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흥신소에 의뢰해 새인산업, 월드뱅크, 한국컴퓨터를 오가는 투자자를 찾으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투자자는 한 명이었기 때문에, 직원을 제외하고 정기적으로 가는 사람만 찾으면 됐다.
흥신소에서 받은 서류를 들고 황비서가 보고했다.
“투자자는 모두 30대 초반으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뒤를 밟았는데 공통적으로 들르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건물 위치 찍고 임기사 불러.”
황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나갔다.
황비서가 준 서류를 들고 나도 나갈 채비를 했다.
투자자들이 들락거린다는 건물은 인천에 있었다.
4층짜리 빌라로 지어진 지 꽤 오래된 건물 같았다.
가끔씩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서류에 붙은 사진과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커피라도 한 잔 사 올까요?”
“좋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밥이라도 먹고 와. 내 카드 가져가고.”
“알겠습니다.
임기사가 나가고 빌라의 입구를 주시했다.
십 분쯤 지났을까.
서류에 붙은 사진과 동일한 인물이 빌라 밖으로 나왔다.
임기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인물은 한국컴퓨터의 투자자, 곽진웅이었다.
다소 허름한 빌라와는 어울리지 않게 걸치고 있는 옷들은 죄다 명품에 머리를 깔끔하게 넘겼다.
진웅이 빌라 앞에 주차된 차에 오르자 나도 촉박해졌다.
임기사를 기다릴 시간은 없다고 판단해서 서둘러 운전석으로 갈아탔다.
진웅의 차를 티 나지 않게 쫓아가기 시작했다.
진웅의 뒤를 쫓아 도착한 곳은 골프장이었다.
진웅은 익숙한 듯 카운터에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차에서 내려서 진웅의 뒤를 밟았다.
카운터를 지나서 진웅을 찾는데 보이지 않았다.
“누구 찾으시는 사람이라도 있으세요?”
진웅은 옆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누군가의 뒤를 밟아본 것이 처음이라 긴장한 탓에, 주위를 살피지 못했다.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니요. 골프나 한번 배워보려고 왔습니다.”
“하하. 여기는 내기 골프 치는 데예요. 괜히 돈이나 잃지 말고 가세요.”
“잃는 돈이야 교육비로 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진웅이 나를 쭉 훑어보았다.
내가 입고 있는 옷들은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탈리아에서 손에 꼽는 브랜드의 정장이었다.
“어! 그거 ‘트리오니’에서 올해 출시한 정장 아니에요? 엄청 비싸다고 들었는데… 구하기도 힘들고.”
“돈만 있으면 못 구할 게 있나요.”
진웅이 서둘러 담배를 비벼끄고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골프, 제가 알려드릴까요?”
“저야 좋죠. 교육비를 주더라도 당신처럼 친절한 사람에게 줘야 더 기분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처음이시니까 살살 하겠습니다. 무슨 게임을 하는지도 모르실 테니 우선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설명 들으시죠.”
진웅이 골프장 안에 있는 쉼터를 가리켰다.
쉼터는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골프장 전체를 보기도 좋고, 안에도 꽤 깔끔했다.
“여기 커피 두 잔.”
“갖다 드리겠습니다.”
진웅이 주문하고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생에서 가끔 골프를 쳤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배우러 오셨다더니 꽤 아시는데요? 그럼 스킨스는 아세요?”
“스킨스가 뭡니까?”
“여기서 주로 하는 게임이요. 일정 금액을 사전에 내놓고 홀마다 가장 적은 타수를 친 사람이 스킨을 먹는 거예요. 최저타가 동타면 다음 홀로 이월되구요.”
“스킨이요?”
“아 홀상금 말하는 거예요.”
스킨(skin)이 예전 미국 인디언들의 화폐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물어봤다.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본격적인 질문을 할 때 의심받지 않는다.
“그보다 약속이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시간보다 일찍 왔어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덕분에…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에릭 장입니다. 편하게 에릭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저는 곽진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에릭 장? 이름을 보니 재미교포분인가요?”
“네. 미국에서 작게 투자회사를 하고 있습니다.”
에릭에겐 미안하지만 내 이름은 쓸 수 없다.
진태가 떠들썩하게 기사를 내놔서 이제 한국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신문 기사에 얼굴까지 노출되기는 했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볼 테고, 바쁜 사기꾼은 공사가 다망하여 이름은 알았어도 얼굴까지는 모를 것이다.
진웅이 사기꾼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의 태선가 사람에게 사기 치진 못할 것이다.
평생을 감옥에서 썩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진웅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이거 먼 길 오셨는데 제가 잘 해드려야겠군요. 그런데 한국에는 여행 오신 거예요?”
“여행 겸 투자할 곳을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외환위기로 떠들썩한 이때요?”
“정말 가치 있는 것은 진흙탕 안에서도 빛나는 것 아니겠어요?”
내 헛소리에 진웅이 좋다고 웃어댔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거 정말 큰 우연인데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좋은 사업에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거든요.”
“진웅 씨가요?”
내가 생각했던 그 수법이 맞는 것 같다.
이어지는 진웅의 말이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네.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거든요.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관심이 가는데요? 들어보죠.”
진웅이 가지고 온 서류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한국컴퓨터에서 개발한 프로그램과 이후 출시될 프로그램들에 대한 설명, 계약서, 그리고 실제 거래했던 영수증이었다.
한국컴퓨터에는 다른 서류들로 구워삶았을 것이다.
폰지 사기다.
폰지 사기는 아무런 이윤 창출 없이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이용해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처음에는 낮은 금액에 높은 배당금을 줘서 신뢰를 쌓고 투자금을 높이면 이름만 있는 회사를 부도 처리하거나 도피해 버린다.
