리 한국컴퓨터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한국컵퓨터가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내가 이곳에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폰지 사기에 연루되었을 줄은 몰랐는데, 결국 잘 극복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이번 일을 계기로 정신을 차렸거나.

희원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저도 감사드려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를 갚으시려면 저와 했던 그전의 미팅. 다시 이어서 하죠.”

문전박대에 가까웠던 미팅이 떠올랐는지, 희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기를 막아준 것도 모자라 투자까지…. 저야 감사한 일이죠. 서대표님 시간에 맞출게요. 언제가 편하세요?”

“오늘은 할 일이 있을 것 같고. 내일 오후 2시에 찾아가겠습니다.”

“알겠어요.”

“밤공기가 찹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서대표님도 들어가세요.”

노정환을 태운 경찰차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면서 나는 의문이 들었다.

노정환은 이미 전과10범이다.

그의 10번째 사기죄는 불과 작년의 일이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다시 사회로 나와 사기를 칠 수 있었던 걸까?

수백억 원의 피래를 입힌 노정환의 범죄라면 감방에서 최소 5년은 썩혀야 한다.

단순한 수배범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의 뒤엔 누가 있는 걸까.

이번에도 다시 나올 확률이 다분했다.

“에릭.”

“네. 대표님.”

“너라면 네 돈을 훔치려던 놈을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요. 잡아다 감방에 넣어야죠.”

“그런데 그놈이 걸어서 감방을 다시 나온다면?”

에릭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노정환이 뒷배가 있다는 말이군요”

에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돈 훔치려고 했던 놈은 그냥 안 놔준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뒷배가 누군지도 중요하지만, 이쪽은 다신 못 건들게 확실하게 해야지.”

“어떻게 하시려고요?”

“손버릇 나쁜 놈한테는 똑같이 해 줘야지. 가보자고.”

***

정환은 수갑을 차고 경찰차로 이송되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번만큼은 모든 것이 치밀했다.

기존보다 욕심을 버리고 기업에 투자조건을 낮추는 대신에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다.

투자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성형수술을 통해 바꾸긴 했지만, 행여나 목소리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직접 하지 않고 밑에 애들을 시켰다.

직접 하는 것만 못하지만, 몇 달간 교육까지 진행해서 꽤 쓸만한 놈들로 만들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을 망친 사람은 노석 빌라에서 나오면서 본, 한국컴퓨터 대표 옆에 서 있던 남자일 것이다.

경감이 그에게 감사를 표했던 것을 보면 신고자는 그가 분명했다.

최근 신문에서 봤던 남자였다.

무려 천만 달러를 외환위기 극복에 기부하며 이름을 알렸던 태선가의 막내, 서강빈.

그놈만 아니었다면….

사실 경찰서에 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2선 국회의원이자 태선물산 서동만 사장의 아내, 문경주가 다 해결해줄 테니까.

태선가 며느리의 뒷배가 내겐 있는데 태선가의 막내가 나를 공격한다?

집안싸움인가?

그건 그렇고, 그 녀석 때문에 최근 작업했던 성과를 모두 뱉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문경주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나를 빼내는 데 제법 많은 돈을 썼다며 징징댈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방으로 들어 닥치기 전 미리 방을 나왔으니 아직 밀매품들은 방 안에 있다는 거.

노석 빌라 전체에 곧 수색이 시작되겠지만, 미리 매수해두었던 경찰관이 지금쯤 빼돌렸을 것이다.

“거, 빨리빨리 갑시다. 시간이 금인데.”

“이 새끼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너무도 태연한 정환의 태도에 오히려 윤 순경이 당황했다.

“아, 그리고 전화 한 통만 쓰게 해주십쇼.”

“네가 어디 초대라도 받고 가는 줄 알아? 닥치고 있어.”

“후회할 텐데…. 어디 보자. 아, 명찰이 없구나. 댁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뭐, 뭐?”

“나중에 서중 형님한테 한 소리 듣지 말고 전화 한 통만 쓰자구요.”

