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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4화 (4/249)

#4화

“네, 안녕하십니까! 한아모터스 팀장 김진환입니다.”

전화를 받은 목소리는 쾌활했다.

“네. 슈퍼카 3대를 판매하기로 한 서강빈입니다.”

김팀장은 반갑다는 듯 청승을 떨었다.

“아, 그분이시구나! 안 그래도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댁에 방문일정을 잡으려고 하는데…”

“방문은 필요 없습니다. 상태는 보고 갔다고 하던데?”

슈퍼카 3대의 상태는 모두 최고였다.

서강빈이 차를 한 번이라도 탔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까.

“아… 나쁘지 않았습니다! 중상 수준 정도는 되더군요.”

아무래도 작정하고 호구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목소리를 깔았다.

“최상 아닌가요? 아니면 팔았을 때 하자가 있었던가.”

“네? 그게 무슨… 아! 일시불로 포르쉐를 사셨다는…?”

황비서가 갖고 온 자료에 따르면 서강빈의 포르쉐는 한아모터스에서 구입했다.

서강빈, 이 돈만 남아도는 망나니 자식은 역시 할부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김팀장은 당황한 듯 횡설수설하기 시작하자 내가 말을 끊었다.

“김팀장님.”

“아, 네!”

“저는 세 대 다 해서 13억 5천만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하는 생각도 안 해봤구요.”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 많던 김팀장이 말을 잃고 정적이 찾아왔다.

황비서는 나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팀장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사장님께서 중고차 가격을 착각하셨나 보네요.”

‘중고차’라는 단어에 힘이 들어갔다.

같잖은 상술에 웃음이 나왔다.

“중고의 뜻이 뭡니까?”

“네? 이미 사용했다는 뜻 아닙니까…?”

낌새가 이상했음을 느꼈는지 김팀장의 말투가 조심스러워졌다.

“그럼 김팀장님이 봤을 때 제 차들이 중고차라는 말입니까?”

“그, 그야 물론…”

서강빈의 슈퍼카들은 수집품에 가까웠다.

그것도 매장에 있을 때보다 관리가 훨씬 잘 돼 있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김팀장은 정적을 참을 수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럼 사장님… 혹시 차마다 가격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포르쉐는 3억 천만 원 생각하고 있습니다.”

“포르쉐 959는 출고가만 2억 4천만 원입니다만…”

김팀장이 당황했다는 듯 말끝을 흐렸지만, 내가 부른 시세는 정확한 것이었다.

서강빈의 슈퍼카들은 전시용으로도 상태가 아주 좋았고,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한정판 프리미엄이 붙은 상태였다.

지금 시세로 3억 천만 원인 것이지, 앞으로 얼마나 더 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부가티는 4억 2천만 원. 재규어는 5억 2천만 원 생각하고 있어요. 그 이하로는 팔지 않을 생각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김팀장의 신음이 들렸다.

구체적인 값을 불렀기 때문에 김팀장도 내가 이미 정확한 시세와 가치를 알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들도 그 가치를 아는지 김팀장의 고민은 오래되지 않았다.

“조… 조금만 낮춰주시면 생각해보겠습니다.”

결국 김팀장 쪽에서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방금 13억 6천으로 올랐습니다.”

“사장님! 잠깐만요. 우리 대화는 좀 나누고!”

김팀장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13억 7천.”

내가 부른 가격에 사더라도 한아모터스 측에 손해는 아니었다.

슈퍼카들을 매장에 전시하는 것만으로 큰 손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으니까.

김팀장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13억 8…”

“잠시만요! 잠깐만 기다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정도 큰 건은 대표님과 상의를 해야 합니다…”

“네. 하지만 그사이에도 제 금 같은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14억.”

급하게 대표를 찾아가는지 전화기 너머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에 들려온 김팀장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14억 원에… 사겠습니다. 그 이상은 안 됩니다.”

내가 또 가격을 올릴 것을 알았는지 김팀장은 곧바로 14억 원을 불렀다.

하긴 눈칫밥으로 일하는 사람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계약은 태선증권 본부장실에서 하겠습니다.”

처음과 다르게 기계적으로 말하는 김팀장은 어딘가 넋이 나간 듯했다.

황비서는 동공이 커진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본부장님은 대체…”

“그것보다 황비서. 지난번에 시켜둔 투자처 조사는. 아직 안 됐나? 시드머니는 확보됐으니까 투자 시작해야지.”

황비서는 큰 거래를 성공하고도 반응이 없는 나를 보고 당황한 듯했다.

“아, 네! 오늘 내로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쉬시는 동안 준비하겠습니다.”

“쉴 시간이 어디 있어. 나는 회사로 돌아가 업무를 볼 테니 다녀와.”

“네. 다녀오겠습니다.”

서강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해서일까, 황비서의 얼굴엔 기대감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

태풍 ‘로빈’으로 인한 사망과 실종자가 6명이라는 신문을 읽었다.

강빈으로 새 삶을 시작한 뒤 미래는 변하지 않고 흘러갔다.

앞으로의 일들도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그대로 일어날 것이다.

신문을 다 읽고 미래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황비서였다.

“투자처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할까요?”

“그래 주면 고맙지. 앉아서 해.”

황비서는 조금 긴장한 듯한 얼굴로 서류를 읽어나갔다.

“첫 번째로 호만제강은 와이어로프, 합성섬유로프, 특수강선 제조, 수출, 임대 사업을 하는 곳입니다. 신소재를 개발하면서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 큰 성과는 없는 상황입니다.”

