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잃고 재벌로 시작하기-1화 (1/249)

#1화

“강현재, 이 미친 새끼… 너 제정신이냐?”

“제가 싫으면 직접 대표 하지 그러셨습니까. 장이사님. 저는 제 소신껏 의견 보냈을 뿐입니다.”

내 면전에서 욕하고 있는 사람은 장필준 이사다.

대표실에 쳐들어와서 소리를 칠 만큼의 권력이 있는 양반.

등받이를 눕혀 기댔다.

심드렁하게 보여야 저렇게 열을 토하다 그냥 갈 것이다.

청문회가 있는 오늘, 장이사가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아직은 청문회에 대해 모르는 거 같긴 하지만.

“우리 빼고 다른 증권사들 싹 다 긍정으로 의견 냈어! 네가 뭔데 내 앞길을 막아!”

“제 의견 하나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는 게 대표입니까? 눈치 보면서 더러운 일에 관여하려고 그동안 노력해 온 거 아닙니다.”

성공투자증권의 실권을 쥔 장이사가 이렇게까지 화가 난 이유는 내가 태선그룹의 합병 건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냈기 때문이다.

태선(太善).

자본총액 기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기업 평가 요소의 모든 영역에서 2위 그룹과 압도적인 격차를 내는 그룹.

건설, 중공업, 전자, 금융. 어느 것 하나 뒤떨어지지 않는, 한국 최대의 기업이자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업이었다.

그런 태선그룹의 2대 회장인 서재만이 불과 몇 년 전, 갑작스레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의 장남인 서범준은 그 틈을 노려 태선그룹을 집어삼키려는 계획을 짰다.

먼저 주가 조작을 통하여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기업, 태선패션의 주가를 높였고 태선그룹의 태선물산과 합병을 통해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승계하려고 했다.

합병의 정당성.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태선그룹은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에 긍정적인 의견을 보낼 것을 강요했다.

16개의 증권사 리서치센터 중 15곳에서 긍정적인 의견을 보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신념 혹은 양심은 ‘태선’이라는 이름에 짓눌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내가 보낸 의견을 수정하지 않았다.

‘태선그룹의 무리한 합병 계획안은 태선 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못하다.’

한 곳의 의견 따위야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한 곳만이 반대를 했기 때문에 내 의견은 주목받았다.

“이 새끼가! 그러고도 대표자리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발로는 못 내려갑니다. 주총 열고 절차 밟으세요. 아, 그리고 새끼가 뭡니까. 새끼가. 아무리 그래도 대표한테.”

장이사의 얼굴은 새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해 벽을 한 번 발로 차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태선물산과 태선패션의 합병에 온갖 비도덕적인 행위가 있음을 모르는 증권맨은 없었다.

매 분기 우상향을 찍는 태선물산과 상장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태선패션의 합병?

그 와중에 서범준이 챙긴 지분만 무려 40프로다.

길 가던 꼬마 한 명 붙잡고 물어봐도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태선그룹은 이런 일을 대놓고 진행하고 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는 듯이…

태선패션의 주가는 뻥튀기되었고 태선물산이 짓고 있던 아파트는 부실공사라는 명목으로 공사를 멈췄다.

당연히 주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거세게 반발했다.

태선물산의 주가를 낮추려고 시도한 정황까지 밝혀지면서 합병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회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자 청문회가 열렸다.

나랏밥 먹는 놈들조차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 비리에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합병에 반대한 성공투자증권의 대표로서, 참고인 자격으로 가게 되었다.

청문회가 열린다고 해서 이 모든 사건이 일단락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태선물산 주식이 얼만데… 시발놈들이.”

도둑놈이 단지 힘이 세다고 내 돈을 빼앗으려 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재계 윗대가리들은 내가 청문회에 출석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청문회라도 불출석하는 게… 일단은 좋지 않겠나?”

한 증권사의 대표가 나한테 권유했고,

“강대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회사로 찾아온 태선그룹의 사람은 강압적이었고,

“너 뒤지고 싶어?”

새벽에 걸려온 누군가의 전화는 협박이었다.

저런 말로 포기하기에는 내가 살아온 삶이 너무 아까웠다.

내 유년 시절은 밑바닥에 있었다.

밤마다 찾아오는 사채업자들과 덕지덕지 붙은 빨간 딱지들.

그 속에서 나는 악착같이 버텼다.

17살 때 집을 나왔고 후회는 없었다.

가족은 내 버팀목이 아니라 나를 가둔 새장이었으니까.

