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64화 (164/185)
  • <-- 164 회: 7권 - 재회 -->

    “그럼 저희도 그 마을 출신이나 주변 인물들을 수소문해서 최대한 확실한 정보를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회장님.”

    “그래요. 최선을 다해 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성진은 당부의 말을 남기고 허름한 건물을 나왔다. 

    성진의 적들이 자신을 언제 호시탐탐 노릴지 몰라 세간의 이목을 피해 변두리 골목에서 탐정들과 접촉하는 차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탐정들에게 정보 수집을 의뢰함은 물론, 성진 개인의 전자 정보 탐색 능력으로 전산 정보상에서 접근할 수 있는 행정적 정보들은 모두 수집했다. 

    하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고, 성진은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사람들을 직접 움직여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부디 확실한 정보가 접수되어야 할 텐데…….’

    골목길을 나서는 성진은 부디 이번에야말로 하루빨리 영식의 부모님을 찾고 싶었다.

    *   *   *

    며칠이 지난 후 성진에게 전화로 중간보고를 하는 김 소장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 한 회장님! 김진근 씨가 김영식 군의 부친이 맞는 것 같습니다. 김진근 씨가 어린 시절 아들과 찍은 사진을 찾아냈는데 김영식 군의 초등학교 시절 사진과 매우 일치합니다. 아니 육안으로 보기에는 동일한 인물이 확실합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영식이를 그곳에 보내겠습니다. 과거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나고 자란 곳에 가면 기억이 확실해질 것 같네요.”

    - 예.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진근 씨가 김영식 군의 부친이 확실하다면 그 부인 되시는 분도 김영식 군의 모친이 확실할 겁니다. 혹시 몰라서 김진근 씨의 아내가 되시는 분의 신원도 현재 찾아낸 상태입니다.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빨리 영식이를 보내서 확인시키겠습니다.”

    성진은 즉시 회사를 나와 영식이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지금은 한시를 낭비하기가 싫었다. 

    오랫동안 미뤄 왔던 영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게다가 영식은 오랫동안 부모님과의 재회를 꿈꿔 오지 않았던가.

    성진이 탄 차는 빠르게 영식이가 머무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오피스텔에 들어간 성진은 한창 검정고시 공부와 씨름 중인 영식의 어깨를 짚었다.

    “어? 형. 회사에서 벌써 퇴근하셨어요?”

    “영식아! 빨리 일어나라. 지금 공부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예? 무슨 말씀이세요?”

    “네 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일단 네 아주 어린 시절 고향부터 확인해 보자.”

    “제 아주 어린 시절 고향이요?”

    “그래. 경기도에 올라오기 전 아주 어렸을 때 시골 마을에 살았다고 했지? 거기가 농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혹시 어촌 아니니?”

    “어촌이요? 예……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좋아. 빨리 가자. 낭비할 시간이 없어.”

    성진은 얼떨떨해 하는 영식의 팔을 붙들고 걸음을 서둘렀다. 

    *   *   *

    어촌 마을은 이제 막 봄철 조업이 시작되려 하는지라 분위기가 생각보다 어수선했다. 

    성진의 차가 들어서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탐정 사무소의 부하 직원 몇몇이 어디서 구했는지 황색 깃발을 흔들면서 성진을 맞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회장님!”

    요란을 떠는 탐정 사무소 직원들을 보면서 성진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제가 이곳에 온 건 조용히 처리되어야 합니다. 저를 부르시는 호칭은 자제해 주십시오.”

    남 보기에 요란해 보이는 이런 광경이 성진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임을 넌지시 알린 것이었다. 

    그런 지적에 탐정 사무소 직원들 중 인솔자로 보이는 중년인이 명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받았다.

    “물론입니다. 일단 마을 정경부터 둘러보신 후 여기가 김영식 군의 고향 마을이 맞는지 확인부터 하시지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식아 너도 잘 생각해 봐.”

    “그럼요 형. 제가 잘 기억해 내려고 노력해야죠.”

    영식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차 안에서 설명을 들으며 마음이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미리 이곳저곳을 탐방하고 점검해 둔 탐정 사무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학교와 각 마을 요소들을 바라본 영식의 눈에는 점점 눈물이 차올랐다.

    “이곳이 제 고향이 확실해요. 저곳에서…… 아빠가 배 타고 돌아오면…….”

    점점 뚜렷해지는 기억과 데자뷰를 겪으면서 영식은 급기야 눈물을 조금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안내역을 맡은 탐정사무실 직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 정도로 눈물을 흘리시면 안 됩니다. 클라이맥스는 아직 따로 있거든요.”

