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회: 6권 - 격돌 -->
성진이 한달음에 달려간 곳에는 과연 모습을 모두 숨긴 채 잠복해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보통의 생명 반응 탐지로는 잡히지 않는 은밀한 무리들이 모든 기척으로부터 자신들을 차단하며 숨어 있었다.
건물의 그림자 속에 무더기로 숨어 있는 그 일단의 사람들을 보면서 성진은 시비로 그들을 긴장시키는 대신 차분하게 그들이 시전하고 있는 기술의 모양새를 살피기로 했다.
‘저것이 귀식 대법인가?’
정식 명칭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성진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자신은 물론이고 인공지능 팔찌의 초월적인 감지 능력을 속일 정도의 은신 기술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만약 귀식 대법이라면 반드시 익히고야 말겠다.’
성진은 이 곳 일본에서도 그 전설상으로 전해지는 귀식 대법이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도는 하나로 통하는 면이 있다 하니 과거 중국에서 전해지던 귀식 대법의 개념이 예전 중국과 전쟁을 치루던 일본에 전해지지 않았을 까닭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전쟁과 암살이 끊임없이 치러지던 일본의 전국시대가 길었으니 귀식 대법처럼 첩보와 추적을 따돌리는 데 최적화된 기술이라면 일본에서의 고수들이라면 반드시 익히고 발전시켰을 확률이 높았다.
성진은 그들의 모습을 직접 육안으로 파악할 만한 거리로 다가가는 대신, 인공지능 팔찌의 감지 센서로 겨우 확실히 파악할 만큼의 거리에서 떨어져 적들의 모양새를 살폈다.
적당할 정도로 적들의 생체 반응과 기의 흐름이 파악되자 인공지능 팔찌에게 바로 지시했다.
‘지금 바로 저들이 가진 기의 흐름을 모두 파악해서 내가 익힐 수 있도록 소상히 보여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곧 인공지능 팔찌는 적들의 희미한 생명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감지 센서의 상당한 감지 능력을 곧 그들을 향해 집중했다.
그러자 본래는 희미하고 미약하기만 하던 적들의 생명반응이 조금 더 분명하게 파악됨과 동시에 희미하기 짝이 없던 기 에너지의 운용 또한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호라. 저 형상이 귀식 대법의 실체인가?’
성진은 적들이 운용하는 각 생체 대사 반응과 기 에너지의 운용 방식을 한 명 한 명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곧 인공지능 팔찌가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서 파악함과 동시에 성진에게 공통적인 데이터를 추출해서 제공했다.
고대로부터 창시되어 숱한 전투와 위기를 겪으며 개량, 발전된 귀식 대법의 정수가 인공지능 팔찌의 놀라운 분석 능력을 통해서 성진에게 쉽사리 제공되기 시작했다.
성진은 그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귀식 대법의 요체를 쉽사리 파악해나가기 시작했다.
‘귀식 대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
성진은 한 눈에 귀식 대법의 실체를 파악해 나갈 수 있었다.
천년을 이어 내려오는 태합 유문의 보법 유룡보와 발경 기술인 태합경도 성진은 나노 로봇을 직접 스승인 표학선 관장의 몸에 주입하여 기의 흐름을 파악해 내는 방식으로 쉽사리 터득해낼 수 있었다.
귀식 대법 또한 성진의 눈썰미를 피해 갈 수 없었다.
한 눈에 파악되기 시작한 귀식 대법의 정수가 성진의 뇌리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파악되자 성진은 이번에도 무척 만족스러웠다.
‘좋아. 이 정도라면 곧바로 실행할 수 있겠어.’
즉시 성진은 방금 전 입수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체 대사와 기 에너지의 흐름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곧 잠깐의 시행 착오를 몇 번 거친 직후 성진의 생명 반응을 측정한 인공지능 팔찌는 기술의 성공을 즉석에서 알렸다.
- 마스터. 현재 적들이 운용하고 있는 기 에너지의 운용 방식과 생체 에너지 반응 대사를 분석한 결과와 마스터의 생체 에너지 반응 결과가 매우 유사하다고 판단됩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확인에 성진은 자신이 귀식 대법에 성공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런 기술을 얻어냈으니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
성진은 당초 예정했던 것보다 적들에게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또한 현재 귀식 대법을 운용하면서 집단적으로 웅크리고 있는 저 의문의 무리들에 대해서도 경계의 눈초리를 잊지 않았다.
‘실내 구기 경기장으로 가면 볼만한 싸움이 될 거 같군.’
성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전쟁터를 향해 신속하게 몸을 움직였다.
* * *
엔도 츠요시의 부하들은 모두 자위대와 각 부서의 특수부대 출신 정예 요원 중에서 이제 막 전역하는 인물들을 모아 만든 부서였다.
때문에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에 비할 수준의 전투력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닌자 가문의 후예로 혹독한 훈련과 비전 절기들을 전수받은 엔도 츠요시 본인에 비할 바는 더더욱 아니었다.
때문에 엔도 츠요시는 부하들의 안전에 대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쿠라마이 가문의 늙은이가 데려오는 부하들이라면 모두 쿠라마이 가문의 닌자들일테지?’
