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회: 7권 - 초토화 -->
“룸서비스라고?”
안춘택 사장을 경호하기 위한 책임자로 파견된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부러 서비스랍시고 귀찮은 인원이 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작은 방으로 객실을 잡았다.
‘그런데 이런 작은 방에도 룸서비스가 있던가?’
의아한 생각이 든 남자는 부하 직원에게 즉시 데스크로 확인하도록 객실 전화를 들게 했다.
“이봐요. 무슨 서비스인지는 몰라도 필요 없으니 나가세요.”
그러자 밖에서 장난스러운 말투가 들려왔다.
“아하. 그러신가요? 그러면 제가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잠궈 놓은 방 문이 경첩과 함께 뜯어져 밀려 나왔다.
“으앗!”
깜짝 놀란 남자가 부하들과 함께 품속에서 총기를 꺼내려 했지만 가능한 행동은 거기까지였다.
무언가가 자신의 눈앞으로 빨려 들어오는 듯한 착각을 느낌과 동시에 남자는 목에 가격당하는 강렬한 고통을 느끼면서 의식이 끊어졌다.
* * *
문 앞에서 복면을 뒤집어 쓴 성진은 근력을 사용해 직접적인 완력으로 경첩째 문짝을 뜯어내 버렸다.
그 직후에 가속을 사용해서 좁은 방에 뛰어 들어간 뒤 적들의 급소를 찔러 점혈하자 성진의 앞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시시할 줄이야.……’
성진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실력자가 한둘쯤은 있을 거라 판단했는데 일본에서의 닌자들 못지않은 강력한 실력자는 아마도 없는 모양이었다.
‘뭐 그런 나쁜 놈들 휘하에 강력한 실력자가 없다는 건 좋은 일이긴 하지.’
근육의 상태나 나름대로 자신을 쫓던 동공의 움직임, 미묘한 반사 신경 등을 생각하면 상당한 정예들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을 놓고 봤을 때의 기준이었다.
이제 장애물들을 모조리 치워 놓은 성진은 목표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성진의 시선을 받은 안춘택 사장은 움찔해서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기가 질린 터라 도통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 이보시오. 제발 난…… 난…… 그저…….”
성진은 안춘택의 변명조차 듣지 않고 그대로 손을 찔러 넣어서 각 부위에 나노 로봇을 직접 주입했다.
“변명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 아까 네 동료 앞에서도 말해 줬지만 이제 넌 평생 달리거나 남을 주먹이나 도구로 때리거나 할 수 없다. 손과 발에 강한 완력을 절대 낼 수 없게 될 거다. 그나마도 선한 마음을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서서히 사지가 약해져서 걷지도…….”
지겹지만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성진을 무시하고 안춘택은 잘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쉼 없이 꿈틀대면서 도망가려 애썼다.
“흐어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
정확하게 말하면 이성이 공포로 반쯤 넋이 나가 성진의 말을 들을 생각도 못한 채 현실 도피 증상을 보였다.
“이런…… 정말로 겁에 질려서 넋이 나가 버린 건가. 한 조직의 간부씩이나 되는 인간이 원.”
성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안춘택을 방치하고 그대로 객실을 나섰다.
‘이제 갈 곳은 한 군데뿐인가.’
성진이 마지막으로 들릴 곳은 딱 한 군데가 남아 있었다.
그곳은 바로 노인이 기거하는 이 조직의 본부였다.
* * *
정예 전투 병력들을 파견하고도 번번이 당해 버린 사실을 파악한 노인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런 속도에 이 정도 파괴력이라니…… 이 정도로 집요하고 신속하게 내 조직을 갉아먹을 줄이야.’
아마도 노인이 추정하는 상대편 세력은 오랜 시간 자신의 조직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단 한순간에 공격해서 궤멸시킬 타이밍만을 노려 온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날의 이 어마어마한 작전을 위해 자신의 휘하 부하들 주변으로 미리 병력을 배치한 후 한꺼번에 급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놈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도대체가…….’
노인은 끝끝내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적이 단 한 명이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조직에 대한 티끌만 한 실마리를 조금 얻은 것만으로 며칠도 안 되어서 조직의 핵심 구성을 모두 파악해 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직 무사한 간부들은? 남아 있나?”
“본부에 남아 있던 간부들 외에는 모두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이런 제기랄.”
