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자는 죽고 싶어 22화
“너 지금까지 암살 의뢰 몇 번 받았어.”
“별로 많이 안 받았어.”
“역시 용병 단장을 한번 직접 만나 봐야겠다. 내가 그놈을 죽여 버려야겠어.”
“진정해, 유안.”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금이야 옥이야 키우진 않았어도 찾으러 오는 황궁 기사단 다 쫓아내고, 애가 혹시라도 험한 일 할까 봐 분수에 안 맞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챙겨 준 게 다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
용병단에 입단해서 5년이나 구른 만큼 어느 정도 불법적인 일을 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그 불법적인 일 중에 암살 같은 게 끼어 있는 줄은 몰랐다.
“사람 죽이지 말라고 나한테 훈계하던 열두 살짜리는 어디 갔지?”
“그때의 내가 당신 마음에 들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르커스는 그렇게 말하며 제 눈썹 끝을 약하게 찡그렸다.
“인간성을 버리라고 한 건 당신이잖아.”
“이런 일을 하고 다니라는 뜻은 아니었어.”
“당신 말대로 인간은 누구나 죽어.”
“…….”
“그냥 조금 더 빨리 죽게 되는 것뿐이지.”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아주 호랑이였어.
자식새끼 키워 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말은 우리 엄마도 실컷 하기는 했지만, 내가 내뱉게 될 줄은 몰랐던 말이다.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입안이 씁쓸해졌다. 아이에게 모질게 말하며 인간성을 버리라고 타박했던 과거가 처음으로 후회스러워졌다.
이르커스가 수주한 의뢰는 캐러벨의 한 상단주를 암살해 달라는 것이었다. 상업이 상당히 발달한 카만 왕국에서는 귀족들 간의 권력 싸움보다도 상단주들끼리의 암투가 더 치열했다.
직접 밥을 먹여 주지 않는 직위나 명예와 달리, 이쪽은 밥줄이 걸려 있는 문제라 온갖 비열한 일이 숨 쉬듯이 일어났다. 길거리 깡패들에게 돈을 쥐여 주고 경쟁 가게 박살 내는 건 예삿일이고, 이런 식으로 용병단을 고용해서 상단주를 죽여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꾸준히 흑자를 내는 상단들은 목이 떨어지지 않게 용병들에게 경호 의뢰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참 장사꾼도 못 할 직업이다. 한국 살 때도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고생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자기 사업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철인이었다. 황제 같은 것보다 상인들이 더 무서운 놈들이라니까.
“암살 의뢰라고 다 받는 거 아냐. 가려서 받은 거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다고 그래.”
“애새끼 하나 잘못 키웠다는 표정.”
“자기 표정은 못 숨기더니, 남의 표정은 잘 읽네.”
“당신이니까 잘 읽는 거지.”
이르커스가 손을 뻗어 내 로브에 달린 후드를 당겼다. 머리와 얼굴이 푹 내려온 후드 때문에 순식간에 가려졌다.
이르커스의 암살 대상은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에델라이드가 치를 떨며 이 새끼 언젠가 내가 직접 죽여 버린다고 했던 놈이기 때문이다: 아처볼드 제닉스.
캐러벨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흥 사업가, 아처볼드 제닉스는 약을 취급했다. 연금술사들과 약초사, 마법사들을 고용해서 원재료가 되는 식물을 가공하거나 연금술이나 마법으로 합성한 뒤에 되파는, 일종의 ‘약국’ 운영자였다.
약을 취급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취급하는 약의 용도가 평범한 상비약 수준이라면 되레 꼭 필요했다. 앞서 말했듯이 주 종교의 변화로 대륙에는 의사 역할을 하던 신관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신성력이 없는 일반 의원들은 일반적인 의학 지식과 약초, 약물 등에 의존해서 환자를 치료했다. 그러니 아처볼드의 약국은 어떻게 보면 꼭 필요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아처볼드가 취급하는 약물이 상비약이나 평범한 질병 치료용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아처볼드는 라크리움처럼 저렴하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식물과 몇 가지 화학 약품을 조합해서 마약을 만들었다. 각성제와 진정 효과가 있는 마약들은 등장과 동시에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보편적으로 마약을 접할 일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아처볼드가 내놓은 약물이 고통을 줄여 주고, 머리를 맑게 만들어 주는 혁명적인 아이템으로 보였던 것이다. 내 눈에는…… 딱 헤로인이나 펜타닐 같았지만.
물론, 이 와중에도 아처볼드가 취급하는 약품에 대해서 많은 의원과 상인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했다.
하지만 당장 잘 듣는 약이 필요한 소비자들에게 그런 경고는 씨알도 안 먹혔다. 일반인들은 돈을 내고 의원을 찾아가는 것도 비용적으로 부담스러운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잠시나마 고통을 씻은 듯이 잊게 해 주고, 육체를 쌩쌩하게 만들어 주는 아처볼드의 약품은 몇 달 내내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었다. 법적 규제가 약한 상업 도시, 캐러벨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당연하게도 지옥이 시작됐다.
