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회: 7권 - 초토화 -->
그런 마당에 9명의 애제자들을 모조리 눈앞에서 순식간에 해치워 버린 성진을 자신이 상대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 좀 실감이 나시나? 당신이 확실하게 끝장이 났다는 것을. 당신은 평상시에 거슬리는 적들을 보유한 무력이나 그게 안 되면 로비력으로 해치워 온 모양인데 나 같은 상대한테는 아무것도 통하지를 않아.”
성진은 성큼성큼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그런 성진이 두려워 저절로 뒷걸음질을 쳤다.
급기야 노인의 머릿속에 공포심이 가득 채워지자 잽싸게 품속에서 꺼내든 것은 바로 권총이었다.
“이 괴물 자식! 뒈져랏!”
조준기를 맞추거나 조준선을 정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마구잡이로 방아쇠를 당겼다.
부지불식간에 무작정 연발로 쏴 댄 권총 탄환.
노인의 근본도 무술을 극성으로 수련한 몸인지라 비록 늙었음에도 성진이 서 있는 자리를 향해 권총 탄이 정확하게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어느새 성진은 노인의 코앞으로 순간 이동하듯 다가와 노인의 안면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노인네가…… 최후의 순간까지 몰리니 영 가리는 게 없으시구만.”
성진은 노인의 발악이 가소로웠다.
곧바로 가볍게 노인의 손아귀에서 권총을 빼앗아 총열째로 부숴 버렸다.
성진의 강화된 완력 안에서 권총을 이루는 물질의 경도는 무의미해졌다.
플라스틱과 금속의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성진은 노인의 뒷목을 쓰다듬으면서 진기를 불어넣었다.
“크윽!”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낀 노인은 떨쳐 내려 했지만 성진의 진기가 들어오는 속도를 도저히 막아 낼 수 없었다.
“크아아앗!”
비명성을 내지르면서 노인은 자신의 몸을 장악하는 정체불명의 기운을 느끼면서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노인을 내려다보면서 성진은 차갑게 말했다.
“지금까지 당신의 부하들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풀어서 움직일 수는 있게 해 뒀지. 하지만 당신은 갱생의 여지가 없는 걸 보니 조금 단호하게 조치를 해야겠어. 목숨을 빼앗지는 않겠지만 평생 사지를 움직일 수 없고 혀조차도 결코 뜻대로 움직일 수 없을 거다. 남은 여생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평생 제자들의 봉사나 받고 살라고.”
성진은 그렇게 노인이 자신의 뜻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뒤돌아섰다.
그런 성진의 말을 들은 노인은 과거 이 나라의 뒷세계에서 고위층들을 상대로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공황 상태에 빠져 버린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성진을 응시할 뿐이었다.
뭐라 혀라도 움직여 사정해 보려 했지만 노인의 혀는 뜻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았다.
“크흐어으아으으어어업…….”
기이한 발음만을 흘리면서 침을 흘린 노인은 이제 자신이 정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하아으아아아르아압…….”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 밖에 나오는 소리는 정체불명의 괴상한 발음일 뿐.
그런 노인을 보면서 성진은 문득 지금 시각이 어느새 새벽 6시를 조금 넘겼음을 깨달았다.
‘곧 조간신문이 배달될 차례로군.’
성진은 생각보다 일이 빨리 마무리 되는 것을 깨닫고 오후까지 보도를 늦춰 달라고 말한 것을 후회했다.
곽정수 기자의 대중일보는 조간신문이라 오후에 발표하려면 대중일보가 보유한 웹 신문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게재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간신문으로 발표가 된다면 파장이 더 빠르게 확산되겠지만 어차피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이 시대에서는 신문 포털 사이트에 발표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이제 오후가 되면 당신들이 저지른 탈세 혐의와 온갖 배임, 금융 관련의 범죄 혐의들이 입증돼서 폭로될 거다. 자료가 아주 넘쳐흘러. 각 감독 기관은 물론이고 중앙 경찰청에도 직접 배달될 테니 각오해 둬.”
그 말에 노인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두 눈과 마비된 것만 못한 제멋대로 움직이는 혓바닥이었지만 노인의 절망에 빠진 심정을 충실히 반영해서 움직였다.
“끄아아아바악? 끄아아를라라라!”
