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52화 (152/185)
  • <-- 152 회: 6권 - 승자는 하나뿐 -->

    성진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묘하게 어부지리가 된 이 상황을에 혼자 민망함을 느꼈다.

    ‘어쩌다 보니 손도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군.’

    성진은 이번이 대결이 최후의 싸움이라 예상하고 만반의 준비까지 갖췄다. 

    텔레파시를 이용한 새로운 전투 비기까지 개발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써먹을 기회조차 갖지 못할 정도로 서로가 부딪혀서 완벽하게 박살이 났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뭐..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

    성진은 새로운 비기를 실전에서 써먹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자신이 싸움을 하지 못해 안달난 성격도 아니고 안전하게 목표를 달성했으니 그 점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미 가장 중요한 목표물로 설정했었던 두 우두머리는 완벽하게 서로 싸우다 전투력을 잃은 상태가 되었다. 적들의 숫자 대부분을 차지하던 다른 적 병력들은 비장하게 싸우던 초반의 전의는 어디 갔는지 서로 탈진 상태가 되었거나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어부지리를 아주 안 노린 건 아니지만...’

    성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이렇게 두 세력을 부딪히지도록 만든 까닭에는 미리 적들의 전투력을 약화시켜서 성진이 손쉽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게끔 만들려는 속셈이 깔려 있었다. 허나 성진은 이 정도로 두 세력이 처절하게 부딪히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상황을 조절하려는 생각일 뿐이었는데 결과는 예상보다도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

    ‘좋아. 이 정도라면 여유롭게 처리할 수 있겠군.’

    성진이 잠시 상황을 둘러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등 뒤에서 날카롭게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르!”

    막대한 전의를 불사르면서 성진을 노려보는 엔도 츠요시를 보면서 성진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성진이 자신을 내려다 보면서 질문을 하자 엔도 츠요시는 본능적인 두려움과 전투 본능으로 으르렁대는 소리만 내지를 뿐.

    “크르르르르르릉!”

    이미 격전으로 인해 망가져버린 온 몸과 함께 내부에서 모조리 소진되어버려 흔적도 남지 않은 진기들은 아무리 기운을 끌어내도 모이지 않았다.

    비록 이성이 날아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엔도 츠요시로 하여금 감히 성진에게 덤비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거 참. 시끄럽군.’

    성진은 발길질 두 번으로 쿠라마이 류세를 기절시켜버린 것처럼 엔도 츠요시 또한 가볍게 제압하려 나섰다.

    성진이 한쪽 손을 뻗어서 엔도 츠요시를 가리키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엔도 츠요시 역시 성진으로부터 떨어지려 애썼다. 

    하지만 부질없는 반항에 불과했다.

    아까 전의 사나운 기세는 어디 갔는지 성진이 가볍게 내뻗은 손에 사로잡힌 엔도 츠요시의 손목은 무력하게 휘둘릴 뿐이었다.

    “일단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 분명하게 가려야 하니 가볍게 혼내 주도록 하지.”

    성진은 엔도 츠요시의 손목을 붙잡고 소량의 진기를 흘러보냈다.

    그러나 진기가 아무리 적은 양이라 해도 엔도 츠요시의 손목을 타고 흘러들어간 진기는 내부에서 강력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크러어어어어억!”

    비명을 내지르면서 무력화된 엔도 츠요시를 내려다 보면서 성진은 눈매를 좁혔다.

    ‘이제 누가 적이고 아군이 될 수 있는지 가려 봐야겠다.’

    성진은 즉시 완전히 무력화 되어버린 엔도 츠요시의 뇌파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곧 총리 대신과 엔도 츠요시의 사이에 있었던 일과 함께 곁에 있던 쿠라마이 류세의 정체 또한 성진에게 속속들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그렇군. 과연.. 이런 것이었나?’

    성진은 득의 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본래라면 혹독하기 그지없는 닌자 가문의 훈련과 함께 첩보 요원으로서 쌓은 훈련들을 통해 성진의 뇌파 스캔이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엔도 츠요시와 쿠라마이 류세 뿐만 아니라 근처에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모든 인원들이 자신의 정신을 방비하기에는 철저하게 탈진해 있는 상태였다.

