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75화 (175/185)

<-- 175 회: 7권 - 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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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이 목표로 삼은 조직들이 무너지는 데에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서울시에 숨어 있던 간부들을 모조리 휩쓸어 버리고 지방에 숨어 있던 모든 간부를 요격하고 나니 어느덧 밤이 깊어져서 다음 날 새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동료들이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간부들은 피해 상황이 접수될 때마다 즉각 끊임없이 거처를 이동하려 애썼지만 지상의 육로를 사용하는 이상 폐쇄 회로 감시 화면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 간부들은 다른 생각을 했다. 

바로 공중을 이용하는 것. 

서울을 비롯한 근처 수도권 상공이 아니라면 지방 지역에서의 헬기 사용 비행은 크게 까다롭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헬기라고 해서 존재를 감출 수는 없었다. 

- 여기는 에이치. 엘. 아이. 나인 나인 세븐 쓰리 투 원 투…… 비행경로 보고를 원한다. 나인 쓰리 투 엘 원 관제탑 대답 바란다.

- 여기는 나인 쓰리 투 엘 원 관제탑이다. 

- 현재 사전 통보된 목적 경로대로 이동 완료. 착륙 예정이다. 

- 알겠다. 다시 이동할 때도 통보 바란다. 

- 알겠다. 수신 완료.

성진은 적들의 간부들이 탄 헬기가 목적 장소인 지방 호텔에 착륙한 것을 확인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육상 도로를 피하겠다는 생각이야 괜찮았지만 헬기를 탔다고 해서 안심해선 안 되지.’

어차피 모든 헬기가 운항할 때에는 착륙과 이륙 시에 각 지방 항공청이 관장하는 관제탑과 교신을 해서 보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성진이 가진 인공지능 팔찌는 각 관제탑의 교신 내용을 실시간으로 수집 및 분석할 수 있었다. 

인근 관제탑에 출발 보고가 전해진 그 즉시 전파 내용을 분석한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 모든 헬기의 이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즉각즉각 감시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미리 파악한 간부들의 이동 상황을 확인한 성진은 한반도 상공을 감시하는 위성들의 영상 신호를 해킹하여 모든 헬기의 이동 상황까지 감시했다.

‘이 나라에 있는 한 내 감시를 피할 수는 없다.’

어쩌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를 갔어도 성진의 감시를 피할 수 없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성진의 감시를 피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전자 감시 체계가 닿지 않는 산 속으로 도망가는 게 유리했을지도 몰랐다.

성진은 즉시 적이 착륙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를 향해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곧 인공지능 팔찌가 운전하는 성진의 차량이 매섭게 속도를 올리면서 도로를 질주했다.

*   *   *

안춘택 건설이라는 지역 중견 토건 업체를 운영 중인 안춘택 사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 정도로 투명하고 튼튼한 회사 운영을 공언해 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까지 내걸 만큼 투명한 운영을 강조하는 그는 실은 더러운 수법을 통해 성장한 비밀스러운 거대 조직의 일원으로서, 합법적인 자금 세탁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의 수장이었다.

안춘택 건설의 정체는 기실 투명한 회사 운영을 겉으로만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범죄행위를 은닉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 안춘택 건설의 수장인 안춘택은 헬기에 몸을 실은 채로 지방의 호텔 옥상에 도착했다.

“흐아아……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원.”

안춘택은 최근까지 숱한 선물 공세를 해 대면서 거의 다 넘어왔다고 생각한 젊은 술집 마담을 이번 주말에 불러내 즐길 생각이었다. 

헌데 갑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서열이 높은 서울 지역의 간부들이 반나절도 안 되어서 모조리 당하고, 조직 본부로부터 긴급하게 대피 명령이 떨어질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 되자 어쩔 줄을 몰랐다.

차를 타고 신속하게 이동한 다른 동료들까지 연달아 소식이 두절되자 안춘택은 자신의 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헬기에 올라탔다. 

‘휴우. 설마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데 쫓아오지는 못했겠지?’

그러나 안춘택이 몰랐던 것은 모든 헬기조차도 비행 시에는 신원과 목적지를 미리 밝혀서 통보하지 않으면 지금도 휴전 상태의 분단국가인 이 나라의 방공 사령부에서 가만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인근 지역 관제탑에 보고를 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 과정이 성진에게 발각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안춘택 사장님이십니까?”

옥상에 발을 내딛자마자 안춘택은 냉정하고 험상 ㅤㄱㅜㅊ은 인상의 건장한 사내들로부터 에워싸였다.

긴장한 안춘택이 그들을 바라보는데 사내들 중 한 명이 안춘택에게 말했다.