    “클라이맥스라구요?”

    사무실 직원이 성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말씀을 안 하셨나요?”

    성진은 그 말에 서글픈 미소를 지으면서 영식에게 말했다.

    “영식아. 네 어머니를 만나러 가자.”

    *   *   *

    영식의 어머니는 어촌에서 멀지 않은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복지 재단의 지원으로 입원한 영식의 어머니는 어디서 무슨 고생을 했는지 간성 혼수 증상으로 하루 중 반나절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 엄마……?”

    영식은 꿈에서도 잊은 적이 없었던 어머니가 피폐해진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현실에 오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엄마아…….”

    왈칵 눈물을 흘리는 영식이 눈앞에서 서 있는데도 영식의 어머니는 전혀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신음만을 흘리고 있었다. 

    성진은 그런 영식을 위로하면서 천천히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   *   *

    영식이 좀 진정된 듯하자 성진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알아봤는데 너하고 헤어지신 뒤로 도박에 중독되셨다더라. 너하고 헤어지게 된 장소가 하필 경마장인 것도 당시 경마 자체에 투기를 시도하신 게 아닌가 하는 추정도 있다고 하고. 이후에 빚을 계속 지시면서 사채업자들한테 시달리기도 하시고 힘든 일을 많이 하시게 되셨다고 하더라고.”

    “예에…….”

    영식은 성진의 말을 담담히 들을 뿐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인 영식이 이런 고통을 이겨 낸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성진은 영식에게 위로를 건네려 했지만 뭐라 하기가 힘들었다. 

    그저 모든 상황을 영식이 견디고 이겨 내는 게 최선이었다. 

    대신 성진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을 해 줄 뿐이었다.

    “영식아. 어머님, 서울에 있는 전문 치료 병원으로 모실 거다. 거기서 최고의 치료를 받도록 조치를 해 놓을게.”

    성진의 말에 영식은 화들짝 놀라며 양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형. 그렇게까지 또 신세를 지는 건…….”

    망설이는 영식을 보면서 성진은 피식 웃었다.

    “인마, 신세라니. 너 나한테 신세 진다, 빚진다 생각하면서 살았냐? 너 그런 생각이면 나한테 빚진 건 다 어떻게 갚을 건데? 너 그거 평생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걱정 마라. 너 기왕 이렇게 된 거 뭘 하든 열심히 노력해서 나한테 아주 잘사는 모습 보여 주면 된다. 내가 너 동생 삼는다고 했을 때 너를 내가 동생으로 거둔다는 의미였던 거야. 형으로서 내 여건상 해 줄 수 있는 걸 해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라. 알았지?”

    성진은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영식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눈물을 보일 뿐이었다.

    “고마워요 형.”

    “힘내라 영식아. 넌 여기서 잠깐 어머님 지키고 있어. 난 서울로 올라갈게.”

    “예. 형.”

    성진은 영식의 어깨를 다독인 뒤 조용히 병실 복도를 나섰다. 

    사실 드러난 정황대로라면 영식의 어머니는 도박 중독에 빠져서 자식인 영식을 팽개친 무정한 어머니였다. 

    하지만 힘든 사정 속에서 영식을 오랫동안 홀로 키워 왔고 남의 사정이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가볍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기에 성진은 함부로 영식의 어머니를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영식이가 어서 빨리 훌훌 털고 예전의 밝은 모습을 찾길 바랄 뿐이었다.

    ‘힘내라 영식아.’

    성진은 다시 병실로 들어가는 영식의 뒷모습을 슬쩍 보면서 병동을 빠져나왔다. 

    이제 영식이의 부모님을 찾아 줬으니 과거의 해묵은 약속을 책임진 셈이었다. 

    어느덧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시기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목표를 이룰 시기가 가까워졌구나.’

    성진의 목표는 확고하다. 

    그리고 그 전에 거치적거리는 장애물들을 확실하게 먼저 치워 둘 필요가 있었다.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탄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가 시동을 걸면서 운전하는 사이 서울에 올라가 해결해야 할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하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 당분간은 휴식을 즐기면서 숨을 고를 생각이었다. 

    ‘그래, 당분간은 여유를 즐겨 보자고. 아주 당분간만.’

    일본에서 힘든 일들을 연거푸 해치운 성진에게는 지금 휴식이 간절했다. 

    성진은 당분간의 휴식 계획을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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