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회: 6권 - 협상 타결 -->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일 뿐.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곧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가장 나은 이익을 한 줌이라도 건져내야 한다.’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절대 애국심에 목을 매는 그런 종류의 인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최대 이익에 부합하는 그런 조건을 건져내는 것이 최선의 목적이자 인생의 최대 가치인 인물.
그리고 그런 성향은 성진이 그와 대면한 순간 속속들이 파악해버린 지 오래였다.
‘과거의 데이터를 살펴보니 철저하게 보신주의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더군.’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 수집한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의 과거 정치 내력을 속속들이 파악해서 분석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 본인의 정치적인 성향은 물론 여러 가지 생활, 판단, 습관의 패턴 등을 드러나는 부분까지는 모조리 다 분석해서 몇 가지 유형으로 가설과 추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 것을 바탕으로 직접 대면한 자리에서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의 행동거지를 직접 분석하자 그의 진면목과 실제 성격이 훤히 드러나게 될 수밖에 없었다.
- 혈류량과 심작 맥박수가 크게 증가합니다.
- 동공 팽창.
- 안면 근육의 혈류량이 상승합니다.
- 종합적인 신체 대사 스캔 결과 당황, 고민, 망설임 등의 감정적인 판단 징후가 포착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보고가 이어지자 성진은 총리 대신이 겉으로는 침착한 척을 해도 속으로는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에게 분명한 이익이 되는 방향을 원할테지.’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가 성진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성진이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인 방사능 제거 기술 도입을 받아들여서 방사능 위협을 제거하는 것보다도 일본 국민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안 좋게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어마어마한 이익을 건네 줘야겠군.’
성진은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엄청난 정치적 이익을 안겨다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카드를 이제는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에게 고스란히 보여줘야 할 타이밍이 왔음을 깨달았다.
성진은 총리 대신의 주의를 환기시킬 겸 양 손바닥을 가볍게 쳤다.
갑자기 손뼉 치는 소리가 들리자 궁리에 빠져 있던 총리 대신의 시선이 성진을 향했다.
“총리 대신께서는 지금 총리 대신이 상대해야 할 진짜 적이 누구인지 잊어버리신 모양이군요?”
갑작스러운 성진의 말에 한참 고민에 잠겨 있던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진짜 적이라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요?”
“총리 대신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적은 바로 일본 국회 제 1여당의 총재가 아닙니까? 총리 대신을 대놓고 위협하면서 자위대까지 자신의 독단으로 출동시킨 그 작자 말입니다.”
성진의 말에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 그 사실을 한성진 회장 당신이 어떻게 알았소? 그런 사실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인데...”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록 명목상이지만 일본 내각의 최고 권력자이자 이 나라 정치 권력의 일인자를 자처하는 총리 대신이다. 그러한 자신의 동의 없이 나라의 정규 군대 병력인 자위대가 출동했다는 사실을 제 3자이자 외국인에 불과한 성진이 알아버렸다는 사실에서 깊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단지 외국인이고 민간인 사업자에 불과하니까요. 제가 어디 가서 이러한 사실에 대해 입이라도 뻥긋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입을 다문다고 해서 현실이 해결되지는 않겠지요.”
“이익! 한 회장. 도대체 그러한 일을 들먹거리는 이유가 뭐요?”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가 몹시 격노한 표정으로 성진을 노려보았지만 성진은 겁을 먹기는커녕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아. 거의 다 넘어왔군.’
성진은 상황이 무르익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결정적인 카드를 내 보여줄 차례였다.
“여당의 총재가 일본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무시하고 자위대를 자신의 독단적인 명령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퍼지면 사회가 혼란해 질테지요? 아마 엄청난 혼란은 물론이고 여당의 총재도 몰락할테지만 총리 대신께서는 무능한 총리로 낙인 찍힐 위험도 있으실테지요. 그리 된다면 아마도 정치 생명은 끝장났다고 봐도 무방할 일이 아닙니까?”
성진은 총리 대신을 은연중에 압박하면서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가 평상시에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 상황을 거론했다.
바로 정치 생명이 끝장나고 사실상 일본 정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상황.
“이, 이 작자가 감히!”
