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78화 (178/185)

<-- 178 회: 7권 - 초토화 -->

고수는 한 번의 손을 섞은 것만으로도 서로의 수준을 알아본다.

하지만 성진의 수준은 그들의 수준을 너무도 아득하게 뛰어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너무 압도적이다 보니 그들은 성진이 가진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성진은 그들의 실력을 가볍게 손을 섞은 것만으로도 정확하게 파악했다. 

실상은 성진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그들이 최선을 다한 것이지만 성진에게는 가볍기 짝이 없는 전초전이었다.

“탐색전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성진이 한 발을 크게 내딛자 이미 손을 섞어 본 흑천문의 제자들은 차마 정면으로 막아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자신의 제자들이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노인의 안면 근육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놈들! 대체 뭐하는 짓이냐! 자랑스러운 흑천문의 직전 제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으냐!”

노인은 직전제자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싸우라는 듯이 종용했지만 성진은 그 말이 처량하기 짝이 없게 들렸다.

‘직전제자로서 망설이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사문이 저질러 온 죄악이 부끄러워야 할 텐데…….’

순수한 의미로 성진은 이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사문의 무공을 닦아 와서 이 정도 경지를 이뤘음에도 사악한 의도로 이용되는 것이 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이들 사문의 뜻과 행보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다면 절대 저만한 경지에 이를 때까지 지원을 받지 못했으리라.

“흑천문이 이런 짓을 저질러 온 사문이라면 결코 자랑스럽지 못했을 텐데……. 어쨌든 오늘로 내가 흑천문의 명맥은 책임지고 확실히 끊어 주도록 하지.”

“닥쳐라 이놈!”

노인이 노호성을 터트리자 흑천문의 제자들은 입을 앙다물더니 아랫입술을 깨물고 사지를 긴장으로 물들였다. 

사문에 대한 모욕을 눈앞에서 노골적으로 들었는데 참는다면 더 이상 사문의 문도이기를 포기하는 짓이다. 

흑천문에 대해 오랜 시간 은혜를 입어 온 자신들이 흑천문을 모욕하는 자를 살려 둔다면 안 될 일.

“크하아아앗!”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성진을 향해 자신들의 비전 오의를 밀어붙였다. 

흑천문이 자랑하는 합격진 천살 흑풍진이었다. 

성진처럼 강력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오랜 시간 서로의 손과 발을 맞춰 연마해 온 가공할 합동 공격술이었다. 

까마득한 고대에는 현재보다도 훨씬 원시적이고 조잡한 위력의 천살 흑풍진이었으나 그런 식으로 상당한 고수들을 쓰러뜨리며 흑천문의 위명을 더해 왔다. 

그러나 성진은 이 끊임없이 발전되고 개량된 천살 흑풍진을 상대하면서도 딱히 자신의 전력을 끌어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느리군. 허점도 너무 많고.’

성진은 이미 일본에서 엔도 츠요시가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폭발시켜 평상시의 15배에 달하는 빠르기로 적을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냥 목격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인공지능 팔찌의 기 에너지 스캔 능력으로 모든 발동 과정과 작용 과정을 철저히 해부하고 연구해 온 상태였다. 

그 결과 성진은 새로운 기술을 얻어 냈다. 

“내가 아주 재미난 걸 보여 주지.”

자신만만하게 말한 성진은 엔도 츠요시가 썼던 엔도 닌자 가문의 최종 비기를 자신의 몸속에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태합 유문의 방식으로 축적한 내공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성진의 힘을 배가시켜 주었다. 

‘뇌의 뉴런에게 가해지는 압력 작용을 최대한 보호하도록 해 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이 인공지능 팔찌에게 지시한 것은 바로 엔도 가문의 비기가 가진 최대의 단점, 극성까지 끌어낼 경우 이성이 날아가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성진은 온몸에 엔도 가문의 비전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자신의 이성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온몸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엔도 가문의 비기가 가진 최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그 결과 태합 유문의 자연스러운 기운이 온몸에 가해지는 악영향을 중화시키고 인공지능 팔찌의 나노 로봇이 뇌와 신경 다발 줄기에 가해지는 악영향을 통제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만들어 냈다.