학교를 그만두고 막노동을 해야 했지만 공부는 놓지 않았다.

머리가 뛰어났는지, 성공에 대한 집념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대학교에 수석 입학을 했다.

그 뒤로도 장학금을 위해서 수석을 놓칠 수 없었다.

그것만이 돈도 없고, 인맥도 없고, 빽도 없는 자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체없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재계 서열 1위라는 태선그룹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내가 선택한 곳은 성공투자증권이었다.

대표에 전문경영인을 쓰면서 인사에 실력만을 따지는 곳이라고 들었다.

이곳이라면 노력으로 성공도 거머쥘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노력만으로 이 자리에 올라온 사람은 제물로 쓰기에 딱 좋다.

정직하게 살아왔다.

남들은 쉽게 받아들이는 부당한 일들은 모조리 거절했고, 그 흔한 청탁 하나 들어주지 않았다.

증권사를 향한 충성도 아니었고, 다른 개미들에 대한 신의 같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 자신은 피를 토하게 되어 있다.

모순적으로 정직했기 때문에, 주변이 갈려 나갈 때 나 혼자 이곳에 남았다.

벌컥!

장필준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실 앞을 지키던 김기사는 옆에서 곤란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괜찮으니까 나가 봐.”

내 말에 김기사는 고개를 푹 숙인 뒤 집무실을 나갔다.

장이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설마 오늘 청문회 나가냐?”

“기사 떴나 보네요. 맞습니다. 저 청문회 나갑니다.”

“강대표!”

“네. 장이사님.”

장이사의 일그러진 얼굴이 제법 볼 만했다.

장이사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청문회 일정 취소해.”

“제가 취소한다고 취소가 되는 일이 아닌 거. 아시잖아요?”

“이번만… 이번만 눈감고 넘어가자. 밑에 애들… 너 따르던 본부장, 투자총괄, 그리고 그 밑에도 줄줄이 날아갈 거 아니냐. 너 혼자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

장이사의 입장에서는 내가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우리 회사가 태선물산 지분율만 얼마인데 이걸 막았다고 자릅니까, 연임하면 했지. 증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아십니까?”

“너… 너!”

필준은 화라도 내볼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생각이라도 하는 듯 눈알을 굴렸다.

“큰 걸로 한 장. 도장 한 번에 한 장이야. 강대표. 내 몫은 거의 남지도 않아. 강대표, 돈 좋아하는 거 내가 모르는 줄 알아?”

“돈 좋아하는 건 맞는데. 어차피 위액까지 섞어서 토할 거 뭐하러 먹습니까? 저는 탈 안 나는 것만 먹습니다.”

“너 정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대답대신 장필준을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강대표!”

뒤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무시하고 방을 나왔다.

‘8시 42분’

청문회가 10시니 아직 여유는 있었다.

주차장에는 김기사가 미리 나와 있었다.

늘 밝게 맞이하던 김기사가 오늘은 왠지 어두워 보였다.

“김기사도 청문회가 걱정이 되나?”

“...아 네.”

“오늘만 지나면 후련할 거야. 청문회까지 나가면 더는 못 건드릴 테니까. 이번 일 끝나면 김기사도 휴가 한 번 다녀와.”

“…”

현 상황 때문에 평소에 휴가를 차마 쓰지 못하고 눈치 보던 김기사였다.

반응이 이상했지만 우선 김기사가 열어 준 차문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가져온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적은 종이를 꺼내고 읽으려는데…

“차에 안 타나?”

“대표님…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김기사의 옆에는 팔뚝에 문신을 한 남자가 망치를 들고 서 있었다.

망치가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

나는 지금 묶여 있다.

머리에서 흘러내렸는지 피가 시야를 가렸다.

흐릿한 시야에 거구의 남자들이 보였다.

개중에 혼자 정장을 빼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강대표님. 왜 선을 넘으셨어요.”

선을 넘다라… 곧장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이런 짓을 할 정도로 과감한 놈들이면.

“미친 새끼들.”

눈앞에 남자는 감정이 사라진 듯 무표정했다. 그때 속에서 무언가 올라왔다.

우웨에엑!

“멀미하시는 걸 알았으면 산이나 호수로 갈 걸 그랬습니다.”

시원하게 게워 내고 있는데 남자가 내 머리 위로 물을 부었다.

눈에 묻은 피가 조금 씻겨지니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육지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바다였다.

일단 차분하게 상황을 살폈다.