서중이라면 지금 가고 있는 인천지방경찰청의 박서중 경찰서장이다.

물론 정환과는 아무 관계도 없지만 뻔뻔한 표정을 보고 윤 순경은 망설였다.

보다못한 장 경사가 말했다.

“한 통이라잖냐. 그냥 시켜주고 조용히 시켜.”

“알겠습니다!”

정환이 자신의 오른쪽 호주머니를 툭툭 치며 말했다.

“꺼내.”

“이 새끼가….”

정환의 태도에 윤 순경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고 휴대폰을 꺼냈다.

“내가 부르는 번호로 연락하고 내 귀에다 대.”

윤 순경은 대답하기도 싫은지 그저 정환이 부르는 번호를 눌렀다.

번호를 누르자마자 상대방이 받았다.

“박비서님? 저 노정환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문의원님 연결해주십시오.”

“수신전환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의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윤 순경이 한 손으로 대충 받치고 있던 휴대폰에 다른 손을 더했다.

태연해 보였던 정환도 긴장했는지 입술을 씹어댔다.

그리고 통화가 연결되었다.

“문의원님, 저 정환입니다.”

“하…. 사무실로 연락하지 말라니까.”

“급한 일입니다.”

“무슨 일인데?”

“서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죄송합니다.”

“야, 이 모지리 새끼야. 빼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들어가? 너 빼내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냐? 말만 하면 그냥 다 되는 줄 아냐고!”

“죄송합니다…. 조심했는데 제삼자가 끼어들었습니다.”

“됐고, 어디 서야.”

“인천입니다.”

“서장한테 말해둘 테니까. 가서 입 닥치고 있다가 조용히 나와.”

“알겠습니다.”

윤 순경은 통화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정환의 말만 듣고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윤 순경과 장 경사 둘다 정환을 힐끔거렸다.

정환이 들고 있는 휴대전화에서 잠깐 소리가 들렸다.

“대신….”

그리고 대화가 진행될수록 정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전화가 끊어졌을 때 정환이 곽 움켜준 손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시발…. 지가 의원이면 다야?”

눈치를 보던 윤 순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문의원이 누굽니까?”

“네까짓 게 알아서 뭐 하게!”

다시 한번 윤 순경은 울컥했지만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그 사이에 인천지방경찰청에 도착했다.

***

“나오는 거 확실해요? 벌써 새벽 두 시예요. 이러다 날밤 새우겠어요.”

에릭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서현과 희원을 보내고 에릭과 나는 곧장 인천지방경찰청에 왔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가 9시였으니 벌써 다섯 시간이 훌쩍 넘었다.

에릭이 불평할 만도 했다.

분명히 노정환은 다시 나올 것이다.

일단 에릭을 달랬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자.”

“한 시간이에요.”

에릭은 좌석에 기대어 멍하니 경찰청 입구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조차 눈이 감기기 시작할 때 노정환이 입구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진짜 나오네요. 이 망할 세상….”

에릭이 허탈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간 지 5시간이 조금 지나서 나왔는데도 노정환의 표정은 어딘가 굳어있었다.

나오자마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쫓아가야지. 운전 자신 있어?”

“저 미국에서 16살부터 운전했어요. 기대하세요.”

담배를 피우고 있던 노정환에게 한 남자가 다가갔다.

“아는 사람일까요?”

“지켜봐야지.”

노정환은 남자와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손으로 남자의 뒤통수를 때렸다.

남자는 머리를 슥슥 문지르고는 노정환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노정환이 앞장서서 걸어가고 남자가 뒤를 따라갔다.

“천천히 쫓아가자.”

남자와 노정환은 검정 세단에 탔다.

곧 세단이 출발하고 우리도 따라서 움직였다.

에릭이 자신했던 것처럼 에릭의 운전실력은 흠잡을 것이 없었다.

상향등을 켜지 않고 최소한의 불빛으로만 운전하는데도 들키지 않고 세단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인천을 벗어나자 세단이 멈추고 남자가 내렸다.

그리고 세단은 곧바로 다시 출발했다.

