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80화 (180/185)
  • <-- 180 회: 7권 - 상륙 -->

    공항에 입국하는 일단의 외국인 남성들은 각기 해외 유수의 연구원과 바이어 자격으로 들어온 무역맨이었다. 

    그들의 여권과 신분을 확인한 공항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전산상으로 완벽한 신분에 고개를 끄덕인 후 여권을 돌려주었다.

    “웰컴 투 코리아.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땡큐. 수고가 많으십니다.”

    유창한 한국어로 대답하면서 씩 웃는 유쾌한 외국인 입국자들의 태도에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입국 심사 절차를 모두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그들은 공항 현관에서 대기 중이던 대형 밴을 향해 곧장 직진했다. 

    가볍게 눈인사로 운전수와 인사를 한 그들은 올라탄 후 차문을 닫자 곧 친절하고 유쾌해 보이던 인상은 흔적도 없이 지워지고 살벌해 보일 만큼 냉정한 인상이 얼굴 위로 나타났다.

    그들을 찬찬히 둘러보던 책임자가 입을 뗐다.

    “우리의 우선적인 목표는 먼저 유용한 무기를 확보하는 것이다.”

    “목표물인 한성진의 포획을 위해 유효한 무기를 확보하도록.”

    남자의 지시에 부하 중 한 명이 질문했다.

    “화기의 사용은 허가된 것입니까?”

    “그렇다. 상부에서는 총기의 사용을 허가했다.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로는 상당히 강력한 무술 실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관측된 정보만으로도 보통 인간의 능력을 월등하게 뛰어넘은 수준이다. 귀관들이 특수 약물과 총기를 동시에 병행 운용한다면 능히 포획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춘 책임자는 곧 냉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만약 포획이 불가능하다 판단된다면 현장에서 사살해도 좋다. 이상. 질문 있나?”

    “없습니다!”

    일동이 모두 동시에 대답하자 책임자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우리 BW챌린지의 정예이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곧 마크 님께서 이 땅에 직접 왕림하실 예정이다. 먼저 우리는 총기부터 확보한다.”

    이들은 국내 지방의 눈에 띄지 않는 지역의 철공소를 미리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그 외에 원자재까지 따로 확보해 놓은 이들에게는 비록 미흡한 수준의 가공 기구밖에 없을 것이었다. 

    정밀한 가공 기구를 들여오면 여러 가지로 의심을 살 수 있고 복잡하게 남는 세관 기록을 없애기 힘든 데다 이동 상황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이목을 없앤다는 것은 너무도 많은 노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지양할 일이었다. 

    결국 이들은 조악한 가공 기구로도 막강한 파괴력의 총기를 제작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설계 디자인을 따로 개발해야 했다. 

    그곳에서 필요한 총기를 제작하도록 미리 설계도와 필요한 소프트웨어까지도 특수 암호 처리화하여 디지털 메모리에 담아서 가져온 상황이었다.

    “총탄은 어떻게 합니까? 총기는 우리가 제작할 수 있지만 총탄은 확보가 어렵습니다.”

    총포상을 턴다고 해도 수렵용으로나 쓸 수 있는 탄환들이었다. 

    본격적인 전투용으로 쓸 수 있는 탄환은 절대 아니다. 

    애당초 총포상의 수렵용 탄환은 전투용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순수한 사냥용이었다. 

    다만 한국의 군대나 경찰서에는 일정량의 전투용 군사 목적의 총탄이 상시 저장되어 있지만 이들은 굳이 그런 공공연한 총탄 재고를 훔쳐 눈에 띄는 짓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그런 식으로 처리한다면 언젠가 눈에 띌 수밖에 없고, 기록을 없애는 과정에서 문제가 많이 생긴다. 

    결국 총탄이라는 것은 화약의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현지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 

    결국 다른 수단을 써야 했다.

    “총탄의 확보 문제는 다른 루트를 통해 확보한다. 그것을 위해 다른 팀원들이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걱정할 필요 없으니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책임자의 말에 일동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묵을 지켰다. 

    곧 그들을 태운 대형 밴 차량들은 공항 도로를 빠져나가 서울 시가지 도심을 향해 진입했다.

    *   *   *

    항구의 컨테이너 박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지고 배치되는 하역장은 늘 부산하다. 

    끊임없이 항구에 새로운 화물을 불어넣는 화물선들과 그 위에서 계속해서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자동화된 컨테이너 전용의 크레인들은 캄캄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정확하게 측정되어 작동했다. 

    자동화된 컴퓨터 계측 장비와 그 계산값대로 정확하게 척척 움직이는 크레인은 선박에 높이 쌓여 있던 컨테이너 박스들을 지상에서 대기 중인 하역 트럭 차량들의 뒤로 정확하게 쌓아 올렸다.

    “하역 완료! 출발!”

    지상에서 컨테이너 박스의 설치를 돕는 진행 요원들이 하역 완료 신호를 보내자 컨테이너 트럭 운전수들은 저마다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정해진 구역을 향해 컨테이너 운반을 진행한다. 

    이렇게 트럭 위로 하역된 컨테이너들은 곧바로 항구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컨테이너 안에 어떤 물체가 들어 있는지를 일일이 검사하고 확인받은 뒤에만 빠져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방금 컨테이너 박스를 하역받은 트레일러 트럭들은 정해진 항구 내부의 하역 장소 대신 항구 바깥을 향해 직진했다. 

