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77화 (177/185)

<-- 177 회: 7권 - 초토화 -->

‘점혈인가?’

통각 신경을 차단하기 위한 점혈 수법. 

성진은 이들이 지금까지 상대해 온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전의 기공술을 익혀 온 자들이군. 그러고 보니 방금 맨손으로 벽을 부순 것은…….’

성진이 찬찬히 부서진 벽의 흔적들을 살펴보니 발경의 흔적이 역력했다. 

‘발경을 쓸 정도라면 이들의 수준은 보통이 아니다.’

발경은 기공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몸무게와 모든 신체 에너지를 한 점에 되도록 많이 집중하여 최대의 파괴력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발경이며 이러한 타격법은 기본적으로 무술의 모든 타격법과 근원이 같다. 

하지만 발경이 특별히 강한 것은 바로 모든 신체의 에너지와 무게를 끌어내서 상상치도 못할 파괴력을 낸다는 점에 있었고, 여기에 기공술에 관련된 내공운용법이 더해진다면 벽돌뿐만이 아니라 두터운 쇠로 된 철벽도 극성의 발경 앞에서는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만큼 발경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오랜 시간동안 무술을 연마해 왔다는 증거였다. 

‘난 비록 인공지능 팔찌의 나노 로봇으로 쉽게 배우긴 했지만 말이야.’

성진은 눈앞에서 자신을 에워싼 적들이 양손에 내공을 뿜어내고 있는 살벌한 상황임에도 사부님의 발경 운용 시범을 보고 단번에 발경을 깨우쳤던 상황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발경을 쓰는 것을 보니 평범한 실력들이 아니군. 누구로부터 사사했나? 실력들을 보니 나름대로 체계적인 사문의 가르침이 있었을 것 같은데…….”

성진의 말에 노인은 이죽거리며 말을 받았다.

“우리는 흑천문의 명맥을 잇고 있는 전통 깊은 몸들이다. 이래 봬도 수천 년 동안 이 한반도에서 활동해 온 역사를 자랑하지. 네놈은 우리를 너무 얕봤다.”

성진은 노인의 자부심을 읽었지만 이번에는 비웃지 않았다.

기공이 전설이 된 시대다. 

이런 시대에 발경을 쓰는 고수라면 절정 이상의 고수로 대접받을 만했다. 

그런 고수를 아홉 명이나 길러 냈으니 사문의 성격이나 행실은 어찌 됐든 인정해 줄 만했다.

성진은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로 자신의 사문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흑천문이라…… 네놈들의 사문을 알려 줬으니 그렇다면 나도 내 사문을 알려 주도록 하지. 혹시 태합 유문이라고 아나?”

“태합 유문?”

노인의 뇌리에서 태합 유문의 이름이 파고든 순간 옛 사부가 말한 사문의 원수들 중 한 곳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옛적부터 자신들의 흑천문이 큰 포부를 펼치려 할 때마다 혼자의 몸으로 나타나 사문의 고수들을 패퇴시키고 사라지곤 했다는 그 문파의 이름이 태합 유문이라는 사실을 노인은 사부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 일인전승의 문파 따위는 세월의 격동 속에서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인연의 끈질김인지 성진이 맥을 이은 태합 유문은 수많은 세월의 악연을 타고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 이렇게 다시 흑천문의 후세들과 재회했다.

“그런가? 내가 알기로 태합 유문은 일인전승을 원칙으로 삼는 문파라던데 네놈이 죽는다면 태합 유문은 맥이 끊어지겠군?”

노인의 표정에 사이한 빛이 감돈 것을 본 성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뭐 그렇기야 하겠지만 내가 봤을 때 너희 흑천문의 약골들은 우리 사문의 가르침을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약해 보이는데? 그리고 너희야말로 흑천문의 이름을 가진 마지막 세대가 될 거다. 오늘을 기점으로 문파의 맥이 단절될 테니까.”

성진이 선언하듯 말하자 노인은 고함을 치면서 부하들에게 호령했다.

“이 자리에서 놈을 쳐 없애라! 마침 사문의 원수이니 조금도 봐줄 것이 없다!”

노인은 오늘 이 자리에서 성진을 죽여 없애 오랜 사문의 은원을 끝내기로 작정했다. 

‘우리 조직을 노리는 자가 태합 유문의 후손일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더 잘된 일이다.’

노인은 자신의 애제자들이 가진 실력에 대해 잘 알았다. 