2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히 몰락하다시피 한 엔도 가문과는 달리 쿠라마이 가문은 총재의 총애를 얻게 될 정도로 건재했으니 그 가문의 후계자인 쿠라마이 가문의 늙은이가 부리는 부하들은 모두 정예한 닌자들일 것이 분명했다.
‘이 전장에 몰려나온 놈들이라면 필시 상당한 수준의 정예들일 터.’
때문에 엔도 츠요시는 자신의 손아귀에 쥔 권총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주변의 부하들을 독려했다.
“적들이 나타나면 내가 명령하자마자 주저하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라! 발사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가 진다. 알겠나?”
“옛! 과장님!”
그렇게 부하들을 독려하던 차에 드디어 주변의 공기가 살벌한 기운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엔도 츠요시는 기다리던 적들이 지척에 나타났음을 깨닫고 자신의 부하들을 일깨웠다.
“놈들이 왔다!”
분명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지만
피부를 뚫고 들어올 듯한 위협적인 느낌과 살벌한 기운이 엔도 츠요시와 부하들을 동시에 압박해왔다.
그러자 곧 장 내의 모두가 팽팽한 긴장으로 각자의 신체에 경고의 신호를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조그마한 찰나의 위험이 닥치기만 해도 손아귀에 들린 총기의 방사괴가 당겨질 정도의 팽팽한 긴장감이었다.
사방이 어둠으로 얼룩진 가운데 새벽 달빛을 받은 어스름한 하얀 빛이 불길한 형상으로 길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결코 달갑지 않은 낯선 인간들의 형상이 솟아났다.
“흐라아앗!”
짧은 소도를 손아귀에 든 채 흉악하기 짝이 없는 오니(일본의 요괴)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난 쿠라마이 류세의 모습이 달빛 아래 잔영 속에서 드러났다.
엔도 츠요시는 즉시 부하들을 다그쳤다.
“사격!”
주변에 포진해 있는 부하들은 반쯤은 공포에 질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오랜 군대 경력과 함께 제 몸의 일부처럼 총기를 다룰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거친 이들이라 어떠한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제 몫을 다하는 정예 요원들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런 평범한 인간의 상식으로 대적할 수 없는 천년 닌자 가문의 대 정수를 이어 받은 늙은 괴물이었다.
“으하하하하하! 그 따위 눈을 달고 나를 쫓을 수 있을 거 같으냐!”
쿠라마이 류세는 자신이 익힌 가문의 절기를 바탕으로 그림자 속에 파고들어 숨었다.
정확하게는 어둠의 명도 차이를 순간적으로 파악해내지 못하는 인간의 시력이 가진 한계를 이용하는 기술이었다.
닌자들의 비전 은신술이었지만 그 까닭을 알 리도 없고 설사 안다고 해도 온전히 구별해 낼 수 있을 리 없는 엔도 츠요시의 부하들은 쿠라마이 류세를 단번에 놓치자마자 일순간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목표물을 놓친 채 방황하는 총구가 손아귀에서 갈 길을 잃은 순간 쿠라마이 류세의 살벌한 웃음소리가 다시 등 뒤에서 들려왔다.
“으하하하! 엔도 가문의 애송이 녀석! 네 놈은 나와 겨뤄야 하지 않겠느냐!”
별안간 적들의 한복판에서 솟아나다시피 나타난 쿠라마이 류세는 가운데 서서 부하들을 지휘하던 엔도 츠요시에게 달려들었다.
“네 놈의 목숨은 오늘로 끝이다! 엔도 츠요시.”
“쿠라마이 가문의 늙은이!”
엔도 츠요시의 눈 앞에 나타나 소도를 휘두르는 쿠라마이 류세를 보면서 엔도 츠요시 또한 고함을 내지르며 맞섰다.
품에서 꺼낸 팔목 길이의 비수를 손에 쥔 엔도 츠요시는 자신이 익힌 절기를 꺼내 쿠라마이 류세의 소도를 피해냈다.
그 또한 마지막 남은 닌자 가문의 후계자임이 실력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쿠라마이 류세는 크게 비웃으면서 소도를 휘둘러댔다.
“네 놈의 몸뚱아리 하나쯤은 어찌 피해낸다 해도 네 놈의 무력한 부하들은 어떻게 지킬 생각이냐?”
쿠라마이 류세의 소도가 더욱 악랄하게 휘둘러지면서 엔도 츠요시를 연신 압박했다.
그와 동시에 엔도 츠요시의 부하들 앞으로 음산한 기운을 흩날리는 새로운 무리들이 나타났다.
“흐억!”
새로운 적들이 나타나자 총을 들고 있던 엔도 츠요시의 부하들 또한 크게 동요했다.
눈 앞으로 몰려오는 적들을 보면서 그들을 일깨운 것은 소도를 힘겹게 피해내면서 외친 엔도 츠요시의 다급한 명령이었다.
“쏴라! 화력을 전방으로 집중해!”
그와 동시에 이성보다 훈련으로 쌓아 올린 반사적인 본능이 작동한 그들은 공포에 질린 이성과 상관없이 적들이 몰려오는 전방을 향해 총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총기의 발사음이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의 허공 속에서 울려퍼지고 두 세력의 격전이 더욱 더 치열해져 가기만 했다.
그리고 그 모양새를 멀찍이서 지켜보던 인물이 있었다.