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미쉘의 주도하에 우리는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의자에 앉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창업할 아마존닷컴에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내 말을 들은 제프가 웃음을 터트리자 미쉘이 놀란 표정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하려고 하는 사업에 대해 이해는 하고 말하는 겁니까?”
제프의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이 당시 그가 다가갔던 투자자들이 그에게 건넨 첫 마디가 ‘인터넷이 무엇인가요?’였으니까.
아직 컴퓨터는 물론 인터넷 자체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입니다. 인터넷 서점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전자상거래를 하려는 것 아닙니까?”
제프의 동공이 커졌다.
지금은 ‘전자상거래’라는 말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을 때다.
단어 하나만으로 제프의 눈빛이 바뀌었다.
에릭이 나를 한번 쳐다보고 말했다.
“저희 대표님은 이미 주식투자로 크게 성공했어요. 한국은 물론, 크리스맨뱅크에도 투자해서 크게 이득을 봤죠.”
제프가 놀란 듯이 나를 쳐다봤다.
처분한 지 얼마 안 된 크리스맨뱅크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크게 알려졌었다.
주식 좀 한다 하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례적인 폭등을 한 주식을 미국도 아닌 한국에서 예측하고 성공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저희 아마존닷컴에 관심이 생긴 겁니까. 저희가 크리스맨뱅크처럼 될 것 같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프는 실망을 감추지 않고 고개를 떨궜다.
투자자들의 연이은 거절이 그의 자신감을 많이 낮췄을 것이다.
게다가 이 당시 제프의 아버지는 제프가 성공할 확률이 고작 30프로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니.
“크리스맨뱅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공할 것을 확신합니다.”
“네?”
“하하!”
미쉘과 에릭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제프는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반응하지 않고 제프의 두 눈을 응시했다.
내가 한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었는지 제프는 뻘쭘한 표정으로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침착하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크리스맨뱅크는 이번 성장으로 시가 총액만 1억 달러가 넘는 거대기업입니다. 아직 창업하지도 않은 아마존 닷컴이 그보다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마존닷컴이 성공한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들의 대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정보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제프를 설득하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저는 한국에서 400만 달러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1년도 되지 않은 사이에 주식으로 수천만 달러로 불렸어요. 그 불린 돈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택배회사를 창업하고 MP3 개발에 투자를 해서 성공했습니다. 크리스맨뱅크로 얻은 이득은 제 성공 중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제프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제프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아마존닷컴을 선택하고 싶네요.”
미쉘은 에릭에게 이게 전부 사실이냐고 물었다.
“다 사실이야. 대표님의 집안이 한국에서 재계서열 1위, 태선인 것은 맞지만 모든 투자는 대표님이 진행한 거야. 만약 태선의 투자를 받았더라면 지금쯤 상상할 수도 없는 재산을 갖고 있겠지.”
에릭의 말을 듣고 있던 제프가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이 유능한 투자자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하실 생각인가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번에 GB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를 미국에 세울 생각입니다. 법인을 통해 공식으로 투자하겠습니다. 투자금은 제프, 당신이 정하시면 됩니다.
저는 얼마든지 투자할 생각이 있어요.”
이미 미국에 법인까지 준비했다는 사실에 제프가 감탄했다.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강빈. 한 기업의 부사장 자리로 수년을 지냈지만 지금까지 당신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의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아직 아마존닷컴이 어떤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제 말만 믿고 이렇게까지 해주시려는 겁니까?”
“이유는 총 3가지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저 또한 인터넷 서점에 대한 전망이 밝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냥 제 직감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지막 이유는 당신에게 투자하는 금액은 제 재산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 투자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타격이 없습니다. 물론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내 마지막 말에 제프가 이번에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으로 저렇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이유군요. 저는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투자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지금 차고를 개조해서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시애틀 중심부에 사무실을 하나 구해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제 작은 성의일 뿐이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프는 1994년에 웹 사용자가 년마다 몇 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통계를 내고 사업을 구상한 천재적인 인물이다.
차고에서 아마존닷컴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냈던 제프가 환경까지 좋다면?
