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2화 (2/249)

#2화

온기가 느껴졌다.

손가락에는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내 얼굴을 덮고 있는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잘 쉬어지지 않는다?’

나는 분명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는데…

물이 코와 입으로 들어가고 바다와 하나가 되는 것 같은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몸이 움직이지? 말도 나오고…”

팔은 자유롭게 움직였고 발도 가벼웠다.

손가락을 움직여보고 몸을 만졌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체온은 분명 죽은 이의 것은 아니었다.

얼굴까지 덮여있는 이불을 조금 내리자 눈이 부셨다.

커다란 통유리를 햇살이 투과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누군가의 방인 것 같았다.

한 사람의 방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넓긴 하지만.

지금 누워있는 침대만 해도 킹사이즈를 넘어서 라지 킹사이즈는 되어 보였다.

엔틱한 느낌의 스탠드는 고급스러워 보였고,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는 미니 슈퍼카들은 실제의 것을 그대로 축소한 것처럼 정교했다.

햇살이 투과하는 한쪽 벽면은 전체가 유리로만 되어 있었다.

유리를 통해 보이는 밖은 쾌청했다.

널찍한 잔디밭과 그 가운데에 작은 호수가 보였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망망대해에서 누군가 나를 구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호화스러운 방이라니.

침대에서 내려오고 방을 거닐었다.

호랑이와 난이 그려진 고풍스러운 그림이 한쪽 벽면에 걸려 있었다.

백색으로 마감된 고급스러운 자기들이 줄지어 있었고, 황토색 베이스의 카펫이 바닥을 덮고 있었다.

화려하지만 촌스러운 커튼의 무늬는 옛 느낌이 났다.

전체적인 디자인을 보면 노년의 방 같았다.

문 옆에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액자 안에는 족히 30명은 될 것 같은 사람들의 단체 사진이 들어있었다.

구석에 작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의 생신을 기념하며.’

입고 있는 옷들이나 기품을 볼 때 꽤나 잘 사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어?”

사진 속 중앙에 있는 노년의 남자는 낯이 익었다.

언젠가 본 것 같은데… 떠오를 듯 말 듯, 아무리 고민을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선을 돌리자 금테가 둘린 전신 거울이 있었다.

그리고 거울에는…

전혀 나와 닮지 않은 남자가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앳되어 보이지만 얼굴선이 날렵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강렬한 인상이었다.

거울 안에 남자는 경직된 표정을 풀고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까지, 완전히 나를 따라 하고 있었다.

“...?”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나는 바다에서 죽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그것도 아기가 아닌 다 자란 청년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아까 봤던 사진 속 구석에 있던 남자와 닮은 것 같다.

액자를 다시 확인해 보니… 맞았다.

내가 저 사진 속 인물이 맞다면 나는 저 대가족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는 지갑이 놓여 있었다.

지갑을 열자 다행히 신분증과 명함이 들어있었다.

[태선증권 본부장 서강빈]

“잠깐, 태선증권의 서강빈?”

실물은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지만, 소문으로 들어봤고, 그를 모티브로 한 영화만 두어 개쯤 본 것 같다.

여자와 술을 좋아하는 재벌가 망나니.

그렇다면 아까 봤던 액자 속 사진 중간에 있는 사람은 태선그룹의 총수, 서진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젊은 모습이었지만.

“...”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확신이 들었다.

“...태선 그룹에서 다시 태어났다.”

재벌이 된 거다.

그것도 세계를 호령하는 태선그룹의 막내 손자로 말이다.

***

우리나라에서 태선그룹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식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던 대한민국 개미들이라면 대부분 태선물산의 몇 주씩은 들고 있었다.

내가 대표로 있던 성공투자증권에서도 태선그룹 계열사들의 지분이 꽤 있었다.

그 때문에 내 발언에도 힘이 실렸다.

내가 죽게 된 원인도 여기에 있었지만.

태선그룹은 보부상의 딸이었던 이옥희와 서진태의 결혼으로 시작된다.

옥희는 거류지 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평양에서 제일가는 자산가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후에 진태는 옥희와의 결혼을 단순한 연애 결혼이라고 자서전에 적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알았다.

진태가 결혼한 이유는 옥희의 집안 때문이라는 것을.

그에게 결혼 또한 하나의 사업이었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진태는 옥희 집안의 부를 이용해 1930년대 중반에 진태산업을 창립했다.

일제 강점기였지만 장인어른이 거류지 무역을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진태 또한 발을 걸칠 수 있었다.

진태는 개항장에서 몇 달을 머물며 외국인들을 상대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냈다.

한과 사업이 그 시작이었다.

이 당시 한국은 설탕이 조청보다 더 비싼 나라였다.

진태는 대만에서 사탕수수를 싸게 수입해와서 한과를 만들었다.

양반들만 주로 즐기던 한과를 값싼 가격에 먹을 수 있게 된 서민들은 열광했고, 서구권에서도 당도를 높인 한과가 인기가 좋았다.

설탕 사업을 성공한 진태는 한국에 없는 것들을 발 벗고 찾아 나섰다.

그런 그에게 옥희는 근대식 건축물을 짓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옥희는 어렸을 때부터 장인어른을 따라 수많은 나라를 오가며 다양한 건물 양식을 독학했었다.

옥희의 도움으로 그가 지은 건물은 짓자마자 매각되었고 얼마간 수요가 공급을 넘어섰다.

