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태선백화점에서 한 달 동안 시행했던 GB택배는 성공적이었다.
백화점에서 산 물건을 지방까지도 배달해줬으니 편리함을 알게 된 사람들은 택배에 열광했다.
태선백화점과 교류가 있던 기업과 개인사업자들의 문의가 쇄도했고, GB택배를 이용한 사람의 인터뷰가 기사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전화를 받은 황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대표님. 주문이 만이천 건이 넘게 들어왔습니다!”
황비서한테 GB택배 안에서 대표라고 부르라고 했다.
태선증권과 GB택배 일을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호칭을 구분하지 않으면 혼선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 이천 건이라.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주문이 들어왔다.
주문이 많이 들어 온 이유 중 하나가 남순의 홍보였다.
태선백화점 9개 지점 전부 광고판에 GB택배가 나왔고, 택배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입문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서로 윈윈하는 사업이지만 남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GB택배의 사무실은 태선증권과 다섯 블록 떨어진 곳을 임대했다.
회의실 안에는 운송 관련 업계에서 영입한 부장들이 앉아 있었다.
“관리부장님은 백화점 물품 중에서도 화장품이나 가전 쪽은 포장 더 신경써서 봐주세요. 물품이 훼손되면 저희가 다 변상해야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화장품과 가전제품은 따로 분류해서 포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옆에서 황비서가 서류를 내밀자 괜찮다고 말했다.
이미 생각이 정리된 것들이기 때문에 굳이 볼 필요 없었다.
“배차정보관리팀은 차량 관리 철저히 해주시고, 물품이 많다고 과도하게 하시면 안 됩니다. 차량이 부족하면 한아모터스의 김팀장한테 연락하세요. 미리 얘기했으니까 금방 처리될 겁니다.”
“네. 전에 말씀하신 차량별 수익성에 대한 보고서는 오늘 중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실제 차량 운전자들에게는 지정한 지역을 지날 때마다 보고하라고 하세요. 물건이 어디 쯤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할 겁니다. 이상입니다. 건의 사항 있으면 황비서한테 직접 하시면 됩니다.”
각 부장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이미 운송업 관련 전문가들을 뽑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지시해도 잘 처리했다.
옆에는 황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왜 그래?’
“본부장님이 투자 일도 아니고 사업, 경영 분야로도 이렇게 능숙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렇게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야. 증권사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실제로 택배사에 투자한 적이 있었다.
무리한 노동과 과도한 작업환경이 알려지면서 손해를 봤지만.
“태선백화점 매출변화는 어떻게 됐어?”
“작년 이맘때와 비교했을 때 15프로 상승했습니다. 지난달에 비하면 25프로 상승이구요. 이실장님이 서남순 사장님이 꼭 전화 달라고 했다고 전해주라고 했습니다.”
“고모님께 내가 오늘 중으로 전화하지.”
태선백화점 정도 되는 곳에서 이 정도의 매출 상승은 이례적일 것이다.
첫날 주문 건도 그렇고 기대했던 것보다 순항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부장들 건의사항 들어오는 거 있으면 웬만하면 다 수용해. 확실한 이유 없이 건의할 사람들은 아니야. 그리고 작업환경 늘 점검하고, 노동자도 상태 체크 하라고 전해.”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다음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남순이었다.
“얘는 전화하기 왜 이렇게 어렵니. 너도 들었지? 매출 오른 거.”
목소리만 들어도 남순은 들떠 있었다.
하긴, 이 정도 매출 상승은 쉽게 경험해보지 못하는 거니까.
“네. 저도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고모.”
“얘는, 뭘. 호호. 다 네 덕분이지.”
“아니에요. 고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홍보를 잘해주셔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거죠. 그리고 태선백화점의 매출이 오른 만큼 GB택배도 이익을 보는 거구요. 제가 더 감사해요.”
수화기 너머로 남순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네가 큰일 했으니까 다음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해. 내가 전폭적으로 도와줄게.
그리고 나는 네 할머니가 진짜 내 엄마라고 생각해. 너도 내 조카 같고. 앞으로도 잘해보자!”
“알겠어요. 고모. 푹 쉬세요.”
이제 남순에게는 확실히 인정을 받았다.
어쩌면 GB택배로 본 이득보다 남순의 인정이 더 좋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
정순은 당연하게도 택배 서비스에 대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일단 일본과 우리나라의 정서가 다르다고 생각했고 강빈에게 말했듯 태선호텔에서 이미 하고 있던 서비스이기도 했다.
그런데…
“태선백화점에서 택배 서비스를 시행한 이후 한 달 매출이 15프로가 늘었다고 합니다.”
비서실장이 내민 종이에는 그것이 진실임을 확인시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런 게 통할 리 없어. 다른 명품 브랜드를 런칭했다든가 했겠지.”
“사실 프랑스 유명 브랜드인 쉴레가 이번에 태선백화점에 입점하긴 했는데… 워낙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던 제품이라 저희 쪽에도 반응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기존에 있다가 이번에 나가게 된 영국의 드망보다 매출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비서실장의 말에도 정순은 믿을 수 없었다.
강빈이 마지막으로 하고 갔던 말이 떠올랐다.
‘후회하게 될 겁니다.’
강빈이 성공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사업가로서 배포는 있다고 생각했다.
정순 또한 사업가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결과가 정순은 아예 틀렸고 강빈이 맞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15프로라니… 그리고 1년도 아닌 한 달이다.
게다가 택배 서비스는 이제 막 시작하지 않았는가.
이 정도의 성장력이 뒷받침한다면 태선백화점이 1위의 자리를 되찾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그리고 GB택배가 사업 첫날 만이천 건의 주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만이천? 확실해?”
