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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 투자 그룹의 회장 집무실 안.
성진의 의뢰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김 소장은 두둑한 성과급을 받고 더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앞에서 성진은 영식의 유전자감식검사표를 확인한 뒤 책상에 내려놓는 차였다.
사실 영식의 고향 마을로 데려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과정은 영식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요식행위일 뿐.
이미 성진은 영식 어머니와 영식이의 유전자 감식 결과를 사전에 받아 놓고 친모가 확실하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영식을 마을로 데려갔다.
성진은 김 소장을 보면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랫동안 안 풀리던 일에 중대한 실마리를 가져오셨습니다. 김 소장님 공은 제가 두고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기억해 두죠.”
성진의 말에 김 소장은 얼굴 가득 기쁜 표정을 지었다.
성진처럼 재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자신을 기억해 준다면 차후에 중요한 의뢰를 맡을 가능성이 크게 늘어나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나중에라도 혹시 또 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기면 그때는 열 일을 제쳐 놓고 잽싸게 달려오겠습니다, 회장님. 하하핫.”
“그래 주시면야 저야 고맙죠. 사실 저는 김 소장님과 저의 인연이 짧게 끝나기만을 바라지 않습니다. 서로 간에 필요하다면 아주 긴밀하고 중요한 협력 관계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진의 말에 김 소장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방금 성진이 한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긴밀한 관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겠다는 말은 결국 김 소장 자신을 성진의 휘하로 완전히 거두겠다는 뜻이었다.
김 소장은 성진을 보고 반문했다.
“정말 저 같은 사람을 거두시고자 하십니까?”
김 소장으로서는 너무도 뜻밖의 제안이라서 성진이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파격적으로 들렸다.
그런 김 소장을 보면서 성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김 소장님께서는 제가 말을 가볍게 하는 사람 같으십니까? 저는 적어도 이런 종류의 일은 가볍게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투에 확신을 담아 말하는 성진을 보면서 김 소장은 살짝 흥분하는 자신을 느꼈다.
성진이 자신을 거두겠다는 것은 자신에게는 무한한 기회였다.
정식으로 성진이 필요로 하는 정보원이 된다는 뜻이다.
사설 민간 탐정에서 대기업 총수의 손발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자 커다란 이익이었다.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찬스다.’
김 소장은 출세의 동아줄이 눈앞에서 내려오는 듯한 환상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오랜 세월을 살면서 다사다난한 일을 겪은 관록이 성진의 제의를 그저 기분 좋게 내키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굳이 저를 거두시려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김 소장으로서는 성진이 왜 자신을 거두려는지 그 이유가 무척 중요하고 궁금했다.
성진이 자신을 거두려는 이유가 혹시라도 위험하고 비도덕적인 일에 이용하려는 것이라면 환영은커녕 경계해야 했다.
성진은 한눈에 김 소장의 불안감을 알아차렸다.
파격적인 대우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사회 경험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인 상식일 테니 그의 불안감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성진은 김 소장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갖춘 갑 중의 갑이니, 엉뚱한 의심을 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김 소장님. 저는 사실 기업의 경영 일을 하면서 나름 대단하다고 자부할 만한 수준의 정보력을 따로 갖추고 있습니다.”
성진의 말에 김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오 테크비젼과 플루토 투자 그룹을 이끌고 있는 성진이 뛰어난 정보력을 갖고 있을 것은 당연했다.
그러한 엄청난 규모의 기업 집단을 이끌고 있는 총수가 자체적인 정보 수집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했다.
‘그래서 더 의심스럽다.’
분명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을 성진이 왜 자신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한단 말인가.
김 소장의 불안은 바로 그러한 점에서 출발했다.
성진은 바로 그 불안에 대해 해명을 해 주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겠지만 사실 저의 정보 능력이 가진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의 영식이에 대한 일을 하면서 완벽하게 정리되고 통제가 가능한 정보에만 접근할 수 있는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랬다.
인공지능 팔찌가 아무리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나서 세계의 전산 정보를 모조리 뒤질 수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사람에게 직접 접근해서 확인해야만 하는 종류의 정보는 성진이 인공지능 팔찌의 능력만으로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발로 뛰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조사를 할 수 있는 유능한 정보 조사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진의 말에 김 소장은 일견 수긍했지만 곧 다른 의심이 들었다.
만약 성진이 자신을 위험한 사건에 소모품으로 써먹으려 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러한 생각은 성진이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 가동한 뇌파 해석으로 모조리 읽혀지고 있었다.
김 소장은 민간 조사 계통에서 잔뼈가 굵을 뿐, 정보기관의 요원들처럼 스스로의 생각을 지키려는 보안 훈련은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성진은 김 소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확실하게 목적을 밝혔다.
“물론 저는 김 소장님을 위험하고 불건전한 일에 투입해서 소모품으로 써먹으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김 소장님과 저희 회사 양자에게 모두 이익이 될 만한 양질의 현장 정보 조사 조직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현장 정보 조사 조직이요?”
김 소장이 의아한 듯 묻자 성진은 확실하게 김 소장을 설득하기 위해 쐐기를 박았다.
“그렇습니다. 김 소장님이 가진 현장의 인맥과 노하우, 그리고 김 소장님 휘하 인력까지 전부 흡수하고 싶습니다.”
“흡수라 하시면 저희가 한 회장님의 회사 직원이 된다는 말입니까? 플루토 투자 그룹의?”
그 말에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김 소장의 질문을 철저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맞습니다. 여러분은 저희 회사의 비밀 정보 조사 조직이 될 겁니다. 물론 대외적인 부서 이름은 다르겠지만 말이지요. 무엇보다 김 소장님께는 계열사 중 한 곳의 보안 부서 실장 직함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저희 플루토 투자 그룹의 계열사 중 한 곳의 보안 실장이 되시는 거지요. 어떻습니까?”
성진의 제안에 김 소장은 엄청난 갈등에 빠졌다.
분명 성진의 발언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엄청난 찬스임이 분명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성진이 자신을 플루토 투자 그룹의 계열사 중 한 곳의 보안 실장 직함으로 임명해 주겠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고 기대가 되었다.
사실 민간 조사 사설탐정이라 해봐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에는 아직 여건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시대였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민간 조사 사설탐정은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당에 성진이 대외적으로 보장해 주겠다는 신분과 직함에 마음이 묘하게도 끌렸다.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직함이라…….’
사실 김 소장은 얼마 전 늦둥이를 낳아 첫 자식을 본 상태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자녀에게 김 소장은 좀 더 대외적으로 떳떳한 신분을 가진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김 소장은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시키시는 일이 저와 제 부하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만 아니라면 무조건 절대 충성하겠습니다.”
김 소장이 넙죽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저는 무리하게 일을 주문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능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임무를 주문할 것이고, 불합리한 위험부담을 강요하지도 않을 거구요. 다만 제가 필요로 하는 현장 정보 인력을 원할 뿐입니다.”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가 전산상의 정보에만 접근할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선에서 최대한 이들을 이용하려 할 뿐이었다.
‘어차피 본격적인 정보기관의 요원 출신들이 아니니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겠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변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장 조사 계통에서 활동한 이들의 노하우를 흡수하고 관련 인력을 직접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성진의 합리적인 태도를 김 소장은 알아차렸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 정도의 인물이 직접 나서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더 이상 거절한다면 그건 정말로 어깃장을 부리겠다는 작심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따로 지시 사항이 떨어질 때까지 저는 부하들 데리고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예. 조만간 정식으로 채용 제안서가 도착할 겁니다.”
성진이 미소를 지으면서 결정짓자 김 소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영식이의 일을 마무리 짓고 나니 성진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