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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156화 (156/185)

<-- 156 회: 6권 - 협상 타결 -->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성진은 휴대폰을 꺼내서 번호를 넣었다.

그러자 잠시 후 수신된 휴대폰 화면에 온 몸에 부상을 입은 채로 누워 있는 백발 장년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히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들썩이는 것을 보아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온 몸이 결박당한 채로 누워있는 백발 장년인의 모습은 엔도 츠요시가 기억하는 쿠라마이 류세의 모습이 확실했다.

“이런! 당신들이 어떻게 저 자를.. 아니.. 어쩌면 속임수일 지도.. 도대체 당신들의 정체를 나는 믿을 수가 없군.”

엔도 츠요시에게 있어서 쿠라마이 류세는 가문의 최후 비기가 아니라면 감히 덤빌 자신조차 들지 않는 늙은 괴물이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확실하게 자신을 능가하는 고수를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 해도 저렇게 생포해 내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가만. 그렇다면...’

그제서야 엔도 츠요시의 머리 속에 불현 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엔도 츠요시는 성진을 증오 어린 눈으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당신이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납치했던 것인가? 그러고서 발신기의 신호를 일부러 다시 재생시켜서 우리들을 유인했던 것이로군?”

엔도 츠요시는 성진을 압박하기 위해 말한 것이었지만 정작 듣고 있는 성진은 모른 척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그로서는 엔도 츠요시의 말을 하나라도 인정해 줄 이유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저는 그저 지나가다가 저 노인이 쓰러져 있길래 데려다 놓은 것 뿐입니다.”

싱긋 웃으면서 대꾸하는 성진을 보고 엔도 츠요시는 기가 질렸다.

한편 돌아가는 상황을 듣고도 전혀 무슨 상황인지 감을 못 잡는 성진의 수행원들은 두 눈만 깜빡거리면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지금까지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들로서는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수행원들을 보면서 성진은 일일이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그들에게 보여줄 것은 총리 대신의 입에서 직접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승낙의 말 뿐이었다.

그 말을 듣기 위해 성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총리 대신. 선택하십시오. 저 노인의 신변을 당신이 확보하게 해주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저희가 알아낸 총재의 약점을 여럿 들려드리도록 하지요.”

성진의 말에 한참 씩씩대던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불안이 자극되던 차에 솔깃하게 귓가를 현혹시키는 성진의 말이 들리자 그는 노기를 보이는 대신 성진을 바라보며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된다면 자위대의 독단적인 출동이 알려지더라도 총리 대신께서는 어떤 정치적인 타격도 입지 않고, 불의한 여당 총재와의 정치적인 투쟁을 이겨낸 올곧은 투사가 되는 겁니다. 총재의 비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 맞선 총리 대신께서는 영웅이 되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끄응...”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반쯤 앓는 소리를 냈다. 허나 이미 속마음은 확고하게 돌아서려 하고 있었다.

그만큼 성진이 제시한 조건은 굉장히 매력적인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건이었다.

무언가 성진에게 한참 끌려다니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된 엔도 츠요시는 불길한 예감에 그런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를 만류하려 했다. 그러나 자신이 뾰족한 대안이 없는 만큼 이 와중에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정말로 쿠라마이 류세가 성진에게 사로잡힌 것이라면 이 일본 열도에 남은 제대로 된 닌자 가문은 자신의 엔도 가문 뿐이다. 

‘이 작자를 대체 어디까지 믿어야 한단 말인가..’

엔도 츠요시는 성진을 노려보면서 속으로 고민했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거의 마음을 정리한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이제 성진이 내건 조건에 응할 마음의 준비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한 성진 회장. 당신이 말한 그 총재의 관련 비리 정보와 저 쿠라마이 류세라는 자의 신변이 확실하게 우리에게 접수된다면 내 무조건적으로 당신의 요구를 수용하겠소.”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쿠라마이 류세의 신변쯤이야 얼마든지 넘겨드리도록 하지요. 곧 총리 관저에 대형 택배가 배달될 것입니다.”

“좋소. 그렇다면 총재의 비리 정보들은?”

“여기. 맛보기로 조금이나마 담아 보았습니다.”

성진은 준비해놓은 SD카드 메모리를 총리 대신에게 건넸다. SD카드 메모리를 받아 드는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의 뇌리 속에는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괴롭혀 오면서 끊임없이 위협해오던 총재의 권좌를 박살낸다는 희열로 가득해 있었다.