“혼자 가네요. 뭐가 있긴 있나 봐요.”

“가봐야 알겠지.”

그 뒤로 세단은 한참을 달리다가 서울 근교의 공장단지에서 멈췄다.

짓다가 중단된 건지 아직 지어지지 않은 공터도 많았고, 지어지다 만 공장들도 꽤 보였다.

불빛도, 사람도 없어서 을씨년스러웠다.

공사장 중 하나에 차를 세웠다.

에릭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왠지 스릴 있는데요.”

차에서 나오는 미약한 불빛마저 사라지자 에릭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 노정환부터 찾자. 저기로 갔지?’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지고 시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다 왔나 봐요.”

“그래. 천천히 가자.”

골목을 돌아서자 노정환의 모습이 보였다.

뭔가 말하려는 에릭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쉿, 들린다.”

노정환은 두리번거리더니 공사장 한쪽 구석에서 삽으로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는 커다란 캐리어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노정환은 캐리어에 입을 맞추더니 파여있는 땅으로 캐리어를 집어넣었다.

“입은 왜 맞춰? 정상이 아니네요.”

캐리어 안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노정환은 캐리어를 묻은 곳에 다시 흙을 채워 넣었다.

흙을 다 채울 때까지 숨죽여 기다렸다.

그렇게 십 분이 지나자 흙을 다 채웠는지 노정환이 그 위에서 점프를 하며 흙을 다졌다.

“이제 끝났나 보네요.”

“그래. 이제 곧 떠날 거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정환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고 노정환이 떠났다.

나는 공사장에 널브러져 있는 삽을 들고 노정환이 팠던 땅으로 갔다.

에릭도 근처에서 부러진 삽 하나를 들더니 내 뒤를 쫓았다.

발로 다지긴 했지만 한 번 파진 땅이어서 그런지 쉽게 흙을 퍼낼 수 있었다.

에릭과 함께 땅을 판 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단단한 무언가가 삽에 닿았다.

“조금만 더 파면 돼.”

그렇게 오분을 더 파고 캐리어를 꺼낼 수 있었다.

이미 전에 심어논 캐리어도 있었는지, 아까 노정환이 심었던 캐리어 두 개 말고도 하나가 더 발견되었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캐리어의 지퍼를 내렸다.

“뭐야. 그냥 신문지잖아요?”

에릭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 안을 봐야지.”

캐리어 안에 있는 것들은 한국 최고의 포장지, 신문지로 포장되어 있었다.

잔뜩 구겨진 신문지를 파헤치자 청자가 보였다.

“이거 설마 고려청자 아니에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쳐다보는 에릭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노정환이 이렇게 꼭꼭 숨긴 것이니 평범한 물건들은 아닐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릭은 보물상자를 찾아낸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다음은 청화백자, 조선백자인지 고려백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백자가 있었고 분청사기도 보였다.

“꺼낼수록 위험한 물건만 있는 것 같은데요?”

“우리가 밀매한 것도 아니고 상관없어. 어? 이거 밑에 공간이 또 있는데?”

캐리어 안에 판이 하나 깔려있었는데 판을 열자 또 하나의 공간이 있었다.

세로가 170센티미터 정도 되고 가로가 1미터가 안되는 캐리어에 딱 맞아떨어졌다.

캐리어가 마치 이것을 품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안에는 얇은 유리로 포장되어 있는 그림 한 점이 놓여 있었다.

두 개의 반원이 회전하는 것 같은 구성이었다.

“왠지 석양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추상 미술계의 거장 김환기의 붉은색 점화.”

“뭐야, 대표님이 그림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아니. 그래도 이건 관심이 없어도 알 만하지.”

“유명한 사람인가 봐요?”

유명하다마다.

한국 10대 예술가로 손꼽히는 김환기의 수작 중 하나.

그의 작품 중 가장 비싼 거래가를 기록한 그림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었다.

추정가만 해도 40억 원이 넘고, 잠재적 가치는 그 이상일 것이다.

“이건 조금 위험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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