혀를 차는 노인이 혀로 입술을 적시는 사이, 폐쇄 회로 감시 카메라로 본부 주변 상황을 감시 중이던 부하가 경악성을 내질렀다.
“헉! 본부 주변으로 침입자가! 어르신! 우리 경비 병력들이 당하고 있습니다!”
“뭣?”
깜짝 놀라 쳐다보는 노인을 보면서 부하 직원이 뭐라 입을 열려는데 그 순간 노인이 묵고 있는 상황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복면을 쓴 젊은 사내의 모습이 드러나자 노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고얀! 네놈들인가? 네놈이 내 조직과 부하들을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든 건가?”
그 말에 성진은 실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네놈들…… 은 복수형인데 미안하지만 난 단 한 명이라서 말이야.”
물론 인공지능 팔찌의 존재를 억지로 추가하면 네놈들이라는 말이 맞기도 하겠지만 성진은 지금 노인이 자신 외에 다른 인원들이 또 있을 것이라 의심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네놈 한 명뿐이라고?’
노인은 성진의 말이 의외인 듯 눈을 둥그렇게 치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달라질 일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눈앞에 서 있는 성진은 노인에게 크나큰 위협이었다.
“건방진 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렇게 무모하게 뛰어든 것이냐. 난 이 나라의…….”
“아! 당신이 이 나라 유력 인사들의 비리를 꿰고 그 사람들 출세하는 데 도움까지 줄 정도로 막강한 인물인 것은 잘 알고 있다.”
“뭣? 그렇다면 역시 네놈은…… 일본에서 온 것이냐? 총재가 나를…….”
“응?”
성진은 그 말에 피식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랍쇼…… 일본 놈들하고도 내통하던 것이었나? 어쩐지 들어오는 길에 일본풍 인테리어가 눈에 띄긴 하더구만.”
성진이 짓쳐든 이곳은 바로 외부에는 요정으로 알려진 건물.
입구를 넘어서는 순간 조성되어 있는 정원의 모습에서부터 기모노 차림의 일반 종업원들까지 이 건물 속에 왜색이라 불리는 일본풍의 인테리어 요소가 즐비하게 깔려 있었다.
“입 닥쳐라! 나는 그저…… 일본의 문화를 깊이 연구할 생각으로…….”
“뭐, 댁 취미야 내가 알 바가 아니요. 일본 문화를 연구하든 말든 상관할 일도 아니고 비난할 일도 절대 아닌 게 사실이지. 다만…….”
성진이 또박또박 걸음을 내딛으며 다가오자 주변의 부하들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들 모두 성진이 내뿜는 형언할 수 없는 기세에 압도당한 상태로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댁이 이 나라에 끼쳐 온 해악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사죄를 하고 끝마무리를 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해악이라니! 나는 이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 음지에서 갖은 애를 써 왔다!”
노인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의 입장을 열렬히 변호하기 시작했다.
“난 이 나라의 숨은 애국자였어!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이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
하지만 성진은 그런 노인의 행동이 이런 막판 상황에 아집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변호하려 하는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 마스터. 약 10m 거리 이내에 성인 남성으로 추정되는 9명의 생명 반응이 잡혔습니다.
‘음. 그럴 거 같더라니…….’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노인을 향해 가볍게 말했다.
“댁이 기다리는 부하들 올 때까지 안 건드릴 테니까 분위기 그만 잡으시지? 뭐 그래도 마지막 히든카드라고 주변에 모셔 뒀던 모양인데…… 주인이 죽으면 어쩌려고 그랬나? 이런 기습 상황에서 지키려면 항상 곁에 있어야…….”
그 순간 상황실의 외벽이 깨져나가면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짓쳐드는 여러 명의 인영이 성진을 향해 덮쳐들었다.
“오? 역시 마지막까지 숨겨둔 히든카드답게 수준이 영 다른 부하들하고는 다르구만.”
성진을 향해 매섭게 뻗어든 손이었다.
방금 외벽을 깨부수고 들어올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성진은 그 손을 가볍게 막고 자신의 주먹을 맞부딪치는 것만으로도 내부의 손가락뼈를 모조리 부숴 버렸다.
“크아앗!”
성진에게 기습을 가했다가 손가락만 부서져 버린 놈은 고통으로 신음을 내지르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손가락이 부서진 쪽의 팔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