“저희는 본부에서 긴급하게 파견된 경호 인력들입니다. 안춘택 사장님의 안전은 저희가 지금부터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날카롭게 눈을 빛내는 사내의 모습을 보면서 안춘택은 위압감에 저절로 몸이 짓눌리는 듯했다. 

‘무, 무슨 눈빛이…….’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두렵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일단 자신을 경호하러 왔다고 하니 애써 간부로서의 위엄을 보이려고 짐짓 허세를 부리려 했다.

“어? 어어…… 그, 그럼…… 흠흠. 난 이 호텔 vip 룸에 묵을 테니까 여러분은 알아서들 대기하라고. 허험.”

안춘택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려 하자 사내가 안춘택을 제지했다.

“죄송하지만 이 호텔의 vip 룸은 넓은 창문이 모든 방 면적에 걸쳐서 펼쳐져 있기 때문에 안 됩니다. 경호에 어려움이 있으니 안춘택 사장님께서는 창문이 없는 객실에 묵으셔야겠습니다.”

“뭐? 창문이 없는 객실?”

호텔에도 설계상의 한계와 공간 활용의 문제 때문에 간혹 일부 창문 없는 객실이 서비스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안춘택은 그런 방에서 묵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 그런…….”

“죄송하지만 저희의 지시에 안춘택 사장님께서는 절대적으로 따라 주셔야 합니다. 이것은 본부…… 아니, 어르신의 명령입니다.”

칼날 같은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내를 보면서 안춘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분고분해진 안춘택을 보면서 사내는 짐짓 얼굴 근육을 풀면서 애매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가시죠.”

*   *   *

성진이 호텔 근처 지역에 도착한 시각. 

즉시 인공지능 팔찌가 호텔 내부의 전산망에 침투해서 새로이 체크인한 고객 명단을 확인했다. 

- 마스터. vip 룸이나 스위트 룸, 기타 고급 객실에 새로 투숙한 고객들이 없습니다.

“뭐?”

성진은 당연히 고급 객실에 묵을 거라 생각했던 목표물이 고급 객실에 묵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혀를 찼다.

“생각보다 조심성이 많군. 추적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건가?”

- 그럴 가능성도 높습니다. 

“좋아. 뭐가 됐든 들어가 보면 알게 될 일이지.”

성진은 아무런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적들이 아무리 전력을 쏟아부어도 지금의 성진에게 대적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 어떤 방에 숨어 있어도 건물 내부 중앙으로 들어가면 탄탄한 방음 설비를 해 놓았다 한들 성진의 청각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해제해 놓은 순간부터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호텔 로비에 들어선 성진은 그 직후부터 인공지능 팔찌에게 지시했다.

‘이 호텔의 폐쇄 회로 감시 카메라를 관장하는 전산망에 침투해서 내 흔적을 모두 지우도록 해.’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의 지시에 따라 곧 인공지능 팔찌는 호텔 중앙 전산실의 폐쇄 회로 감시 카메라 전산망에 기록되는 모든 데이터 속에서 성진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워서 재기록했다.

직원이나 기타 목격자들의 시선은 피할 수 없지만 성진은 지금까지 숙달되어 오기 시작한 텔레파시 기술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응용해서 사람들로부터 주의와 의식을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진이 아무 말 없이 호텔 로비로 출입할 때에도 그 어떤 직원이나 손님조차도 성진의 모습에 시선을 3초 이상 두지 않았다.

‘이 호텔 건물이 20층이니 10층까지만 올라가 볼까…….’

성진은 엘리베이터도 거치지 않고 계단을 통해 순식간에 10층으로 올라갔다. 

중앙 복도를 따라 정확히 건물의 가장 가운데 위치에 위치한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즉시 감각 제한을 해제하도록 지시했다.

‘청각 제한을 해제하도록 해.’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의 청각 제한 능력이 해제되고 육체 강화를 통해 얻어진 강력한 신체 능력 중 청각이 모두 발동됐다. 

즉시 성진의 귓전으로 호텔 내부의 은밀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몽땅 들려왔다.

가장 먼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욕실 안의 샤워 소리, 접시와 식기가 부딪히는 식당 안 내부의 자잘한 소음과 곳곳의 미세한 기계 작동 소음까지 모조리 성진의 귓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 안에서 성진은 찾고자 했던 목표물의 대화 내용을 확인 했다. 

‘안춘택 사장님. 답답하시더라도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으, 으응…… 뭐 어쩔 수 없지. 내, 내 걱정은 너무 하지 말라고…….’

성진은 그 말을 들은 즉시, 해당되는 대화가 들려왔던 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몸을 움직였다. 

복도와 계단을 쏜살같이 가로질러 마침내 목표했던 방에 도착했다. 

의외로 구석에 위치한 작은 방이었다.

성진은 한쪽 손을 들어서 가볍게 노크했다.

- 똑똑.

“계십니까? 룸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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