진웅이 손짓을 해가며 한국컴퓨터의 기술에 대해서 설명했다.
황비서가 조사해 온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자세했다.
그만큼 한국컴퓨터의 대표, 희원이 진웅을 신뢰하고 있는 듯했다.
대표라는 사람이.. 한심했다.
“...해서 성공은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년만 지나면 순익 100억? 저는 그 이상도 바라봅니다.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셨죠?”
“네.”
“투자 규모는 어디까지 가능하십니까?”
“그야 조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맥시멈은 오백만 달러입니다.”
500만 달러라는 말에 진웅의 눈빛이 바뀌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눈빛.
내가 바라던 바였다.
“11만 달러에 자사주 지분의 1프로를 양도해드리겠습니다. 단 오백만 달러를 전부 투자하신다면 49프로를 드리도록 하죠. 1프로를 뺀 이유는 아시죠?”
“하하. 경영권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아주 신이 났구만.
이거 제대로 호구 잡힌 것 같다.
백만 달러 정도 부를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내가 부른 맥시멈을 다 먹으려고 하다니.
한국컴퓨터의 자사주는 70프로 언저리.
진웅은 그중 49프로를 내게 준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100억에 자사주 지분 절반을 불렀으니, 진웅이 말하는 조건은 압도적으로 내게 유리했다.
물론 이 계약에는 실효성이 없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좋은 조건이네요. 사업성도 좋아 보이구요. 제가 대표긴 하지만 이 정도 투자는 임원 회의를 해야 합니다. 기다려주실 수 있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하하. 에릭 씨는 정말 운이 타고난 사람이군요. 이런 좋은 기회를 잡다니 말입니다.”
내가 이미 넘어왔다고 생각했는지 진웅의 얼굴은 자신만만했다.
“계약서를 들고 가도 되겠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이런 일에서는 보안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요? 이런 좋은 조건을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면 제가 귀찮아지지 않겠습니까?”
저런 식으로 보안 타령하면서 쉬쉬했던 거구만.
대표들이 왜 투자자에 대한 정보를 말하지 않았는지 알겠다.
“그럼 임원들을 어떻게 설득합니까?”
“저에게 따로 연락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연락이 온 다른 투자자들도 있으니까 빠르게 진행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다른 투자자가 있다라.
애초에 실체가 없는 계약이니까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과정이 길어지면 결국 꼬리가 밟히고 계획이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
나는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이거 서둘러야겠군요.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골프 안 치시구요?”
“골프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잖습니까. 곧 다시 뵙도록 하죠.”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진웅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오백만 달러를 안겨 줄 호구에게 차리는 예의인가 보다.
나도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나섰다.
골프장을 나오자 임기사가 뻘쭘하게 서 있었다.
잠깐 여유시간에 문자를 보냈는데 곧바로 온 모양이다.
“대표님과 차가 없어서 놀랐습니다. 문자 보고 찾아온 길입니다.”
“미안하네. 상황이 급해서.”
“아닙니다. 그보다 일은 잘 해결되셨습니까?”
“아직. 대충은 길은 보여.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떠올랐다.
노정환.
198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무려 20여 년 동안 대규모 투자 사기를 저지르다가 잡힌 범죄자.
수천 명의 파산자와 수만 건의 이혼을 만들어 낸 것도 모자라 파산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수십 명의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든 희대의 개자식.
당시 노정환이 경찰에 잡히자마자 각종 언론사에서는 과연 그는 어떤 방법으로 수많은 사기 행위를 했던 것인지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당시 유명 프로그램에선 노정환과 그를 일찍이 잡지 못했던 경찰의 무능력함을 비꼬는 풍자 개그까지 방송되곤 했다. 노정환이 벌였던 방법은 대범하면서도 치밀했다. 어떨 때는 혼자 활동하다가, 사기 규모가 커질 때는 사람까지 영입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사기행위가 발각되는 것을 대비하여 정계에까지 손을 대는 치밀함을 보였고 이로써 노정환의 사기 행위에 관련된 인물들만 수십, 수백 명에 이르렀다.
오늘 본 진웅의 수법은 내가 알던 수많은 사기 행각을 벌였던 노정환의 수법과 매우 유사했다.
노정환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진웅이 노정환인가 싶기도 하고.
그가 오랜 기간 폰지 사기를 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성형수술이었다.
수차례의 성형수술을 하면서 몇십 년 동안 교묘하게 경찰을 피해 다녔다.
경찰 추산으로 밝혀진 피해액만 5조 원. 피해자는 7만 명이었다.
경찰 추산으로 밝혀진 정도가 이 정도라면, 미처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들까지 합친다면 그 피해는 예상하기 어려운 규모였을 것이다.
노정환 사기 행위 피해단체 ‘바른 경제 시민연대’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피해 금액 중 노정환 일당이 챙긴 금액만 최소 2조 원이라고 한다.
투자자들은 배당금 지급이 늦어지더라도 초기 투자 배당금을 받았던 터라 당장에 신고를 하지 않고 일단은 기다렸다.
하지만 계속에서 늦어지는 배당금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그제서야 신고를 했지만, 이미 노정환은 돈을 들고 튄 상황이었다.
아마 진웅을 비롯한 노정환 일당이 내가 투자하려는 기업에 작업이 들어간 것일 거다.
노정환은 운이 없다.
하필 내가 투자하려는 사업체에, 나의 돈을 사기 치려 하다니.
황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주소 찍었던 빌라에 사람 더 붙여. 거기서 오고 가는 사람 한 명도 빠짐없이 조사하고 특히 ‘노정환’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