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자는 죽고 싶어 13화
내가 황궁 마법사로 일하던 시점에 즉위했던 로베인 제국의 13대 황제는 점잖은 생김새와 달리 욕심이 많았다.
그는 진시황이랑 영혼의 쌍둥이라도 되는지 노골적으로 영생을 꿈꿨다. 황제라는 자리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고, 후대가 자신의 업적을 뛰어넘는 것을 두려워했다.
제국민들은 그가 이룩한 수많은 업적을 입에 담으며 그를 성군이라고 칭송했지만, 내 기억상 그놈도 다윈 못지않은 또라이 새끼였다.
황위가 인간을 또라이로 만드는 건지, 아니면 또라이 같은 새끼여야 황제가 될 수 있는 건지 정확한 인과 관계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체로 내가 아는 권력자들은 다 또라이였다.
아무튼 그놈은 불로불사인 나를 아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가진 영생 저주를 실험해 보는 걸 좋아했다.
마녀들에게 영생 저주를 걸어 달라고 부탁하는 황제는 이놈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놈 이후에도 있었지만, 이 미친놈처럼 본격적으로 불로불사를 욕망했던 놈은 또 처음이었다. 이후에 마탑주 새끼 하나가 비슷하게 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이 13대 황제 놈을 이길 만큼 또라이는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이놈을 겪은 뒤로 진나라 황제였던 진시황이 아주 싫어졌다.
당시엔 노예 신분을 벗은 지 얼마 안 됐던 때고, 아직 내 소속이 로베인 제국으로 돼 있었던 탓에 황명을 쉽게 거스르기 어려웠다. 더구나 예카리나의 딸들을 보호해 주고 있던 시점이라 권력에 대항하거나 개무시 작전으로 일관하기도 힘들었다.
지금에 비하면 어렸던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지금보다 권력자들에게 훨씬 고분고분하게 굴었으니까. 유교 국가 물이 안 빠져서 존댓말도 참 잘 썼다. 돌이켜 보면 몇 세기 전의 나는 정말 착한 놈이었다.
그래서, 그 황제는 내 목을 쳤다. 내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노예 출신이고, 제국 소속인 데다가, 황궁에 속한 마법사이니 자기한테 반항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도 목이 잘리기 전까지 나는 그놈이 해 달라는 대로 움직였다.
그 새끼가 내 목을 검으로 내리쳐 본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정말 불로불사인지 궁금해서 그랬다고 했다. 그리고 목이 떨어지면 어떻게 재생하는지, 상한 신체가 어떻게 회복되는지가 궁금했다나. 아주 학구열이 대단한 새끼가 아닐 수 없다. 황제가 안 됐으면 불로불사학 교수가 됐을 놈이다.
이래서 또라이가 권력을 가지면 안 되는 건데. 별로 알고 싶어 한 적은 없지만, 덕분에 나도 그때 내가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죽지만 않을 뿐 고통은 느껴져서, 그때 이후로 방검 마법을 개발했다. 미친놈 덕분에 위대한 마법 개발에 성공한 것이니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개새끼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 당시에는 그 황제를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를 고민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으니까.
상사인 황제가 저렇게 거지같이 굴어 준 덕에 황궁 마법사 생활은 짧게 끝났다. 만약 황제들이 또라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럭저럭 안정된 황궁 마법사 생활을 하면서 호시탐탐 나를 데리고 가려던 마탑을 견제하고 알뜰살뜰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400살에 대륙 제일의 대부호가 된 한유안이 될 수 있었는데……. 소속 마법사를 실험 쥐처럼 쓰려는 황제를 상사로 모시기엔 나도 성질머리가 만만찮았다.
[숲 입구에 군대가 왔어.]
“테리즈가 벌써 황궁에 찔렀나 보네.”
[어떡할까? 마법사도 세 명 정도 있는데.]
나는 결국, 그 13대 황제를 죽여 버렸다.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를 죽인 첫 살인이었다. 예카리나를 도구처럼 쓴 다윈도 내 손으로 안 죽였는데, 내 목 좀 쳤다고 그놈을 죽여 버린 것이다.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유쾌하지도 않았다. 그놈은 목이 잘리자 그냥 죽어 버렸다. 불로불사를 꿈꾸는 놈치곤 허망한 최후였다.