남자는 뒷짐을 지고 서 있었고 거구는 언제라도 나를 제압하려는 듯 몸이 앞으로 쏠려 있었다.

“태선에서 나를 죽이라고 했어?”

“그러려고 이 멀리까지 온 거 아니겠습니까.”

“...살인을 한다고?”

내 말에 남자는 코웃음 쳤다.

“강대표님. 이게 제 직업입니다.”

직업… 사람을 죽이는 게?

여전히 남자의 얼굴은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손짓하자 또 다른 거구가 내 몸을 붙들었다.

“오실장님. 발버둥이 심한데요?”

“한 대 후려쳐.”

배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헛구역질을 해댔지만 아까 다 게워 냈는지 토사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강대표님은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다행입니다. 다른 놈들은 남은 사람들이라도 살려달라고 질질 짜는 통에 꼴 보기 싫었는데.”

“다른 놈? 잠깐, 김기사는!”

“김기사? 아, 딸 둘 있는 양반? 뭘 그런 것까지 알려고 하세요. 앞으로 열심히 살아갈 사람들끼리 은밀한 거래가 있는 건데.”

오실장은 비릿하게 웃어 보이더니 내 발에 족쇄를 채우기 시작했다.

거구가 내 무릎을 움켜쥐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죽는 게 실감이 나십니까?”

오실장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죽어?”

실감이 나기는커녕 이 드라마틱한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아니,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조차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 듯 쩔그렁 소리가 나기 시작하며 발이 어디론가 끌려가기 시작했다.

“태선이 그랬다고? 진짜로 이딴 짓을 벌일 수가 있다고?”

“그럼요. 발버둥 쳐 봤자 고통만 길어질 뿐입니다. 어차피 갈 거 조용히 가세요. 그러게 조용히 돈 받고 끝냈으면 좋았을 일을… 출신 보니까 쥐뿔도 없더만 주제에 감사한 줄을 알아야지.”

족쇄 끝에는 시멘트가 덕지덕지 발라져 굳어진 구체가 있었다.

거구가 그것을 바다로 던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내 몸은 바다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을 잡고 버텼다. 갑판에 손바닥이 마찰되며 나뭇조각이 박히고 쓰라려 왔지만 그것이 문제겠는가.

바다에 빠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

“오실장이라고 했나? 나 조용히 살게... 원한다면 아무도 모르는 해외로 나갈게. 돈도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어.”

내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나.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자 생각지도 않던 말이 튀어나왔다.

“강대표님. 나도 신의는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피라미가 태선가를 건드려서 좋을 게 뭐 있겠습니까?”

“신의는 시발! 돈 때문에 일하는 거잖아. 정말 왜 이래? 내 개인주식만 합쳐서 100억 돈은 가까이 될 거야. 이것저것 끌어모으면 더 줄 수도 있어. 이깟 일 한 번에 그 정도로 받지는 않을 거 아니야. 태선에 죽었다고 말하고 살려주는 거, 그거 하나면 된다고.”

살아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살아서 나가기만 하면…

청문회에 불출석한 이유와 태선이 한 짓, 다 까발려주겠다.

그때, 무표정하던 오실장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태선에서 실장 명함 박고, 굴러오는 뒷돈만 받아먹어도 그것보다 더할 텐데 제가 뭐하러 뒤탈을 남깁니까? 길게 봐야지요. 길게. 큭큭.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니까. 아!”

오실장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래도 후대에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지는 알고 가셔야죠. 청문회 무단 불참. 국민을 우롱한 파렴치한 증권사 대표, 강현재. 성공투자증권에서의 횡령 밝혀지다! 내일 최선일보 헤드라인이랍니다.”

그 말에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끝이 난다고?

“자살로 포장할 거긴 한데, 어느 정도 추측성 찌라시는 몇 개 풀어줄 거래요. 검찰 표적수사? 원래부터 우울증? 등등 있잖아요. 마냥 자살이라고만 하면 대(大)태선을 물어뜯을 놈들이 많겠죠?”

오실장은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내 몸을 바다로 던졌다.

첨벙!

내 몸은 물에 가라앉고 있다.

손은 묶여 있고 발밑에 찬 이 망할 족쇄 때문에 몸은 끝없이 가라앉는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 같은 놈한테는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겨우 이딴 거라면 내가 틀린 모양이다.

머리가 점점 멍해진다.

차갑게 느껴졌던 바닷물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물을 먹는 건지, 호흡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올라오는 구역질은 비단 내가 익사하고 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놈의 최후는 고작 이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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