한창 교활하게 머리를 굴리려고 애쓰던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가 결국 성진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발작을 보이려 하자 옆에 있던 엔도 츠요시가 만류했다.
“총리 대신 각하! 고정하십시오. 침착하셔야만 합니다.”
하지만 평상시에 가장 걱정하며 우려하던 끔찍한 상황을 들이대면서 눈앞에서 자신을 협박하는 성진을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견디기 힘들었다.
“당신! 한 성진 회장! 내 앞에서 그따위 망발을 늘어놓는 저의가 뭐요. 나와 정말 끝까지 가보자는 뜻인가?”
“끝까지 가보자니요? 무슨 말씀을.. 저는 그저 총리 대신께 도움이 되는 제안을 드리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진은 능청스럽게 말을 흘렸지만 흥분에 빠진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성진의 말을 유연하게 받지 못했다.
“이, 익! 이런..”
성을 내면서 씩씩대기만 할 뿐인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를 대신해서 엔도 츠요시가 성진을 공격했다.
“도대체 당신은 자위대가 총리 대신 각하의 명령 없이 출동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차린 것이오? 그 사실부터 말을 해줘야 할 듯 한데? 의심스럽기 그지없군.”
성진은 코웃음을 치며 엔도 츠요시의 말을 잘랐다.
“내 앞에서는 각하 소리는 접도록 하십시오. 이제 우리 나라에서는 대통령께도 각하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일본의 총리 대신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달면서 내게 말하다니 듣기에 거슬리는군요.”
성진의 말은 사실상 쓸데없는 말 꼬투리 잡기였다. 흥분한 자신들을 두고 계속해서 능청스럽게 말을 돌리는 성진을 엔도 츠요시는 억지로 말을 끊게 했다.
“허튼 소리 하지 마시오. 똑똑히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총리 대신 각하의 명령으로 당신들을 이 나라에 영원히 구금해 놓을 수도 있소.”
“꿈을 꾸십니까? 저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식 권한을 받고 온 외교 및 협상 담당자입니다. 멋대로 증거 없이 구금을 한다면 당신네 나라는 외교적으로 엄청난 비판을 당할 것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국가의 기밀을 멋대로 빼돌리는 스파이 혐의라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스파이 혐의라구요? 총리 대신의 명령 없이 자위대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스파이 혐의입니까? 허허허 그거 참.”
성진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웃어대자 엔도 츠요시와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 모두 얼굴이 벌개져서 고함을 쳤다.
“이 작자가 감히!”
“당신! 적당히 하시오.”
두 사람을 그렇게 농락하던 성진은 표정을 바로 하고 진지한 태도로 말을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냐고 묻는다면 사실대로 말을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당사자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여당 총재의 직속 부하이자 가장 신임하는 부하인 쿠라마이 류세라는 사람한테서 들었습니다.”
“쿠라마이 류세?”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옆에 있던 엔도 츠요시의 표정은 싸늘한 긴장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가 당신과 손을 잡았단 말인가?”
성진은 엔도 츠요시가 긴장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성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쿠라마이 류세의 신변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성진은 가벼운 조소를 흘리면서 엔도 츠요시를 바라보았다.
물론 엔도 츠요시는 그 질문에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문의 비전 절기를 모두 끌어내어 광폭화 상태로 쿠라마이 류세와 싸운 직후 그는 온 몸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방위대학 의과병원에 입원한 채로 눈을 떴다.
그 싸움에 투입된 가문의 식솔들과 수하들조차도 기진맥진한 상태로 탈진해서 이후의 기억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쿠라마이 류세에 대해서는 자신이 무사한 것을 보아서 엄청난 타격을 입고 도망쳤거나 혹은 죽었을 것이라고만 의심해 왔다.
‘그런데 이 작자가 쿠라마이 류세에 대해 묻다니...’
엔도 츠요시는 자신이 갈수록 함정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결국 성진의 의도대로 쿠라마이 류세에 대해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솔직히 말해서 모릅니다. 당신은 알고 있소? 한 성진 회장.”
“물론입니다. 쿠라마이 류세는 바로 우리들의 손에 억류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억류?”
엔도 츠요시는 전혀 뜻밖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치켜올렸다.
“억류라니? 잡았단 말인가? 쿠라마이 류세를?”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