내가 사비를 줘가면서까지 제프의 사무실을 바꾼 이유는 조금이라도 제프의 성공을 앞당기기 위해서다.
이유를 알 리 없는 제프는 이제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경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쉘은 이런 인연을 가져다준 에릭이 고마웠는지 연신 에릭의 등을 쳐댔다.
제프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이 사업에 성공할 확률을 30퍼센트라고 점쳤습니다. 강빈은 제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확률은 있을 것 아닙니까?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제프가 아버지의 말에 트라우마가 있을 정도로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갖고 말했다.
“수익률로 따지면 십만 퍼센트 이상을 확신합니다.”
거짓말은 한 줌도 보태지 않고.
제프가 눈을 가리고 크게 웃어댔다.
“저는 당신이 정말 마음에 드네요.”
미쉘은 미소를 지으며 제프를 바라보았다..
전생에서 제프는 아마존의 직원을 뽑을 때 3가지의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나는 제프가 만약 그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제프. 제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하십시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웃음을 멈춘 제프가 인자하게 나를 바라봤다.
“제가 제프를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제프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프는 저를 존경할 수 있겠습니까?”
제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는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일하려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습니다. 서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내가 읽었던 책의 내용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제프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들으니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아마존닷컴의 5년 후는 어떨 것 같습니까?”
“한계를 정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창업할 회사는 시스템 내 정보의 불확실성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기준치는 계속해서 올라가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제 기준을 정하지 않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제프를 보며 이 질문들에 대해 이미 스스로 질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제프가 나에게 질문했다.
“강빈. 저는 100만 달러의 투자금을 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조건은 뭡니까?”
전생에서 제프는 22명의 투자자들에게 각각 5만 달러씩 110만 달러를 투자받고 20프로의 지분을 주었다.
나는 혼자서 지분을 독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액을 높였다.
“100만 달러를 전부 투자하겠습니다. 대신 지분 10프로를 원합니다.”
제프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만 같아서는 투자금을 올리고 지분을 더 받고 싶었지만 제프가 그것까지 허락할 일은 없다.
그 이상 내가 지분율을 차지하게 된다면 경영권에 있어서 불안하다고 느낄 것이다.
“계약은 GB인베스트먼트가 승인되면 곧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차용증을 쓰고 100만 달러는 미리 지급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시애틀 중심부의 사무실은 내일 같이 보러 다니시죠.”
제프와 미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들뜬 얼굴의 제프가 말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화를 끝내고 일어섰다.
에릭이 나를 따라 일어서려 하자 내가 어깨를 잡아 제지했다.
“에릭. 너는 여기서 회포를 좀 풀다 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잖아. 오늘은 나 혼자 충분해.”
에릭은 나를 혼자 호텔로 보내는 것이 미안했는지 잠시 고민을 했지만 이내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럼 오늘은 여기서 보내고 내일 뵐게요. 대표님.”
순수한 마음에서 에릭에게 자유시간을 준 것은 아니었다.
에릭도 이제 GB인베스트먼트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았다.
앞으로 제프는 세계적인 거물이 될 터, 그와 좋은 관계를 쌓는 것은 중요했다.
제프와 미쉘이 나를 문 앞까지 배웅해줬다.
전화로 부른 택시가 마침 집 앞에 도착했다.
“강빈. 오늘 당신을 만난 것이 나한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를 겁니다. 앞으로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행운이라면 그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택시를 탔다.
날은 아직 밝았고 할 일들이 쌓여 있었다.
***
제프는 택시가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곳을 바라봤다.
옆에 서 있던 미쉘이 말했다.
“정말 좋은 사람 같던데?”
“그래. 미쉘이 정말 좋은 친구를 둔 덕이야.”
둘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프가 미쉘에게 말했다.
“강빈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이 얘기하더군. 그리고 몇 퍼센트 확실하냐는 질문에 십만 퍼센트라고 답했을 때는 정말. 아버지가 한 말은 이제 기억도 안 날 것 같아.”
“그것참 다행이네.”
미쉘은 제프가 아버지에게 그 말을 들은 뒤로 얼마나 낙심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에릭이 기다리고 있어서 나는 먼저 들어갈게.”
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조금 더, 강빈이 사라진 곳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