저마다 한 명 한 명이 발경을 쓰는 무서운 실력의 소유자다. 

특히나 현 시대에는 운기법조차 마땅치 않아 내공의 운용법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영약과 비슷한 약물을 사용해야 했고, 이 효과를 최대한 내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제자들은 자신조차도 뿜어내기 힘든 내공을 몸속에서 운용하여 발경의 원리로 발현시킬 수 있었다.

“네놈은 살아남을 수 없어!”

노인의 단호한 음성과 동시에 노인의 제자들, 흑천문의 후계자들이 동시에 성진을 향해 짓쳐들었다.

저마다 사방을 접한 채 다시 바깥으로 사방을 점하고, 남은 한 명은 손가락의 부상을 입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언제든 성진의 허점을 노리도록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성진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하는 행위 자체가 적당한 율동으로만 보일 정도로 긴장감이 없었다.

‘인지 가속을 몇 번 사용해서인가? 어쩐지 이들의 움직임이 다 보이는군…….’

인간의 동체 시력은 본래 한계가 있다. 

본래 인류의 신체 구조와 진화 방향 자체가 동체 시력보다는 눈에 비치는 화면의 정밀성, 즉 해상도와 먼 거리를 미리 내다 볼 수 있는 먼 시야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동물 중에서도 동체 시력이 막강한 다른 종들과는 달리 뛰어나고 우수한 화면 해상도 대신 동체 시력을 포기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성진은 신체 강화를 이루면서 자신도 모르게 시력까지도 강화된 상태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안구에 들어오는 시야 정보의 양과 그걸 처리하고 입력하게 하는 신경 정보 줄기의 형태 자체가 크게 확장되고 처리하는 속도가 더 적합하게 바뀌었다. 

그것만으로도 시간당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시각 정보의 양이 크게 개선되었지만 아예 안구 자체와 그 주위를 움직이는 근육의 속도가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개선되면서 성진이 마음만 먹고자 한다면 곤충을 제외하고 지구상의 어떤 지상 동물보다도 동체 시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뛰어나게 바뀐 이 우월한 시각 감지 신체기관을 평상시 감각 제한을 하면서 충분히 감각적으로 익히지 못했을 뿐, 이제 감각 제한을 모두 해제한 상황에서 전투 시간을 늘리다 보니 어느덧 성진은 웬만한 상황에서는 인지 가속을 사용하지 않아도 막강한 빠르기를 자랑하는 적들을 상대로도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 할 지경이었다.

‘마스터. 마스터의 신체 구조가 변화하면서 겪게 되신 감각 능력의 여러 변화 요소 중 하나로 파악됩니다. 아직까지도 2차 육체 강화의 감각 제한 능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하신 적이 드물기 때문에 익숙해지시지 못한 변화가 여럿 있습니다.

‘그래? 육체 강화의 효과가 동체 시력에도 있었나?’

- 그렇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가 즉시 성진에게 2차 육체 강화를 통해 얻게 된 효과를 출력해서 보여 주었다.

성진은 사실 감각 제한을 통해 평소에는 강화 전 감각 그대로 생활하면서, 정작 전투 시에는 청각 제한만을 풀거나 위급한 순간에는 인지 가속 능력만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동체 시력 능력까지 손에 넣었는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인공지능 팔찌가 일전에도 나에게 알려 줬는데 다른 데 신경 쓰느라 미처 살피지 못했던 거 같군.’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는 성진의 눈앞에 연달아 주먹과 발차기를 내뻗으면서 성진의 목숨을 노리는 흑천문의 고수들은 죽을 맛이었다.

“흐아아악!”

온몸의 힘을 다해 가한 회심의 일격이 성진이 미세하게 몸을 뒤트는 것만으로도 빗나갔다. 

그 뒤에 반사적으로 이어지는 성진의 반격. 

가볍게 팔뚝을 두들기거나 어깨를 톡 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내상을 입고 뒤로 절뚝거리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크헉!’

신음을 차마 밖으로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삼킨 그들은 성진이 자신에게 가한 타격 기술이 심상치 않은 위력을 자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저건 혹시 발경인가? 어떻게 그런 가벼운 자세와 동작으로 이런 엄청난 내상을 입힐 수 있는 거지?’

‘놈은 엄청난 내가 기공의 고수가 틀림없다. 놈은 막강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거야. 태합 유문의 전대 고수들도 그런 내가 기공의 힘을 바탕으로 사문의 선조들을 패배시킨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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