    철저하게 각 인물들이 가진 모든 핵심 정보를 캐낸 성진은 차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좋아. 이 일본 열도에 남아 있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군.’

    성진은 곧 모든 상황이 깨끗하게 정리 될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반드시 그 원대한 목표를 달성해 내고야 말겠다.’

    성진은 이 열도 땅에 발을 디딜 때 생각했던 그 외교적 목표를 다시 떠올렸다.

    독도에 대한 절대적인 인정과 옛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 그것이 성진이 목표했던 목적이자 이 일본 땅에 직접 발을 디딘 목적이었다. 

    그러나 모두들 회의적이었다.

    마츠시마 장관 또한 성진의 목표를 듣고 불가능하리라 말하지 않았던가. 

    ‘한 성진 회장의 뜻이 정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그런 한 성진 회장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장관 자리를 걸고서라도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하지만 성진은 그런 비관적인 예상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제 확실한 성공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윤진만 변호사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든다.’

    윤진만 변호사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보이겠다는 성진의 목적이 달성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국민들의 판단과 마음은 성진이 함부로 예상하고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진은 육정철 대통령과의 약속은 물론 스스로 목표했던 목적을 향해 최선을 다 했다. 그 최선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는 이제 성진의 눈 앞에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후후후. 이제 이 상황은 철저하게 내가 주도하겠다.’

    성진은 두 눈을 빛내면서 자신의 양 옆에 쓰러져 있는 엔도 츠요시와 쿠라마이 류세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      *      *

     엔도 츠요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햇살이 따사로이 눈가에 닿음과 동시에 총리 대신의 목소리가 곁에서 들렸다.

    “깨어난 것입니까? 엔도 상.”

    총리 대신의 목소리를 들은 엔도 츠요시는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 몸 속에서 내질러지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엔도 츠요시는 다시 침대에 내팽겨 쳐지듯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크으윽!”

    비명을 지르면서 신음을 쏟는 엔도 츠요시였다. 그런 엔도츠요시를 보면서 총리 대신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일단 차분하게 침대에 누워 있도록 하세요.”

    총리 대신은 엔도 츠요시가 바로 침대에 눕도록 배려했다. 척 보기에도 갖가지 주사 바늘과 깁스를 여기 저기 해놓은 엔도 츠요시의 상태는 심각한 중환자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엔도 츠요시를 침대에 제대로 눕혀놓은 뒤에야 총리 대신은 말을 시작했다.

    “엔도 상이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몇 가지 중대한 상황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크윽... 중대한.. 상황 변화라구요?”

    신음을 흘리면서 말하는 엔도 츠요시의 질문에 총리 대신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렇소. 먼저, 방사능 제거 기술 협상을 위해 국내에 들어왔던 협상단이 나에게 직접 대면해서 상담할 것을 요청해 왔소이다.”

    총리 대신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본 엔도 츠요시는 재차 질문을 던졌다.

    “가벼워 보이시지 않는 표정을 보니 수락하신 모양이군요?”

    “그렇소. 절대 거절할 수가 없는 요청이었지.”

    총리 대신은 혀를 차면서 말을 이었다.

    “그들이 요청을 한 뒤에 얼마 뒤에 나에게 따로 연락을 취한 마츠시마 장관이 직접 나에게 대면을 요청한 것이었소.”

    “그렇다면! 결국 마츠시마 장관은 제 3의 세력에게 잡혀 있었던 것이군요.”

    엔도 츠요시는 마츠시마 장관의 신변을 확보하고 있던 제 3의 세력에게 결국 이용만 당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쿠라마이 류세에게 최후의 절기를 발동시킨 뒤로는 의식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자신과 쿠라마이 류세의 세력이 모두 꺾인 뒤에 정작 이익을 보는 입장은 따로 있는 듯해 속이 뒤틀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마츠시마 장관의 신변이 제대로 확보되었다는 데 만족을 합니다.”

    거기에 총리 대신은 한 마디를 더 보태었다.

    “더욱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일은 총재의 세력이 이 일로 한 풀 꺾였다는 점이지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총리 대신은 엔도 츠요시를 보면서 입술 전체에 먹잇감을 만족스럽게 먹은 포식자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총재의 눈치만을 보면서 몸을 사리고 기회만 엿보던 총리 대신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전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간 발톱을 감춘 채 숨겨오기만 했던 노회하고 경륜 높은 정치인의 진면목이 발휘되기 시작하는 듯 했다.