아처볼드는 의사가 아니라 장사꾼이었으므로 이 모든 약물에 중독되기 쉬운 성분을 추가해서 팔았다. 그래야 사람들이 계속해서 약을 살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참 머리 좋은 인간이었다. 악마랑 계약해서 인간성을 버리고 사업 수완을 얻은 케이스라고 해야 하나.
약을 끊으면 고통스러운 부작용이 따르니, 한 번 마약을 복용했던 인간들은 다시 너도나도 아처볼드의 상단에서 약을 재구매했다.
아처볼드는 약물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자, 서서히 약물의 가격을 높였다. 처음에는 저렴했던 약물이 고가품이 되어 버리니, 가진 자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들은 돈만 잃은 것도 아니었다. 라크리움처럼 각성 효과가 있는 식물은 대부분 독성 식물이었다. 이런 독성 식물들을 장기적으로 복용했으니, 당연히 신체 일부가 썩어 들어가거나 일부 기능이 파괴됐다.
캐러벨 뒷골목과 거리에 부랑자가 급속도로 늘어난 것도 아처볼드가 나타난 이후부터였다. 한 왕국의 수도라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캐러벨의 치안은 점차 나빠졌고, 그제야 왕국 측에서도 아처볼드를 제지하기 위해서 단속에 나섰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아처볼드는 법으로 처단할 수 없을 만큼 부를 쌓은 거물이 되었고, 아처볼드가 취급하는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가 판매하는 약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아처볼드의 무죄를 주장했다. 악순환의 고리였다.
“의뢰자가 누구야?”
“이 사람 때문에 자기 아들을 잃은 사람.”
“미치겠네.”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처볼드는 죽일 놈이 맞았다. 아처볼드가 판 약으로 인생이 박살 나고 목숨을 잃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 정당한 판결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때로 이런 문제에 있어서 법은 무력했다.
제국처럼 벌금을 어마어마하게 부르거나 쿨하게 사형을 때리지도 않는 카만 왕국에서는 보석금을 일정 이상 지불하면 감옥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니 사람들은 종종 법에 의지하는 대신, 극단적인 방법을 찾아 헤맸다. 살인 의뢰가 신고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처볼드를 죽인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어. 약은 이미 퍼질 대로 퍼졌고, 한 번 망가진 사람들은 전처럼 돌아가기 어렵단다.”
“하지만 복수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암살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라는 거지.”
“그럼 어떤 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인데?”
그건 나도 모른다.
법치 국가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나조차도 종종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악인은 사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런 문제는 정답이 없다. 모든 사람이 ‘옳다’라고 생각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난 네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했어.”
인간성이라는 단어는 참 모호하다. 도대체 인간이 뭐란 말인가?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인간성은 남을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일 테지만, 부정적으로 보자면 인간성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성질일 것이다.
인간은 다채로운 면모를 가지고 있는 생물이었다. 선인이라고 비열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었고, 악인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악하지만도 않았다.
아처볼드만 해도 그랬다. 타인의 인생을 망가트리고 이득을 취한 악인이지만, 누군가에게 아처볼드는 존경받을 만한 사업가일 터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인간’이라는 단어 하나로 규정하기에 너무 입체적이었다.
“네가 항상 정의롭길 바란 건 아니야. 하지만 이런…… 암살 같은 일에 무뎌지길 바란 것도 아니거든.”
“유안.”
“나는 그냥, 네가 이런 거 안 해도 내가 널 황제로 만들어 줄 능력이 충분하잖니. 내가 없어도 황궁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네가 강해지길 바랐던 거야. 내가 죽은 이후에 네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해서…….”
이 세계의 주인공인 이르커스가 아처볼드 같은 악인이 될 확률이 있을까? 아마 그럴 확률은 낮은 편일 것이다. 이르커스는 선천적으로 선하니까.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하는 주인공이니 나쁘게 자라지 않을 것이다. 황제가 된다면 폭군보다는 성군이 되겠지. 그게 원래 주인공의 숙명이니까.
하지만 그건 내 희망에 불과했다. 이르커스에게는 전에 없는 변수 요인인 내가 생겼고, 나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대현자였다.
좋은 보호자가 되고 싶었지만, 아이를 어떻게 해야 잘 키울 수 있을지 몰랐던 나는 얼마든지 선한 이르커스를 망쳐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네가 나처럼 될까 봐 무서워.”
진심이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죽일 만한 사람을 죽이는 거라고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게 과연 ‘인간다운’ 일인가? 이런 질문에는 내가 아무리 대현자라고 해도 확실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신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게 당신을 죽여 달라고 했잖아.”
“…….”
“그러면서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했다니, 그건 너무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칼날 같은 대답이었다. 나는 말을 잃은 채로 훌쩍 자라 버린 내 피보호자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내 은인이지만, 동시에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악인이야.”
나는 이르커스의 시선에서 애정 저편에 있는 감정을 읽었다. 어떤 일을 해도 자신의 애정에 답을 돌려주지 않는 스승에 대한 미약한 원망.
이르커스 역시 내 시선 안쪽에서 무심함을 가장한 두려움을 읽어 냈을 터였다.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읽어 내는 것에 쓸데없이 익숙해져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