“확실합니다. 사실 미집계된 것도 합치면 얼마나 더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입에서 쓴맛이 났다.
안 그래도 진태가 강빈을 지켜보겠다고 했는데.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위로는 오빠들이 많고 밑으로는 여동생이 있다.
위에서는 정순을 누르고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통에 정순은 늘 치열하게 살아왔다.
급한 마음에 무리하게 호텔을 확장했다.
초반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곧 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독식하던 호텔 시장에 다른 경쟁사들이 들어섰다.
무리한 확장에도 1위를 지키던 태선호텔은 여러 경쟁사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금방 넘길 줄 알았던 손익분기점은 날이 갈수록 늦춰졌다.
정순은 단지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사업을 보는 자신의 눈은 정확했다고 믿었다.
진태의 생일날 들었던 강빈의 주식 성과는 그저 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빈은 그런 자신에게 반박이라도 하듯, 주식에 이어 택배까지 연이어 성공해냈다.
덕분에 남순도 이득을 봤고.
막내딸이라는 이유로 진태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남순이 이 일로 얼마나 기고만장해질까.
지금이라도 강빈에게 같이하자고 손을 내밀까.
거절하면 어떡하지?
자존심에 전화기로 손이 가지 않았다.
***
진태는 경호원들과 함께 태선백화점을 방문했다.
“회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연락을 주셨으면 미리 나가 있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비서실장이 입구에서 진태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아닐세. 어떻게 굴러가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어.”
진태는 당황하는 비서실장을 그대로 지나쳤다.
멀어지는 진태를 보며 비서실장은 서둘러 남순에게 전화했다.
진태를 둘러싼 경호원들이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통과했다.
길을 방해하는 그 무리를 보고 사람들은 눈을 흘겼지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진태는 종종 태선백화점을 방문했지만, 이렇게 북적거리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매출이 크게 상승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사실인 것 같다.
두 명의 경호원만 대동한 진태는 백화점 한쪽에 배치된 vip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남순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아빠! 연락 좀 하고 오시라니까. 이게 대체 몇 번째예요?”
“허허. 딸 얼굴 보는 데 굳이 연락이 필요하냐.”
“일단 안으로 모실게요.”
진태는 다른 남매들과 다르게 남순을 유독 아꼈다.
전 아내였던 옥희의 마지막 자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남순에겐 진태조차 편안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태선백화점을 잘 이끌어나가는 모습은 진태를 흡족하게 했다.
남순이 앞장서서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집무실에 들어가자 진태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남순은 다반을 직접 갖고 와 진태 앞에 앉았다.
“바쁘실 텐데 왜 오셨어요?”
“매출이 크게 상승했다는 것을 들었다. 자식의 일을 칭찬하는 것도 아비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남순도 진태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진태는 자식의 개인적인 일에는 무심하지만 그들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들의 상황은 꿰뚫어 보듯 알고 있었다.
남순이 진태에게 차를 우리며 말했다.
“네. 그리고 아직도 상승 중이에요. 강빈이가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냈거든요.”
진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빈이 택배 사업도 순항하고 있더구나.”
“네. 강빈이가 이곳을 찾아왔을 때 예사롭지 않더라구요.”
진태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강빈이가 직접? 네가 움직인 게 아니란 말이지.”
“네. 택배 사업을 백화점에 어떻게 융화할지, 유통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세세하게 보고서까지 짜서 왔어요. 이전의 강빈이가 아니더라구요.”
남순은 강빈의 공을 굳이 자신에게 돌리려 하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남순의 이런 점이 진태가 남순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놈이 비범하긴 한 것 같다만.”
진태는 자신의 서재에서 들었던 강빈의 포부가 생각났다.
그때도 강빈은 확신에 찬 눈으로 자신을 설득했었다.
남순도 분명 그런 강빈을 보고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조만간 강빈이를 다시 불러봐야겠어.’
***
에릭은 크리스맨뱅크에 대한 투자가 끝나고 지금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때문에 에릭은 남는 시간 GB택배로 출근하며 강빈의 일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강빈은 유명인사였다.
휴학을 신청하러 갔던 학교에서 친구에게 태선증권의 본부장과 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태선증권? 혹시 그 사람 서강빈아니야?”
“맞는데, 왜?”
“야, 이 미친. 서강빈 또라이로 유명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연예 기사도 보라 했잖아. 서강빈이 사고 친 게 한두 개가 아닌데. 강남 나이트클럽에서 서강빈 모르면 간첩이야.”
“그 정도야? 같이 있을 때 그런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어휴, 이 순둥아. 너도 뭐 당할지 몰라. 빨리 도망쳐.”
그러나 친구의 말은 틀렸다.
강빈은 정말 착실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유흥가를 가기는커녕 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투자에 대해선 과감하고 빠르게 옳은 판단을 했고, 택배 사업을 할 때는 수십 년간 한 기업의 오너였던 사람처럼 능숙하게 일 처리를 했다.
쌓여 있는 서류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업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양이었다.
그 서류들을 순식간에 처리해내는 것을 보고 에릭은 감탄했다.
계속해서 갱신되는 성과표는 GB택배의 성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운송장만 해도 엄청 쌓여 있었지.”
게다가 강빈의 말이 맞았다.
크리스맨뱅크의 주가는 벌써 미친 듯이 폭등하고 있었다.
미국은 상한가가 없기 때문에 오르기만 한다면 주가 상승률이 한국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수익금의 1프로를 보수로 받기로 했으니…
“단기간의 이만큼의 수익이 가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