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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163화 (163/185)
  • <-- 163 회: 7권 - 재회 -->

    인적이 드문 한적한 변두리 상권 골목,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탓인지 건물 벽면에 곰팡이와 벽돌 부스러기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낡은 건물 안에서 여러 남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주재하는 사람은 바로 성진이었다. 

    성진의 눈치를 보면서 중년 남성 한 명은 떠듬거리는 말투로 몹시 난처한 듯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저희도 사람 찾는 일이라고는 아주 이골이 난 전문가들인데도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입니다.”

    성진 앞에서 바바리코트를 차려 입은, 콧수염을 기른 사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성진을 대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진은 그를 비롯해 지난 몇 년 동안 그의 탐정 사무실에 고액의 수고비를 지출하면서 영식이의 부모님을 찾는 일을 의뢰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성진을 맞는 사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각기 점퍼와 코트 차림새의 중년 남성 서넛이 서 있었다. 

    그들 역시도 지난 몇 해 동안 성진이 경쟁적으로 일을 시키기 위해 거액의 성공 보수와 거액의 의뢰비를 지출해 가며 정보 수집을 의뢰한 탐정이었다. 

    허나 뾰족한 성과가 나오지 않아 몹시도 민망해 하던 차였다. 

    성진은 그들을 보면서 나직한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여러분이 사람을 찾는 데 있어서는 민간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라 들었기 때문에 일을 의뢰한 것인데 결과가 너무도 실망스럽군요.”

    성진의 냉정한 평가와 소감에 남자들은 몸을 움츠렸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사내가 누구인가. 

    바로 욱일승천하며 전 세계에 사세를 떨치고 있는 네오 테크비젼과 플루토 투자 그룹의 대표이자 주인, 한성진 회장이었다. 

    그런 성진이 직접 몸을 움직여 자신들에게 의뢰한 것인데 정작 자신들은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모자라서 사설탐정이라는 명함이 무색할 만큼 아무것도 거둔 성과가 없었다.

    “여러분에게 찾아 달라 부탁드린 사람은 저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입니다. 여러분만의 능력과 현재 여건으로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신다면 구체적으로 제가 어떤 지원을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허심탄회하게 말씀들을 하세요.”

    성진의 질책이 섞인 날카로운 눈빛에 사설탐정들은 침만 삼키면서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침묵만을 지키던 탐정 한 명이 눈치를 보면서 손을 조금씩 치켜들었다.

    “저어…… 한 회장님. 사실 확실치 않은 정보라서 무척 망설이고는 있었는데 이 정보라도 말씀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그는 성진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말할 만한 의견이 있는 듯했다. 

    성진은 애초 그가 입술을 오물오물거리던 때부터 예의 주시하고 있던 차였다. 

    그가 손을 들며 의견을 말하려 하자 성진은 바로 힘을 실어 주며 말했다.

    “무슨 의견이든 어서 말씀하세요. 저는 불확실한 정보라도 영 엉뚱한 것만 아니라면 여러분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급할 용의가 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는 여러분도 잘 아실 테니까요.”

    성진의 말에 사설탐정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의 재계 질서를 새롭게 주름잡고 있는 기업가의 신성이 눈앞에 서서 간절하게 말하고 있다. 

    게다가 그가 꼭 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상당한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아 온 상태였다. 

    어떤 정보든 그가 쓸모 있다고 판단만 내린다면 상당한 보상을 해 줄 것이 틀림없었다. 

    문제의 발언을 한 사설탐정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 펼쳤다.

    “지금까지 저희는 말씀하신 추정 연도에 아이를 과천 경마장에 방치했을 법한 여러 중년 여성의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수집해 왔습니다.”

    탁자 위에 펼쳐진 서류 속에는 영식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러 여성의 각양각색 프로필 사진이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늘 추적하는 과정에서 전혀 엉뚱한 인물임이 밝혀져서 번번이 허탕을 치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최근에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탐정이 새로 올린 사진은 중년 남성의 사진이었다.

    “김진근 씨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김영식 군의 부친일 확률이 매우 높은 인물입니다.”