현재 일본 열도에 있는 엔도 츠요시라면 자신의 가문이 가진 비기가 이렇게 남의 손에서 시전되는 것만으로도 기절초풍할 일인데, 정작 최대 단점이라 할 만한 이성의 공백까지 극복한 것을 알면 억울해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목숨은 빼앗지 않겠다.”

짧게 읊조린 성진은 즉시 인지 가속을 작동시켰다.

- 인지 가속 작동. 

- 두뇌 능력에 가해지는 과부하가 평상시보다 크기 때문에 가용 시간이 짧습니다. 5분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마스터.

가뜩이나 두뇌와 신체에 무리를 주는 능력이 인지 가속이다. 

오랜 시간을 사용하면서 몸을 움직이기까지 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인공지능 팔찌의 나노 로봇이 긴급 수복을 하면서 생체 세포들의 상태를 유지시키기 때문에 그나마 실질적인 사용이 가능한 기술. 

거기에 엔도 가문의 비기까지 사용되었으니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은 급격히 짧아졌다. 

‘그래. 알았어.’

인공지능 팔찌의 경고를 들은 성진은 15배나 민첩해진 몸으로 다시 인지 가속을 통해 평상시의 수십, 수백 배는 더욱더 느리게 움직이는 세상 속을 유유히 헤쳐 나갔다.

지금의 성진은 인지 가속을 쓸 때마다 답답하게 느껴졌던 몸이 15배나 빠르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인지 가속은 주변의 상황을 빠르게 인식해서 시간의 흐름을 성진에게 느리고 자세하게 인식시키는 개념이었지, 성진의 몸을 가속시키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성진은 15배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에 평상시 인지 가속만을 발동시키던 상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이 흘러가는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성진은 어마어마하게 빨라진 몸으로 주변의 적들을 가볍게 제압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손가락을 뻗어 점혈을 하자 적들의 몸속에서 마비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성진은 그들의 몸속에 마비가 퍼져 나가기 이전에 마지막 상대까지 모조리 제압한 뒤 인지 가속을 풀었다.

- 인지 가속 해제. 

- 부작용에 대한 긴급 수복에 모든 기능을 집중하겠습니다.

- 생체 세포 손실 긴급 수복 가동.

인공지능 팔찌가 나노 로봇들을 모두 가용해 성진의 급속한 반응 속도를 견디지 못한 여러 세포를 수복하려 애썼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진의 몸속에서는 채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내장 일부와 여러 근골이 다소 손상된 상태였다.

‘쓸 때마다 몸이 망가지는 것이 느껴지는군.’

성진도 인공지능 팔찌의 나노 로봇이 수복 기능을 제공해 주어서 원상태로 되돌려지지 않는다면 이렇게 수명과 건강을 깎아먹는 기술은 차마 쓸 엄두가 안 났을 것이었다.

“후우…….”

그렇게 한숨을 돌리는 사이 온몸이 마비된 흑천문의 제자들은 거의 동시에 사지의 힘이 풀려 쓰러져 내렸다.

“아닛!”

그 모습을 목격한 노인은 경악한 음성으로 성진을 향해 소리쳤다.

“이노옴! 네놈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성진은 사술이랍시고 헛소리를 해 대는 노인의 말에 대꾸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지만 부들부들 떨면서 성진을 노려보는 그 모습이 불쌍해 가볍게 대답해 주었다.

“사술이고 뭐고 오늘로 흑천문은 끝장이니까 네놈 선조들에게 백배 사죄할 준비나 하는 게 어떤가?”

“이 고얀 놈! 감히 이 흑천문의 총 본산에 멋대로 쳐들어와서…… 내 제자들을…….”

노인은 마지막까지 여유를 부리게 해 준 히든카드인 제자들이 쓰러지자 진정으로 이성이 나가 버리는 듯했다. 

이미 자신의 신체는 노쇠해서 제자들 중 막내에게도 당해 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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