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83화 (183/185)
  • <-- 183 회: 7권 - 충돌의 전조 -->

    성진이 당황하는 사이에 전화기 너머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 미안합니다, 한성진 씨. 우리는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당신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당신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게 된 것도 잠깐의 여유를 급하게 얻게 되어서입니다.

    성진이 듣기에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무척 평온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조바심이 희미하게 서려 있었다. 

    성진은 몰랐지만 그런 미세한 느낌을 눈치채게 된 것도 청각 능력이 극도로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저를 찾으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요.”

    성진의 물음에 전화기 너머에서 다시 외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현재 한성진 씨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곧 당신의 존재를 노리고 사악한 자들이 내세운 대리자가 공격을 해 올 것입니다.

    외계인의 경고에 성진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위기 상황을 아는 것이야 둘째치고 이제 곧 공격을 해 온다는 말에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를 공격해 온다니요?”

    - 시간이 없습니다. 적들은 한성진 씨 본인을 노리고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가 협상 조건 일부를 강력하게 지켜 한성진 씨의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이 다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성진 씨가 싸우는 장소가 도심 한복판이 된다면 민간인이 다칠 우려가 있을 것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제 가족은 다치지 않을 거라구요?”

    - 그렇습니다. 그 점은 저희가 보증하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 말에 성진의 얼굴에 순간 안도의 빛이 돌았다. 

    가족이 무사하다면 성진의 최대 걱정이 덜어지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걱정이 없습니다. 제 가족만 무사할 수 있다면요.”

    성진의 말에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 지금은 떠오르는 의문이 많을 것입니다. 적들은 한성진 씨가 가지고 있는 팔찌와 비슷한 수준의 이기를 지닌 자가 키워 낸 군대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기로 무장했다면 한성진 씨는 무척 불리할 것입니다. 꼭 살아남으십시오.

    “알겠습니다.”

    간곡한 전언에 가타부타 이런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변화와 위기였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전해 들었다. 

    급박한 상황이라 하니 이런 상황에서 설명은 나중에 듣는 것이 나았다.

    ‘차차 이동하면서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해 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시야 한켠에 기밀 정보 해제라는 알림이 울리며 인공지능 팔찌가 자신에게 전해지게 된 배경, 그리고 우주에 교활한 침략을 개시한 데크몬 종족의 음모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전해 들었다.

    - 은하 방위군은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마스터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했지만 데크몬 종족은 교활한 속임수로 기타 등등의 추가 지원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의 장비는 구형이고 기술이 모자란 수준이라 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 수집 능력과 연산 능력 등이 모자랍니다.

    ‘그래? 그건 참 다행인데? 하하.’

    성진은 애써 침착하게 웃어 보이면서 집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후. 이것이 보통 싸움이 아니라면 민간인들이 휘말리게 할 수는 없다.’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최대한 빠르게 주택가 골목을 빠져나가자 도심을 향해 질주하는 성진의 모습을 멀리서 감시하던 BW챌린지의 요원들이 따라 움직이는 것이 확대된 인공지능 팔찌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 따라 올 것 같습니다, 마스터.

    ‘좋아.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자.’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의 요구에 즉시 인공지능 팔찌는 여러 후보 지역을 출력했다. 

    현재 시각 중 가장 인적이 드문 비교적 가까운 지역은 오직 산뿐이었다. 

    인공지능 팔찌는 즉시 위성 화면과 휴대폰 신호 위치 파악 등을 통해 인적이 최대한 드문 산악 지역을 물색했다.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험준한 산자락들을 체크하면서 성진은 그곳에서 적들을 맞이하기로 결심했다.

    ‘좋아. 놈들을 그곳으로 유인하자.’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의 명령을 접수한 인공지능 팔찌는 더더욱 빠르게 차를 몰아갔다.

    *   *   *

    웬만한 험준한 산자락이라 해도 서울시에서 가까운 산자락에는 험로를 일부러 개척하려 애쓰는 등산 애호가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성진은 일부러 강원도 산자락까지 달려와 재빨리 산에 올랐다.

    ‘모든 육체 능력 제한을 해제하도록 해.’

    성진의 지시에 인공지능 팔찌는 즉시 성진의 육체 상태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 알겠습니다, 마스터.

    - 지금부터 마스터의 모든 신체 반응과 저의 상황 판단 프로세스를 전투 상황에 상정해서 조절하겠습니다.

    - 우선 목표는 마스터의 생존입니다.

    ‘좋아. 잘 부탁해.’

    성진은 긴장으로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강원도의 깊은 산자락을 향해 나는 듯이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편을 맹렬히 추적해 온 의문스러운 행색의 남자들도 곧이어 무수히 차를 타고 도착해 산자락을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마크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부하들이 어쩌면 한성진을 생포했거나 제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정작 자신의 부하들은 성진이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자락을 헤매면서 조금씩 각개격파를 당하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것이냐!”

    그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귀찮은 수고까지 감수해 가면서 한국 본토에 총기와 총탄까지 들여와 확보했다.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진은 산 속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조금씩 처치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마크 님. 놈의 저항이 생각보다 완강합니다.”

    “이런 어리석은…… 놈은 겨우 한 명에 불과한데 너희가 못 잡고 있다는 말이냐? BW챌린지의 정예들이?”

    마크의 성난 표정에 부하들은 기가 질린 듯 움츠러들어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화를 내려던 마크에게 인공지능 목걸이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 마스터. 마스터께서 직접 출전하셔서라도 이번 기회에 목표물 한성진을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부하들을 총동원했으니 확률은 매우 높습니다.

    ‘뭐라고?’

    마크의 표정에 순간 성가신 표정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인공지능 목걸이는 마크가 위험에 빠지더라도 성진을 직접 제거하는 데 나서기를 바라고 있었다.

    주인에 대한 안전을 염려하기보다는 자신을 어디까지나 도구로 여기는 듯한 기색이 역력한 인공지능 목걸이의 태도에 마크는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인공지능 목걸이도 마크의 불만을 알지언정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마크 역시도 인공지능 목걸이를 버리거나 훼손하려 들 수 없었다. 

    정확하게는 반항할 수도 없다. 

    인공지능 목걸이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는다면 뒷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떨치는 자신의 입지는 물론 장차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망도 물거품이 된다. 

    마크는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서기로 결정했다.

    “좋다. 내가 직접 들어가서 놈을 상대하겠다.”

    “마크 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깜짝 놀란 부하들을 보면서 마크는 속으로 짜증이 치밀었지만 애써 화를 눌러 참았다.

    “그렇다. 정예 대원들을 완전 무장시켜 내 주변을 엄중히 경호하며 따라와라. 감히 BW챌린지를 상대로 저항하는 놈의 최후는 내가 장식해 주도록 하지.”

    마크의 단호한 명령에 부하들은 부복 자세를 취하며 경례했다.

    “옛! 마크 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크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은 목표물인 한성진보다 무려 10년은 더 앞서서 탄탄한 세력과 입지를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이들이 비록 성진에게 각개격파를 조금씩 당하고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인류 최강의 전사들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지휘를 직접 받는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마크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부하들을 대동하고 산으로 직접 몸을 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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