‘이 한 성진이라는 자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까지 만들어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엄청난 바보짓이고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

때문에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이제 성진이 하는 말은 거진 믿고 있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만이 남았을 뿐이다.

‘총재의 비리를 내가 모조리 접수하기만 한다면 놈의 목줄은 내가 틀어쥔다.’

그와 동시에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성진의 눈치를 살폈다.

‘총재를 몰아내기만 한다면 굳이 무리를 하면서 다케시마에 대해 인정을 해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익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면서 지지도를 끌어 온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였다. 

자신의 골수지지 세력을 배신하는 것으로 비칠 위험이 있는만큼 자연스럽게 성진의 조건을 배반할 생각이 미쳤다.

그런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의 생각을 읽어들인 성진은 입가에 노골적인 비웃음을 띄고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를 노려보았다.

“만약 저를 배신하신다면 저는 총리 대신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말든 관계 없이 자위대의 출동 과정에 얽힌 비리를 폭로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총재에게도 총리 대신의 약점이 될만한 사실들을 속속들이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총리 대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장날만한 방식으로 여론을 조성해 드리지요.”성진이 낮게 으르렁대면서 자신을 향해 위협을 가하자 그제서야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자신이 함부로 성진을 배신할 수 없는 처지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단 말인가.’

모든 상황들이 철저하게 맞물려서 성진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도록 조율이 되어가고 있었다.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그저 성진의 장기판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기말에 불과한 상황.

각자의 이익과 입장을 고려해서 성진은 결쿠 움싹달싹할 수 없는 코너로 철저하게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저 한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있어서 절대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음은 물론, 위안부 문제와 각종 식민 지배 침략 문제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사과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끄응. 그, 그렇다면.. 알겠소이다.”

“아! 말로만 끝나는 사과는 또 의미가 없겠지요. 배상금 문제와 함께 독도의 대한민국 영유권에 대한 인정을 내각은 물론이고 의회와 함께 전격적으로 발표하도록 하십시오. 관련 조례도 통과시키도록 하시구요.”

“이보시오 한 회장! 아니 그것은 너무..”

“응?”

성진은 미간을 좁히면서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를 노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당연히 하시기로 약속한 일이 아닙니까?”

“끄으응... 조, 좋소이다.”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결국 성진의 요구사항대로 인정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에 성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주변에 서 있던 수행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들었습니까? 똑똑히 들었지요? 일본의 내각 총리 대신이 직접 약속한 것이니만큼 이제 앞으로 독도 문제와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해 속상해 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요.”

“회, 회장님!”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수행원들은 확실하게 말하는 성진의 말을 듣고 그제서야 표정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협상은 성공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대성공입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성진을 보면서 엔도 츠요시와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각자 다른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의 첩보기관이 의심스럽군. 일전에 벌어진 통신 조작과 마츠시마 장관의 납치 모두 저들이 기획한 일인가?’

그로서는 성진 한 사람의 힘으로 자위대 병력들을 농락하고 자신을 패퇴시켰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움을 주는 다른 세력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때 나를 패배시킨 그 의문스러운 고수 역시 한국 첩보기관이 고용한 에이젼트인가?’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의심스러운 눈길로 성진을 노려보는 엔도 츠요시의 옆에서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벌써부터 자신이 정국을 장악해 나가고 권력의 정점의 자리를 차지할 복안을 구상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하하하하. 다케시마 따위야 아무려면 어떠한가. 야마토 재건이니 하는 그 구시대의 망령들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내가 이 일본 열도의 제 1인자가 되는 것이다!’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비록 개인의 사리사욕에 충실한 정치인이었지만 일본의 우익이 빚어낸 삐뚤어진 애국심에 종속된 제국주의의 망령은 아니었다.

그런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의 모습을 보면서 성진은 자신이 빚어낸 상황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앞으로는 내 앞을 막아서는 것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성진은 자신에게 이빨을 들이대면서 추잡한 함정에 자신을 끌어들인 강후 그룹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동안 성진은 다른 일들 때문에 참아왔지만 그 황당하고 불쾌한 일을 저ㅤㄹㅐㄷ로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윤진만 변호사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기 전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후후후. 조국에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아주 많겠어.’

성진 또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리기 시작하니 앞으로도 꽤나 바쁜 생활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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