그에게 건축을 의뢰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조금씩 자금을 풀던 장인어른은 진태의 연이은 사업 성공을 보더니 전폭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든든한 자금줄을 확보한 진태는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저돌적인 사업가의 면모와 기지를 가진 그에게 자본까지 생겨나자 회사는 순식간에 커졌다.

진태산업이 대성한 이유는 천운(天運)과 든든한 뒷배가 있었겠지만 진태의 뛰어난 사업수완과 몇 수는 앞서 보는 날 선 감각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진태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진태는 기업명을 태선물산으로 바꿨다.

그러나 커져가는 회사와 달리 옥희의 마음을 살피진 못했던 모양이다.

옥희는 우울증을 앓았고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

20대 후반에 다섯 번째 자식인 서남순을 낳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진태는 둘째 부인으로 김순례를 맞이한다.

그렇게 낳은 여섯 번째 자식이 서준만, 바로 서강빈의 아버지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진태는 계열사를 하나씩 물려주었다.

태선그룹에서 가장 큰 기업인 태선전자는 첫째, 재만이 물려받았고, 나머지 네 명의 자식들이 남은 기업들을 하나씩 차지했다.

그리고 막내인 준만은 태선물산에 인수된 태형투자금융을 받았고, 이후 태선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독립했다.

시선을 돌리자 문 옆에는 투박한 프로젝션 TV가 배치되어 있었다.

침대 옆 서랍 위에 놓인 리모컨을 들었다.

TV를 켜자 투박한 화질로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는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헌법 제 76조 1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합니다.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금융실명제?”

금융실명제라면 금융거래를 할 때 반드시 실명임을 확인한 후에만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실명제 발표 이전에는 가명과 익명으로도 금융거래가 성행했었다.

그것보다 금융실명제를 오늘 발표했다면 지금이… 1993년도라는 소리다.

정확한 날짜까지 기억하지는 못해도 1993년 8월에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었던 것은 알고 있었다.

한창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였고, 대학교 안에서도 금융실명제에 관해 활발한 토론이 일어났을 때니까.

금융실명제 초기에는 주가 전체가 크게 하락하지만 금방 복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낙폭을 겪지 못했던 증권사들은 해결방안을 모색하느라 난리가 났었다.

태선증권의 사장인 준만도 지금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전생에 주식투자의 선두주자였다.

빠르게 정보를 캐치해내고 그것을 선별해내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지금은 금융실명제로 주가가 폭락할 시기다.

오늘 발표를 했으니 주식시장은 내일부터 지옥이 펼쳐진다.

바닥을 치는 주식들이 넘쳐나고 문의는 쉴새 없이 들어올 것이다.

남들에게는 불행이겠지만 나에게 지금보다 좋은 시기는 없다.

게다가 나는 지금 재벌가의 핏줄이 되었다.

출발선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물며 미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강한 무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서범준…

사진 속에 웃고 있는 그놈을 바라봤다.

나를 바닷속으로 밀어버린 그 개새끼.

“아마 나를 죽이고 결국 왕관을 거머쥐었겠지.”

나를 제외한 증권사들은 이미 긍정적인 의견을 보냈었으니, 이제 걸림돌은 없었을 것이다.

청문회는 참고인이 등장하지 않았으니, 자기들 입맛대로 끝냈을 테고. 태선그룹은 범준이 차지했을 것이다.

비참하다.

그러나 이 감정은 우선 전생의 강현재에게 묻어둘 것이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펜을 들었다.

‘앞으로 일어날 거대한 사건과 좋은 투자처들… 무조건 기억해낸다.’

미친 듯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써내려 갔다.

***

달라진 거리의 풍경이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앙분리대가 없는 고속도로에서는 추월하거나 난폭한 운전자들이 많았고,

출근길 차가 막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여기가 태선증권사입니다.”

“네. 여기서 내려주세요.”

서강빈의 지갑에는 현금이 두툼하게 들어있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올 수 있었다.

요금을 정산하고 눈앞에 있는 건물을 올려다봤다.

태선증권의 건물은 1993년도에 맞지 않게 세련됐다.

흰색으로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었고, 코앞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태선그룹 안에서는 재계 서열이 가장 낮다지만, 역시 태선은 태선이었다.

“웬일로 회사에 나왔지?”

“그러게. 그 서본부장이….”

“쉿, 들린다.”

태선증권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다.

서강빈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멈춰서 수군거렸던 사람들을 쳐다 보니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좋, 좋은 아침입니다! 본부장님.”

평소 얼마나 지랄을 했었는지 단지 출근했을 뿐인데 직원들이 눈치를 봤다.

눈웃음을 짓고 자리를 떠나자 직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뭉툭한 CRT 모니터가 90년대라는 것을 방증했다.

직원들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거나 전화기를 들고 말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옛 전화기들이 쉴새 없이 울려댔다.

다양한 외국어들이 들렸다.

“先生, 您千萬不能錯過這個機會(선생님,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발음을 봐서는 중국보다는 대만에 가까웠다.

“Nos pondremos en contacto contigo mañana en el lugar que mencionaste(내일 말씀하신 곳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쪽은 확실히 스페인이다.

다른 외국어들도 간간이 들렸다.

이전 증권사에서 일하며 얕게라도 많은 나라들의 언어들을 배워두었기 때문에 간단한 말들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시기의 태선증권은 기반이 부실할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태선은 태선인지 생각보다 체계가 잘 잡혀 있었다.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남자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한참 뛰었는지 그는 헉헉 숨을 고르며 물었다.

“본부장님, 어쩐 일로…?”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집무실로 안내해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