    그 광경을 보고 제지해야 할 항구의 감시 권한을 받은 요원들은 즉시 비상벨을 호출하고 인근에 대기 중인 경찰 및 감시 인력들을 불러 제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   *   *

    “흐어어어어…….”

    초점이 풀린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직원들은 항구 통제센터 안에서 무력하게 서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붉은빛을 점멸시키는 기구를 들고 서 있는 외국인 남성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완벽하군.”

    그의 손에 들린 것은 BW챌린지가 가진 막강한 비밀 기계 중 하나인 세뇌 광선 기계였다. 

    이들은 방금 하역한 컨테이너 화물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었다. 

    전산 기록조차 삭제된 상황에 대해 일체의 위화감을 전혀 갖지 못할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외국인 남성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이 이 한밤중에 빼돌린 화물들은 컨테이너를 꽉 채운 총탄 박스. 

    한 개 대대급 병력을 무장시키고도 남을 막대한 양의 자동소총 탄환이 어떠한 감시도 제재도 받지 않은 채로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감시하면서 제지해야 할 요원들은 곳곳에서 이 세뇌 기구에 당해 해당 컨테이너에 대한 기억 자체가 소거되고 있었다.

    “컨테이너에 대한 기록은 모두 지웠나?”

    “그렇습니다. 깨끗하게 없애 버렸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하의 보고에 레게 머리를 한 외국인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세뇌 광선 기구를 사용한다 해도 컨테이너 자체에 대한 기록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었다. 

    대신 전혀 엉뚱한 다른 화물에 대한 기록으로 대체함으로서 최대한 위화감을 없앴다. 

    게다가 세뇌 광선 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언제 세뇌가 풀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기에 당분간 이상한 징후를 보일지 모르는 세뇌 대상자들을 항구 근처에서 감시하는 것 또한 이들의 임무 중 하나였다.

    “마크 님께서 곧 왕림하신다. 목표물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제압해서 바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BW챌린지의 수족으로서 온몸을 불사를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은 이제 곧 이 나라에 입국할 마크라는 존재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 나갈 구세주나 다름없는 인물. 

    그런 그가 성진의 존재를 확보할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들의 임무를 다시 한 번 마음속에 되새기면서 BW챌린지의 수족들은 캄캄한 밤공기 속으로 걸어 나가면서 모습을 감췄다.

    *   *   *

    여당의 암묵적인 지원 속에서 결국 여당 후보로서 출마 선언을 한 윤진만 대선 후보는 자연스럽게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성진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킹메이커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이미 사실상 야당 측이나 다른 경쟁 정당에서는 윤진만 후보에 걸맞은 무게감을 지닌 경쟁 후보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신문이나 방송사를 비롯한 유력 언론 기관 등에서는 윤진만 후보의 압도적인 대선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TV 속에서는 벌써부터 유력 후보로서 승리가 확정된 윤진만 후보의 인터뷰를 따지 못해 안달이 난 상황이었다. 

    - 윤진만 후보님의 승리를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는데 후보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글쎄요. 저로서는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겸허히 따라야 할 입장인지라 뭐라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제가 맹세하고 다짐했던 사명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 윤진만 변호사의 한결같은 태도는 전 국민적인 호감을 사고 있었다. 

    이미 일본 식민 지배 사과를 이끌어 낸 핵심 인물로 급부상한 윤진만 변호사의 존재 자체는 특별한 실수만 하지 않아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상태였는데, 거기에 윤진만 변호사에게 주목이 쏟아지면 쏟아질수록 본래 가지고 있던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가 매번 드러나면서 더더욱 큰 호감을 얻는 중이었다.

    ‘본래 가치 있는 자는 어떤 식으로든 진가를 드러내기 마련이지.’

    한창 윤진만 변호사의 인터뷰가 나오는 TV 화면을 바라보던 성진은 윤진만 변호사에게 쏟아지는 이 주목이 절대 인위적이거나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윤진만 변호사를 주목받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 

    결국 사람들은, 특히 대중들은 진가가 없는 자들을 곧바로 알아보는 알 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윤진만 변호사가 만약 대선 후보로서 주목받기에 자격이나 가치가 부족한 인간이었다면 오늘날 이렇게 어마어마한 주목도 속에서 열화와 같은 지지를 끌어내지는 못했으리라. 

    결국 윤진만 변호사를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알아본 성진의 안목은 주효했음이 증명되려 하고 있었다.

    ‘윤진만 변호사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훨씬 더 바빠지겠지.’

    성진은 윤진만 변호사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더더욱 은밀하고 암묵적인 지원을 계속해 나갈 작정이었다. 

    윤진만 변호사가 대통령으로서 얻게 되는 권력을 성진 자신이나 회사를 위해 사용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었다. 

    성진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새로운 이상과 목표를 위해 윤진만 변호사가 대통령으로서 발휘할 품성과 능력을 기대할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성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혜영이 말을 꺼냈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으니 확실히 분위기가 무르익었네요. 우리 결혼도 가까워졌지만요.”

    혜영이 수줍게 웃으며 말하자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부모님이 잡은 결혼식 날짜는 대선을 치룬 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이제 막 신혼의 꿈에 젖어 있는 예비 새신부인 혜영은 성진과 함께 새로 살 혼수를 고르는 나날에 행복을 느끼는 중이었다.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아버지가 요즘 부쩍 관심 두시는 게 많으셔서요. 호홋.”

    “박 회장님…… 아니, 장인어른께서요?”

    “네. 뭐 이것저것 챙겨 주신답시고 애쓰시는데…… 내가 시집간다니까 신경 쓰이는 게 많으신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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