멋대로 꼬여 버리는 혀를 애써 움직이면서 절규하는 노인을 두고 성진은 만신창이가 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혼전 중에 성진의 이목을 사지 않은 일반 부하들이 눈치를 보며 숨어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성진은 굳이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기실 그들도 권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 권총으로 성진을 해할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었다.
방금 전 노인이 직접 권총을 뽑아들어 정확히 사격했음에도 성진은 노인을 단박에 제압해 버렸다.
그렇게 유유히 장소를 빠져나가는 성진을 보면서도 아무도 감히 건드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숨을 죽인 채로 빠져나갈 기회만 엿보는 그들을 보던 성진은 문득 화기가 신경이 쓰였다.
‘권총을 든 채로 주변을 쏘면 문제가 생기려나?’
그렇게 마음먹은 성진은 주변에 널린 작은 부스러기 조각들에 기공력을 실어서 튕겨 보냈다.
그러자 은밀히 숨어 있었다고 믿은 그들은 부스러기 조각을 맞고 각각 사지의 일부가 마비되었다.
“크억!”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을 보면서 성진은 무심하게 갈 길을 지나갈 뿐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인공지능 팔찌는 불법 총기를 소지한 무장 단체가 있다는 내용의 제보 전화를 인근 지역 경찰서에 해 놓은 상태였다.
한편 성진이 조직의 본거지를 들쑤셔 놓은 상태로 빠져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다.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진 헬기 상공에서 장거리 관측 장비로 성진을 바라보던 인물은 바로 흑인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채로 한참 성진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측만 하던 그는 곧 특수한 형태의 통신 장치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어떤 나라에도 전파 등록은커녕 제품 출원조차 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통신기기는 곧 흑인 남성이 목격한 모든 내용을 모처의 장소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고도로 암호 처리화되어 주변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스캔하는 성진의 인공지능 팔찌조차도 잡스런 노이즈로 처리해 인식을 못할 정도로 고등한 통신 체계였다.
그 직후 흑인 남성은 통신 기기에 대고 직접 보고했다.“그자는 우리 BW챌린지가 찾아 헤매던 신인류의 조건에 가장 걸맞은 자입니다.”
- 틀림없는가?
“그렇습니다. 일본에서의 활동 당시에는 직접 목격하지 못해 확신하지 못했지만 목표물인 한성진은 조직의 궁극적인 과제인 신인류의 특징에 가장 걸맞은 인물입니다.”
성진은 일본에서의 활동 과정에서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철저하게 비밀을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한 곳에서 성진의 존재는 주목을 끌었다.
바로 전 세계에 비밀스러운 위성 감시망을 확보해 놓은 조직인 BW챌린지는 성진이 일본 열도에서 보여 준 가공할 활약상에 대해 최근 포착한 뒤로 감시 인력을 급파해 놓은 상황이었다.
- 좋다. 곧 그곳으로 정예 타격 부대와 마크 님이 행차하실 것이다.
“마크 님이 말씀이십니까?”
흑인 남성의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
마크라는 존재는 BW챌린지의 전부나 다름없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였다.
오늘날의 BW챌린지를 만들었고 강력한 힘으로 이끌어 온 마크가 이 한국 땅에 직접 상륙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신인류를 찾아내는 것이 조직의 가장 큰 과제라지만 까마득할 정도로 여겨지던 조직의 최고 리더가 직접 행차할 만큼 중요한 일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크 님이 직접 나타나 행동하시기에는 위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자네에게 판단을 맡긴 적은 없다. 자네는 신인류로 추정되는 한성진이라는 인물을 계속 추적하도록.
상부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느낀 흑인 남성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BW챌린지의 영원한 부흥을 위하여!”
- BW챌린지의 영광을 위하여! 계속 수고하도록.
곧 통신이 끊긴 후 흑인 남성을 태운 헬기는 계속해서 성진의 뒤를 먼 거리에서 탐지 장치로 확보할 만큼만 은밀히 쫓았다.
인공지능 팔찌의 감시 능력으로도 평범한 헬기로 보여 의심을 사지 않을 만큼 여러 대의 헬기가 번갈아 노선을 변경하며 자연스럽게 먼 거리에서 따라붙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감시하는 자들이 있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성진이 올라탄 차량은 국도를 향해 매끄럽게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