    다부진 인상에 험상궂은 표정이지만 그 안에 영식이의 얼굴 생김새가 언뜻 담겨져 있었다. 

    성진은 김진근이라는 인물의 사진을 눈여겨보았다.

    “어디 있습니까?”

    “사망했습니다. 어부였다던데 풍랑을 만나서 바다에서 실종됐다더군요. 영식 군이 아주 어릴 때 일일 겁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사망한 뒤로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로 올라갔다는 소문이 마을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영식이의 아버지라고 추정하는 근거가 뭐죠?”

    “김영식 군의 사진을 가지고 여러 곳에 정보 수배를 부탁했는데 예전에 꼭 닮았던 어린아이가 자기 마을에서 살았다고 해당 마을 촌로가 증언했습니다.”

    마을 촌로가 기억하는 김진근 씨의 어린 아들 모습과 지금 장성한 영식의 사진이 닮았다는 증언 때문에 김진근을 영식의 아버지로 추정한다는 얘기였다.

    영식은 이 탐정이 왜 다소 자신 없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은 정보였군.’

    정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추정에 가까웠다. 

    다른 사설탐정들도 이에 질세라 정보의 불확실함을 열심히 지적했다.

    “아니 그 촌로의 기억이 정확하다는 근거가 뭡니까?”

    “김 소장. 내 참 탐정 경력 십수 년 만에 이런 수준의 정보를 의뢰인한테 중간보고하는 건 너무 민망하다 싶은데요.”

    “김 소장님. 이런 정도의 근거로 정보라고 주장하시는 건 좀 의욕이 과하신 것 같습니다.”

    다른 사설탐정들은 김 소장이라 불린 사설탐정의 정보가 불확실하다는 걸 열심히 어필하려 했다. 

    하지만 성진에게는 그런 수준의 정보라도 일단 확인할 필요가 있는 실마리였다.

    “그쯤 해 두십시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서로의 단점을 지적해 대고 깎아내리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아, 예…….”

    성진이 싸늘한 눈초리로 훑어보며 지적하자 헐뜯기 바쁘던 다른 사설탐정들은 조용히 눈치를 보면서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분위기가 소강상태로 돌아가자 김 소장은 다시 눈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물론 불확실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부하 직원들이 그 마을에서 촌로가 증언한 김진근 씨의 아들 사진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곧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사진을 찾지 못해도 좋습니다. 그 마을, 그리고 그 김진근 씨에 관련된 정보를 집중적으로 수집하세요.”

    “아, 예.”

    김 소장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사설탐정들의 표정에 살짝 질투심이 어렸다 사라졌다. 

    한성진 회장 같은 재계 거물의 눈에 뜨일 기회인데 그런 기회를 눈앞에서 독차지하는 업계 경쟁자를 보니 속마음에 질투심이 저절로 생겨나는 듯했다. 

    그런 눈치를 모를 리 없는 성진은 여러 사설탐정을 돌아보면서 단서를 붙였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모두 제가 의뢰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협력하실 것을 원합니다. 물론 가장 큰 공을 세운 분들은 상등, 차등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수고하신 만큼 충분한 보수를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너무 섭섭해 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진이 모두의 이익을 보장하자 그제야 사설탐정들은 표정을 풀고 멋쩍은 표정으로 성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대신 성진은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을 방해하거나 하는 파렴치한 계약 위반 행위나 시도가 발각되면 그때는 저도 화가 날 수밖에요. 노파심에 말씀드리긴 했지만 설마하니 그런 분은 없으시겠지요?”

    성진이 가볍게 경고하자 사설탐정들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부정했다. 

    개중 가장 연장자인 사설탐정이 나서서 성진에게 말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습니다. 한 회장님. 저희 탐정들이 비록 나라에서 완전히 합법적으로 허락받지는 못한 직종입니다만  명예를 걸고 반드시 의뢰인의 의뢰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모두의 이익을 보장한 것도 서로가 협력하여 빨리 목적을 달성하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서 괜히 성진의 화를 살 만큼 무모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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