    “총재의 세력이 꺾였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엔도 츠요시는 자신과 부딪힌 쿠라마이 류세를 떠올렸다. 자신이 무사한 것을 보면 놈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음이 분명해 보이지만 겨우 쿠라마이 가문이 꺾였다 해서 총재의 세력이 꺾였다 하기에는 그가 보유한 세력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야마토 재건을 부르짖는 그 세력의 숫자는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이번 일 한번으로 총재의 세력이 꺾였다 하기에는 어림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엔도 츠요시는 자신과 대적한 쿠라마이 류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총리 대신의 말만을 듣고 드는 짐작만으로는 그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패퇴한 모양으로 짐작이 되었다.

    “아! 엔도 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익히 알겠소.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연락이 들어오면서 총재의 발목을 확실하고 단단히 잡을 만한 실마리가 생겼소이다.”

    “그게 무슨...?”

    엔도 츠요시가 의문을 표하는 것에 상관 없이 총리 대신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손님이 오시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오. 내일 모레 협상단이 나를 찾아 올텐데 그 때까지 움직일 수 있겠소? 엔도 상.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엔도 상은 그 자리에 함께 갔으면 좋겠소. 그대는 그 자리에 서서 같이 얘기를 나눌 자격이 되니까.”

    총리 대신의 말에 엔도 츠요시는 자신의 몸 속에 진기를 흘러 보냈다. 상당한 손상이 가해져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진기를 운용하면 내일 모레까지는 움직일 만큼의 여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좋소. 자세한 이야기는 그 날 여러 사람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누도록 하지요. 그때 이 일본의 새로운 운명과 미래가 결정될 것이오. 아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어대는 총리의 마음 속에는 마저 말하지 않은 속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 일본의 최고 권력자는 이제 곧 내가 되겠어.’

    마츠시마 장관이 직접 연락하면서 자신에게 전한 메시지는 차후의 권력 구도를 재정립할 엄청난 호재였다. 

    ‘총재.. 야마토 재건이니 뭐니 하는 구시대의 어처구니없는 착각 속에 빠져 사니 이 꼴을 당하는 것이오. 곧 내가 그 자리에서 친히 끌어내어 드리지. 흐흐흐흐.’

    총리 대신은 다가올 날을 고대하면서 앞으로의 새로운 권력 구도를 그리고 지향하는 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병실 문을 나서는 총리 대신을 보면서 홀로 남은 엔도 츠요시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총리 대신이 저토록 신이 난 것이지?’

    엔도 츠요시는 눈뜨자마자 새롭게 변한 상황을 전해듣는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못했다. 자신과 맞부딪친 적들에게 상당한 피해가 가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책임을 걸고 안전을 확보하기로 했던 마츠시마 장관은 정작 제 3자에게 납치되어 있다가 연락을 한 상황인 것이다.

    ‘바로 그 마츠시마 장관이 무슨 연락을 했길래 총리 대신이 저렇게 희희낙락하고 있다는 말인가.’

    엔도 츠요시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상황을 정리하려 했지만 온 몸에서 통증과 부상의 피해가 아우성치고 있어서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후우.. 결국 부상부터 먼저 다스려야겠군.’

    엔도 츠요시는 전신에서 들끓어 오르는 진기를 차츰 차츰 내려보내면서 몸 속의 부상들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전해져 오는 닌자 가문인 엔도 가문의 비기를 담은 회복술이기도 했다. 

    엔도 츠요시는 그 와중에 자신이 발휘한 가문의 최고 비기인 광폭화의 결과가 궁금했다.

    ‘쿠라마이 류세는 과연 살아남았을까?’

    유성 도법의 무서움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무사한 것을 보아서는 역시 자신의 가문인 엔도 가문의 최후의 비기를 능가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엔도 츠요시는 속으로 어렴풋이 미소 지으면서 자신의 가문이 가진 비기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발휘했던 엔도 가문의 최후 비기는 지금 가문과 전혀 인연이 없는 엉뚱한 인물이 멋대로 관찰해서 습득해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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