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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수 기자가 도착한 성진의 집무실.
서류를 넘기는 곽정수 기자의 얼굴 위로 흥분과 희열이 교차했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곽정수 기자는 입을 떡 벌린 채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이, 이 엄청난 자료들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얻게 되신 겁니까?”
경악하는 곽정수 기자를 보면서 성진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뭐, 거기까지는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다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진의 말에 곽정수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대기업이 보유한 정보력에 대해 함부로 묻는 건 바보짓이긴 하지.’
성진이 회장으로서 이끌고 있는 플루토 투자 그룹과 네오 테크비젼은 어마어마한 고부가가치를 보장받고 있는 재계의 기린아들이었다.
그런 회사를 이끄는 최고 경영자로서 무시무시한 정보력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곽정수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 역할은 이 자료들을 가지고 기사를 써내는 일이군요?”
곽정수 기자의 질문에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늘 부탁드렸듯이 이번에도 곽정수 기자님께 기대하는 역할은 바로 그것입니다. 멋진 기사를 써서 여론을 주목시켜 주십시오. 제가 기대하는 건 바로 그 점입니다.”
누구나 여론의 이목을 끈 사건은 쉽게 덮이거나 축소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성진은 합법적으로 응징할 수 있는 부분은 되도록 합법적으로 응징하고 싶었다.
탈세 내역을 공개하고 이에 따른 재산 압수와 압류 등은 사회에 경종을 울리리라.
성진 개인이 움직이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빠르게 처리될 것이다.
낌새를 차리기도 전에 모든 재산이 동결 처리될 것이니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친구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한 회장님과 척을 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참 불쌍하군요. 한성진 회장님처럼 강력한 정보력을 보유하신 분과 척을 진다는 건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인데…….”
곽정수 기자는 이제 성진이 보유한 정보력이 어마어마하게 두렵고 강력한 수준임을 실감하고 있었다.
성진은 곽정수 기자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된 자료들일 뿐입니다. 저와 특별히 척을 지게 되었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성진은 웃으며 태연히 말했지만 그 말을 듣는 곽정수 기자가 그런 말에 속아 넘어가 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예에…… 그렇군요.”
그럼에도 떨떠름한 표정으로나마 웃어 보일 수밖에 없는 곽정수 기자는 자료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잘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한 회장님의 일을 도울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종종 불러 주십시오. 하하하.”
“하하. 물론입니다, 곽정수 기자님. 단 하나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예. 그 기사들은 다음 날 실리도록 해 주십시오. 적어도 내일 오후까지는 절대 공개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다소 의외였지만 곽정수 기자는 성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지레짐작해 봐야 의미가 없지.’
사정을 살핀 곽정수 기자는 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예. 살펴 가십시오.”
성진에게 꾸벅 인사한 뒤 집무실을 나온 곽정수 기자는 복도를 한참 걸었다.
그러다 돌연 한쪽 주먹을 내뻗은 그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끄아악! 올해의 기자상이 내 눈앞에 있다.’
이 기사가 터지면 올해의 기자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적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한 어마어마한 비리 기사가 될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겉으로는 이런 기사를 취재한 기자로서 곽정수 기자의 커리어는 정점을 또 한 번 갱신할 예정이었다.
‘이러다 정말 최연소 사회부 부장이 되는 거 아니야?’
자신의 직속 상사인 전우필 부장이 내지를 경악과 환호성을 예상한 곽정수 기자는 서둘러서 대중일보 사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곽정수 기자가 대중일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바로 그 시각.
성진 또한 뒤이어서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 안에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처리한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속공이다.
폭로 기사가 뜨기 전까지 성진은 탈세 자료만으로는 건들기 어려운 감춰진 영역에 대해 모든 응징을 가할 심산이었다.
사무실을 나온 성진은 집무실 앞에서 근무하던 혜영에게 말했다.
“혜영 씨. 오늘은 일찍 퇴근해도 좋아요. 어차피 스케줄은 없으니까요.”
“네 회장님. 아니, 성진 씨 그럼 내일 봐요.”
싱긋 웃는 혜영을 보면서 성진은 뒷말을 덧붙였다.
“나 내일은 오후에 출근할지도 몰라요. 미리 알아 둬요, 혜영 씨.”
“네? 오후에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별일은 아니에요. 그러면 내일 봐요.”
“네? 어…… 성진 씨?”
성진은 의아해 하는 혜영을 뒤로하고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가 현관 로비를 향해 내려가는 사이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목표물의 동향 체크를 지시했다.
“중간 간부라고 할 만한 놈들의 거처는 모두 파악해 뒀지?”
- 그렇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의 보고와 함께 목표 인물들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서 차곡차곡 출력되었다.
성진은 나는 듯한 발걸음으로 주차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하악. 하아아악…….”
거친 숨을 가쁘게 내쉬는 중년의 남자.
그는 추우욱 늘어진 뱃살을 양손으로 움켜쥐면서 겁에 질린 눈으로 복면을 뒤집어쓴 눈앞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중년 남자는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겁에 질린 적이 별로 없었다.
공포감이라는 건 그의 사전에서 겁쟁이들이나 가지는 열등하고 나약한 감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의 가슴은 공포감 때문에 쿵쾅거리고 있었다.
너무도 큰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터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거칠 것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오다시피 했다고 자부하던 그의 인생에 이런 위기감은 처음이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복면을 쓴 남성은 비난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왜? 평생 살면서 이렇게 당하는 날은 없을 줄 알았나 보지? 네 일방적인 폭력과 악랄한 수법 때문에 망하고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비하하고 욕했다고 들었는데 네가 그렇게 당하면 어떨 것 같은가? 네 과거 행적에 걸맞은 최후를 선사해 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남자의 목소리는 젊었다.
하지만 중년 남자는 그런 것을 알아차릴 정도의 여유도 없었다.
자신의 최후를 운운하는 그의 말조차도 너무 무서워 그는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엎드려서 버둥거리려 했지만 뱃살에 박힌 고통이 너무도 커서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성진이 정도를 조절해 때려 넣은 태합경의 묘용이 내부의 장기를 조금이나마 진탕시킨 뒤 서서히 고통을 늘려 나가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래도 당분간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볼 때마다 혈변을 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살려만 달라고? 그래 나도 사람 목숨을 빼앗는 건 원하지 않으니 살려는 줘야겠지.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젊은 남자, 성진은 복면 너머로 냉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자의 팔과 다리를 응시했다.
“여기 오기 전에 다시는 그런 악랄하고 사악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네 사지에 응징을 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예? 아니 그런…… 제, 제발!”
중년 남자의 눈에 절망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겁에 질려 다급히 호소하는 남자를 보면서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안타까워하면서 사정할 필요 없다. 네 동료들도 이미 나한테 당했으니까. 너도 똑같이 당하는 것뿐이야.”
성진은 남자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양손을 움직여서 중년 남성의 등 여러 부분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