그 죽음이 너무 쉽고 명쾌해서, 나는 내가 죽인 인간을 질투했다. 그 누구도 내가 황제를 죽인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모두 나를 두려워했고, 날 죽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곧바로 황궁에서 도망쳤다. 이후의 황위 교체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어차피 예카리나의 후손들은 그 황위에 관심조차 없었으니까.
그 이후로는 다시 황궁에 가는 일은 없었다. 나는 황비의 애완 인간이었다가 황궁 마법사가 되었고, 이후에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반역자가 되었다.
나는 길버트의 말을 듣곤 날짜부터 먼저 확인했다. 카만으로의 외출 이후 2주도 안 돼서 군대가 들이닥친 걸 보니, 테리즈는 훌륭한 밀고자로 자란 모양이었다.
옛정을 봐서 그냥 넘어가 줄 줄 알았더니, 역시 정보 길드의 수장답게 바로 팔아넘겨 주는구나.
내가 먼저 테리즈를 전기로 지져 버렸으니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쌤쌤이지, 뭐. 그렇게 여기면서도 다음에 만나면 한 번 더 번개 내리쳐야지, 라는 비인간적인 생각이 들기는 했다.
“황궁 놈들도 지긋지긋하단 말이지. 본보기로 몇 명 묻어 버릴까.”
[마법사 셋만 무력화시켜도 숲으로는 못 들어올 거야.]
“마녀도 아니고, 혼자서는 결계도 제대로 못 푸는 오합지졸 마법사만 보낸 거 보니까 좀 자존심 상하네. 상대는 대현자인데……. 길버트, 나 요즘 만만해졌어?”
[원래 인간들은 누울 자리 못 보고 누워서 자주 죽잖아. 네가 참아.]
이르커스가 한 번에 나를 알아본 걸 보면 내 유명세가 줄어든 건 아닐 텐데. 마탑 놈들이 나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신격화해 주는 덕에 칩거한 지 몇십 년이 지나도 세간에는 내 얘기가 무슨 전설처럼 떠돌았다.
그러니 정보 수집력이 일반인보다는 나을 게 분명한 황궁에서 내가 있는 남쪽 숲에 고작 마법사 세 명 끼운 부대 하나를 보낸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저쪽도 전면전을 할 생각은 없을걸. 네가 이르커스를 바로 내어 줄 거라고 생각해서 단출하게 온 거 아냐?]
“그 정도로 머저리일까? 왜 거기는 항상 머저리 소굴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이르커스는 아직 자고 있지?”
[그래. 어제 늦게 잠들었으니까.]
“그럼 내가 직접 나가 봐야겠네. 애 못 일어나게 감시 좀 잘해 줘.”
나는 로브를 찾아 뒤집어쓰고 괜히 한 번 내 목덜미를 매만졌다. 새삼 목이 잘렸던 날의 감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권력 가진 또라이들은 왜 매번 이런 식이람. 역시 불이나 번개로 뜨거운 맛 좀 보여 줘야 한다. 정신 못 차리는 놈들이 정치하게 둘 수는 없잖아. 그러다 대륙 멸망하고 인류 전멸하면 죽지도 못하는 난 어떡해.
남쪽 숲 입구에 쳐 둔 결계를 어서 오세요, 하고 열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어찌 됐든 저런 놈들은 얼굴 한번 비춰 줘야 돌아가니까.
애 하나 황제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정말 인생이 팍팍했다.
“너희 혹시 목숨이 막 아홉 개야?”
사람 몇 명 죽이는 건 이제 내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내가 원래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안 죽이려고 노력은 하는 편이지만, 이 나이까지 살면서 내가 죽인 사람의 수는 두 손으로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일부러 악의를 가지고 살해한 사람은 드물지만, 공격 마법은 산출값이 예상대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돌려도 오차 범위가 큰 편이라, 마탑 놈들은 전쟁 중이 아니면 공격 마법 사용에 법적으로 제한도 걸려 있었다.