황비서의 말대로 호만제강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곧 호만제강이 보유한 창원, 부산, 양산 등지의 부동산 가격이 재평가받기 시작하며 주가는 급등하기 시작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뒤로 바닥을 치는 것이 문제지만, 나는 떨어질 시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전에 팔아치우면 된다.

“두 번째, 선한기업은 국내 최초의 합판수출회사로 일반합판·가공합판, 제재목, 합판접착제용 포르말린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빼면 투자가치는 크지 않아 보였습니다.”

선한기업은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 때문에 오르는 기업이 아니다.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선한기업은 중국쪽 거대기업과의 계약과 공장부지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상한가가 전생보다 더 낮은 시대긴 하지만 2주는 연속해서 상한가를 기록했던 기업이었다.

중국 기업들과 계약을 마친 뒤 실제 가치보다 기대감이 올라가서 치고 나갈 것이다.

“세 번째, 성찬 산업은 합판, 가정용가구, MDF, 제재목, 하드보드를 제조를 하는 곳입니다. 주수익을 이루는 합판과 제재목만으로는 매출 이익의 한계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성찬산업의 정호종 회장은 올해 새로운 공장을 지을 것을 검토하라 지시를 내린다.

그 계획은 무산되지만 새로운 공장이 들어선다는 기대감에 주가가 크게 올랐었다.

계획이 무산되기 전에 매도를 해야되므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인 태향건설은 토목과 건축면허를 통해 전기공 사업, 군납업 면허를 통해 관급 공사를 맡아 온 곳입니다. 주가는 몇 년째 큰 변동 없습니다.”

태향건설은 지금 투자할 네 종목 중 가장 빨리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정부의 케이블업체로 선정이 될 텐데, 그 발표가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황비서가 조사해온 자료들을 보며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외에 자세한 사항은 다음 장에 있습니다.”

“고생했어. 검토는 내가 할게. 황비서는 먼저 퇴근해.”

“아직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3시도 되지 않았는데 일을 끝낸 황비서가 대단한 거야. 그리고 이 조사는 회사가 아니라 내 개인적인 일이었으니 따로 추가수당 넣었어.”

“그래도… ”

나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황비서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결국 일어났다.

“내일 뵙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

나를 쳐다보는 황비서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런 것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에겐 ‘미래의 지식’이라는 현물이 있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는 것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황비서가 전달한 서류를 끝까지 몇 번이고 읽었다.

미래를 온전히 알고 있다 한들, 다른 변수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선 계좌에 있는 돈이 13억.

차를 판 돈이 14억, 총 27억 원이다.

우선 5억씩 네 종목에 넣고, 남은 7억 원을 투자할 곳은 따로 있다.

***

처음 며칠 출근하는 모습에 당황해하던 직원들은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하게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본부장님.”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았다.

사무실 한쪽에 걸려 있는 달력에 날짜가 보였다.

1993년 8월 27일 금요일.

벌써 서강빈의 몸으로 산 지 2주가 흘렀다.

1993년은 부산 출신,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자산주 바람이 불었던 해이다.

부산의 공장에서 시작했던 호만제강은 그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나아갔다.

황비서를 시켜 만 9천 원에서 매수를 시작했고 지금은 2만 원 초반대였다.

분할매수가 끝날 때까지 큰 이변은 없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주가가 변동되는 것은 아마 다음 달에 개발 중이던 신소재가 올해 안에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표 이후다.

그 이후 주가는 폭등하다가 내년에 정점을 찍고 65프로까지 폭락하게 된다.

나는 다음 투자를 하기 위해서 정점을 찍기 전에 처분할 계획이었다.

물론 폭락은 나와 관계없는 일이다.

매수한 종목들 가운데 가장 기대가 되는 곳은 태향건설이었다.

곧 정부의 케이블TV 업체 선정이 발표될 것이다.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해 제일 먼저 분할매수를 마친 곳이기도 했다.

태향건설이 케이블TV 업체에 선정되고 지방 민영방송국이 허용되면서 태향건설의 주가는 미친 듯이 폭등하게 된다.

아마 다음 달이면 지금 만 8천 원인 주가가 8만 원 선을 뚫을 것이다. 단기간에 이렇게 오르는 주식은 손에 꼽기 때문에 기억이 선명했다.

선한기업은 어제 중국 쪽 최대 조선기업과 계약을 끝내고 이미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몇 달 뒤, 내리막길을 타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성찬산업은 이미 공장부지 확보를 끝냈다고 발표했고, 이번 주 내로 승인만 받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황비서, 민성산업에 대해 알아 와.”

“네. 본부장님.”

황비서 역시 나에게 적응한 건지 서둘러 지시사항을 처리하러 나갔다.

민성산업은 네 종목에 투자하고 남은 7억을 투자할 곳이다.

민성산업은 호만제강과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시작한 공장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민성산업이 대통령과 결탁했다는 루머가 돌았었다.

짧은 기간, 민성산업의 주가가 부풀려졌고, 얼마 뒤 루머는 허위라고 밝혀지며 사건이 끝난다.

루머의 주모자가 민성산업 소속의 직원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민성산업은 상장폐지 직전까지 갔다.

전국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었어서 당시 눈여겨봤었다.

사실 민성산업은 전생의 나라면 알고도 건드리지 않았을 종목이었다.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각종 루머와 허위 사실로 부풀려진 종목들에 쓸려나가는 개미들을 봐왔기 때문.

증권사의 대표로서, 한 사람의 금융인으로서 개미들이 피를 보는 종목에 투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왔기에 강현재는 죽었다.

이 종목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는 지금,

나는 민성산업의 투자할 것이다.

들썩이는 정치 테마주, 누군가는 돈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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