이러니 내가 전쟁터에서 마법으로 죽인 인간의 수는 정확히 셀 수조차 없을 터였다. 내가 살린 인간의 수보다 살리기 위해 죽인 인간의 수가 더 많을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내 손으로 누군가를 죽였다는 사실에 밤잠도 설치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점점 익숙해졌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무뎌지기 마련이니까.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내가 안 죽여도 알아서 죽는다.
이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자 죄책감이나 양심 같은 것이 내 안에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스스로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나는 이제 사람 몇 명 죽이는 걸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길버트가 말한 대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드래곤이 자기 레어 짓는다고 의식 없이 마을 하나 말아먹는 것처럼, 나도 가끔 나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했다. 말이 좋아 대현자지, 따지자면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었다.
그러니 내가 ‘대현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처럼 전시 상황이 아닌 이상 인간을 못 죽일 거라고 믿는 황궁 기사 놈들이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그래도 이르커스랑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퍽 얌전해진 거였다. 이르커스의 선량한 성격에 살짝 물든 것도 있었다. 하지만 시한폭탄은 위력이 좀 약해졌다고 해도 시한폭탄이었다.
얘네는 시한폭탄 해제하러 오면서 뭐 이렇게 소박하게 다니냐? 못해도 방호복 입는 정도의 정성은 보여야 할 거 아냐.
숲의 입구 앞에서 마법 결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를 상대하고자 나온 기사 단장은 얼굴에 주름이 선연한 중년 남성이었다.
나는 저 나이쯤의 중년 남자를 상대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 특히 한 부대의 대장이나 기사 단장쯤 되면 자기 실력과 지위에 자신이 있어서 비대한 자아를 숨길 생각조차 안 했다.
“남쪽 숲의 대현자를 뵙습니다. 우리는 황명을 받아…….”
“아니, 너희 진짜 목숨 아홉 개쯤 있냐고. 황명이고 뭐고, 내가 먼저 질문했잖아.”
마음 같아선 그냥 바로 번개 쳐서 내쫓아버리고 싶은데…… 그럼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꼴이겠지.
사람을 직접 지지면 얼마 안 지나서 다른 놈들이 찾아올 게 뻔했다. 일반인도 아니고 공무원을 공격하는 건 어느 세계에서나 위험부담이 컸다. 날 귀찮게 할 명분을 만들어 주는 일이나 다름없으니까.
남쪽 숲에 걸어 둔 결계 수식은 내가 황궁 마법사로 있을 때 연구하고 완성한 것이라, 로베인 제국에 속한 마법사들이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해제할 수 있을 것이다.
……있겠지? 설마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겠지?
황궁 마법사들 셋인데 아직도 해제 못 하고 있는 걸 보니까 데리고 온 마법사들이 죄다 신입인 모양이었다.
이건 정말 자존심 상하는데. 나 같은 수재를 상대하는 데 신입 마법사만 데리고 온 거면 황궁 놈들은 정말 주제를 모르는 거다.
“아무리 대현자라고 해도 황명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남쪽 숲도 엄연히 로베인 제국에 속해 있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경계지겠지. 카만에서도 남쪽 숲은 자기들 거라고 하잖아. 야, 그리고 숲이 왜 인간 거냐? 나무 정령들이 두 눈 새파랗게 뜨고 있는데. 지금 이 소리 데인이 들었으면 네 대가리부터 쳤어.”
“어떻게 그런 무례한 말을…….”
이래서 나이 먹은 남자들을 상대하기 싫은 거라니까. 무례하긴 뭐가 무례한가? 다 사실이구만.
한때는 나도 돌려 돌려 빙빙 돌려 말하기의 귀재였지만, 정치를 관둔 지 오래인 내가 일개 기사 단장에게 예의를 차려 곱게 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얄팍한 결계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사 몇 명이 내게 검을 겨눴다. 이 새끼들, 나한테는 검이 하나도 안 통한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방검 마법 개발자가 나라는 거, 요즘은 역사 교과서에 안 나오나?
나는 좀 어이가 없어져서 대장 격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 뒤에서 열심히 결계 풀이 중인 마법사 세 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